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87
어린 고로(高爐) (1)
모든 것이 무너지는 이 순간에도 심장은 뛰고 있었다.
태어나기는 차갑게 태어났으나 이 세상 가장 뜨거운 열기를 품고 있는 심장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심장 속에서는 마치 불로 만들어진 것만 같은 거대한 도마뱀이 키하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게 바로 위대한 고로(高爐).”
위대한 고로 안에 깃들어 있는 영원한 숨결.
그 어떤 불꽃보다도 뜨겁고 순수할 정령의 눈을 마주하며 키하노는 쓰고 있던 두건을 벗어 내리고 말았다.
밖에서는 도시가 무너지는 소리가 요란했지만, 오래되고 거대한 존재와 눈을 마주친 지금만큼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깡-! 까앙-!
땅을 울리는 요란한 진동에 천장에서는 돌가루가 떨어지고 매달려 있던 대장간의 장비들은 위태롭게 삐걱대고 있었다.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 작품을 내려치는 늙은 드워프의 손길만큼은 곧고도 정확할 뿐이었다.
“······거의 다 됐어.”
이를 악문 채 모루를 향해 망치를 내려치는 늙은 드워프.
그는 지금, 자세마저도 무너뜨릴 정도로 온몸을 내던져 가며 시뻘건 쇳덩이를 내려치고 있었다.
망치를 내려칠 때마다 그의 얼굴이 메말라가는 것은 그저 착각만은 아닐 것이다.
크아아아아아-!
“야장님! 이제는 시간이 없습니다!”
부단한 망치 소리 속에서 이제는 가까워져 버린 용의 포효가 들려왔다.
위협이 다가온 것을 느낀 키하노는 다급한 목소리로 늙은 드워프를 불러대었지만, 그는 그저 신중하게 마지막 담금질을 마칠 뿐이었다.
“그래. 너는 이런 모습이었구나.”
아무런 의미 없던 궤에서 이제는 형태 있는 검의 모습으로.
마치 이 모습으로 태어나고 싶었다는 듯 매끈한 모습으로 다듬어진 검을 보며 늙은 드워프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다 되었네. 젊은 검사.”
오직 최고의 야장만이 올라설 수 있는 대장간의 가장 높은 곳.
그곳에서 선 늙은 드워프는 관을 따라 흐르는 쇳물에 은색의 검을 실어 보냈다.
직접 전해주기에는 너무나 멀었고 늙어버린 육체는 이제 한 방울의 여력도 남아 있지 않았으므로.
천천히 식어가는 쇳물이 늙은 드워프가 만들어 낸 마지막 작품을 실어 보내기 시작했다.
“이 대장간의 마지막 작품일세!”
대장간이 무너지고 있었다.
간간이 떨어지던 돌가루들이 이제는 파편의 형태로 주저앉기 시작했다.
“야장님! 어서 나오셔야 합니다!”
“아니야!”
키하노의 외침에 늙은 드워프는 그저 고개를 가로저을 뿐.
고로 안에 깃들어 있던 신령스러운 도마뱀이 마지막 임무를 다한 드워프에게 수고했다는 듯 주둥이를 가져다 대었다.
“혹시 괜찮다면 이렇게 이름 붙여 주시게. 키하노 프라우센!”
쇠로 만든 핏줄을 따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늙은 드워프의 손을 거쳐 형체를 가지게 된 은색의 검이 붉은 쇳물과 함께 키하노의 앞에 멈춰 섰다.
“마지막 고로가 만든 ‘은색의 기사’라고.”
“······야장님!”
콰가가가강-!
늙은 드워프의 마지막 말과 함께 무너지는 천장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덮쳐왔다.
그러나 늙은 드워프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만족스럽다는 듯 웃고 있을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기어이 천장을 뚫고 들어온 시리고도 푸른 눈동자.
가장 완벽한 용의 시선과 마주친 키하노는 사납게 눈을 치켜떴다.
