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77
초대받지 않은 손님 (1)
온통 검회색의 벽돌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천장에서 비치는 빛으로 인해 오히려 밝은 공간.
중부의 양식과는 달리 온통 검과 방패로 장식된 회의장을 보며 알리시아는 인상적이라 생각하고 말았다.
흠집과 깨어짐으로 가득한 무구들이 단순히 장식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소. 알리시아 남작.”
회의장 저 끝에서부터 강철공 티무르가 알리시아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이 추운 겨울날, 여기까지 오는 데 불편함이 많았을 텐데.”
가장 늦게 도착하긴 했지만 가장 멀리서 왔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오히려 우트만 남작가로 인해 비워진 빈자리를 채워준 알리시아였기에 지금 앉아 있는 6명의 영주들은 기꺼운 마음으로 그녀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부디 내가 마련한 자리가 불편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공작님.”
상대방이 배려를 보였다면 예의로 답해야 할 것이다.
알리시아는 비록 영주의 자격으로 도착했지만, 제국에 넷밖에 없는 공작을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제 모여야 할 사람들은 전부 모인 것 같군.”
7개의 깃발. 7개의 의자.
그리고 7명의 영주.
알리시아가 자리에 앉자 이제야 꽉 채워진 회의장을 보며 티무르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지금부터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소.”
시작을 알리는 강철공의 손짓에 따라 회의장의 문이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다.
끼이이익-
차가운 바람과 함께 떠도는 푸른 눈 알갱이들.
힘껏 내리쳐도 깨지지 않는 새하얀 호수의 얼음.
혹독하다 못해 강렬한 북부의 추위는 차라리 경이롭기까지 한 것.
그러나 그런 추위에도 굴복하지 않는 야생성이야말로 북부인들이 가진 정체성일 것이다.
너무나 견고했기에 끝까지 섞이지 못했던 정체성.
점점 좁혀져 가는 문틈을 바라보며 강철공의 눈빛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제국이 행했던 차별조차도 훈장처럼 삼으며 버텨왔던 것은 바로 지금을 위해서였다.
※※※※
‘웅장하네.’
여태껏 많은 귀족 가의 저택을 방문했었지만 이렇게까지 길고도 넓은 복도는 처음이었다.
블라드는 저 멀리 보이는 커다란 회의장의 문을 보며 볼을 긁적이고 말았다.
‘어디 빠져나갈 틈이 없어 보이는데.’
낯선 곳에 들어왔을 때 주위를 살펴보는 것은 블라드의 오랜 습관 중 하나였다.
도망칠 길을 알아보는 것은 약자의 본능이라 할 수 있겠으나 블라드는 언제나 자신이 진창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이제부터 우리는 여기서 지키고 서 있으면 되는 거야.”
“그렇군요.”
블라드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몸을 돌려 바라본 그곳에는 어깨를 으쓱이며 미소 짓고 있는 루트거와 함께 영주들을 호위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6명의 기사들이 있었다.
“물론 너는 지키기보다는 안으로 들어갈 손님에 가깝지만 말이지.”
루트거는 고개를 까닥이고는 손가락으로 바닥에 선을 긋는 시늉을 했다.
그의 말처럼 지금 서 있는 블라드와 호위 기사들 사이에는 나름의 간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리시아를 무사히 회의장까지 인도한 블라드는 이제 기사가 아닌 초대받은 손님의 자격으로 이곳에 서 있는 참이었다.
‘저기 있는 사람들이 전부 영주의 최측근들이란 말이네.’
블라드는 루트거의 말을 들으며 그의 옆에 서 있는 기사들의 면면을 확인해보았다.
바예지드의 루트거, 하이날의 던칸.
그리고 아직 이름을 모르는 기사들 사이에서 낯이 익은 누군가가 블라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야 제대로 된 인사를 하게 되었군. 블라드 경.”
“저를 기억해주시니 영광입니다. 볼코프 님.”
