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75
강철공의 도시 (2)
겨울은 어딘가로 이동하기에 좋은 계절은 아니다.
날씨는 춥고 길은 딱딱하며 때로는 내리는 눈에 의해 길이 막히기도 하니까.
하지만 사시사철 바쁜 영주들에게 있어서 그나마 여유가 생기는 계절이라고는 겨울밖에 없었으니 지금 시기에 북부 회의를 개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겁나 춥네. 이거.”
블라드는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달라붙는 추위를 느끼며 그만 욕지거리를 내뱉고 말았다.
북부 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강철공의 도시로 향하는 일행.
바예지드의 루트거와 하이날 남작이 함께 움직이는 행렬은 분명 단단하고 강건해 보였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다가오는 추위까지는 막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퍽- 퍽-
그렇게 모두가 내쉬는 숨의 온기조차 아끼며 걷고 있을 때 홀로 주먹으로 무언가를 후려치는 사람이 있었다.
얼음과도 같은 침묵을 깨며 일행의 이목을 주목시킨 사람.
그는 블라드의 자문 마법사인 수인족 니벨룬이었다.
“······뭘 자꾸 그렇게 후려치고 있는 거야.”
“따뜻함 주머니입니다.”
블라드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는 니벨룬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니벨룬이 배낭에서 무언가를 꺼낼 때마다 기이한 신비를 부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뜻함 주머니?”
“네. 저 멀리 남쪽에서 가져온 따뜻함입니다. 이 녀석은 워낙 천성이 게을러서 때리질 않으면 일어나질 않거든요.”
“······아. 그래?”
블라드는 니벨룬이 하는 말 중 단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설명할 수 없기에 신비.
이해할 수 없기에 마법사일 테니까.
“아. 이제 일어났네요.”
니벨룬의 말과 함께 얻어맞고 있던 작은 주머니가 희미한 붉은 빛을 뿌리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따스한 이불 속에서 억지로 일어나는 모습처럼 보였다면 착각일까.
“이제 따뜻해지는 거야?”
“반나절 정도는요. 한 번 깨우면 그 정도는 움직여줍니다.”
주머니 안에 정령이라도 들어있나 싶어 왼쪽 눈을 감아본 블라드였으나 보이는 것은 정령이 아닌 알아보기 힘든 희미한 아지랑이만이 가득할 뿐.
아직 블라드의 세계가 신비라는 존재를 깊이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거 하나 더 있어?”
“아뇨. 이거 하나뿐입니다.”
“그래?”
이거 하나라는 니벨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블라드의 눈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매섭게 내뻗어지는 블라드의 손.
“어어?”
“그럼 이거 잠깐만 빌리자.”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소매치기의 기술이었다.
니벨룬은 어느새 블라드에게로 넘어가 버린 따뜻함 주머니를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혹시 이거 마법입니까?”
“아니. 그냥 당한 거야.”
당해봐야 안다는 점에서는 조금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니벨룬을 뒤로 한 블라드는 저 앞에 있는 마차를 향해 누아르를 몰아갔다.
“알리시아 님. 저 블라드입니다.”
이런 게 있었으면 좀 진작에 꺼내 보지.
니벨룬의 주머니를 움켜쥔 블라드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알리시아의 마차를 찾아갔다.
“괜찮으십니까? 버틸 만 하신가요?”
블라드는 살짝 열린 마차의 창 너머로 잔뜩 웅크리고 있는 알리시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걱정했던 대로 알리시아에게 있어서 북부의 추위는 가혹한 것이었다.
그녀의 영지인 데어마르는 이곳과는 다르게 레몬이 열릴 정도로 따뜻한 곳이었으니까.
“괜찮아요. 그래도 마음속에 부는 한기보다는 견딜만하네요.”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그러나 추위에 떨고 있었음에도 알리시아의 눈빛에는 여전히 묘한 열기가 가득해 보였다.
끈적한 패배감을 통해 천천히 타오르고 있는 그 열기의 끝에는 분명 블라드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받으십시오. 제 마법사가 발휘한 비전입니다.”
이 행렬의 책임자는 루트거지만 레이디 알리시아의 인솔자는 바로 블라드였다.
알리시아는 차가운 공기를 뚫고 넘어오는 블라드의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게 뭐죠.”