“당신이 보내 주신 은색의 기사. 확실히 받았습니다.”
깨어져 나가는 고로 속에서 신령스러운 정령의 마지막 숨결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덧없이 번져나가는 그 숨결을 느끼며 키하노는 은색의 기사를 집어 들었다.
고로에서 시작된 쇳물은 차갑게 식고 말았지만, 마주 잡은 은색의 기사에서는 지금도 새빨간 심장 박동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
“흐으으음······.”
선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갑판 위.
그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구석에 앉아 있던 블라드는 한쪽 눈을 찡그린 채 자신의 검을 살펴보고 있었다.
“······얘는 언제 봐도 다듬은 건지 안 다듬은 건지를 모르겠다니까.”
소중한 자신의 검이었지만 블라드의 표정에는 어쩐지 자그마한 불만이 깃들어 있었다.
그동안의 전투 때문에 미묘하게 틀어져 버린 검날의 균형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고작 숫돌 가지고는 바로잡을 수 없는 녀석이니.]“그런 것 치고는 묘하게 무르거든요.”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완성되지 못했으니.]어쩔 수 없다는 키하노의 말에 블라드는 자그맣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과연 그의 말대로 지금 블라드의 검은 완성에 다다르지 못한 미완의 검이었다.
‘할아버지가 그랬는데······. 날은 세웠는데 담금질은 제대로 못 했대······. 미안해.’
블라드는 기억 속에서 애써 만든 검을 내어주면서도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던 어린 신녀를 떠올렸다.
그녀는 자신이 미숙해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지만,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안개다! 안개가 옵니다!”
[도착했나 보다.]파수꾼이 외치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난 블라드는 바다 저 멀리에서부터 다가오는 운무(雲霧)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과연 파수꾼이 말하는 대로 저 먼바다에서부터 희뿌연 안개가 다가오는 중이었다.
“무슨 안개가 우유를 끼얹은 것처럼 새하얗네.”
바다 위 안개를 보며 검을 집어넣은 블라드는 서둘러 난간에 바짝 붙어섰다.
갑판 위에서 선원들을 닦달하는 오타르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있는 돛 다 접어! 지금부터는 암초 지대다!”
“임무가 없는 놈들은 지금부터 난간에 붙어 견시(見視)해라! 뭐라도 보이는 게 있으면 바로 외쳐!”
파도는 잔잔하였으나 갑판 한가운데서 들려오는 오타르의 목소리는 천둥처럼 요란했다.
평소에는 과묵했던 오타르가 이렇게나 큰 목소리를 지녔다는 것에 블라드도 잠시 놀랄 정도였다.
“진입한다! 다들 자리 잡아!”
하벤이 돌려대는 요란한 방향타 소리와 함께 제미나 호가 안개에 먹혀들어 갔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생각보다 더 짙은 운무.
시야는 물론이거니와 들리는 소리까지 먹먹해진 것 같은 느낌에 블라드는 신기한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댔다.
“요제프 님도 견시하러 오셨어요?”
“아니.”
어찌나 안개가 짙은지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것만 같은 요제프였다.
무심히 걸어온 그는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를 바라보며 난간에 팔을 기댔다.
“그래도 요즘은 상태가 괜찮으신 모양이네요. 다행입니다.”
“그래?”
하얀 안개 속에 있어서인지 평소에 짙기만 했던 요제프의 눈그늘이 보이지 않았다.
요즘 따라 부쩍 건강해진 요제프의 모습에 블라드는 미소 짓고 있었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소리에 그만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우에에에엑-
“······음.”
고개를 숙인 요제프에게서 굉장히 노골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광경에 블라드는 그저 멀찌감치 서서 요제프의 등을 쓸어줄 뿐이었다.
‘멀미에 약한 건 아무래도 유전인가 보네.’
보이는 인상은 달랐으나 결국은 닮은 점을 찾게 되는 두 형제를 생각하며 블라드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고 말았다.