기사들 사이에서 블라드를 바라보고 있던 그는 바라노프에서도 명망 높은 기사인 투창의 볼코프였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자연스레 볼코프와 악수를 나누는 블라드를 보며 몇몇 기사들은 놀랐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모시암에서는 서로가 바빠 제대로 인사할 시간도 없었지.”
“그랬었죠.”
비록 모시암에서는 스쳐 지나갔지만 볼코프는 가장 빠른 용을 향해 달려들던 어린 용몰이꾼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 깨어져 가는 검과 함께 울부짖던 블라드의 모습은 그날의 볼코프에게 있어 선명한 그림처럼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종자에서 기사로, 그리고 이제는 성을 가진 귀족이 된 것을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볼코프의 인사를 들은 블라드는 애써 진정시킨 심장이 다시 뛰는 것을 느꼈다.
그의 말에 자신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곳에 서 있게 되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링겐의 기사 랄프요.”
“로므니에의 기예르모.”
“포드밀스에서 온 에른스트입니다.”
“하르키타의 카로이요. 이거 소문이 자자한 사람을 직접 보니 반갑구만!”
볼코프가 대화의 물꼬를 트자 기다렸다는 듯 기사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후계자, 누군가는 조언자.
또 누군가는 영주의 최측근.
실력의 고하를 떠나 북부인들이라면 한 번쯤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사람들이었다.
“소문을 들어보니 엘프들의 땅까지 다녀왔다고 하던데.”
“그렇습니다.”
“결혼은 했는가!”
“아직······.”
“저희 아버지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 하십니다.”
“제가 꼭 시간을 내보겠습니다.”
갑작스레 떠오른 블라드를 보며 몇몇 기사들은 마뜩잖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기사들은 모두 영주들의 최측근이었고 누군가에 대한 시기와 질투보다는 영지의 이득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곳을 떠나기 전에 대련 한번 부탁하고 싶은데.”
그러나 대의를 추구하는 위치에 있다 할지라도 블라드에 대한 호기심 자체는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블라드는 불타는 듯한 기예르모의 눈을 마주하며 이곳에 있는 모두가 형태는 달랐을지라도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블라드 님. 이제 준비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대화의 열기가 점점 더해가려는 가운데, 집사의 부름을 받은 블라드는 이제 곧 자신이 들어갈 때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기사들과 함께하는 지금은 블라드 경이었지만 회의장 안에 들어설 때는 아우레오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잘하고 와라.”
블라드는 팔짱을 낀 채 웃고 있는 루트거를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네.”
괜스레 뛰고 있는 심장만큼이나 아직 긴장이 가시지는 않았지만 루트거가 뒤에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심이 되는 것만 같았다.
※※※※
“······진짜 강철이네. 강철.”
블라드가 영주들의 부름을 받으려 대기하는 사이, 그의 마법사인 니벨룬은 도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한참 사리사욕을 채우는 중이었다.
“그런데 강철이 이렇게 쉽게 만들어질 수가 있나?”
들고 있던 배낭에서 돋보기 하나를 꺼내고는 마치 바퀴벌레처럼 성벽에 바짝 붙고는 혼잣말을 해대는 수인족 남성.
누가 봐도 충분히 수상한 모습에 경비병들의 눈이 좁아지고 있었지만 정작 니벨룬은 남들의 시선을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여기가 철광석 산지라 해도 이게 캔다고 나오는 광물은 아닐 텐데······.”
한참 연구대상에 몰두한 마법사에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것은 누구라도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한참 집중하고 있던 니벨룬은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하고 있었다.
-저기 지금······!
-하늘에 뭔가가······!
‘근처에 화산이라도 있는 건가?’
본디 강철이란 물건은 무쇠를 녹일 만큼의 강한 열기와 압력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용광로 정도 되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 온갖 불순물들을 태워버려야만 지금 정도 수준의 강철이 나올 텐데 설마 이만한 양의 강철들을 전부 대장간에서 만들었을 리는······.
“엥?”
“뛰라니까요!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한참 성벽에 집중하고 있던 니벨룬은 어느새 자신의 몸이 둥실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안내를 위해 붙여놓은 병사가 다급하게 그를 둘러업었기 때문이었다.
