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73
아우레오의 가치 (2)
밤새워 뒤척이던 블라드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들 수 있었다.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생각들이 계속해서 꼬리를 물며 이어졌기 때문이다.
[기사의 미덕은 뭐다?]“······제발.”
그러나 늦게 잠들었다 할지라도 떠오르는 오늘의 태양은 기다려 주지 않는 법이었다.
[언제나 임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만 진정한 기사라 할 수 있지. 들이닥칠 사건과 사고는 너를 기다려주지 않아.]모시암에서의 긴장된 사건 이후 실로 오랜만에 마주하는 안식이었다.
그렇기에 조금이나마 늦잠을 자보려 했던 블라드였으나 문제는 그의 안에 깃들어 있는 존재가 기사 중의 기사인 키하노라는 사실이었다.
[언제나 긴장된 모습으로······.]“잠 좀 자자고요. 제발.”
몰려오는 피곤과 고민에 허덕이던 블라드는 짜증 나는 목소리로 키하노에게 항의했지만, 문제는 그 말을 듣고 있던 사람이 키하노말고도 한 명 더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시끄러?”
“응?”
익숙한 목소리가 방 안에서 들려오자 블라드가 두 눈을 부릅떴다.
실핏줄과 함께 얽힌 피곤은 여전히 블라드의 눈 속에 머물러 있었지만, 지금만큼은 맘 편히 눈을 감고 있어서는 안 되는 때였다.
“알았어. 나가줄게. 계속 자.”
“아니······, 잠깐만 제미나.”
튕기듯 몸을 일으킨 블라드는 방을 나서려는 제미나를 붙잡고는 억지로 몸을 돌려세웠다.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잠깐이라면.”
쾅 닫힌 문에 등을 기대고 있던 제미나는 다급해 보이는 블라드의 표정에 알았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봐라. 사건과 사고는 너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니까.]끌끌 거리는 키하노의 말을 애써 무시한 블라드는 어딘지 모르게 새침해 보이는 제미나를 침대 위에 앉히고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왜 알리시아 님이랑 너랑 둘만 있었어?”
“빨리도 물어보네.”
침대에 앉아 닿지 않는 발끝을 까닥이던 제미나는 앞에 있는 블라드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별말 안 했어.”
“진짜?”
“응. 그냥 알리시아 님이 나보고 너한테서 떨어져 달라고 말한 것 정도야.”
[오우야.]일어나자마자 듣기에는 너무 무거운 말이었으나 정작 말하는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앉아 있을 뿐이었다.
“이런 일 예전 장미의 미소에서 자주 봤었잖아. 그런데 그게 나한테까지 올 줄은 몰랐네.”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제미나를 보며 블라드는 어딘지 모르게 속이 부글부글 끓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내가 뭐라고 해.”
블라드를 올려다보는 제미나의 눈빛이 어딘지 모르게 처연해 보였다.
“내가 너한테 뭐라도 된다고.”
“······.”
들고는 있었으나 정작 쥘 자격은 없다.
은연중에는 통하고 있었지만, 어제처럼 블라드에 대한 자격을 물어본다면 제미나는 무어라 대답할 만한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둘의 사이는 아직 공식적으로 무언가 전해진 것이 없었으니까.
“뭐 마땅히 드릴 말이 없었어.”
블라드는 너무나 무덤덤하게 말하는 제미나를 보며 그동안 자신이 너무 무심했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미안하다. 내가.”
“뭐가 미안한데.”
“······내가 확실하게 말을 안 해줘서 미안하다고.”
제미나를 앞에 앉힌 블라드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솔직히 자신의 과오를 인정했다.
그저 말 한마디면 되는 것을.
그리고 이제는 그저 말 한마디면 나의 것이라 말할 수 있는 자격도 있었다.
“잘 들어.”
“······!”
제미나는 갑작스레 자신의 양어깨를 붙잡은 블라드를 보며 순간 숨을 멈추고 말았다.
갑자기 달라진 방의 분위기에 애써 시선만으로 올려다본 블라드의 두 눈은 지금 온전히 제미나만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예전부터 말하려고 했었는데 사실은 내가······.”
똑똑똑.
“내가 너를······.”
똑- 똑똑똑.
애써 분위기를 잡아보려 했던 블라드였으나 끈덕지게 달라붙는 노크 소리가 그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글렀다 그치?”
“시도는 나쁘지 않았어.”
