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64
다시 돌아온 사람들 (3)
-내가 어두운 골짜기를 건널 때라도 두렵지 아니한 것은 그분께서 나를 인도함을 알기 때문이니.
목소리는 각자 달랐으나 외우는 기도문은 하나.
정교회의 사제들이 외우는 기도 소리를 따라 희미하게 퍼져나가는 향(香)이 있었다.
향로에 꽂혀 있는 것은 고작 하나의 향이었으나 그것이 만들어 낸 연기는 짙었고, 지금도 계속해서 블라드와 쟝이 누워있는 침대 주위를 메꾸는 중이었다.
마치 주위에 가득한 안개를 밀어내려는 것처럼.
“······!”
순간, 한참 기도문을 외우고 있던 귄터는 감았던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이건!’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불길함.
기도를 위해 꽉 잡은 손등 위로 어느새 솜털이 쭈뼛 올라와 있었다.
평생을 통해 쌓아 올린 본능이 외치는 경고였다.
“······단장님!”
가지런한 기도 소리를 뚫으며 귄터의 부관이 나지막이 외치며 다가왔다.
의식을 위해 문밖을 지키기로 했던 그는 지금 잔뜩 초조한 얼굴로 귄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밖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지금 당장 나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언제나 냉정하게 사태를 대하던 부관이었으나 지금 그의 말끝은 떨리고 있었다.
마치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본 것만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알았다.”
자그맣게 말하기는 부관의 보고를 들은 사람은 귄터 한 명만이 아니었다.
그의 바로 곁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던 유스티아는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일어서려는 귄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신해주게. 지금 나 대신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네뿐이야.”
블라드를 쫓아 쟝의 꿈까지 따라온 별빛이 있었다.
길을 잃지 않게 보여주는 이정표였고, 놓아서는 안 될 끈이었지만 지금 그 별빛은 조금씩 흔들리는 중이었다.
도시 모시암의 안개가 짙어지고 있었다.
여인이 탄 마차 안에서부터 갑작스레 쏟아져 나오는 작은 그림자들과 함께.
-찾아가렴. 너희들의 집으로.
마차에서 뛰쳐나온 아이들은 오랜만에 마주하는 모시암에 기뻐하고 있었다.
이곳은 아이들의 고향이었고 또한 그리워하던 곳이었으니까.
※※※※
쿠우웅-!
“큭!”
블라드는 갑작스레 느껴지는 진동에 휘청이고 말았다.
“뭐죠?”
예배실의 문을 등으로 틀어막던 키하노는 우스스 떨어지는 돌가루들을 보며 혀를 차기 시작했다.
“뭐가 내려앉아요?”
[너도 아까 봤잖냐. 허공에 떠 있던 나무 말이다.]쟝의 꿈은 천천히 잠식되고 있었고 그 위에는 저주의 주체인 역천의 나무가 둥실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온통 거꾸로 되어있던 나무의 가지는 기어이 쟝의 꿈에 닿고 말았다.
“3일은 괜찮을 거라고 했는데?”
[세상일이라는 게 전부 계산처럼 되지는 않는 법이지.]탕탕탕탕탕-!
블라드는 갑작스레 악화된 상황에 한 마디 불평이라도 토해내고 싶었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는 울림에 다시금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도대체 몇 명이나 안에 있던 거야!”
[물리적인 숫자는 의미가 없대도 그러네.]마치 우박이라도 쏟아지는 것 같은 소리.
수없이 많은 작은 손바닥들이 지금도 계속해서 예배실의 문을 두드리는 중이었다.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 혹은 두 사람을 잡아채기 위해서.
“내가 여기서 나가면 이 저주 만든 자식 반드시 죽여버릴 거예요.”
[······분노도 때로는 훌륭한 동기가 될 수 있지.]저주에 능통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귓가로 퍼지는 손바닥 소리만큼이나 아이들이 죽어갔으리라는 것을.
등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진동 하나하나를 느끼며 점점 블라드의 눈초리가 사나워지고 있었다.
[일단 저곳에 네가 찾는 부제는 없었다. 그렇다면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타오르는 분노도 때에 따라 펼쳐야만 효과가 있는 것일 테다.
사태의 본질을 짚는 키하노의 물음에 블라드는 서둘러 고개를 돌리며 시선이 닿는 이곳저곳 살펴보았다.
그러나 1층이나 지하와는 달리 교회의 다른 공간은 가본 적이 없던 블라드로서는 마땅히 어디라 말할 수가 없었다.
[지금 쟝이라는 부제는 너무 무섭고 고달픈 거야. 네가 만약 그 아이라면 어디로 찾아갈래?]키하노는 누구를 찾아야 할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지금 쟝과 연결되어 있는 것은 블라드였다.