어쩌면 나에게도 이들처럼 피로 이어지는 공통점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어색해지는 기분이었다.
“블라드. 지도에 표시된 지점까지 온 것 같아.”
“그래. 수고했어.”
블라드는 조타석에서 내려오는 하벤을 보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웬만한 선장들은 죄다 꺼릴 정도로 험한 곳인 데다 생전 처음 오는 초행길이었음에도 하벤은 결국 일행을 목적지까지 무사히 데려다 놓는 데 성공했다.
“이제 어떡해? 이거 불면 되는 거야?”
“그렇다고는 하는데.”
“그럼 빨리 불어야지. 닻을 내리긴 했어도 근처에 암초들이 있어서 영 불안하거든.”
어쩌면 이번 여행의 방점을 찍을지도 모를 소라 나팔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분다고 한다면 일행의 책임자인 요제프가 하는 것이 맞았겠지만 지금 그는 난간에 바짝 붙은 채 신물을 쏟아낼 뿐이었다.
“······그냥 네가 해라.”
“그래야겠지?”
여전히 들려오는 토악질 소리에 하벤은 재빨리 소라 나팔을 블라드에게 건네주었다.
귀한 것처럼 보이는 나팔에 괜히 이상한 냄새를 풍기게 할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까.
“흠흠.”
블라드는 어색한 손짓으로 하벤에게서 소라 나팔을 받아들었다.
신호를 보내는 나팔일 뿐이었지만 애초에 악기라는 것을 처음 잡아보는 것이기도 했기에.
“여기 작은 구멍에다가······.”
“어 맞아.”
나팔의 숨구멍에 눈을 가져다 대 본 블라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를 향해 돌아섰다.
방향조차 잡기 힘든 희뿌연 바다 위에서 이제 믿을 것이라고는 블라드가 들고 있는 나팔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선원들은 모두 그의 행동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삐우우우-
“너 지금 뭐 하냐?”
“······아이 씨. 처음이라 그래.”
옆에서는 요제프의 토악질 소리.
앞에서는 하벤의 한심하다는 눈빛.
자신이 만든 힘 빠진 휘파람 소리에 민망해진 블라드는 심기일전하는 심정으로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뿌우우우우-
“됐다!”
“오.”
누가 들어도 호쾌하고도 시원한 소리가 바다 너머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안개 사이 사이에서 방금 질러낸 나팔 소리가 메아리치는 것만 같았다.
“불긴 했는데 이제 어떡하지?”
“······그러게.”
그러나 나팔을 분 뒤 느껴지는 거라고는 오직 잔잔한 파도가 전해주는 적막함 뿐.
하벤과 블라드의 시선에 입가를 닦아내던 요제프도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계속 불어봐야지. 올 때까지.”
“······.”
계속 불라는 게 언제까지 불라는 말일까.
힘이 빠진 얼굴로 난간에 기대앉은 요제프를 보며 블라드는 다시 한번 소라 나팔에 입을 가져다 댔다.
“응?”
그러나 막 나팔을 불려 하는 순간에 블라드는 바다 위에 떠 오른 기다란 막대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에서부터 기이한 시선이 느껴지는 것을 알아챈 블라드는 서둘러 하벤의 어깨를 잡아챘다.
“하벤 저게 뭐야. 저것도 바다 생물이야?”
“응? 어디?”
하벤은 블라드가 가리킨 방향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하벤이 바라본 곳에는 그저 잔잔한 바다만이 가득할 뿐.
방금 블라드가 보았다던 기다란 막대기 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았다.
“뭘 말하는 거야.”
“방금 들어갔어.”
“뭐?”
“······방금 뭔가가 쏙 하고 들어갔다니까.”
귀신이라도 본 듯 잔뜩 굳어버린 표정의 블라드를 보며 하벤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블라드가 절대 허튼일 따위에 과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있는데.”