모든 시도에는 그에 맞는 때라는 것이 있는 법.
실실 웃으며 문을 향해 고갯짓하는 제미나를 보며 블라드는 오늘이 그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도대체 누구······.”
“안녕하세요. 블라드 경.”
시도는 나쁘지 않았다는 제미나의 말에 괜스레 자존심이 상한 블라드는 짜증과 함께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그러나 짜증스러운 기분과는 달리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자신을 향해 환히 웃고 있는 알리시아의 모습이었다.
“······알리시아 님.”
“아직 아침을 들지 않았으면 같이 할까 해서요.”
영주의 저택이 있다면 그곳에 머무르면 되겠지만 이곳은 시장이 있을 뿐인 쇼아라.
알리시아는 어수선할 시청보다는 장미의 미소라는 고급여관이 차라리 격에 맞는다고 생각했는지 이곳에 짐을 풀어놓은 상태였다.
“어제 맛보니 이곳 요리사의 실력이 훌륭하더라고요. 그리고 아침을 먹으면서 같이 할 이야기도 있고.”
막 해가 뜬 아침이었으나 알리시아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공이 많이 들어간 모습이었다.
곱게 땋은 머리와 함께 옅게 풍겨오는 분 냄새는 그녀가 지금보다 훨씬 이전에 일어나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강철공의 도시인 바스토폴까지 우리가 가려면······.”
그러나 정돈된 모습과는 달리 그녀의 고개는 계속해서 기울어지는 중이었다.
“가려면, 가려면······. 어머나······.”
블라드가 서 있는 너머를 보기 위해 점점 기울어져 가는 알리시아.
그런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본 블라드는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제가 조금 늦게 찾아올 걸 그랬나 봐요. 눈치도 없이.”
“아니, 아니······.”
방금까지만 해도 다소곳이 앉아 있던 제미나가 지금은 침대 위에 엉망인 모습으로 누워 둘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어딘지 모르게 흐트러진 머리와 촉촉해져 있는 제미나의 눈빛이 누가 보아도 오해할만한 상황이었다.
“······아침은 저 먼저 먹어야겠네요. 두 분께서는 부디 하던 일마저 하세요.”
고귀한 귀족답지 않게 복도를 쾅쾅 울리는 발소리가 지금 알리시아의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블라드는 그런 그녀를 잡아 세우지도 못할 만큼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어때. 내 말이 맞지?]“······.”
과연 키하노의 말이 맞았다.
사건과 사고는 언제나 만반의 때를 기다려 주지 않는 법이었다.
※※※※
영주가 가진 권력조차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공간이 있었다.
신의 뜻이 머물기에 그 누구의 땅도 아닌 곳. 교회.
이 땅의 주인조차도 허락 없이는 들어설 수 없는 곳이었으나 지금 그곳을 마음껏 누비는 사람이 있었다.
“주교님, 저 왔습니다.”
“왔는가? 어서 들어오게.”
기사 블라드 아우레오.
이름 앞에 붙어 있는 작위는 세속의 권력이 보증해주며 이름 뒤에 붙어 있는 성은 신의 뜻이 증명해주는 사람이었다.
“이리 오시게. 마침 차를 준비하던 참이었으니.”
블라드는 손수 차를 내오는 안드레아를 보며 그가 가리키는 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느껴지는 고요함과 평화.
아침에서의 난리에서 겨우 빠져나온 블라드는 신실한 주교가 내어주는 차를 마시며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지금 보니 집무실 자체는 바르나에서부터 별로 변한 것이 없군요.”
“······내가 자네에게 바르나의 방을 보여준 적이 있던가?”
블라드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 안드레아를 보며 그저 빙긋이 웃을 뿐이었다.
“그냥 그럴 것 같아서 한 말이었습니다.”
“그것참 싱겁구먼.”
안드레아는 블라드의 허무한 대답에 허탈한 듯 웃음을 지었지만 사실 블라드는 이미 그의 방을 보고 온 참이었다.
주교실이라기에는 너무나 검소해 보이는 그의 방은 쟝의 꿈속에서 본 광경과도 크게 차이가 없었으니까.
“모시암에서 많은 일이 있었다고 들었네. 마지막까지 쟝을 보호해주어 참으로 감사하네.”
“받은 은혜를 갚으려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사실 모시암에서의 변고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북부 민심의 불안을 방지하기 위해 강철공의 철저한 통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쉽게 대답할만한 고난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네.”