“따뜻함 주머니라고 하더군요.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상처받은 자존심 때문에라도 받아들기 싫었지만 블라드의 손끝에서부터 전해지는 따스함은 외면하기 힘든 것이었다.
애써 화난 척 냉랭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의 표정조차도 무너뜨리게 만드는 따스함이었다.
“······이렇게 저를 신경 쓰시면 고향에 있을 제미나 양이 걱정하지 않을까요.”
“왜 지금 제미나의 이름이 나오는지 모르겠군요.”
혹시나 거부할까 걱정하고 있던 블라드는 알리시아의 볼멘소리를 들으며 안심했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지금의 저는 오직 남작님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말은 청산유수군요.”
지금의 자신은 레이디 알리시아의 기사.
그 말을 들은 알리시아는 차갑게 대꾸하려 노력하였으나 입술 끝에서부터 풀리는 냉랭함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가장 필요할 때 서슴없이 다가오는 블라드의 움직임은 남자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는 알리시아에게 있어서 거부하기 힘든 것이기도 했다.
“불편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그 말과 함께 조용히 닫히는 마차의 창.
그저 할 말만을 한 채 다시금 떠나가는 블라드의 기척을 느끼며 알리시아는 가만히 블라드가 건넨 주머니를 바라보았다.
과연 따스함 주머니라고 하더니 말 그대로 전해지는 온기가 진하게 느껴졌다.
“······끄응.”
바로 앞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던칸은 그만 앓는 소리 같은 신음을 내뱉고 말았다.
‘너무 면역이 없어. 남자에 대한 면역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자신의 어린 주군을 바라보는 늙은 기사.
아마 알리시아는 지금 자신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방금까지만 해도 누구라도 하나 잡아먹을 것만 같은 독한 눈빛이었으나 고작 주머니 하나 받았다고 헤실거리는 알리시아를 보며 던칸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다들 너무 일찍들 돌아가셨어.’
던칸은 진심으로 지금 자신이 앉은 자리에 전대 가주가 있기를 바랐다.
그분이 지금 이곳에 있었다면 아비 된 자격으로 저 빤빤한 놈의 면상을 후려갈겼을테니까 말이다.
※※※※
하나의 공작 가문과 하나의 백작 가문.
그리고 다섯의 남작 가문을 합쳐 총 7개의 가문.
이 가문들이 현재 북부를 지탱하고 있는 북부연합의 기둥들이었다.
“마링겐, 로므니에, 포드밀스, 하르키타······.”
누아르는 지금 자신의 앞에서 꾸물거리고 있는 형상들을 보며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만 문장들.
그것은 바로 염료와 물감으로 표현하는 도로테아의 신비였다.
“보통 다른 기사들은 작위를 받자마자 다른 가문들 문장부터 외우지 않니?”
“저도 배우기는 했었거든요.”
그러나 그녀의 신비는 지금 일개 교보재가 되어 블라드의 눈앞에 떠돌아다닐 뿐이었다.
“그런데 왜 몰라.”
“배우기는 했다구요. 안다는 게 아니라.”
배우기는 했는데 몰라.
너무나 당당한 블라드의 변명에 도로테아는 그만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다른 기사들은 다 알 거 아니야. 막상 거기 가서 너만 다른 가문들 깃발 몰라보면 얼마나 창피하겠어!”
“그러니까 이제 배우잖아요. 지금 배워서 쓰면 되지.”
“익······!”
처음에 봤을 때만 해도 말도 제대로 못 타고 다니던 어린 종자였건만.
그러나 이제는 대놓고 말대꾸까지 하는 블라드를 보며 도로테아는 부들부들 떨 뿐이었다.
“그래. 블라드 말처럼 지금이라도 배워서 쓰면 되지. 다른 놈들처럼 기사입네 하며 겉멋만 들어 다니는 것보다는 낫잖아.”
“······직접 안 가르치신다고 편히 말씀하시네요.”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루트거가 실실거리며 끼어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거기서 큰 실수만 안 하면 되지. 북부 회의라는 게 애초에 영주들의 모임이니까.”
장난삼아 말하고는 있었으나 루트거는 정확히 상황을 판단하고 있었다.
