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66
가장 위대한 흔적 (2)
용은 죽여도 죽지 않는 것이다.
갈가리 찢어 세상 곳곳에 던져 놓았음에도 완벽한 만큼 질긴 용의 의지는 여전히 곳곳에서 살아 숨 쉴 테니까.
그것은 태초부터 그렇게 태어난 존재였다.
그때가 오면 어떡하지.
내가 없을 그때 저주받을 용이 다시 기어 나오면.
그때의 기사들은 과연 나처럼 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내가 미래의 그들을 위해 씨앗을 뿌리고 다닌다 할지라도 말이다.
※※※※
[블라드! 블라드 정신 차려라!]여전히 돌처럼 굳은 채 억눌린 신음만 내고 있는 블라드.
내면 안의 키하노는 계속해서 블라드를 깨우기 위해 외치고 있었지만 정작 그 말을 듣고 있는 블라드는 손가락 하나도 까닥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끄으으으-!”
두근-! 두근-!
검사이기에 느낄 수 있는 압박과 피를 타고 흐르는 본능이 동시에 외치고 있었다.
대항하면 죽는다.
그러니 납작 엎드려 있어라.
“살고 싶나?”
안개와 함께 찾아온 남자는 블라드를 보며 웃고 있었다.
심장에 억지로 박아넣은 조각 하나가 어린 용의 발버둥과 함께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빌어봐라. 예전 그때처럼.”
거꾸로 걷고 있었기에 내일이 아닌 과거를 향해 걸어가는 남자. 프라우센.
그는 누군가와 똑 닮은 블라드의 푸른 눈을 보며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는 중이었다.
“엿······이나 먹······어.”
그러나 눈앞의 어린 용은 그때의 용과는 다르게 살려달라 고개를 조아리지 않았다.
프라우센은 자신을 향해 힘겹게 올려낸 블라드의 가운뎃손가락을 보며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기개 하나는 쓸만한 놈이군.”
안에 있는 키하노와 밖에 있는 프라우센은 서로 보는 방향은 달랐으나 느끼는 것만은 같았다.
떠오르는 별들을 아끼는 소드마스터는 예전부터 도전하는 자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용이라서 아쉽기는 하지만.”
그러나 아무리 마음에 든다고 할지라도 눈앞에 있는 것은 용.
누군가의 가능성을 먹고 자라는 만큼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존재였기에 사내는 검을 뽑아 들었다.
맞지 않는 그의 검집에서부터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블라드라니까.”
그러나 자신을 프라우센이라 소개한 남자는 이윽고 들려오는 소리에 잠시 멈칫하고 말았다.
들려오는 블라드의 목소리 속에 기이한 진동이 감춰져 있었으니까.
“용이 아니라······ 블라드라고, 이 새끼야.”
가장 위대한 용살자라는 세계가 지금 블라드의 앞에 있었다.
그 어떤 기사라 할지라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거대한 존재.
그러나 블라드는 그 대단한 존재 앞에서도 조금씩 검을 향해 손을 내뻗는 중이었다.
“흐읍!”
여기서 꼼짝없이 죽고 만다면 유스티아의 희생은 누가 갚아준단 말인가.
아직도 나의 가슴 속에는 그녀가 선물해 준 글귀가 적혀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아닌 종자였을 뿐이었지만 그녀는 나를 아이들의 숨결을 지킨 기사라 불러주었다.
“······!”
[······!]기어이 맞닿은 검의 끝에서 블라드의 세계가 퍼지기 시작했다.
오직 나만이 볼 수 있었던 꽃 한 송이.
이제는 감지 않은 두 눈을 통해서도 보이는 세계가 지금 블라드의 검 끝에 매달려 있었다.
소년이 꿈꾸던 세계가 아주 조금씩 피비린내 가득한 방을 메우기 시작했다.
“······이런.”
세상을 향해 가능성을 표출할 수 있는 어린 것들은 얼마나 귀한 것인가.
검 끝에 맺힌 소년이 꿈꾸던 세계를 엿보며 키하노와 프라우센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장 완벽한 용 앞에서 나는 이것을 지키고 싶었노라고.
“그래. 블라드.”
내면의 세계가 아닌 이제는 세상 밖으로 흐르는 블라드의 세계.
그러나 부들거리고 있는 본인은 아직 자신의 세계가 껍질 밖으로 빠져나온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가장 위험하고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지금의 순간.
그래서 나는 이 순간을 지켜달라 기사들에게 당부했었다.
“이만 죽어라.”
키하노의 눈에는 블라드가 빚어낸 세계가 보였지만 프라우센의 귀에는 용의 발톱 아래 짓밟혔던 수많은 별들의 비명이 선명하게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음?”
