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79
용이 울부짖는 도시 (1)
수도 브리간테스에 있는 드라굴리아의 저택.
용혈공 사르누스는 창가에 서서 저 멀리에 있는 북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문에 비친 그의 얼굴은 목덜미에 두르고 있는 하얀 붕대 때문인지 부쩍 수척해 보였다.
‘······소드마스터의 검이 뽑혔다.’
갑작스레 맹약이 발동되던 그 날 사르누스는 확신하고 말았다.
지금 제국 어디에선가 소드마스터의 검이 뽑혔음을.
아주 잠시였지만 발동되었던 소드마스터와의 맹약은 핏줄 아니면 의지로만 이어질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강철공인가? 아니면 바예지드?’
이미 죽은 프라우센에게 갑작스레 후계자가 생겨날 리도 없었으니 남은 가능성은 오직 소드마스터의 검뿐이었다.
그리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안개 가득한 모시암에서 도시를 가르던 하얀 번개가 있었다고 했다.
‘그것만 찾아 없애면 나는 자유다.’
태어나기를 빼앗는 자로 태어났으나 맹약에 묶여 지키는 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르누스는 지금 진정한 자유를 꿈꾸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꾸는 꿈의 끝에는 용의 피가 바라마지 않는 완벽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음?”
그러나 아주 잠깐.
정말이지 아주 잠깐이었으나 사르누스는 목덜미를 파고드는 따끔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 느낀 감각과는 어딘가 달랐으나 분명 익숙한 고통이기도 했다.
“······피?”
마치 착각과도 같았던 찰나의 감각.
손가락을 들어 붕대를 어루만지던 사르누스는 손끝에 번진 붉은 액체를 보며 당황하고 말았다.
“검은 이미 뽑혔을 텐데?”
뽑힐 수는 있겠으나 정당히 의지를 이은 자가 없어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은색의 기사.
그러나 지금 사르누스가 두르고 있는 하얀 붕대에는 새빨간 핏방울 하나가 번져 나오고 있었다.
아주 작은 흔적이긴 했으나 분명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
내 앞에 있는 자는 용인가 기사인가.
검을 빼든 북부의 영주들은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블라드를 노려보고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거칠게 포효했던 금발의 기사는 분명 용의 목소리로 울부짖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베어야 합니다.”
“······잠시만.”
“페테르 백작. 아쉬운 것은 알겠지만 이것은 대의를 위한 일이요.”
“······.”
옆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페테르는 그만 입술을 꽉 다물고 말았다.
그의 말이 맞았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면 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가 되어야 하는 북부에게 있어 드라굴리아의 피는 독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래도 잠시만 기다려봅시다.”
그러나 페테르는 쉽사리 검을 움직이지 못했다.
쇼아라에서 태어나 바예지드가 찾아낸 어린 기사.
페테르는 스투르마의 성벽 아래서 수없이 검을 휘두르던 어린 종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종자를 데려오면서 환하게 웃던 내 아들의 미소 또한.
“움직입니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던 블라드.
그가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하자 영주들의 눈빛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이미 몇몇은 감은 왼쪽 눈을 통해 오러를 불러일으키는 중이었다.
“블라드 경······.”
영주들의 뒤에서 있던 알리시아는 여전히 침묵하고만 있는 블라드를 바라보며 울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전히 땅을 울리는 이유 모를 진동은 그녀의 불안한 마음을 계속해서 흔드는 중이었다.
드드드득-
천장에서부터 돌가루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어서 이곳을 돌아보라 외치는 조각들의 외침 속에서 블라드는 조용히 눈을 떴다.
뜨고 있는 블라드의 눈은 여전히 새파랬으나 초점만큼은 확연히 잡혀 있었다.
“블라드 아우레오.”
무거운 침묵 속, 회의장 가장 높은 자리에서부터 강철공 티무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억누르려 했지만 떨릴 수밖에 없는 목소리가 티무르의 말끝을 흐리게 했다.
“여기에 있는 우리들에게 말해봐라. 너는 누구냐.”
보았고 느꼈으나 차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티무르의 세계 안에 있었다.
다른 영주들은 몰랐겠으나 맹약의 수호자인 티무르는 빛나는 나무 아래서 기사로서 인정받은 어린 용의 모습을 보았었다.
“저는 블라드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그러나 블라드는 오늘에야말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실히 깨달았다.
내가 비롯된 뿌리를 찾았고 평생을 통해 되고 싶은 목표를 찾았기 때문에.
“나 자신의 주인. 블라드.”
그 말과 함께 블라드는 귀족이 될 수 있는 경계선에서 고개를 돌렸다.
남이 주는 나의 이름은 더는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두근-!
애써 쥐고 있던 가슴팍에는 여전히 빛나는 별 하나가 떠올라 있었다.
블라드는 그 별을 모아 조용히 세계수의 검으로 옮겨 담았다.
용의 심장을 따라 옮겨 온 빛을 보며 세계수의 검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럼 저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오겠습니다.”
