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74
강철공의 도시 (1)
침묵만이 가득한 쇼아라의 시장실.
가만히 시장석에 앉아있던 루트거는 방금의 보고를 듣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 짓고 말았다.
“드워프들을 그냥 보냈다고? 그것도 아무런 기약도 없이?”
“죄송합니다. 루트거 님.”
누가 보아도 호탕한 인상의 루트거였으나 검은 눈동자 안에 깃들어 있는 매서운 기운만큼은 타고난 것이었다.
쇼아라의 시장은 감히 그 눈빛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그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최선을 다해 붙잡아보려고 노력을 했지만······.”
“했지만?”
애써 불러온 드워프들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돌려보내고 말았다니.
무능을 넘어 무책임에 가까운 보고이기는 했으나 시장에게도 나름 할 말은 있었다.
“그들이 블라드 경 아니면 요제프 님과의 대화만을 요구하던 터라 도저히 저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장인의 기질을 타고나서인지 하나같이 외골수적인 면이 있던 드워프들.
그들은 제발 기다려 달라는 시장의 부탁에도 그 둘이 아니라면 어떠한 대화도 나눌 수 없다며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게다가 강의 얼음이 끼기 시작하는 시점이라 더 어떻게 기다려달라 말을 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루트거 님.”
“······알았다. 나가봐라.”
분명 무능하다고 말할 수 있었으나 그렇다고 해봤자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
딱히 질책할 마음도 들지 않았던 루트거는 시장을 내보내고는 손님용 테이블에 앉아 있던 흉터투성이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백작님께서는 드워프들을 어떻게든 포섭하고 싶어 하십니다.”
“나도 안다.”
그러나 마커스는 루트거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저 찻잔을 든 채 해야 할 말을 했을 뿐이었다.
“혹시 블라드 경은 설득하셨습니까?”
“······아니. 아직.”
“곤란하군요.”
지금 루트거 앞에 앉아 있는 검은 까마귀는 전서구.
그렇기에 지금 그가 하는 말은 전부 가주인 페테르가 전하는 말이기도 했다.
“서두르시길 바랍니다. 지금도 여기저기서 블라드 경을 포섭하려 움직이고 있습니다.”
“유념하도록 하지.”
마커스의 말을 들은 루트거는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에 쇼아라의 풍경을 보기 시작했다.
자신과는 딱히 접점이 없는 도시.
그러나 이 도시에 태어난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쉽게 저버릴 수 없는 곳이기도 할 것이다.
“알리시아 남작의 일은 어찌 되었지?”
“우리의 작은 아가씨가 용케도 지켜내었던 모양입니다.”
“잘 되었군.”
잘 되었다는 루트거의 말에 마커스는 들고 있던 찻잔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창밖을 바라보던 루트거는 마커스의 말에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돌아섰다.
“그게 무슨 말이지?”
“이제는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블라드를 묶기 위해 바예지드의 호의를 내주었던 제미나라는 여자.
“블라드 경과 관련해서는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저희가 내어준 호의가 무슨 뜻인지를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러나 그녀는 블라드를 묶는 족쇄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런 의도인 줄 알았다면 애초에 받지도 않았을 거라 말하면서.
“요제프가 손을 댄 곳이라 그런가. 이곳에서는 제대로 풀리는 일이 없구만.”
주인 없는 기사 하나 얻어가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정당한 시장도, 차기 가주의 말도 듣지 않는 도시.
루트거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그만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
푸르르륵-
단 한 마리의 말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여관의 마구간.
그곳에서 누아르는 실로 오랜만에 마주하는 제미나의 손길을 느끼며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왜 다들 얘를 어려워하는지 모르겠네. 이렇게나 말을 잘 듣는데.”
“······그래?”
블라드와 고트는 제미나의 서툰 솔질에도 불만 하나 보이지 않는 누아르를 신기한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손길을 음미하듯 꼭 감고 있는 누아르의 두 눈은 여간해서는 쉽게 떠질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저놈이 원래 저런 애가 아닌데.”
“궁합이 맞나 보지.”
마구간지기이기도 했던 고트는 차마 설명하기 힘든 광경을 보며 뒷머리를 긁적여댔다.
그나마 누아르를 다룰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고트였지만 제미나 앞에서만큼은 그 자부심도 언제나 작아지고는 했었다.
“어머니는 잘 계시고?”
“엄마뿐만 아니라 동생 내외도 잘 있지. 원래 있던 곳보다는 좀 춥긴 하지만 말이야.”
