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81
못다 한 의무를 향해 (1)
지난밤은 아주 힘든 날이었다.
발밑에 땅은 흔들리고 하늘 위에서는 와이번들이 울부짖어댔으니까.
그러나 악몽과도 같은 밤이 있다 할지라도 오늘의 태양은 어김없이 떠오르기 마련.
저 멀리 새하얀 평원에서부터 동이 터오자, 바스토폴의 주민들은 이제야 고요해진 도시를 향해 고개를 빼꼼히 내밀기 시작했다.
“······그때 확실히 죽여버렸어야 되는 거였는데.”
“그러게요.”
“네가 제대로 못 몰아서 그래.”
“그래요. 그렇다 쳐요.”
떠오르는 아침 해가 어둠을 걷어가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엉망이 된 성벽과 도시.
그중에서도 제일 어지러이 무너진 곳에 루트거와 블라드가 널브러져 있었다.
모든 힘을 소진했다는 듯 고개를 떨구고 있는 둘에게 오늘의 태양이 와닿고 있었다.
“그래도 그놈한테 한 방 먹이니까 기분은 좋더라.”
“······.”
루트거의 말을 듣던 블라드는 고개를 돌려 성벽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깊고도 거대하게 패여 있는 균열.
저택에서부터 시작한 그 균열은 정확히 바스토폴의 성벽까지 닿아있었다.
“좋긴 좋았겠네요.”
블라드는 시원하게 내질러 낸 루트거의 검로(劍路)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저 정도까지 분노를 터트려내었다면 누구라도 만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스투르마로 갈 거냐.”
“네.”
“요제프를 보러?”
“······네.”
이제는 스스로의 이름으로 일어선 기사.
더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블라드였지만 그렇기에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떠나기로 했다.
나를 처음으로 알아봐 준 사람을 위해 아직 못다 한 일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 어제 합이 괜찮았어. 그렇지?”
“아까는 제대로 못 몰았다면서요.”
루트거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는 블라드는 괜스레 근처에 있던 돌을 발로 툭 건드려 보았다.
고개를 돌리고 있기에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지금 루트거는 섭섭한 표정을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몸조심하고.”
“같이 안 가요?”
스투르마로 같이 가지 않을 거냐는 블라드의 말에 루트거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거기 있는 엄마는 내 엄마가 아니거든.”
“······.”
“너나 나나 기댈 가족이 참 없다.”
이제는 일어날 때가 되었다는 듯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난 루트거는 장난스레 블라드의 머리를 헝클어뜨리고는 저택을 향해 걸어갔다.
루트거의 세계는 화산과도 같은 세계.
터덜터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블라드는 어째서 그의 영혼 안에 깃든 분노가 그리 거셌는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새하얀 설원을 넘어야 닿을 수 있는 협곡.
그곳에 모여있는 무리들은 고개를 떨군 채 할 말을 잃고 있었다.
“피해는?”
“작전 중 격추된 와이번은 총 4기입니다.”
“기사들은?”
“······.”
절벽에 기대어 서 있던 미르셰아는 부관의 침묵을 이해했다.
얼핏 보아도 절반은 보이지 않는 기사들.
고르고 골라 만든 정예들을 잃었다는 씁쓸함에 미르셰아는 쓴 침을 넘기고 말았다.
“차라리 데스웜을 데려올 걸 그랬군.”
와이번 10기에 정예 기사 50명.
북부의 기사들은 닿을 수 없는 하늘을 이용한 기습이었으며 조각에 가까워질수록 완벽해지는 용을 이용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용혈공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도시 내부의 간자까지 이용해 벌인 일이었음에도 지금 보이는 모습은 처참한 실패였을 뿐.
“어린 라브노마는 여전히 쇼아라에 있다던가?”
“지금 막 스투르마로 출발했다는 전보가 있긴 했습니다만······.”
모든 계획이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미르셰아는 그런 변수들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했건만 전혀 다른 곳에 문제가 터져 나오고 말았다.
“어린 라브노마가 없음에도 맹약이 옮겨갔다라······.”
가장 오래된 용인 사르누스 드라굴리아는 조각들을 담을 봉인함이 만들어질 때부터 그 광경을 지켜보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소드마스터의 허락이 없이는 맹약의 수호자가 변경될 리 없음을 잘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맹약은 라브노마에게서 바예지드로 옮겨가고 말았고 결국 지금에 실패에 이르고 말았다.