치켜세운 검 끝이 번뜩인다.
그러나 잠시간의 망설임 때문이었을까.
바짝 치켜세운 그의 검 끝은 어린 용의 목덜미로 날아들지 못했다.
“큭!”
갑작스레 누워 있던 블라드가 외마디 외침과 함께 침대 밑으로 푹 꺼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신기루처럼 사라지고만 흘러나오던 블라드의 세계.
마치 침대가 욕조라도 된다는 양 퐁당 하며 빠져드는 블라드의 모습에 프라우센의 두 눈이 커지고 말았다.
“······이런.”
의외성을 다루는 검사조차도 당황하고만 상식 밖의 상황.
그러나 아무리 눈을 뜨고 지켜보아도 방금까지 누워 있던 블라드와 어린 부제는 이미 사라지고 말았을 뿐.
지금도 그들이 누워 있던 자리에는 침대보만이 펄럭이며 잔물결을 만들어내는 중이었다.
“······어느 시대에서나 마법사라는 놈들은 당황스럽기 그지없군.”
이제야 사태를 파악한 프라우센은 허탈하게 웃으며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망설이면 안 되는 거였는데.
나는 이러려고 돌아온 것이 아니었는데.
“신비 속에 숨어봤자 잠시일 뿐이다. 어린 용아.”
블라드가 멀어지자마자 다시금 표정이 사라져버린 프라우센은 건조한 눈빛으로 침대 밑의 바닥을 노려보았다.
쓰러져 있는 성기사의 핏자국만이 가득한 그곳.
아무리 감아도 보이지 않는 그의 공허한 세계가 지금까지 울리고 있는 자그마한 물결을 잡아내기 시작했다.
※※※※
끝없이 추락하는 아찔한 낙하감에 블라드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이건 뭐야!’
4층에서 3층으로, 3층에서 2층으로.
기묘한 느낌과 함께 끊임없이 추락하는 도중이었으나 블라드는 자신의 옆에 있던 어린 부제만은 꽉 안아 들었다.
자신을 프라우센이라 소개한 남자와 멀어질수록 꽁꽁 얼어있던 블라드의 손마디는 점점 풀리는 중이었다.
“크윽!”
그리고 마침내 교회의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지고만 블라드와 쟝.
그곳에는 내려오는 그들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니벨룬이 있었다.
“깃털처럼 가벼······!”
서둘러 주문을 외었으나 떨어지는 것에는 날개가 없는 법.
쿠웅-!
“······워 져야 했었는데 주문이 좀 길었습니다.”
요란한 갑옷 소리와 함께 천장에서 떨어져 내린 블라드를 보며 니벨룬은 그만 입맛을 다시고 말았다.
“끄아아······.”
“뭡니까. 도대체?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바닥에 떨어져 아파서 그러는지 아니면 아직 몸이 굳어있어서 그러는지 블라드는 쉽사리 바닥에서 일어서지를 못했다.
“이것 좀 보십시오! 제 평생 이만한 영압(霊圧)을 가진 존재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블라드에게서 쟝을 받아든 니벨룬은 서둘러 품속을 뒤지며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블라드를 향해 이상한 물건을 들이대었다.
“이게 뭔데?”
“뒤틀림 표시기입니다. 신비나, 세계, 신성을 측정하는 도구입니다.”
블라드에게 들이밀자 마치 고장 나기라도 한 듯 빠른 속도로 뱅뱅 돌고 있는 나침반의 바늘 끝.
“엥? 이거 왜 이래?”
그 모습을 보며 니벨룬은 당황한 듯 나침반을 툭툭 쳐댔으나 정작 나침반은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을 뿐이었다.
“으으으······.”
그러나 뒹굴고 있는 블라드는 아직 프라우센의 주박에서 채 헤어나오지 못한 상태.
질문에 대한 대답은커녕, 아직도 꿈틀거리는 블라드를 보며 감옥 안에서 껑충한 그림자가 일어서기 시작했다.
“압도당했군.”
그는 귄터에 의해 교회 지하에 구류 당해있던 피에르였다.
사특한 존재를 많이 경험해 봤던 피에르는 블라드의 상태를 단숨에 알아채고는 품속에서 자그마한 몽둥이를 꺼내 들었다.
“미리 말하지만, 개인적인 원한은 없다.”
“으?”
“아니, 조금은 있나.”
한참 오한과도 같은 마비에 괴로워하고 있던 블라드는 자신을 향해 무언가를 내려치는 피에르를 보며 기겁했지만, 이번만큼은 도무지 피할 방법이 없었다.
-미몽의 안개를 물리치는 것은 오직 그분의 뜻일지니!
탕-! 탕-! 탕-!
감옥 안에서 울려 퍼지는 세 번의 내리침.
