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86
드워프 해방전선 니다벨리르 (2)
서부의 도시, 트리노바.
황무지를 떠도는 황량한 모래들을 피해 도시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저택이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확연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크고도 넓은 저택이었으나 어딘지 모르게 어두운 기색이 감도는 것은 그저 착각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이래서 서부에 오는 것을 싫어해. 제대로 먹을 것도 없고, 딱히 마실 것도 없고.”
“······.”
“하여튼 재미가 없어. 이 동네는.”
황금공 바르보사는 장화를 벗어내고는 그 안에 있는 모래들을 탁탁 털어내며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고급스럽게 치장된 방과도 어울리지 않았고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도 예의는 아니었지만, 그는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편하게 행동할 뿐이었다.
“그나저나 예전에 봤을 때 보다 안색이 많이 안 좋아지셨구먼. 가이다르 백작.”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소.”
지근거리는 모래 위로 다시 장화를 올려놓은 바르보사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가이다르 백작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환히 웃고 있는 얼굴과는 다르게 묘하게 삐뚤어진 고개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이한 압박감을 느끼게 했다.
“하긴 5천이나 되는 병사들을 갖다 박아버렸으니 속이 말도 아니실테니지.”
“······.”
“거기다 고딘까지 잃으셨으니 말이야. 그 친구는 진짜 아까웠는데.”
“그만.”
옹골찬 풍채에 억센 눈썹.
충격적인 패배에 조금은 쪼그라들었으나 여전히 재기를 꿈꾸는 그에게는 아직 꺾이지 않은 기세라는 것이 있었다.
“뼈아픈 패배이긴 했지만 한 번의 패배로 주저앉을 나 지그문드가 아니오!”
“작게 말해도 알아듣는데 거참.”
그러나 바르보사는 가이다르 백작의 거친 기세에도 그저 시끄럽다는 듯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파낼 뿐이었다.
“남부 일에 바쁠 사람이 굳이 여기까지 온 목적이 뭐요?”
“가져갈 게 있어서.”
“무엇을?”
가이다르 백작의 반문에 여태껏 웃고 있던 바르보사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무엇을 이라니. 나를 보면 기억나는 게 있으셔야지.”
“······그건.”
“돈 빌렸잖아. 돈. 반짝이는 거. 금화.”
순간 앞으로 쏠린 바르보사의 고개가 백작의 턱 밑까지 불쑥 찾아 들어왔다.
마치 독이 바짝 오른 뱀과 같은 모습이었다.
“5천이나 되는 병사들 먹이고 입히고 무기 쥐여주고. 그거 다 빌린 돈 아니냐 이 말이야. 이 거지 같은 동네에서 그럴 돈이 어디 있었겠어.”
“그 돈은 용혈공 한테서 빌린 거······!”
“정확히는 용혈공이 나한테서 빌린 돈이지.”
사나운 미소로 백작의 말을 틀어막아 버린 바르보사는 품 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가이다르 백작에게 던져주었다.
섬뜩하리만치 새빨간 종이 한 장.
그것은 이른바 최후통첩이라 부르는 것으로 황금공에게 돈을 빌린 자들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종이였다.
“그리고 중간다리 건너서 채무자는 바로 당신이고.”
라브노마에서부터 바예지드까지.
가난한 백작 가문이 서부의 패자까지 올라서기 위해서는 그만한 지원이 필요한 법이었다.
그러나 굶주렸던 만큼 양껏 집어삼켰던 드라굴리아의 지원은 결국 가이다르의 발목을 붙잡고 말았다.
“그러니까 이 정도로 끝냅시다.”
익숙한 손짓으로 새빨간 서류를 들어 올린 바르보사는 그것을 가이다르 백작의 눈앞에 들이대었다.
“도시 하나만 주시면 돼. 셈이 대충 맞거든. 그럼.”
말도 안 되는 억지였으나 빌린 것도 사실.
어렴풋이 지금의 미래를 짐작하고 있었던 가이다르 백작은 입술만 부르르 떨 뿐 감히 말을 내뱉지는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바르보사가 들어오기 전에 받았던 보고에는 새까맣게 몰려고 온 함선들이 자신의 도시 토르체아를 점거하고 있다고 적혀져 있었으니까.
“이웃 좋다는 게 뭐요. 여기에 서명만 하시면 북부 놈들은 내가 물리쳐 드리리다.”
서슬 퍼런 웃음이라는 게 이런 걸까.
웃고 있는 바르보사의 입가에서 흉측한 황금색 이빨이 반짝이고 있었다.
※※※※
끼이이익-
주인이 신경을 쓰지 않은 듯 낡아버린 문에서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
그러나 그 소리보다도 블라드의 신경을 자극하는 것은 가게에 앉아 있는 선원들의 사나운 눈빛이었다.
이질적인 존재를 배척하는 것은 여느 곳에서나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여기. 브랜디 한 잔.”
