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9
바예지드 가문으로 (2)
도시 바르나로 돌아가는 귀환길.
요제프는 블라드가 움직일 수 있을 만큼 회복한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토벌대를 이동시켰다.
비록 휘하의 있는 기사 2명은 아직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그들은 하루 이틀의 요양만으로는 회복할 수 없는 단계였기에 어쩔 수 없는 조치이기도 했다.
“내 생각은 이렇네. 이것은 직접적으로 나를 죽이기 위한 의도보다는 무언가를 보여주려 함이 아니었을까.”
“······.”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블라드는 가만히 요제프의 말을 듣고 있었다.
아니, 들을 수밖에 없었다.
원래 요제프가 타고 다니는 마차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자신의 기사들에게 내어주었기에 남은 마차는 단 하나뿐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느냐. 간단하지. 들인 품에 비해서 마무리가 너무 허술한 것이야. 자야르를 떼어놓고 나를 위험에 빠뜨리는 데 성공했다면 당연히 빠르게 나를 해치웠어야지.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
“······그렇죠.”
그 결과 블라드는 귀족이자 상관이며 지휘관인 요제프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는 수밖에는 없었다.
‘말이 많은 사람이로군.’
지난밤의 사투로 블라드와 한 단계 가까워진 요제프는 기꺼이 자신의 본모습을 내비쳐주고 있었다.
물론 이것도 본모습을 전부 보여준 것은 아니겠지만 남들이 본다면 블라드는 분명 요제프의 총애를 받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것도 엄청 많은 사람이야.’
제미나도 말이 많은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버틸 만은 했었다.
닥치라고 말하면 닥치기는 했었으니까.
그러나 요제프에게는 감히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잘살고 있나.’
사내의 수다를 들으며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에 괜시리 울적해진 블라드는 고개를 돌려 마차에 나 있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마음의 안식을 찾기 위해 바라본 그곳에는 평안한 풍경은커녕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 자야르의 모습이 있을 뿐이었다.
‘제대로 상대해 드려라.’
그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감히 종자 주제에 모시는 기사는 말을 타게 만들고 본인은 편안하게 마차를 타고 가고 있었으니 블라드로는 할 말이 없었다.
‘젠장.’
자야르의 눈빛에 괜히 찔렸던 블라드는 고개를 돌려 반대쪽 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안식을 위해 도망친 그곳에서도 블라드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요란한 손짓과 발짓으로 자신에게 신호를 보내는 긴 턱의 남자.
‘내 얘기를 해! 내 말을 하라고 대장!’
반대쪽 창에는 어서 자신의 공을 요제프에게 말하라며 닦달하는 고트가 있었다.
‘······진짜 개 같다.’
앞에서는 시끄럽게 떠들고 양옆에서는 매섭게 쪼고 있으니 블라드는 차라리 이곳에서 나가 맘 편히 걷고 싶을 뿐이었다.
“생각해 봐라. 왜 그럴까?”
“······술 한잔하면 생각이 날 것도 같습니다.”
“그건 좀 곤란한 이야기야.”
요제프는 블라드가 자신의 위스키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재빨리 술병을 빼내 자신의 뒤로 두었다.
“나도 용돈을 받고 사는 처지라.”
“사람 사는 게 어디서나 다 똑같군요.”
“어서 스스로 일어나기를 바랄 뿐이네.”
술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의 물음 때문인지 어떻게든 대답을 하려 머리를 쥐어짜는 블라드의 모습을 보고는 요제프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사람이 스스로 빛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의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했다.
검을 다루는 실력뿐만 아니라 인성, 지식, 예의 등등.
그리고 눈앞에 있는 금발 소년은 분명 가능성이 있었으나 그 모든 것에 있어 부족한 편이었다.
‘직접 검을 알려줄 수는 없지만 말이지.’
허약한 몸이기에 직접 검을 알려줄 수는 없겠지만 대신 다른 것을 가르쳐줄 수는 있을 것이다.
요제프란 사람은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뭐······경고 같은 거 아닐까요? 요제프님을 죽여서 바예지드 가문에게 보내려는 경고? 뭐 못 죽여도 상관은 없다?”
“계속해봐.”
“죽인다, 상관없다 이런 말 해서 화나신 건 아니죠?”
“그다지.”
말은 그렇게 했어도 혼자 술병을 열어 마시는 요제프의 모습을 보며 블라드는 울상을 지었다.
“당연히 제가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한 번 생각해봐.”