그 누구도 허락하지 않았지만 블라드는 걸어왔던 문들을 향해 밖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지금껏 들어오고자 노력했던 문들이었으나 돌아선 블라드의 뒷모습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
용의 조각이 외치는 울부짖음을 따라 하늘 위의 와이번들이 포효하고 있었다.
조각들이 울부짖을수록 강인해지는 와이번들의 비늘은 이제 더는 화살에도 굴하지 않았고 지금도 끊임없이 내뱉는 숨결을 통해 바스토폴의 기사들을 궁지로 몰아가는 중이었다.
조각에 가까워질수록 완벽해지고 마는 용들의 모습에 북부의 기사들은 이를 악문 채 항전할 뿐이었다.
“겨우 이 정도냐. 루트거 바예지드!”
“······!”
까아아앙-!
검과 검이 부딪혔으나 들리는 것은 마치 무언가가 터지는 것만 같은 소리.
복도 가득 퍼져나가는 열풍을 따라 미르셰아가 내뱉는 포효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방금의 기세등등함이 아까울 정도로군!”
바짝 들이댄 검 사이로 사납게 웃고 있는 미르셰아가 보였다.
마치 그을리기라도 한 듯 그의 금발은 여기저기 얼룩이 져 있었으나 광기 어린 푸른 눈동자만큼은 여전했다.
“그 건방진 일격. 다시 한번 해보시던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끼기긱 거리며 울고 있는 검 너머로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고 있었다.
지닌 위치도, 주위의 상황도 전부 내던진 채 마주 보고 있는 둘은 오롯이 서로에게 집중하고 있는 상태였다.
“······해주마!”
거칠게 검을 후려친 루트거는 그 반동을 이용해 다시 한번 검을 높게 치켜들었다.
깊은 세계에서부터 끌어올려 분노라는 분화구를 통해 터트리고 마는 루트거의 세계.
검 끝에 맺힌 뜨거운 오러는 마치 화산에서 터져 나오는 용암을 방불케 했다.
‘보인다!’
그러나 루트거의 검을 바라보는 미르셰아는 여전히 웃고 있을 뿐이었다.
조각에게 다가갈수록 완벽해지고 마는 미르셰아의 감각.
저 멀리에 있는 존재도 꿰뚫어 보는 용의 시선이 루트거가 내려칠 지점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었다.
콰아아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오러에 녹다 만 돌가루들이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루트거의 검 끝에 닿은 것은 그저 허무한 공기뿐.
“······!”
“아까도 말했잖나.”
루트거는 자신의 귓가로 와닿은 스산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스치듯 와닿았으나 날카롭게 파고드는 목소리.
루트거는 판단보다 빠른 본능으로 재빨리 복도를 구르기 시작했다.
“너무 느리다니까!”
드드드드득-!
미르셰아의 일격에 루트거가 있던 자리가 찢겨나가고 있었다.
휘두르는 힘을 견디지 못하겠는지 베어지다 못해 아예 밀려나 버리고 마는 복도의 벽.
인간의 규격을 뛰어넘는 아득한 완력을 보며 루트거는 모골이 송연해지고 말았다.
“······이거였구나.”
희뿌연 돌 먼지가 가득한 복도를 보며 미르셰아는 웃음 짓고 있었다.
직접 보아도 믿을 수 없는 나의 일격.
아직까지 남아 있는 짜릿한 감각이 손을 타고 들어와 뇌까지 전달되고 있었다.
“이게 바로 용이었구나.”
상처받은 상대를 통해 느낄 수 있는 나라는 존재.
저 멀리 쓰러져 있는 볼코프와 북부의 기사들, 그리고 풍압에 밀려 널브러진 루트거의 모습을 보며 미르셰아는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용이었다.
이런 비루한 자들 따위가 막을 수 없는 그런 완벽한 존재.
“이제 끝내자. 더는 너에게 볼일이 없으니.”
방금까지만 해도 똑바로 맞닿은 루트거였으나 용의 시선으로 본 그는 어느새 저 아래의 존재가 되어있었다.
내 아래에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짓밟고 위를 올려다보는 것이 본래 용이 가진 본능.
미르셰아는 강철공이라는 더 높은 세계를 만나기 위해 루트거의 시체를 밟고 오르기로 했다.
“여기서 헤어지도록 하지.”
“······할 수 있다면 해보시지.”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는 미르셰아를 보며 루트거는 조용히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어찌 된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상대는 시간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미르셰아가 내뿜는 기세가 범접할 수 없는 강물이 되기 전에 루트거는 그것을 끊어내야만 했다.
“······,”
감은 눈을 통해 보이는 미르셰아의 세계는 빛나는 보석과도 같았다.
누군가에 의해 다듬어진 그의 세계는 자그마한 흠도 용납하지 않는 완전무결함을 추구하는 세계였다.
두근-!
그러나 미르셰아는 저 깊은 곳에 있는 자신의 세계를 불러내지 못했다.
루트거의 등 뒤에서부터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달려드는 누군가를 눈치챘기 때문이다.
“누구냐!”
용의 눈으로도 차마 따라잡기 힘든 속도.