길이 없는 꿈에서 어린 부제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서로가 연결된 끈을 떠올려야만 했다.
“······저라면 안드레아 님이요.”
[좋아.]그리고 블라드는 자신이 왜 이곳에 서 있는지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잔뜩 뒤틀려 가는 쟝의 꿈 안에서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일 것이다.
“그런데 저는 그분이 어디 계실지는······.”
[네가 이미 떠올렸으니 나머지는 부제의 꿈이 알려줄 거다.]“네?”
키하노의 손끝이 블라드의 가슴팍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
키하노의 손가락을 따라 내려다본 그곳.
블라드의 가슴에는 어느새 자그마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쇼아라의 블라드. 네 이름을 따라가 봐라.]진실된 사제가 건네주었고 어린 부제가 증인이 되어준 소중한 이름.
모든 것이 뒤틀려 가는 이곳에서 블라드의 신분패가 찬찬히 빛나고 있었다.
소중한 만큼 가슴 속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던 이름이었다.
※※※※
“횃불이랑 횃불은 전부 꺼내와라! 안개를 몰아내야 한다!”
안개 속에서 울려 퍼지는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모시암의 교회가 타오르듯 빛나기 시작했다.
본디 가진 화력보다 더 크게 타오르는 횃불 안에는 사제들이 축문으로 빚은 신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북부정교회에서도 단 두 명밖에 없는 기사단장인 귄터.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지금 보이는 것은 평생을 통틀어서도 경험해본 적 없는 악의의 물결이었다.
-아빠, 엄마! 나 왔어요!
-문 좀 열어봐! 엄마! 나야!
짙은 안개 속을 헤매는 새까만 그림자들이 있었다.
작고 희미했으나 문을 두들길 기력만큼은 있던 그것들은 생전의 기억을 따라 문가에 머무르고 있었다.
부모들이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면서.
잔뜩 웅크려 있는 자신들을 안아주기를 기대하면서.
“순수한 악의(惡意)······. 이 지독한 자식들.”
보이지는 않았지만 들을 수는 있었다.
자식들의 목소리에 황급히 문을 열고 만 부모들의 문소리를.
문이 하나씩 열릴 때마다 안개 너머에서 비치는 불빛들이 하나둘씩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드디어 기어 나오셨군.”
사나운 표정과 함께 왼쪽 눈을 감고 있던 귄터는 안개 저 너머에서부터 떠오르는 기이한 형상을 보았다.
꿈틀거리며 떠오른 그것은 정확하게 절반이 갈라져 있는 나무였다.
이 세상의 법칙을 모조리 무시하듯 온통 거꾸로 되어있는 역천(逆天)의 나무.
쟝의 꿈에서처럼 떠오른 나무의 가지 끝이 천천히 도시 아래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하늘로 뻗어야 할 것이 땅으로 가라앉자 이제야 부모들을 찾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
시간이 지날수록 뒤틀려 가는 쟝의 꿈은 점점 바르나의 교회를 어지럽게 만들고 있었다.
천장에 있어야 할 샹들리에가 바닥에서 솟아오르고 얌전히 벽에 붙어 있어야 하는 계단은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꿈틀거리는 중이었다.
“나 멀미 날 것 같아요!”
시커먼 바다 위에서도 멀미 한번 한 적 없던 블라드였지만 뱀의 등처럼 꾸물거리는 계단에서만큼은 예외였다.
정작 물리적인 것은 의미 없다고 말하는 키하노조차도 비틀거리는 모양새가 블라드와 판박일 정도였다.
“도대체 몇 층까지 올라가야 하는 건데!”
[소리치지 마라! 골 아프니까!]손에 쥔 신분패가 가리키는 황금빛 실타래를 따라 위로 올라온 블라드와 키하노는 저 앞에 맞닿은 복도를 발견하고서야 계단 위에서 뛰어내릴 수 있었다.
“와······. 씨.”
[······내가 늙긴 늙었나 보다. 왕년에는 안 이랬는데.]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블라드는 시선을 내려 아까까지만 해도 자신이 있던 1층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계단을 타고 한참을 올라왔건만 저 밑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아이들의 시선은 한눈에 들어올 만큼 가까운 것이었다.
“끄억.”
식도까지 차오른 신물을 집어삼킨 블라드는 바로 앞에 있는 복도를 바라보았다.
“여긴 또 멀쩡하네.”
[아직 침식당하지 않은 거지.]드드드득-
그러나 키하노가 말하기가 무섭게 복도의 벽들에서부터 검은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
[······.]새파란 안색으로 서로를 마주 본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황금색 실타래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입이 방정이지 진짜!”
[······말한 순간이 공교로웠을 뿐이야.]쩌저저적-!