비록 마차에 앉아 가고 있었음에도 블라드는 끊임없이 훈련을 받는 중이었다.
“생각해 보라니까.”
요제프는 괜스레 블라드의 눈앞에서 위스키 병을 흔들며 말했다.
생각해라.
그저 상황을 받아들이지만 말고 너의 것으로 걸러 판단이라는 것을 해라.
원인과 결과, 주변의 단서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논리적인 추론.
그것들을 통해 요제프는 블라드를 자야르 못지않은 훌륭한 판단력을 가진 기사로 키워보고 싶었다.
소년의 가능성은 빛나고 있었으므로.
“모르겠는데······.”
블라드가 인상을 찌푸리든 말든 바르나로 향하는 귀환길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마치 요제프가 생각한 것처럼 진짜 노리는 대상은 그가 아니라는 것처럼.
※※※※
도시 바르나.
바예지드 백작령이 가지고 있는 세 개의 도시 중 하나.
그리고 몬스터 토벌대를 모집한 도시이기도 한 곳이었기에 이곳에 도착한 요제프는 용병들을 해산시키고 그곳의 시장에게 토벌에 관한 보고를 해야만 했다.
임명직인 시장보다 백작의 아들이라는 위치가 더 높은 위상을 가지고 있지만, 절차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그리고 바예지드 백작은 아무리 자기 아들이라 할지라도 경우를 넘어서는 행동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처벌하고는 했다.
“하루 정도는 여기서 묵어야겠군.”
요제프는 바르나에 속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곳에서 행정적인 절차를 마친 후 바예지드 가문의 본가가 있는 스투르마로 떠날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금의 실패를 만회할 만한 새로운 계책을 구상해야 할 것이었다.
“바르나는 처음인가?”
“어느 곳에 가도 처음일 겁니다.”
“이제 보니 촌놈이었군.”
평생을 쇼아라 근처에서만 활동했다 말하는 블라드를 보며 자야르는 놀릴 거리가 생겼다는 듯 웃음 지었다.
“그럼 오늘 하루는 휴가를 줄 테니 도시 구경이라도 하고 오지.”
“길 잃어버리지 마라. 애송이.”
“······.”
블라드는 자야르의 비웃음을 보며 발끈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실제로 자신이 이래저래 경험과 식견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자야르는 네가 마음에 드나 보다.]‘조금만 더 마음에 들면 죽이려 들겠네.’
목소리의 어이없는 말을 들으며 블라드는 짤랑거리는 주머니를 흔들었다.
“이 도시에는 뭐가 있나~?”
자야르의 태도가 어쨌건 간에 돈을 쥔 블라드의 말에는 자연스레 운율이 실렸다.
요제프가 준 것은 일종의 금일봉이었다.
빈털터리나 다름없는 블라드가 바르나라는 도시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활동비가 필요할 테니까.
“역시 길거리 거지보다 부잣집 개가 더 호강한다더니만.”
[흥청망청 쓰기보다 다음을 기약할 것들을 사놔라.]“엥?”
오랜만에 뭣 좀 잔뜩 집어 먹어볼까 했던 블라드였지만 목소리는 그런 의도를 간파했는지 미리 경고했다.
[만반의 준비는 여벌의 목숨을 가지는 것과 같다. 그것을 잊지 말도록.]“사방에서 잔소리들 뿐이네.”
비록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블라드는 목소리의 말에 뼈저리게 공감하고 있었다.
간신히 쇼아라를 빠져나와 그저 검 하나만을 짊어 든 채 겨울 숲을 헤맸던 지난날.
만약 주변을 서성거리던 세 명의 용병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블라드는 얼어 죽었을지도 몰랐다.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갖춰놓는 것이 좋을 거다.]“그러면 뭘 사야 하나~.”
목소리의 조언을 곱씹으며 이제 막 시청을 빠져나가려는 블라드였으나.
“응?”
조심스레 그의 옷깃을 잡아끄는 누군가가 있었다.
“블라드 님.”
주근깨가 가득한 안드레아의 어린 부제였다.
“부제님 무슨 부탁하실 일이라도?”
어린아이를 귀찮아하는 블라드였지만 지금 자신의 옷깃을 붙잡고 있는 어린 부제만은 예외였다.
아직 입고 있는 부제의 복장이 어색할 정도로 작은 아이는 지난 밤 공포에 맞서 자신의 의무를 다한 아이였기에.