잔뜩 좁혀진 눈으로 바다를 살펴보던 블라드는 저 아래에서부터 부글거리며 올라오는 거품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태껏 잔잔하기만 하던 바다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이한 징조였다.
“······니벨룬. 혹시 뭐 느껴지는 것 없어?”
“무엇 말씀이십니까?”
“네가 말하는 신비 같은 거.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그런 거.”
블라드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니벨룬은 자신의 귀를 쫑긋 세워보았다.
호기심이라는 본능이 좇는 신비라는 세계.
그러나 니벨룬은 넓은 바다 어디에서도 딱히 그럴만한 낌새를 찾아내지 못했다.
“글쎄요. 갑작스럽게 찾아온 안개 말고는 딱히 느껴지는 신비는 없습니다만.”
“그래?”
니벨룬의 대답을 들은 블라드는 천천히 검을 빼 들었다.
누가 눈치챌까 싶어 조심스레 움직이는 그 모습을 보며 주위에 있던 일행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럼 저놈은 내가 상대할 수 있는 놈이겠네.”
잔잔한 수면 위로 올라오던 거품들이 이제는 확연히 보이기 시작했다.
난간에서 주위를 견시하던 선원들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블라드의 시선을 눈치챈 자야르도 안대를 어루만지며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전원······!”
제미나 호가 출렁이고 있었다.
마치 폭풍을 만난 때처럼.
바다의 수면이 점점 거칠어지자 선원들조차도 수면 밑에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각자 위치로 가!”
푸아아아아악-!
하벤의 외침과 함께 배가 크게 출렁이기 시작했다.
배 바로 옆에서부터 뛰쳐나온 정체 모를 존재가 만들어 낸 파도 때문이었다.
“바다, 바다에서 관이 튀어나왔다!”
“지옥에서 올라온 관이다! 저기에 우리를 잡아가려고!”
선원들이 내지르는 비명과 함께 잔잔하던 바다가 요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미신을 믿는 몇몇 선원들은 아예 갑판 위에 엎드려 살려달라 절을 하는 자들도 있었다.
“······이게 도대체 뭐야.”
[나도 처음 보는 녀석이다.]평생 바다를 떠돌아다니는 선원들도 낯설며, 신비를 다루는 마법사도 알아채지 못한 것.
그리고 경험 많은 키하노조차 정체를 모르는 기이한 녀석을 보며 블라드는 검을 꽉 움켜쥐었다.
마침내 수면 위로 떠 오른 녀석의 이마에는 아까 보았던 막대기 모양의 기이한 더듬이가 달려 있었다.
※※※※
“요놈, 요놈. 오늘따라 왜 이리 신났는고?”
길게 늘어진 눈썹 사이로 늙은 드워프의 웃음이 번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시뻘건 쇳물 위에서 헤엄을 치는 어린 도마뱀이 오늘따라 활발히 움직여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이리 기분이 좋을꼬. 기다리던 손님이 와서 그런가?”
낡은 고로 안에서 헤엄치던 도마뱀은 야장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했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여대었다.
뿌우우우-
기분 좋다는 듯 자그마한 입으로 시뻘건 쇳물 분수를 내뿜는 어린 도마뱀.
기이하고도 말도 안 되는 광경이었지만 늙은 야장은 마치 손자의 재롱을 보기라도 하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여댈 뿐이었다.
어린 도마뱀의 재롱에 잔뜩 굽혀진 허리를 편 늙은 드워프.
고개를 높이 빼든 그는 멀리 보이는 창문을 통해 먼바다를 내다보았다.
“그나저나 녀석들이 손님 안내는 잘하고 있으려나?”
현시대 니다벨리르가 보유한 유일한 장인(匠人)인 노인.
잔뜩 찌푸려진 그의 눈앞에는 섬 주위를 메우고 있는 새하얀 안개가 가득했다.
안내인이 없이는 그 누구도 쉽게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안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