마치 아가리를 벌리듯 벽의 균열이 크게 벌어지고 있었다.
새까만 균열 사이에 자리 잡은 것은 어느새 쟝의 꿈을 파고들어 있던 나뭇가지들.
하늘 위에서 내려앉은 가지들 속에서 기이한 잎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저기다!]균열을 피해 달리던 둘의 앞으로 자그마한 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황금색 실타래가 이어져 있는 반들반들한 문 위에는 사제 안드레아라는 명패가 적혀있었다.
“이번에도 문이 안 열리면······!”
지하에서의 일을 기억한 블라드는 서둘러 자신의 왼쪽 눈을 감았다.
쟝의 꿈에서부터 블라드의 세계가 감돌자 뒤따라오던 균열들이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다.
[잠깐!]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지하에 있던 문은 쟝의 공포를 가로막은 문.
-어서 들어오게!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문은 진실된 사제가 있는 문이었으니까.
자그마한 방문이 열리자 그 안에는 새하얀 법복을 입은 늙은 사제가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어서 들어오라 블라드에게 손짓하는 그였다.
“이익!”
복도 끝, 사제가 열어준 자그마한 문을 향해 꼭 닮은 모습의 황금색과 하얀색이 돌진하기 시작했다.
뒤따라오던 검은 균열은 최선을 다해 가지를 뻗어보았으나 전장을 간파하는 의외성들을 결국 붙잡지 못했다.
사제가 열어준 품으로 황금색이 먼저 들어가고.
[흡!]그 뒤를 보호하듯 뒤따랐던 하얀색마저 들어오자 늙은 사제는 기다렸다는 듯 자그마한 방문을 걸어 잠갔다.
콰아앙-!
자그마한 문이 견디기 힘들 정도의 거대한 충격이 와닿고 말았다.
그러나 키하노가 말했듯 물리적인 것들은 이 안에서는 전혀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괜찮다. 괜찮아.
떨고 있는 쟝을 끌어안은 안드레아의 기억.
그것은 작았으나 단단했고 어린 부제가 가지고 있던 마지막 보루를 훌륭히 지키고 있었다.
파도처럼 짓쳐 든 검은 균열조차도 쉽사리 부술 수 없는 그런 따뜻함이었다.
-여기까지 와 주었구나.
미끄러지듯 들어와 여전히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블라드는 자신을 향해 웃음 짓는 안드레아를 보았다.
주교의 옷이 아닌 새하얀 법복을 입고 있는 그는 추웠던 겨울날 하얀 밀빵을 나눠주었던 그때의 모습과 똑같았다.
“제가 지키겠다고 했잖아요.”
블라드의 대답에 웃음 짓는 안드레아.
그의 뒤로 새하얀 법복을 붙잡고 있는 쟝의 모습이 보였다.
어째서인지 조금은 더 어려진 것 같은 어린 부제는 자신을 위해 되돌아온 기사를 보며 자그맣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드디어 찾았다.
부탁받은 나의 어린 부제.
가능성 있는 어린 쟝을 위해 꿈속으로 돌아온 기사들이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
모시암의 성문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시체들.
마치 지금이라도 붙이면 붙을 것 같이 예리하게 갈라진 시체의 단면에는 여전히 꿈틀거리는 내장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런 시체들 앞에서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자.
기술이 아닌 실력을 담은 검 끝에는 흐르는 핏방울 하나조차 맺혀 있지 않았다.
“······용이 있고.”
저 앞에 죽여야 할 것이 있고.
“정령······들이 있고.”
그 옆에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안개 가득한 곳에서 길을 잃은 듯 서 있던 남자는 저 앞에 찬란히 타오르는 교회의 불빛을 보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하는 기사들.
목 없는 사내들.
시작은 푸르렀으나 끝은 검어진 머리의 여인이 그런 그들을 보며 기도하듯 손을 움켜쥐고 있었다.
“못다 한 것이 있으면 돌아와야겠죠.”
안개 속에 떠오른 나무처럼 새하얀 머리의 남자와 목 없는 기사들은 거꾸로 된 길을 걷고 있었다.
못다 한 일을 마치기 위해서, 혹은 후회되는 일을 바로잡기 위해서.
“여러분들은 충분히 돌아갈 자격이 있어요.”
도시 곳곳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를 들으며 정체 모를 여인은 웃고 있었다.
생(生)과 사(死), 고통과 번민에서 벗어난 순수한 존재들이 마음껏 뛰어노는 안개 가득한 도시.
그녀는 지금껏 이런 세상을 꿈꾸고 있었다.
신의 뜻 아래서 성냥의 끝처럼 새빨갛게 타올랐던 그런 마을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