머리를 내쳤음에도 영롱하게 울리는 그 소리와 함께 블라드가 벌떡 서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머릿속에 뿌리내렸던 기운을 내쫓았을 뿐이다.”
피에르의 가차 없는 가격에 블라드의 골이 팽팽 올리고 있었지만, 과연 그의 말처럼 아까와는 다르게 멀쩡히 움직이는 중이었다.
피에르는 씨익 웃으며 블라드 앞에 자그마한 법봉을 까닥여 대었다.
판사들이 쓰는 것 같은 작은 법봉에는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희미한 핏자국들이 가득해 보였다.
콰직-!
콰지직-!
그러나 원망의 한마디를 내뱉을 겨를도 없이 감옥의 천장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하를 향해 내려오는 누군가의 주먹질이 모시암의 교회를 사정없이 뒤흔드는 중이었으니까.
“아무래도 따라오는 것 같은데요!”
“어때 해볼 만하더냐?”
새파랗게 질린 니벨룬과는 달리 피에르는 결전을 준비해 볼 요량이었지만 정작 검이 되어줄 블라드는 분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하긴 그러니까 압도당했겠지.”
“······.”
피에르의 힐난에도 블라드는 감히 변명할 자격이 없었다.
아직도 블라드의 갑옷 곳곳에는 유스티아가 흘린 핏방울이 묻어 있었으니까.
껍질 안의 어린 새가 세상 밖으로 쪼아낸 구멍은 아직 확인하기에는 너무나 작을 뿐이었다.
“일단 나갈까요?”
“어떻게?”
천장을 울리는 진동은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게다가 이곳은 지하였으니 1층으로 빠져나간다면 필히 정체 모를 존재와 마주하게 될 터.
나가자고 말하는 니벨룬의 말에 피에르가 반문할 법도 한 상황이었다.
“신비는 언제 어디서나 길을 알려주는 법이죠.”
“흥. 수인족 녀석들은 언제나 이런 말로 사람들을 속이고는 하지.”
이죽대는 피에르를 가볍게 무신한 니벨룬은 서둘러 배낭에서 기다란 양탄자 하나를 뽑아내었다.
도저히 배낭 안에 들어 있을 수 없는 부피였지만 쑥하고 뽑아내는 모양새가 아주 익숙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이걸 벽에 걸고.”
니벨룬의 양탄자를 감옥 벽에 붙이자 마치 못이라도 박아넣은 듯 착 달라 붙어버렸다.
“방향을 맞춰서······. 이제 됐다.”
다 되었다는 듯 양손을 두들긴 니벨룬이 양탄자를 들춰내었다.
블라드와 피에르는 이게 도대체 무슨 해괴한 짓인가 싶어 바라보았지만, 양탄자 밖으로 보이는 것은 감옥의 벽이 아닌 안개 가득한 모시암의 길목이었다.
“가시죠. 이거 얼마 못 버텨요.”
“······.”
“······.”
도저히 이어질 수가 없는 두 장소를 연결한 니벨룬을 보며 신실한 사제와 세계를 갖춘 기사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쾅-! 쾅-!
과연 안전할까 싶기도 했으나 이제는 돌가루마저 떨어지는 천장을 보며 블라드와 피에르는 서둘러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만든 지금을 헛되이 쓰지 마라. 세상에는 목숨값보다 귀하고 비싼 것은 없는 거다.]‘······알겠어요.’
아직 잠들어 있는 쟝을 업은 블라드는 점점 다가오는 누군가를 느끼며 이를 악물고 말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분노를 터트리고 싶었지만 방금 본 상대라면 아무리 달려든다고 하더라도 필패일 것이다.
계획 없는 각오는 그저 헛된 망상에 지나지 않을 뿐.
목소리의 말처럼 블라드는 유스티아가 살려준 자신의 목숨을 그토록 허무하게 내던질 생각은 없었다.
“블라드 님!”
바깥에서 나지막이 외치는 니벨룬의 목소리를 따라 블라드는 양탄자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요란한 진동이 곧 그들이 있는 감옥까지 다다랐으나 쏙 삐져나온 니벨룬의 팔이 재빨리 걸려 있는 양탄자를 회수하자 곧 감옥 안에는 누구의 말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도망쳤군.”
공허한 세계에서부터 일행을 구해낸 니벨룬의 신비.
그러나 추적자인 프라우센은 그런 니벨룬에게 딱히 불평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인족이 끝끝내 놓지 않은 신비 또한 그가 지켜내려 했던 세계 중 하나였을 테니까.
※※※※
안개 가득한 공터에서 희끄무레한 비석이 보였다.
