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70
장미 전쟁 (1)
언제나 높게 쌓여있는 서류뭉치가 방문자들을 반기는 곳이 있었다.
알싸하게 풍기는 위스키의 향과 함께 눈그늘 짙은 남자의 시선이 인상적이었던 장소였다.
“빌모시 님. 계속 이렇게 마법 전보를 날려도 되겠습니까?”
“······.”
그러나 요제프가 떠난 지금의 시장실에 가득한 것은 누군가의 불안한 눈빛뿐.
페테르에 의해 새로이 부임 된 시장은 계속해서 반짝이는 마법구의 불빛들을 보며 불태워질 금화들을 걱정하는 참이었다.
“이렇게까지 많은 전보를 쓰는 것은 제 평생 처음······.”
“당신한테까지 떠넘기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아무리 쇼아라의 시장이라 할지라도 차 한잔 마실 시간에 수백 골드를 태워버리면 초조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눈앞의 남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지금도 누군가를 향해 마구 전보를 날리는 중이었다.
“지금의 전보는 가주님께서도 충분히 공감하실 사항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요.”
“아아. 그렇다면 참으로 다행입니다.”
자신이 비용을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쇼아라의 시장.
그를 바라보던 흉터투성이의 남자는 코웃음과 함께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전임 시장과는 비교하기조차 민망한 남자로군.’
금화는 분명 귀중한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살 수 없는 저 너머의 것들이 있었다.
누구나 인정하는 진짜이기에 가치 있는 것.
그러나 눈앞의 시장은 그런 것들을 알아볼 안목이 없는 모양이었다.
‘생각할수록 아쉽군. 얌전히 경쟁에서 내려왔으면 좋았을 텐데.’
요제프에 대한 아쉬움을 떠올림과 동시에 새로운 시장에 대한 평가를 마친 남자는 무심한 눈빛으로 다음에 올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짝이기 시작하는 마법구.
-돌아올 새를 위해 붉은 장미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 것. 조만간 도착할 예정.
“흐음.”
마법사가 적어온 쪽지를 보며 남자의 눈이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기이한 대명사와 복잡한 암호문으로 적혀있는 쪽지였지만 빌모시라 불린 남자는 단번에 전보에 대한 의도를 알아챌 수 있었다.
“······전에 말해두었던 대로 장미의 미소에 대한 자료들이 필요한데.”
받아든 전보를 버릇처럼 촛불에 태우기 시작하는 흉터투성이의 남자.
그 촛불 아래에는 미처 태워지지 못한 낯선 이름 하나가 나풀거리고 있었다.
“특히 새로운 마담이라는 여자에 대해서 말이오.”
반짝이는 금화로도 살 수 없을 황금색 이름.
그 이름 앞에는 분명 블라드라는 단어가 적혀있었다.
※※※※
현재 쇼아라에서 가장 화제인 장소를 하나 꼽아보라 한다면 누구나 같은 곳을 꼽을 것이다.
뒷골목에 자리 잡은 장미의 미소.
질 좋은 음식들과 함께 새로이 선보인 맥주라는 술이 인상적인 이곳은 그 무엇보다 쇼아라의 블라드가 지키는 곳이라는 점에서 특별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밖에서 보았던 것만큼이나 내부 또한 훌륭한 곳이군요.”
“감사합니다. 남작님.”
알리시아는 그 말과 함께 자신을 안내하는 여자의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 레이디 제미나.’
몸집은 작았으나 가지고 있는 머리카락 색만큼은 화려한 여자.
과연 누추한 뒷골목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장미의 미소라는 건물만은 아니었다.
“블라드 경에게 관심을 두다 보니 자연스레 장미의 미소라는 곳에도 눈길이 가더군요.”
“······그러셨군요.”
블라드에게 관심 있다 말하는 알리시아였으나 제미나는 그저 한 호흡만을 참았을 뿐이었다.
두 명의 레이디는 먼 곳에 있었을 때부터 서로를 의식하고 있었으니까.
“블라드 경의 어린 시절을 따라 걷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네요. 그때 이야기에 대해서도 많이 듣고 싶어요.”
많은 것을 내어 줄 수 있는 알리시아와는 달리 제미나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오직 같이 공유했던 추억들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마저 가져가고 싶다는 알리시아의 말에 앞서 있던 제미나의 눈초리가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이곳입니다. 특별한 손님들을 모시기 위한 별실이에요.”
싸움을 걸었다면 받아줘야 한다.
그것이 뒷골목의 법칙이었으니까.
물러서면 죽고 마는 세상에서 살아남은 것은 오직 블라드뿐만은 아니었다.
“오······.”
“······.”