그러나 알아야 하는 사람들만큼은 확실히 인지하고 있던 사건.
쇼아라의 주교인 안드레아는 블라드가 얼마나 많은 고난을 뚫고 자신의 어린 부제를 구해냈는지를 잘 알고 있던 참이었다.
“돌고 도는 베풂 속에서 구원이 있을 거라는 말은 과연 틀린 것이 아니었어. 내 다시 한번 자네를 통해 그분의 깊은 뜻을 깨달았네.”
그 말과 함께 조용히 기도를 읊조리는 안드레아를 보며 블라드는 머쓱한 표정으로 찻잔을 들어 올릴 뿐이었다. 세간에는 신실한 기사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정작 성경은 한 번도 들춰본 적 없던 블라드였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모시암에서의 일은 잘 넘겼다지만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해 영 꺼림칙합니다. 주교님.”
“으음. 그 심정 충분히 공감하네.”
어젯밤 꼬리에 꼬리를 물던 고민 중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과 자신을 프라우센이라 소개한 남자에 관한 것도 있었다.
유스티아라는 이름으로 깊게 새겨진 기억은 블라드에게 있어 지울 수 없는 상처와도 같은 것이었다.
“이번의 사태가 저희가 처음 보았던 검은 눈물을 흘리던 여인과도 연관이 있습니까?”
“흐음······.”
요제프를 향한 저주였던 검은 눈물을 흘리던 여인.
그리고 이번에 모시암에서 벌어졌던 사건까지.
직접 겪은 당사자였기에 그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블라드를 보며 안드레아는 무겁게 찻잔을 내려놓았다.
“우리 모두가 길을 걷지만, 그 끝이 어딘지를 알지 못하기에 지치고는 하지.”
안드레아는 침중한 표정으로 깃털 펜을 꺼내와 조심스레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바르나의 사제였을 시절부터 검은 저주를 쫓아 왔던 안드레아.
그리고 교회와 그의 끊임없는 추적은 결국 결실을 맺어 하나의 이름 앞에 그들을 데려다 놓았다.
“신의 뜻은 멀고, 어두운 유혹은 가까이에 있네. 그렇기에 우리의 몸과 영혼은 끊임없이 그분의 성전(聖戰)이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지.”
블라드는 안드레아가 그리는 문양을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교회의 문양과 닮았으나 어딘지 모르게 삐뚤어지고 거꾸로 되어 있는 모습.
“이건······.”
안드레아가 그리고 있는 것은 거꾸로 되어 있는 교회의 문양이었다.
신성에 대한 모독으로 가득한 그 문양은 안개 가득한 마을에서 목 없는 신부가 가득 그려놓았던 문양이기도 했다.
“배교자(背敎者)들의 문양일세. 길을 잃고만 어린 양들을 뜻하지.”
보기만 해도 불길한 그 문양을 보며 안드레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한 번 신을 향한 길을 걸어봤기에 그 어떠한 마(魔)보다 위협적인 자들. 자네가 맞닥뜨린 여인은 그런 사람일세.”
보기만 해도 불쾌하다는 듯 서둘러 손으로 종이를 가린 안드레아.
그렇게 스윽 지나간 그의 손끝에는 어느새 옳게 그려진 교회의 문양이 정립되어 있었다.
“아주 예전, 모든 고아의 어머니라 불린 수녀가 있었네. 그녀는 교황청이 인정한 신의 목소리이자 그 시대의 성녀라 불렸던 사람이었지.”
딱히 말하지는 않았으나 블라드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안드레아가 하려는 말은 교단과 관련되어 있지 않은 한 절대 들을 수 없는 아주 깊숙한 비밀이라는 사실을.
“그녀가 아이들을 위해 만든 성가대는 교황청 최초의 성가대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그녀의 이름을 따 트라마슈라는 이름으로 내려오고 있지.”
그러나 성녀라 불렸던 여인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 있었다.
그 누구도 아닌 신의 이름 아래서 벌어졌던 그 날의 일은 결국 신실한 수녀에게서 검은 눈물을 흘리게 했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려는 이름은 교황청이 가리려 하는 깊숙한 치부 중의 하나일세. 절대로 다른 이들에게 말해서는 안 되네.”
“알겠습니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겠다는 듯 조심스레 블라드의 귓가로 다가간 안드레아.