처음 계획대로 라브노마의 함만 날뛰어줬어도 이렇게 쉽게 물러날 미르셰아와 와이번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소드마스터의 검이 아니었어.’
미르셰아는 이번의 실패를 복기하며 깨달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북쪽에서 느꼈다던 소드마스터의 기운은 그저 검에 의한 흔적이 아니었다는 것을.
지금 북부의 어디에선가는 그의 핏줄 혹은 의지를 이은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궁정공조차 애타게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했으나 핏줄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의지를 이은 전인이라는 뜻일 텐데,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른 미르셰아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가능성을 상상하며 그만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무엇이 말이 안 됩니까. 단장님?”
“아니다.”
설마 아니겠지.
용으로 태어나서 소드마스터의 뜻을 이은 기사라니.
이 세상에 그런 모순적인 존재가 있을 리가 없겠지.
“부상자들을 추슬러라. 돌아가겠다.”
“알겠습니다. 단장님.”
명령을 내린 미르셰아는 새까맣게 타 버린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완벽이라는 단어 위에 남겨진 새까만 흉터.
두 손을 꽉 움켜쥔 미르셰아는 그 흉터와 함께 잊어서는 안 될 이름 하나를 가슴속에 새겨 넣었다.
※※※※
엉망이 되어버린 저택 안에서 티무르와 페테르는 차를 마시고 있었다.
고귀한 공작과 백작이 마주하는 자리였으나 분위기는 너무나 평안했고 또한 익숙해 보였다.
“죄다 무너져서 대접할 술이 없더군. 그나마 차도 겨우 찾은걸세.”
“뭐.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합니다.”
찻잔을 든 페테르는 티무르의 고충을 이해한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오래된 인연인 강철공의 앞에 있어서일까.
어딘지 모르게 긴장이 풀려 보이는 그는 웃을 때는 루트거를 닮았고 차를 마실 때는 요제프를 닮았다.
“어찌 보면 차라리 잘된 일이야. 이번 일을 통해 확고히 뭉칠 수 있을 테니까.”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으나 오히려 그 덕분에 북부 회의는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었다.
하나로 뭉치기 위해서는 외부의 위협보다 효과적인 것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저 앞에 보이는군.”
저기 좀 보라는 듯 티무르가 턱 끝을 끄덕였다.
차를 마시던 페테르는 반쯤은 깨어진 창을 통해 성문을 나서는 행렬을 바라보았다.
회의를 마치고 각자의 영지로 돌아가는 영주들의 무리였다.
“목적지는 같은데 왜 같이 떠나지 않나?”
“굳이 용의 피를 자극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페테르는 그 무리에 섞여 떠나가는 금발의 기사를 알아보았다.
검은 말을 탄 채 떠나가는 그 기사는 아마 자신의 영지인 스투르마로 향하는 중일 것이다.
“이제부터 스투르마에는 용의 조각이 봉인 될 테니까 말입니다.”
용으로 태어났으나 용에게 대적하는 것을 선택한 기사.
저 멀리 성문을 지나는 작은 깃발을 보며 페테르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검은 말 뒤에 매달려 있는 저 깃발은 분명 나의 아내가 만들어 준 것이었다.
“그나저나 자네의 둘째 아들은 어떠한가. 차기 가주는 이미 결정된 것으로 아는데.”
페테르는 티무르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비어있는 찻잔을 기울이며 씁쓸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마지막까지 하고 싶은 것이 있답니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겠지만 특히나 아픈 손가락은 있을 것이다.
페테르에게 있어 그 손가락은 바로 요제프였으며 그렇기에 마지막까지 불태워보고 싶다는 그 말을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녀석도 이제 조금은 쉬어도 될 텐데도 말입니다.”
그저 지금 도시를 떠나 너에게 닿을 금발의 기사가 위안이 되길.
페테르가 기울인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은 그렇게나 썼다.
※※※※
그 옛날, 우리의 선조들을 한 사내와 약속했다.
가장 완벽한 용을 몰아내기 위해 하나의 깃발 아래 서자고.
그때의 약속은 진실된 것이었으며 또한 명예로운 것이었기에 북부의 영주인 우리는 지금도 그 약속을 지키고자 노력해왔다.
그러나 지금의 제국은 어떠한가.
하나가 되자던 그때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는가.
마지막까지 인간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던 도시를 기억하는가.