전쟁의 여파를 피하기 위해 어머니를 모시며 피난을 왔던 고트는 지금에 와서는 쇼아라에 확실히 자리를 잡은 참이었다.
비록 마구간 지기로 고용해주었던 전임 시장은 떠나갔으나 블라드의 이름값 때문인지 고트는 여전히 시청의 마구간 지기로 일할 수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드워프들이 대장간의 고로를 빼내 갔다고?”
“응. 아주 귀한 보물 모시듯 가져갔다고 하더라고.”
그러나 번듯한 직장을 갖고 있다 해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고트의 성정은 크게 변하지를 않았다.
그것은 일터인 시청뿐만 아니라 장미의 미소가 있는 뒷골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찌나 마담한테 그 고로를 달라고 떼를 쓰던지. 대장이 와서 결정해야 한다고 말해도 제발 달라고 빌어대더라고. 그러니 마담이 어쩌겠어? 귀한 손님이라 하니 내줄 수밖에.”
“흠. 그래?”
직접 보지는 못했어도 들을 수 있는 귀로 온갖 소문을 모으고 있던 고트는 그동안 쇼아라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상세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요제프 님의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셨나 봐. 지금 백작 부인께서 이리저리 의사들을 수소문하고 있다던데.”
“······.”
고트의 입에서 요제프의 근황이 흘러나오자 블라드의 표정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많이 안 좋대?”
“그거야 모르지. 워낙 골골대던 양반이니.”
비록 가주 경쟁에서의 실패로 계약이 끝났다 할지라도 둘이 쌓은 신뢰만큼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도의적으로 만큼은 그에게 갚아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 블라드였기에 요제프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반가울 리가 없었다.
“고트. 여기 물통 좀 갈아 줘.”
“음? 깨끗해 보이는데?”
“내 눈에는 전혀 그래 보이지 않거든?”
아쉽다는 듯 잇몸을 드러내는 누아르의 옆으로 허리에 양손을 올린 채 고트를 바라보는 제미나가 있었다.
“어쩔래. 내가 갈까?”
“아니야. 마담은 그런 일을 하시면 안 되지.”
제미나라는 존재는 블라드에게는 편한 소꿉친구였을지는 몰라도 고트에게 있어서는 대하기 힘든 뒷골목의 실세 중 한 명이었다.
그런 제미나에게 있어 물통을 들게 하는 것은 고트에게 있어 여러모로 불안한 일이었다.
“사실 언제쯤이나 나를 불러줄까 기다리고 있었어.”
고트는 제미나의 지시에 전혀 불만을 터트리지 않았다.
그저 사람 좋게 웃으며 서둘러 움직였을 뿐.
이제는 귀족의 자리까지 올라버린 블라드의 옆에 바짝 붙어 있기 위해서는 제미나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트는 왜 내보냈어?”
“너한테만 전할 말이 있으니까.”
고트가 물을 뜨러 가자 이제는 말 한 마리와 사람 두 명만이 남은 마구간 앞.
블라드는 제미나가 일부러 고트를 떼어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의아해하고 있었다.
“무슨 전할 말?”
“드워프들이 전하는 말이야. 네가 워낙 바빠서 전해줄 시간이 있어야지.”
제미나는 그 말과 함께 자신의 품속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 들고는 블라드에게 건네주었다.
누가 볼까 싶어 두리번거리는 모양새가 왠지 모르게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만 같아 보였다.
“이건······.”
“너한테 전해달래.”
비록 쇼아라의 시장에게는 아무런 기약 없이 떠난 드워프들이었으나 제미나에게 만큼은 자신들과 연락할 수 있는 기별 하나를 남기고 갔다.
“나사우에서 보재. 처음 만났던 술집에서 연락할 수 있을 거래.”
“······처음 만났던 술집이라.”
그리고 제미나는 드워프들이 바랬던 대로 블라드에게 그들의 전언을 건네주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동전인데.’
그러나 블라드는 나사우에서 보자는 드워프들의 전언보다는 그들이 건네주었다는 동전에 더 눈길이 가고 있었다.
“응? 그런 게 또 있었어?”
“······네가 봐도 똑같아 보이지?”
드워프들이 전했다는 동전을 확인한 블라드는 그동안 깊숙한 곳에 보관해두었던 두 닢의 동전들을 꺼내 보았다.
하나는 라문드에게 또 하나는 오귀스트에게.
그것들과 드워프들의 동전을 비교해보던 블라드의 눈이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잔뜩 녹슬어서 볼품없어 보이는 동전들.
받은 곳은 각기 달랐지만, 손바닥 위에 놓인 모습만큼은 세 닢의 동전들이 모두 똑같아 보였다.