무려 강철공의 초대를 통해 북부 회의에 참가하는 블라드였으나 막상 간다고 해도 특별히 무언가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가서 인사나 잘하고 오면 되는 거지. 그것만 잘하면 돼.”
북부 회의에서 블라드가 건질 수 있는 것은 아마 인맥 교류 정도 일 것이다.
물론 그것도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기는 했으나 애초에 북부 회의가 딱히 사교의 장도 아니었으니 말 그대로 인사나 잘하고 오면 될 일이었다.
“드디어 보이는군. 강철공의 도시.”
“어디요?”
블라드는 루트거의 말에 서둘러 도로테아의 신비를 걷어치웠다.
자신의 신비를 함부로 하는 모습에도로테아가 뭐라 뭐라 떠들기는 했지만 블라드는 그저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집중할 뿐이었다.
“우와······.”
눈 내린 하얀 평원 위로 높다란 절벽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차라리 산이라 불러도 될 만큼 웅장하게 솟아오른 절벽은 주위에 평평한 평야를 내려다보며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는 중이었다.
“저기 절벽 사이사이에 자리 잡은 성채가 보이지?”
“네.”
한참 절벽의 웅장함에 놀라고 있던 블라드는 루트거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절벽을 이루는 암석들의 특징 때문일까.
가파른 절벽 사이로 보이는 인간들의 성벽은 칙칙한 회백색이었음에도 태양 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저기가 바로 강철공의 도시인 바스토폴이야. 북부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지.”
“······바스토폴.”
그 누구라도 쉽게 뚫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거대한 성벽
중력을 거부하듯 높게 솟아오른 절벽 위로 거대한 도시가 자리 잡고 있었다.
“게다가 건국 전설에 따르면 저 도시가 바로 용에게 마지막까지 대항했다던 도시거든.”
북부 유일의 공작 가문인 바라노프는 제국 건국 이전에도 존재해왔던 가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세웠다는 도시 바스토폴은 가장 완벽한 용에 대항해 가장 마지막까지 깃발을 세우고 있었던 인류 최후의 방벽이기도 했다.
“······멋지네요.”
저 멀리서 반짝이는 회백색의 절벽을 보며 블라드는 미소 짓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이 홀로 솟아오른 절벽의 모양새가 괜스레 블라드의 세계 어딘가를 자극하고 있었다.
두근-!
처음 보았기에 설렜지만 왜인지 모르게 나를 부르는 것만 같은 도시.
난생처음 보는 절벽 위의 도시는 분명 블라드의 심장을 뛰게 만들고 있었다.
※※※※
드드득-
드드드득-
“······으음.”
도시 바스토폴의 있는 강철공의 저택.
그곳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지하실에서 한 노인이 침음을 내뱉고 있었다.
“그때보다 훨씬 심하게 반응하는군.”
강철공의 마법사인 페르낭은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부들부들 떨고 있는 두 개의 함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성을 담은 쇠사슬에 의해 단단히 봉인되어 있는 두 개의 함.
하나는 본래 바라노프가 가지고 있던 것이었고 또 하나는 지금은 멸문해버린 라브노마가 지니고 있던 것이었다.
“······이번에는 어떤 용이 눈을 떴는가?”
가장 완벽한 용의 조각을 담아놓은 봉인함(封印函).
그 함을 바라보는 늙은 마법사의 눈이 일렁이고 있었다.
가장 빠른 용인 린드부름의 출현 때도 반응했던 함이었으나 지금만큼 강렬하게 진동하지는 않았었다.
아마 이렇게까지 반응하기 위해서는 가지고 있는 용의 가능성이 짙거나.
으드드드득-
아니면 그만큼 가까워야 할 것이다.
“이건 보고를 드려야겠군.”
봉인함의 진동이 심상치가 않자 페르낭은 조용히 자신의 신비를 펼치기 시작했다.
손끝으로 만드는 수인(手印)이 허공에서 하나의 진을 형성하자 그곳에서부터 마치 은하수로 녹인 것만 같은 물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저택 아주 깊은 지하에 자리 잡는 거대한 문.
그곳으로 향하는 어두운 복도가 늙은 마법사의 주문을 따라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잡아 늘이기라도 한 듯 점점 좁아지면서도 길게 늘어지는 복도는 자연스레 저 위의 세계와 거리를 멀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