“잘못 찾아온 것 같은데. 여긴 애한테 팔 건 없어.”
“젓지 말고 흔들어서. 값은 이걸로 대신 하지.”
블라드는 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고는 일부러 소리 내어 주인장 앞에 가져다 놓았다.
볼품없이 잔뜩 녹슬어 버린 동전은 거저 주어도 갖고 싶지 않게 생겼으나 정작 그 동전을 본 주인의 눈빛에는 이채가 돌았다.
“······어디서 오셨소.”
“북쪽.”
“북쪽? 북쪽 어디서?”
자신을 탐색하려 하는 주인의 얕은수에 블라드는 이죽거리며 답했다.
“나사우 촌놈한테 알려줄 건 없는데.”
“······손님이 왔다고 전해드리지.”
동류는 동류를 알아보는 법.
젊어 보이기는 했으나 어디서 꽤 굴러먹은 것만 같은 블라드의 모습에 술집 주인은 테이블에 있는 동전을 받아들었다.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는데.”
“빨리 오는 게 좋을 거야.”
입고 있던 앞치마를 벗고 밖으로 나가려는 주인을 보고는 블라드는 엄지손가락으로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등 뒤에서 노려보는 사람들을 제일 싫어하거든.”
“조심하라고 이르지.”
주인이 내어준 술잔을 받아든 블라드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불룩한 품에 손을 집어넣고 있는 사내들.
언제라도 품 안에 칼을 꺼낼 것만 같은 살벌한 사내들이었지만 블라드는 웃으며 그들에게 술잔을 기울였다.
“이상하게 고향같이 편하네.”
시킨 것은 브랜디였으나 정작 나온 것은 싸구려 럼주를 섞은 정체 모를 액체였다.
그러나 그 술의 껄끄러움마저 익숙했던 블라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한입에 털어 넣고서는 얼굴을 찌푸렸다.
“이번에는 바다라.”
주인도 없고 손님들은 조용한 가게 안에서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 블라드는 품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바라보았다.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듯 허접하게 그려놓은 그 그림에는 눈길을 잡아끄는 황금색 불빛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
“이게 뭔가요.”
“계시.”
스투르마를 떠난 후의 어느 밤.
야영을 하기 위해 피워놓은 모닥불 사이로 바라디스가 다가왔다.
“신녀가 전해주는 걸세. 사실 이걸 전해주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이나 마찬가지지.”
어머니 세계수의 흔적을 찾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온 바라디스는 드워프들의 섬으로 향한다던 일행과 합류하기로 했다.
일행이 향한다던 서쪽이야말로 어머니 세계수가 있던 자리였으며 기회를 찾기 위해 떠나는 요제프로서도 엘프들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군요. 감사합니다.”
말로는 감사하다고는 했으나 그림을 향해 내뻗는 블라드의 손에는 어딘지 모를 주저함이 깃들어 있었다.
“······여전히 그림 실력은 안 늘었나 보네요.”“한결같은 점이 그 아이의 매력이지.”
엘프들의 신녀가 세계수를 구한 기사에게 전해주는 계시.
그러나 받아든 거창한 명분과는 달리, 손에 든 그림은 어린아이가 그린 듯 삐뚤빼뚤할 뿐이었다.
“이건 뭐죠? 주위가 왜 이렇게 시꺼멓죠.”
“바다.”
“그러면 여기 떠다니는 것은 뭐죠? 통나무인가?”
“배.”
“······.”
너무나 엉망이라 이제는 물어보기도 민망할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알아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불빛 하나가 있었다.
세계수의 신녀가 배라고 주장하는 갈색 덩어리 위에 빛나고 있는 점 하나.
사람의 형태 따위는 없었지만 너무나도 낯익은 그 빛깔을 보며 블라드는 눈을 좁혔다.
“이건 혹시 저인가요?”
“역시 한눈에 알아보는군.”
여동생이 그린 그림을 알아봐 주어 조금은 신난 바라디스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 위를 떠도는 배 위에서 불을 밝히는 기사라······.”
어느새 바짝 붙어 있던 니벨룬은 나지막한 목소리를 내뱉으며 그림을 보고 있었다.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니 아무래도 신녀가 전해주었다는 계시가 그에게는 큰 흥미를 동하게 한 모양이었다.
“이토록이나 이렇게나 명확한 계시는 처음 봅니다. 누군지는 몰라도 예언자의 수준이 매우 고매하군요.”
“명확해? 이게?”
허락하지도 않았음에도 어느새 배낭에서 돋보기 하나를 꺼내든 니벨룬은 그림 이곳저곳을 살피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다.
마치 명품을 다루는 것만 같은 그의 조심스러운 모습에 블라드는 그만 혀를 차고 말았다.
“······이렇게나 명확하게 시간의 틈을 짚어내다니. 언젠가 한 번 엘프들의 숲에 꼭 들르고 싶군요.”