“오늘 딱히 갈 곳이 없으시면 사제님께서 초대하고 싶으시답니다.”
“오.”
블라드는 고개를 들어 부제의 뒤에서 웃음 짓고 있는 안드레아 사제를 확인했다.
“왜 부제님을 통해 저를 찾으셨는지 알겠군요.”
“······죄송합니다.”
어린 부제의 뒤에 숨어 겸연쩍게 웃고 있는 안드레아 사제.
그의 옆에는 낯익은 관 하나가 뉘어 있었다.
“여전히 들어줄 사람이 없답니까?”
“이 여인도 자네가 배웅해주기를 원하지 않을까?”
허허 웃는 안드레아 사제를 보며 블라드는 더는 뭐라 내뱉을 말도 없었다.
“당나귀나 모시죠. 제가 뒤에서 받치면서 갈 테니.”
안드레아 사제와 블라드, 그리고 어린 부제는 그렇게 바르나의 대로를 따라 수레를 몰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쇼아라와는 많이 다르군.’
비록 뒷골목에서 생활했던 블라드였으나 쇼아라라는 도시 자체가 주는 분위기 정도는 각인되어 있었다.
그러나 바르나라는 도시는 쇼아라에 비해서 무언가 많이 가라앉은 듯한 모습이었다.
조용하다, 차분하다, 큰 소리로 떠들고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마치 새벽녘 거리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교회 쪽으로 다가갈수록 이런 분위기가 더 짙어질걸세. 바르나는 종교적 색채가 강한 도시거든.”
“그렇군요.”
블라드는 안드레아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쇼아라에서도 교회가 있는 곳 근처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조용히 다니고는 했으니까.
“다 왔네.”
“우와.”
블라드는 눈앞에 있는 건물을 보며 안드레아가 말했듯이 바르나가 종교적 색채가 강한 도시라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쇼아라에 있는 교회와 비교해서 두 배 정도는 커 보이는 건물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꽤 크네요. 쇼아라의 교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바예지드 백작령의 주도는 스투르마이지만 종교적 중심지는 이곳 바르나이기 때문이지.”
블라드는 안드레아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이만······.”
“온 김에 저녁이라도 들고 가지.”
“그렇다면 사양 않고······.”
“그런 김에 지하까지 내려다 주면 더 고맙고.”
“······온 김에 마무리는 짓고 가는 게 낫겠죠.”
어린 부제에 손에 붙들렸을 때부터 안드레아 사제의 손아귀에 있던 블라드는 별수 없이 낑낑거리며 사원 앞에 관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군. 아직 몸도 성하지 않을 텐데.”
‘그걸 아는 사람이.’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으나 블라드는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주둔지에서 얻어먹은 값을 해야지요.”
“내가 사람을 참 잘 봤네.”
어쩌면 지금의 상황에서 불만을 가지는 것조차 배부른 투정일지도 몰랐다.
안드레아 사제 정도나 되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부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특권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기에.
“가엾은 여인.”
“······.”
이제야 안식을 얻을 자리에 다다른 관을 쓰다듬으며 안드레아 사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의 사랑은 바다와도 같아서 무거우며 또한 깊은 것이지. 누군지 알 수 없는 자는 그것을 이용했네.”
아직 완벽히 조사해낸 것은 아니었지만 정황상 안드레아는 이 여인이 사악한 흑마술에 의해 희생이 됐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가엾은 모성애를 이용한 지독한 저주야. 여기서부터는 내 영역이 아니긴 하지만 바르나의 교회는 최선을 다해 배후를 밝힐걸세.”
“사제님이라면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얼굴을 찡그리고 있던 안드레아 사제는 블라드를 바라보며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저녁 전에 기도라도 하고 가시게.”
“저같이 근본도 없는 놈이 감히 교회에서 기도를 드려도 될까요?”
“그런 것은 걱정하지 말고.”
뒷골목에 사는 사람들은 교회나 시청, 혹은 공식적인 업무를 보는 건물들과는 크게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평생을 뒷골목에서 살아왔던 블라드 또한 그랬다.
그렇기에 블라드는 이곳이 어색하고 불편했으며 무엇 보다 허락받지 못한 곳에 있다는 생각에 주눅이 들고 있었다.
그러나 안드레아는 그런 블라드의 손을 붙들고는 굳이 예배실까지 안내하기 시작했다.
“잠시 기도하고 있게나, 내 잠시 들릴 곳이 있어서.”