“왜요?”
“왜긴 왜입니까!”
여전히 얼이 빠져 있는 니벨룬을 보며 병사가 답답하다는 듯 소리를 질러댔다.
“저기! 하늘을 보세요!”
“하늘?”
병사의 외침에 자연스레 들고 있던 돋보기로 하늘을 바라본 니벨룬은 곧 그곳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았다.
“······저게 뭐야?”
과연 병사의 말대로 이곳 바스토폴을 향해 저 멀리서부터 반짝이는 은색 점이 있었다.
처음에는 점처럼 보였으나 가까이 다가올수록 명확히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습격이다! 습격!
-하늘에서 온다! 다들 화살 들어!
시위를 메기기 시작하는 병사들의 뒤로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혼란으로 얼룩진 바스토폴의 길을 따라 저택으로 향하던 니벨룬은 들고 있던 돋보기를 통해 마침내 다다른 습격자들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와이번(Wyvern)?”
이제는 잊혀 가는 오랜 전설에 따르면 바스토폴의 성벽은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철광석으로 쌓아 올렸다고 했다.
그러나 그 평범하던 철광석이 지금의 단단한 강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성벽으로 와닿은 강렬하고도 뜨거운 무언가의 숨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용들이 불을 뿜는다!
-다들 피해!
가장 완벽한 용의 숨결(Breath).
오직 순수한 것만을 남기고자 하는 용의 분노가 바스토폴의 성벽을 강철로 녹여버렸다고 했다.
“······길을 열어라. 북부의 기사들아.”
하늘에서 시작된 용의 숨결과 함께 땅에 내린 남자가 있었다.
“나는 정당하신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 지금 이곳에 왔다.”
그는 찬란한 금발과 푸른 눈.
그리고 목이 그어진 용의 깃발과 함께 온 남자였다.
“이 땅의 주인에게 용살기사단의 미르셰아가 왔다고 알려라.”
아무리 높은 곳에 매달려 있다 해도 저 위에 있는 하늘보다 높지는 못할 터.
가장 높은 곳에서 태어난 용의 날갯짓에 바스토폴에 매달려 있던 7개의 깃발이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물어봐라.]기사들을 뒤에 둔 채 문 앞에 서 있던 블라드는 그동안 품고 있던 의문 하나를 물어보기로 했다.
저 높은 귀족의 세계로 들어서기 전, 아직 내가 진창 위에 서 있던 소년이었을 때를 기억하며 묻는 질문이었다.
‘왜 하필 나였어요?’
[음?]‘왜 하필 나한테 왔냐구요.’
블라드가 진창 위를 구르던 뒷골목의 소년이었을 시절, 키하노는 검은 벼락과 함께 찾아왔다.
처음에는 불운한 우연이라 생각했었지만 키하노가 누군지 알게 된 지금, 블라드는 그가 고작 허튼 우연 따위로 다가올 사람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왜 하필 너였냐고.]블라드의 질문에 키하노의 목소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만약 블라드가 지금 왼쪽 눈을 감고 있었다면 새빨간 단풍나무 아래서 지고 있는 노을을 바라보는 키하노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블라드 아우레오 님. 입장하십니다!
[내가 하늘에서 보고 있었을 때.]크게 울려 퍼지는 소리와 함께 회의장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문이 열리고, 그 뒤에 있던 문이 열리고.
겹겹이 블라드를 가로막고 있던 문들이 열리자 저 먼 곳에 앉아 있는 영주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땅으로 흩어진 조각 중에서 네가 제일 반짝였거든.]키하노의 말을 들은 블라드는 희미하게 웃으며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진창에서 태어났으나 이제 향하는 곳은 귀족의 세계.
그러나 블라드는 저 앞에 있는 북부의 영주들보다도 자신의 안에 있는 키하노의 인정이 더 기꺼울 뿐이었다.
왜냐하면, 지금 회의장에 있을 그 누구라 할지라도 내 안에 있는 키하노보다 빛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