그러나 달려드는 그 빛만큼은 황금색으로 이루어져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까아아앙-!
가장 빠른 용보다도 빠르게.
가장 날카로운 용보다도 날카롭게.
“쇼아라의 블라드다!”
드디어 마주친 세계와 세계.
그렇게 맞닥뜨린 둘은 꼭 닮은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
드드드드득-
용과 용이 만나자 밑에 있는 조각들이 크게 포효하기 시작했다.
여태껏 불러 본 용 중 가장 완벽에 가까운 존재들.
그 찬란한 가능성을 알아본 조각들은 어서 나를 잡으라 소리치고 있었다.
“우리가 이럴 사이가 아닌데 말이지.”
“그럼 무슨 사이인데.”
맞닿았기에 요란하게 울리는 검과 검.
나아가려는 자와 막아내려는 자 사이에는 조금의 빈틈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는 너도 알지 않나. 네가 누구인지.”
끼기기긱-!
맞닿고 있던 검의 균형이 블라드 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용이기에 가질 수 있는 완력이 블라드를 사정없이 몰아붙이고 있었으니까.
“끄으으으······.”
[어서 빠져나가라! 저 녀석을 인간의 규격으로 이해해서는 안 돼!]블라드가 딛고 있는 대리석 바닥이 사정없이 깨어져 나가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지키고 있던 대리석이었으나 내리누르는 힘을 견디지 못해 처참히 부서지는 중이었다.
“우리에게로 와라. 동생아. 지금의 너라면 자격은 차고 넘치지.”
아버지가 흩뿌려놓은 씨앗 중 가장 밝게 빛나는 녀석.
드라굴리아로 오라는 미르셰아의 말에는 분명 진심이 담겨 있었다.
애초에 드라굴리아라는 가문은 그렇게 유지되는 가문이었으니까.
“지랄하고······ 있네!”
“······!”
그러나 블라드는 드라굴리아로 오라는 미르셰아의 말에 오히려 크게 분노하고 말았다.
“그 말은 우리 엄마가 죽기 전에 했었어야지.”
“······!”
그렇게나 잘난 너희들이었다면 진작 와서 손을 뻗어줬어야지.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때는 너무나 추웠고 어렸기에 무덤 하나 만들어주지 못했었는데.
끄드드드득-!
블라드의 분노와 함께 다시금 균형을 맞추기 시작하는 세계수의 검.
완력을 밀어내는 완력이 블라드의 근육에서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없던 네가 어떻게 내 형이 될 수 있겠어.”
콰앙-!
네가 용이라면 나 또한 용.
블라드는 쓰디쓴 기억과 함께 드라굴리아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였다.
내 안에 흐르는 피가 비록 싫고 거부하고 싶다고 할지라도.
“크윽!”
휘두를 줄은 알았으나 받아본 적은 처음인 용의 힘.
그 강렬한 힘을 처음 느껴본 미르셰아는 복도 끝을 향해 주욱 밀려나고 말았다.
“루트거 님!”
“그래.”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생각이라는 것이 있다.
시선을 마주한 둘은 익숙한 경험을 통해 자신들이 할 일을 하기로 했다.
“시간을 벌어다오!”
콰악-!
검을 바닥에 꽂아 넣은 루트거는 서둘러 왼쪽 눈을 감은 채 다시금 깊은 세계로 빠져들어 갔다.
방금보다 더 깊게, 나라는 세계에 바짝 닿을 때까지.
바예지드 최고의 용몰이꾼이 벌어주는 시간을 이용해서.
“블라드! 블라드 드라굴리아!”
“드라굴리아라고 부르지 마라!”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미르셰아를 향해 블라드는 큰소리로 외쳤다.
그 피를 타고난 것은 인정하지만 나를 그렇게 부르는 것은 참을 수 없노라고.
왜냐하면, 그것은 너희들이 붙인 나의 이름일 뿐이니까.
“난 너희들같이 살지 않을 거니까!”
블라드, 블라드, 블라드.
내가 얻어 낸 이름을 똑바로 세운 블라드는 그 이름들을 얻을 수 있게 도와준 사람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세계를 세우기 시작했다.
블라드가 만들어낸 황금빛의 나무는 스승들이 내어준 흙 위에 세워진 것이었으니까.
“나는 용이 아닌 기사로 살아갈 거다!”
한 걸음 내디디는 걸음은 자야르에게서.
갑옷을 비트는 기술은 유스티아에게.
달려들고자 하는 최적의 길은 오귀스트에게서.
온몸을 감싸는 단단한 기운은 라문드에게.
그리고 지금부터 내뻗는 일격필살의 묘리는 기사 중의 기사. 소드마스터에게서.
“흐아아아아!”
블라드가 내지르는 커다란 포효와 함께 세계수의 검이 세차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빛은 별과 함께 뛰는 심장을 따라 가져온 나의 깊은 세계였다.
똑똑히 봐라. 용아. 내가 누군지.
누군가의 이름이 아닌 이제 스스로의 이름으로 빛날 수 있는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