그리고는 자신의 어린 부제와 함께 블라드를 내버려 두고는 홀로 자리를 벗어났다.
“······.”
“기도할까요?”
안드레아의 갑작스러운 방치에 괜히 자신이 미안해지는지 어린 부제는 콧등을 찡그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식으로 예배하는 것은 처음이라······.”
“제가 알려드릴게요.”
적당히 핑계를 대고 빠지고 싶었던 블라드였으나 이제는 방도가 없었다.
‘어쩔 수 없군.’
지금은 기도하는 리만으로 행세했던 업보를 갚아야 할 때였다.
[참으로 알찬 휴가군.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정결히 했다고 말하면 요제프가 아주 좋아할 것이다.]‘온종일 남 좋은 일만 하는구만.’
잠깐 잡았던 검을 통해 목소리는 실로 흡족하다는 말투로 블라드에게 말을 걸었다.
“흐, 흐음.”
하는 수 없이 블라드는 무릎을 꿇고 어색하게 고개를 숙인 채 어린 부제의 낭랑한 기도문을 더듬거리며 따라 했다.
그러기를 한 시간여쯤.
꿇고 있던 무릎이 서서히 저려올 때쯤 뒤에 있던 예배실의 문이 열렸다.
“오래 기다렸나?”
“······아닙니다. 처음 하는 예배라 모든 것이 새롭던데요.”
“하하하! 그럴 리가 있나. 아직 나도 지루하기 그지없는데.”
“······.”
기도를 지루하다고 말하며 사람 좋게 웃고 있는 사제를 보며 블라드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것 때문에 늦었네. 받아 가게.”
“무엇입니까?”
블라드는 안드레아 사제가 내어주는 자그마한 나뭇조각을 받아들었다.
“신분패일세.”
“네?”
안드레아의 말에 멍하니 서 있던 블라드는 서둘러 쥐고 있던 패를 살펴보았다.
손안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나뭇조각.
검은빛을 내는 그 나무패는 단단해 보였으며 안에는 자그마한 글씨들이 가득했다.
블라드는 휘둥그레한 눈으로 손에 들려있는 신분패를 읽기 시작했다.
“출생······지 쇼······아라.”
알고는 있었지만 익숙지 않은 글자를 더듬거리며 읽어내려가며.
“이······름 블라드.”
자신의 이름을 읊조린 순간 블라드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자그마한 나뭇조각에 존재의 증명이 들어있었다.
출생신고조차 하지 못한 뒷골목의 사람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요제프 님이 알아서 해주셨을 테지만 사실 신분 증명은 교회에서 하는 것이 가장 효력이 좋네. 주님의 은총은 전 대륙에 펼쳐져 있으니까.”
안드레아 사제의 말을 들으며 블라드는 신분패를 돌려 뒷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오직 단 한 곳에서만 쓸 수 있는 문장이 크게 박혀 있었다.
이 세상의 유일한 신. 그분의 이름을 사역하는 교회의 문장이.
그리고 그 밑에 쓰여 있는 누군가의 이름.
“보증······인. 사제 안······드레아.”
블라드는 자신의 신분패에 쓰여 있는 또 다른 사람의 이름을 읽었다.
자신을 보증하는 사람.
자신의 잘못을 함께 해줄 사람.
블라드는 고개를 들어 안드레아 사제를 바라보았다.
“힘들면 언제든지 찾아오게. 나는 자네의 보증인이니.”
“······사제님.”
“이제 기도하지. 마침 신께 가장 가까운 자리로군.”
블라드는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그저 안드레아를 따라 신 앞에 고개를 숙였다.
“여기 오늘 새롭게 소개해 드릴 어린 양이 있습니다. 부디 당신의 넓은 품으로 안아주시길 바라옵고······.”
뒷골목의 쓰레기.
누가 죽어도 쳐다보지도 않고 기억조차 해주지 않을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
그러나 블라드는 이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여기 새롭게 태어난 당신의 어린 양인 쇼아라의 블라드를 가엾게 여기시어······.”
오늘 블라드는 소중한 보증인을 앞에 두고 주님의 아래에서 자신의 증명을 고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거대한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기록했다.
오늘부터 그는.
뒷골목의 블라드가 아닌.
쇼아라의 블라드였다.
“당신의 자식으로 받아들여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블라드는 오늘 세상을 향해 당당히 디딜 수 있는 뿌리를 가졌다.
오색 창연한 색유리를 통해 내려오는 황혼의 빛이 소년의 금발을 따사롭게 감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