화려하게 장식된 3층의 별실을 보며 노기사 던칸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마르셀라의 마지막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이곳은 촌구석 영지에서나 살던 두 사람이 침묵만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훌륭한 곳이었다.
“······중앙의 유행을 따른 벽지들이네요. 구하기가 쉽지 않으셨겠어요.”
“과연 말씀처럼 구하기가 쉽지는 않았으나 옥사나 백작 부인께서 힘을 써주셨답니다.”
이곳은 장미의 미소. 레이디 제미나의 공간.
제미나는 마르셀라가 한 땀 한 땀 새겨준 무기들을 알리시아에게 들이대기 시작했다.
“옥사나 백작 부인?”
북부의 추위와는 어울리지 않는 벽지라 말하고 싶었으나 옥사나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알리시아는 조용히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고귀한 귀족인 알리시아라 할지라도 옥사나라는 존재 앞에서는 태양 앞에 촛불과도 같은 신세였으니까.
“······백작부인과도 알고 지내시는 사이이신가요?”
“직접적으로는 아닙니다만.”
방긋 웃는 제미나의 뒤로 여급들이 들어와 조심스레 식기들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미모를 지닌 그녀들은 한때는 쇼아라의 뒷골목을 화려하게 수놓은 장미들이었다.
“아무래도 요제프 님과 블라드 경을 통해 그분의 관심이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참 과분한 관심이지요.”
아들이 다스리는 땅에 있는 아들의 기사가 보호하는 여관.
멀리 있던 아들을 그리워하던 어미가 힘을 실어 줄 만할 장소로는 장미의 미소만 한 곳이 없을 터.
전임 마담인 마르셀라는 그런 지원을 꿀꺽꿀꺽 받아먹으며 쇼아라 역사상 가장 화려한 여관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고 새로워진 뒷골목의 모습은 고스란히 요제프의 성과로 이어졌었다.
“그렇군요.”
옥사나라는 이름과 함께 바로 앞에 놓이는 접시들을 보며 알리시아는 무어라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지금 내려놓는 식기들의 모양새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에.
화려한 접시들을 통해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는 것은 귀부인들의 세계에서는 상당히 익숙한 일이었다.
“······소문이 자자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까지 훌륭한 곳일지는 몰랐네요. 과연 찾아온 보람이 있군요.”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남작님.”
알리시아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정말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레이디 제미나는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당돌하고 매서운 여자였다.
어찌 보면 블라드의 기질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정말 기대되네요. 이 접시에 담길 요리까지도요.”
그러나 알리시아가 가지고 있는 차가운 푸른 피는 제미나의 도발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이정도의 도발에 흔들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련을 겪어온 사람이었다.
“부디 이 가게에서 가장 자신 있는 메뉴로 준비해주시겠어요?”
고작 뒷골목 여인에게서 남자 하나 가져가지 못한다면 영지를 다스릴 자격조차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블라드의 추억을 존중해 최대한 좋은 말로 구슬려 볼 생각이었던 알리시아였으나 이렇게까지 확실하게 덤벼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북부의 흥취를 느낄 수 있는 음식이었으면 좋겠군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남작님.”
그러나 제미나는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행동이 오히려 알리시아의 확신을 굳히고 있다는 사실을.
“여기 와 보기를 정말 잘한 것 같아요.”
기사로서의 블라드는 알았으나 남자로서의 블라드는 잘 알지 못했던 알리시아는 지금의 제미나를 보며 도리어 확신할 수 있었다.
귀족인 자신에게 대항해서라도 지키고 싶은 남자가 바로 블라드라는 것을.
황혼녁에 비치는 햇빛과 함께 부모님의 묘비를 닦아주었던 남자.
알리시아는 이제 그 남자까지 가져보기로 했다.
※※※※
“주문은······. 가장 자신 있는 메뉴.”
1층이 아닌 4층에 마련되어 있는 주방.
그곳에 서 있던 마르셀라는 앞에 놓인 쪽지를 보며 조용히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잘했네. 제미나.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지.”
마르셀라의 혼잣말에 뒤에 서 있던 몇몇 여자들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마르셀라는 이제 진짜로 은퇴해도 되겠네. 다음 마담도 만만치가 않아.”
“나는 걔가 이렇게까지 자랄 줄 몰랐다니까.”
“블라드도 그렇고 하벤도 그렇고 저 세대 애들은 뭔가 있나 봐.”
오래된 뒷골목의 여인들은 제미나가 가져온 첫 번째 승전보를 보며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다.
평생을 구겨진 채 이리 뜯기고 저리 맞으며 살아왔던 그녀들.
그러나 그녀들은 지금 귀족 앞에서도 당당해지려는 제미나의 태도에 크게 이입하는 중이었다.