지금의 황제는 정녕 건국왕의 약속을 이을 자격이 있는 자인가.
그렇기에 우리는 이 자리에서 결의한다.
차별과 멸시로 북부와의 약속을 져버린 제국의 명을 더는 따르지 않겠노라고.
지금부터 우리는 거짓된 피로 이어진 황제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건국왕이자 위대한 소드마스터.
가장 완벽한 용을 죽인 키하노 프라우센의 정당한 후계자가 나올 때까지 북부는 오직 북부의 이름으로 오롯이 서게 될 것이다.
이것이 북부의 일곱 영주가 제국에게 보내는 결의이다.
※※※※
동부에 있는 깊은 숲.
그곳에는 인간의 접근을 불허하는 깊고도 넓은 숲이 있었다.
어린 세계수가 있으며 그 세계수가 품어낸 어린 정령들이 있는 숲, 아우슈린.
그러나 지금 그 숲은 마치 칼날이 닿은 것만 같은 긴장감으로 인해 바짝 얼어붙어 있었다.
“······물러, 물러나라. 어서 다들 물러나.”
어린 세계수 앞으로 마을의 모든 엘프들이 모여있었다.
엘프들이 뿜어내는 살기로 인해 뭐라도 베어질 것만 같은 분위기.
이번만큼은 무슨 대가를 치러서라도 세계수를 지키겠다는 엘프들의 의지가 선명했다.
“하지만 장로님.”
“계시일세.”
지금 세계수의 앞에는 새까맣게 깔린 사특한 존재들이 있었다.
인간, 몬스터 할 것 없이 하나같이 목 없는 그것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그저 존재만으로도 엘프들의 숲을 더럽히고 있었다.
“아무리 신녀의 계시라 해도 정녕 소드마스터의 검을 내어주실 겁니까? 저 불길한 인간에게?”
“절대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당장이라도 앞에 있는 남자를 향해 달려들 것만 같은 엘프들이었으나 장로 제로니모는 그들의 충돌을 한사코 제지하고 있었다.
‘······어째서 그런 모습으로 돌아오셨습니까.’
수백 년도 더 된 어린 시절에 보았던 남자였으나 제로니모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형편없이 낡았으며 지닌 머리색은 빛바랜 회색.
비치는 눈빛마저도 마치 시체처럼 오래되고 만 그였다.
위대한 자였으나 너무나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온 그를 보며 제로니모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착잡함을 느끼고 말았다.
“······모두 비켜주세요.”
순간, 한껏 웅성거리던 엘프들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모두에게 울리는 그 목소리는 세계수의 의지를 따라 흐르는 것이었다.
“신녀님!”
“안 됩니다! 그 검만은!”
겨울이었으나 얇디얇은 천만을 걸친 세계수의 신녀.
꿈으로 보았던 지금의 광경을 바라보며 신녀의 두 눈동자는 지금이라도 흘러내릴 듯 출렁이고 있었다.
“길을 비켜주세요. 여러분.”
길을 비키지 않으면 이곳에 있는 모두가 죽을 것이다.
그렇게 꿈에서 보았고 그럴 것이라 세계수가 경고했으니까.
지금도 세계수를 올려다보고 있는 불길한 여자는 그곳에서 뛰노는 어린 정령들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가져가세요. 본래 주인이시니까.”
“······.”
두 손으로 곱게 은색의 기사를 받쳐 든 세계수의 신녀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눈앞에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신녀가 운다는 것은 곧 세계수가 운다는 것.
한겨울이었음에도 여전히 푸르른 세계수의 나뭇잎들이 바람에 날려 흐트러지고 있었다.
“들리시나요? 지금 당신의 모습에 검이 울고 있어요.”
신녀의 울음 섞인 목소리에도 남자는 그저 무표정한 모습으로 소드마스터의 검을 집어 들 뿐이었다.
마치 오래된 장치처럼 삐걱이는 그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처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들리지 않아도 상관없다.”
신녀의 말처럼 못다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온 자신의 주인을 보며 은색의 기사는 슬피 울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검을 쥐어든 그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무심할 뿐이었다.
“이번에야말로 모든 용을 죽여야 하니까.”
가장 완벽한 용을 죽인 위대한 용살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키하노 프라우센.
그러나 지금 온통 메말라버린 그는 앞에 있는 이름은 잊어버린 채 오직 의무만을 기억하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