떠도는 바람조차도 머금지 못할 작은 목소리가 블라드의 귀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라먀슈트.
“······!”
신실한 주교가 전했음에도 닿았을 때는 악취가 가득한 누군가의 이름.
그 이름을 들으며 블라드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고 말았다.
신의 앞에서는 트라마슈였으나 그에게 등 돌렸을 때는 온통 거꾸로 된 이름. 라마슈트.
온통 새까맣게 불에 타 버린 아이들을 보며 눈물을 흘린 여인이 있었다.
타고 남은 성냥보다도 바짝 타들어 가고 만 아이들의 시체를 보며 그날 여인은 하늘을 향해 재 섞인 검은 눈물을 흘렸다 했다.
※※※※
오늘은 물안개가 끼는 날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스투르마의 성벽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짙은 안개였다.
“쿨럭, 쿨럭. 흠······.”
그리고 이렇게 짙게 안개가 끼는 날은 요제프의 기침이 더 심해지는 날이기도 했다.
폐가 약한 그에게 있어 습기로 무거워진 공기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나 마찬가지였다.
“숨 쉬어야지. 천천히.”
“괜찮아요. 어머니.”
괜찮다고 말하는 요제프였지만 옥사나의 손끝은 끝까지 따라와 그의 등을 토닥여주고 있었다.
“······.”
차가운 겨울날, 손끝으로 전해지는 어머니의 온기를 느낀 요제프는 씁쓸한 미소를 짓고 말았다.
패배자이자 실패자인 못난 자신이었지만 어머니가 보내주는 걱정만큼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었다.
“요제프, 생각해봤니? 저번에 내가 말했던 것 말이야.”
앞에는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따뜻한 차, 그리고 뒤에는 조심스레 등을 쓰다듬어주는 어머니의 손길.
방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요제프의 마음을 몽글하게 풀어주고 있었으나 그렇기에 더욱 날카롭게 와닿는 슬픔이라는 것이 있었다.
“네가 영민하다는 건 이미 외할아버지께서도 잘 알고 계시단다. 그러니까······.”
입은 열었으나 차마 말을 끝내기는 어려웠는지 옥사나의 말끝이 흐려지고 있었다.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그저 지켜보기만 할 어머니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옥사나는 자신의 친정인 오스카르 가문으로 요제프를 보내고 싶어 하고 있었다.
“그곳으로 가면 대단한 직위는 아니더라도 너의 능력을 펼칠 기회가 있을 거야. 거기다 여기보다는 날씨도 따뜻할 거고.”
“어머니.”
요제프는 자신의 등을 쓰다듬어주는 어머니의 손을 가만히 붙잡았다.
오랜만에 만져 본 어머니의 손은 기억에 있던 예전보다 훨씬 까칠해져 있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가까이서 마주 본 옥사나의 얼굴은 옅은 주름들로 잔뜩 구겨져 있었다.
그 주름들 하나하나가 자신의 기침 때문에 새겨졌다는 사실을 요제프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꼭 증명하고 싶었는데.
당신이 낳은 아들이 이렇게나 당당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래도 멈추고 싶지 않아요.”
그렇기에 요제프는 옥사나에게 오직 이 한마디밖에 해 줄 수가 없었다.
나는 포기하는 삶을 살아가지는 않겠노라고.
“어머니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언제나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싶어요. 치열하게요.”
“······그래. 알았다.”
지금 마주 보는 어머니와 아들은 서로에게 죄인이었다.
따뜻한 배려로 시작한 말일지라도 서로에게 와닿을 때는 아픈 상처로 번질 것이라는 걸 옥사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엄마는 언제나 여기에 있을게. 힘들 때는 꼭 불러다오.”
“네. 어머니.”
아들의 견고한 결심을 다시 한번 확인한 옥사나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요제프의 방을 떠났다.
꾹꾹 참고 있던 슬픔이 흐르기 전에 서둘러 돌아서는 어머니를 보며 요제프는 그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쓸모없이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만큼은 증명할게요.”
나의 인생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내주었던 어머니의 인생까지.
고개를 떨구고 있던 요제프는 조용히 자신의 책상 서랍을 열어보았다.
그곳에는 온통 새까만 색의 편지 봉투 하나가 있었다.
“······.”
천천히 봉투를 열어보는 요제프.
그의 뒤에 비치는 창밖에는 짙은 물안개가 가득했다.
새까만 편지를 열어보는 오늘은 안개가 가득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