그 비석과 함께 자신이 어느 곳에 서 있는지를 알아챈 블라드는 재빨리 검을 뽑아 들고는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도망친 건 좋은데 왜 하필이면 여기야!”
“기억나는 곳이 이곳밖에 없었는걸요.”
뒷머리를 긁적이는 니벨룬을 보며 블라드는 분통을 터트리고 싶었지만, 그 때문에 빠져나온 것도 사실.
“이 난리에 꼭 공동묘지로 다시 돌아와야겠어?”
“역시 공동묘지보다 교회가 낫겠죠?”
“미쳤냐!”
블라드는 다시금 양탄자를 펼치려는 니벨룬을 보며 서둘러 그의 배낭을 걷어차 버렸다.
“아오 씨! 뭐야!”
“배낭 안에 든 게 많거든요. 보기보다 꽤 무겁습니다.”
그러나 걷어찬 배낭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을 뿐.
그러나 정작 무겁다고 말하면서도 니벨룬은 아무렇지 않게 배낭을 짊어질 뿐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죠?”
“······.”
니벨룬의 질문에 업고 있던 쟝을 바짝 당긴 블라드는 서둘러 공동묘지 너머를 바라보았다.
묘지는 도시의 외각에 자리잡고 있었기에 바로 옆에는 성벽이 있어야 할 테지만 지금 블라드의 눈에는 안개만이 가득할 뿐 어떠한 주변 시설도 보이지 않았다.
“밖으로는 못 나갈 거다. 이미 마경화(魔境化)가 진행된 것 같군.”
아마 지금이라면 밖에서도 들어올 수 없을 거라 말한 피에르는 가만히 눈을 감고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럼 어떡합니까.”
“어떡하긴 뭘 어떡해.”
피에르는 들고 있던 법봉을 다 잡고는 묘지 밖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지금 모시암이 이리된 것은 안개를 통해 움직이는 사특한 저주 때문이지.”
저주는 흑마법이 자랑하는 강력한 술법이었지만 정작 그 근원을 해제한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공통적인 약점이 있었다.
“여기서 나가고 싶으면 근원을 부수면 되는 거다.”
“그 근원이 뭔데요?”
블라드의 말에 천천히 움직이는 피에르의 법봉.
그 법봉을 보며 슬쩍 물러선 블라드였지만 정작 피에르의 손끝은 저 멀리에 떠 있는 무언가를 가리키는 중이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저 녀석이겠지.”
“······.”
도시 한 가운데, 바다 같은 안개 위에 떠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블라드가 갈라내어 반쪽밖에 남지 않은 녀석이었지만 역천의 나무는 지금도 계속해서 사람들의 비명을 먹으며 안개를 뿜어내는 중이었다.
※※※※
“크으으으!”
안개 속에서 힘겹게 방진을 유지하고 있는 성기사들.
그러나 미처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 몇몇 기사들은 이미 진형 밖에서 사정없이 갈라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참이었다.
이마에 그은 성흔이 무색할 정도로 앞에 있는 목 없는 자들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있었다.
“무슨 사특한 수를······.”
어지럽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귄터에게는 낭패했다는 표정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단순히 검과 검의 맞부딪힘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힘겹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허공에 떠 있는 여인은 지금도 성기사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중이었다.
그것도 그들이 익숙한 방법을 통해서.
“어쩐지 구마전서에도 적혀 있지 않더라니······.”
이제야 조금이나마 여인의 정체를 알아챈 귄터의 눈빛이 타오르고 있었다.
여인은 분명 사특한 존재였으나 마(魔)에게서 태어난 존재는 아니었다.
“배교자(背敎者)!”
신의 뜻을 저 버린 배반자.
그것도 보통 영성을 쌓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는 지금의 이적(異跡)들.
“이름을 밝혀라! 이 간악한 것아!”
증오를 가득 담아 씹어 내뱉듯 외치는 귄터였으나 정작 그를 보고 있는 여인의 미소는 포근할 뿐이었다.
“이름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어차피 쓸어내면 지워질 것들인데.”
희미한 웃음을 지은 여인은 곧 두 손을 모으며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등 뒤에는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역천의 나무.
그리고 바로 앞에는 피 흘리고 있는 신실한 신의 종들.
모두가 그녀가 바라마지 않았던 광경이었다.
“진작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저 멀리 안개 밖에 있는 하늘을 향해 여인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곧이어 퍼지는 신에게 바치는 찬송가.
“······뭐?”
너무나 곱고 아름다운 그녀의 목소리에 성기사들은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다만 기이한 것은 아름다운 목소리와는 다르게 들려오는 찬송가만큼은 소름 끼치도록 불길했다는 것이었다.
익숙한 운율 속에서 거꾸로 외우는 가사 소리를 들으며 성기사들조차 그만 귀를 틀어막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