“······오늘 이 요리를 마지막으로 진짜 은퇴해야겠네.”
마른 천으로 조용히 식칼을 닦아낸 마르셀라는 제미나의 분전에 흡족해하며 미리 준비해두었던 재료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북부의 흥취를 느낄 수 있는 요리라면 역시 이거지.”
입맛을 돋울 가벼운 전채부터 본 요리와 디저트까지.
한 번에 음식을 내놓으면 식고 마는 북부의 특성상 이곳의 귀족들은 여러 번 요리가 나오는 식사 방식을 즐기고는 했었다.
다시 말해 뒷골목 가게의 여력 따위로는 감당할 수 없는 요리라는 뜻이기도 했다.
“오늘은 재료값 따위 신경 안 써도 되겠지?”
그러나 오늘 마르셀라가 데려온 뒷골목의 요리사들은 모두가 20년의 경력은 너끈히 가지고 있는 여인들.
험하디험한 뒷골목에서 오직 실력 하나만으로 살아남은 여인들이기도 했다.
그녀들은 오늘에야말로 은퇴할 뒷골목의 장미를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
푸르르륵-
차가운 길바닥에 서 있는 검은 말과 나귀가 있었다.
푸르륵 거리는 소리와 함께 입김을 내뱉은 누아르는 저 멀리에 보이는 쇼아라를 보며 왜 빨리 안 들어가냐는 듯 성질을 내고 있었지만, 정작 고삐를 잡고 있던 블라드는 가만히 멈춘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거 왜 이래.”
물이 3분의 1쯤은 차 있는 투명한 유리병.
차가운 땅 위에 기이하게 거꾸로 서 있는 유리병을 보며 블라드의 눈빛이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이것도 마법이야?”
“그럼요. 마법이지요”
니벨룬은 힘겹게 거꾸로 서 있던 유리병을 집어 들고는 다시 한번 하늘을 향해 집어 던졌다.
차악-!
빙글빙글거리며 높이 떠올랐던 유리병이 낙하하자 보이는 광경.
그 모습을 보며 블라드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말았다.
“이게 마법이 아니면 뭐란 말입니까.”
“······와 뭐지 이거.”
높게 던졌기에 제대로 서 있어도 신기할 지경인데 아예 거꾸로 서 있다니.
그것도 수십 번을 던져도 똑같이 서 있는 모습에 이제는 블라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도시에 들어가면 아주 흉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블라드 님의 자문 마법사로 조언하건대 여기서 하루만 묵다 가시죠.”
“바로 앞에 도시가 있는데 야영을 하자고? 이 겨울에?”
안개와 함께 갇혀 있던 모시암은 블라드에게 두 달이라는 시간을 앗아가 버렸고 그로 인해 지금의 계절은 한겨울이었다.
지금 니벨룬은 쇼아라가 보이는 바로 앞에서 야영을 하자 말하는 중이었다.
“물론 결정이야 블라드 님이 하시는 거긴 하지만요.”
“······.”
결정을 넘기는 니벨룬의 말에 블라드의 표정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신비란 말 그대로 이성이나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
확률 따위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기이한 상황에 블라드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쇼아라로 들어가면 아주 불길해진다는 거지?”
“저의 점괘로는 그렇습니다.”
“그럼 쇼아라에 불길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아니면······.”
“맞닥뜨리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는 것이 바로 예언과 점괘라는 것입니다.”
상세한 것은 가봐야 안다는 니벨룬의 말에 블라드가 머리를 긁적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사기꾼은 아닌데.’
길거리 사기꾼이 이렇게 말했다면 한 대 후려치고 말았겠으나 신비를 쫓는 니벨룬의 실력은 오히려 블라드 본인이 보증하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 들어가자.”
“괜찮으시겠습니까.”
운세는 지침일 뿐 나가야 할 방향은 되지 않는다.
신비한 유리병을 집어 든 니벨룬이 되물어 보았으나 이미 블라드는 결심을 굳혔다.
“불길하다며. 그럼 더 빨리 가봐야지.”
흉악한 점괘가 가리키는 도시는 블라드의 고향이었고 그곳에는 잃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불길함이 어느 쪽을 향해 뻗어 드는지 모르겠으나 블라드는 서둘러 달려가 그들 옆에 서기로 했다.
“그 나귀 빨리 달릴 수 있는 종인가?”
“본래 나귀는 달리려고 준비된 말이 아닙니다.”
“그럼 오늘만 어떻게 잘 해봐.”
누아르는 자신의 등 뒤로 올라탄 블라드를 느끼며 거칠게 투레질을 해대었다.
초원의 아들인 누아르는 붉은 머리 여인이 빗겨주는 솔질을 그리워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