“블라드 경과 함께라면.”
“꼭 한번 가고 싶습니다. 같이 갑시다. 제발.”
블라드와 함께여야만 한다는 바라디스의 말에 제발 부탁이라는 듯 양손을 모은 니벨룬.
수인족 특유의 동공이 점점 넓어지며 동그래졌지만 정작 블라드는 니벨룬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행이네.”
“뭐가요?”
새까만 바다 위에서 위태로이 흔들리는 불빛.
자신을 그린 것이 분명한 그 색을 보며 블라드는 타닥이는 모닥불을 뒤적여대었다.
“계시가 가리키는 사람이 나니까.”
도시 모시암에서 나를 위해 대신 쓰러져 준 카나리아가 있었다.
그녀는 온통 새카만 밤을 밝히며 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빛을 밝히던 새였었다.
유스티아의 죽음을 가슴 속 고이 묻어놓았던 블라드는 이번의 불길함이 온전히 자신을 향하고 있음에 도리어 안심하고 말았다.
※※※※
“여기 지도.”
“······.”
“그리고 이것까지.”
노을이 지는 나사우의 항구.
한 달 전, 스투르마를 떠났을 때보다 훨씬 따뜻해진 서쪽의 바다는 지금 막 기지개를 켜는 중이었다.
“이게 뭡니까?”
술집 주인이 연결해 준 비밀스러운 연락책은 어디에서나 있을 것 같은 항구의 노동자였다.
얼굴에 보이는 오랜 세월만큼이나 잔뜩 짐을 짊어졌던 그는, 이제 휘어져 버린 허리를 토닥이며 블라드 앞에 서 있었다.
“소라껍데기일세. 좀 크지?”
“소라가 뭔데요.”
“······북쪽에서 왔다고 했지 참.”
기이하게 끝이 말려 올라간 물건이었다.
감히 생물이었다고는 믿기 힘든 소라껍데기를 보며 블라드의 표정이 이상하게 구겨져 갔다.
“어쨌거나 그걸 나팔처럼 쓰면 되는 거야. 나팔은 알지?”
“그럼 온다는 겁니까?”
블라드의 물음에 이름 모를 항구의 노인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거야 나는 모르지.”
“······.”
“확실하게 말해 줄 수 있는 건 지도에 그려진 곳은 안개가 자욱한 곳이라 경험 많은 선장들도 가기 꺼리는 곳이라는 걸세. 그래서 내가 배까지는 책임 못 져줘.”
들고 있는 것은 불친절하게 그려진 지도 한 장과 예전에는 소라였다는 녀석의 시체뿐.
그러나 이것들만이 드워프들의 섬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단서였기에 블라드는 고개를 끄떡일 수 밖에 없었다.
“배는 괜찮아요. 저희가 구해놨으니까.”
“그럼 다행이구만.”
접선이 끝났다는 것을 알아챈 노인은 들고 왔던 망태기를 힘겹게 들고는 고개를 숙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접선책이었으나 지금의 모습은 영락없는 항구의 노동자.
바예지드의 땅이었으나 아직은 서부의 풍습이 남아있는 나사우.
그곳에서 드워프를 도와주는 일은 아무래도 숨겨야만 하는 행동일 것이다.
“그럼 다시는 보지 마세.”
“여기요.”
수고해 준 노인을 위해 금화 하나를 튕겨준 블라드였으나 그는 고개를 내젓고는 조용히 다시 돌려줄 뿐이었다.
“값은 이미 드워프들에게 받았어.”
“······.”
힘겹게 망태기를 짊어지고는 항구를 떠나는 노인을 보며 블라드는 볼을 긁적였다.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노인일지라도 금화로 대신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던 모양이었다.
“다른 배들은 가기 싫어한다라······.”
노인이 떠나간 뒤 홀로 남은 항구에서 블라드는 선착장을 향해 걸어갔다.
이제는 봄의 냄새까지 느껴지는 서부의 바다.
점점 짙어지는 붉은 노을 속에서 때마침 낯익은 그림자를 발견한 블라드는 품에서 신녀가 주었던 그림을 꺼내 들었다.
“이렇게 보니까 비슷한 것 같기도 하네.”
무심코 봤을 때는 그저 갈색의 덩어리였을 뿐이지만 이렇게 대비해서 보니 어느정도 닮은 감도 있어 보였다.
자그마한 몸체에 비해 높게 솟은 돛대.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펄럭이는 하얀색 삼각돛까지.
노을을 타고 나사우의 항구로 들어오는 작은 배.
쇼아라에서부터 출발한 낯익은 배를 보며 블라드는 손을 높게 흔들어대었다.
“여기야 하벤!”
드워프 해방 전선 니다벨리르.
그곳까지 일행을 실어줄 배는 캡틴 하벤이 모는 붉은 머리 제미나 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