※※※※
북부의 모두가 뼈끝까지 스며들어오는 추위에 움츠리고 있었지만, 이곳 데어마르의 영지민들만은 달랐다.
아직도 데어마르 곳곳에는 푸른 잔디가 곳곳에서 보일 정도로 온기가 감돌고 있었으니까.
몇몇 노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해진 데어마르를 보며 옛 기억을 떠올리며 언덕 위에 있는 레몬 나무를 향해 감사를 표하고는 했다.
노인들이 어렸을 적에나 행하고는 했었다는 이 감사는 서슬 퍼런 교황청의 교회가 자리 잡고 있을 때는 감히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기도 했다.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군.”
레인저들의 대장인 바라디스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하이날의 나무를 올려다보며 맨 위에 있는 가지의 높이를 가늠해보고 있었다.
“고작 반년도 안됐는데.”
처음에 보았을 때보다도 두 배는 커진 것 같은 하이날의 나무.
식물에 조예가 깊은 엘프들의 상식으로 보아도 이해하기 힘든 성장 속도였다.
그리고 이해하기 힘든 것은 단순히 나무의 크기만은 아니었다.
“바라디스 님. 아무래도 정령을 알아보는 아이가 한 명 더 생긴 것 같습니다.”
“4명째인가”
“······네. 어린 정령들을 알아보는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오늘로써 4명째였다.
정령들을 알아보는 어린아이의 숫자가.
바라디스는 대원의 보고를 듣고는 조용히 자신의 왼쪽 눈에 오망성을 새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확연히 보이기 시작하는 정령들의 세계가 있었다.
“이게 다 이 정령 때문인가.”
엘프들만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에서는 지금 가지 위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하얀 뱀이 있었다.
아우슈린의 세계수가 아닌 어머니 세계수에서 비롯되었다는 오래된 정령.
마치 낮잠이라도 자는 것만 같은 조용한 모습이었으나 지금도 하얀 뱀의 위에는 이리저리 뛰놀아 다니는 어린 정령들의 모습이 보이었다.
“바라디스 님. 지금 아우슈린에서 전서구가 날아오고 있습니다.”
“전서구?”
바라디스는 대원이 어디라고 가리키기도 전에 하늘을 향해 목을 쭉 내뻗는 하얀 뱀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막 잠에서 깬 듯 게슴츠레한 눈이었으나 하얀 뱀이 바라보는 방향에서는 아우슈린에서만 서식한다는 매 한 마리가 날아오는 참이었다.
“옳지. 착하다.”
꾸르르륵-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날아온 매는 먼 곳에서부터 날아와 지쳤다는 듯 바라디스의 팔목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조심스레 저 먼 고향에서부터 날아온 녀석을 쓰다듬던 바라디스는 자신의 머리 위에서 전서구를 유심히 바라보는 하얀 뱀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같이 좀 보자고 하는 것만 같아 바라디스는 일부러 받아든 전서를 넓게 펼쳐 들었다.
“······계시로군.”
아우슈린에서부터 날아온 전서에는 장로들만이 쓸 수 있는 낙인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낙인 뒤에는 누가 그렸는지 확실히 알 것만 같은 삐뚤빼뚤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푸른 바다 위······ 은색 용이라.”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것만 같은 그림이었으나 그러기에 더욱 확연하게 전해져 오는 느낌이라는 것이 있었다.
마치 바다를 쏟은 것만 같은 새파란 물감 위로 떠돌고 있는 작은 배 한 척.
그리고 그 배를 향해 달려들고 있는 은색 용 한 마리가 보내온 계시에 그려져 있었다.
“······전부 채비를 갖춰라. 당장 움직여야겠다.”
그러나 바라디스는 온통 새파란 그림 가운데서도 이질적인 작은 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배.
그 배의 망루에는 마치 점처럼 찍혀져 있는 금색 빛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어디로 움직입니까?”
“우리가 갈 곳은······.”
계시란 받아들이는 자에게 있어서는 직감처럼 다가오는 법.
그저 자그마한 점 하나였을 뿐이었지만 바라디스는 그 점을 보고서는 블라드라 확신할 수 있었다.
“북쪽이다.”
블라드가 어디에 있을지 확실히 알지 못했던 바라디스였으나 이윽고 드리워지는 거대한 그림자를 보며 방향을 정할 수 있었다.
마치 저기라고 알려주는 듯한 하얀 뱀의 고갯짓.
“아마 쇼아라겠군.”
과연 바라디스의 말처럼 하얀 뱀이 가리키고 있는 곳은 쇼아라가 있는 방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