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93
황금색 등대 (1)
소리조차 먹어버리는 짙은 해무에 바다는 조용하고 잔잔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그저 배들이 물결을 가르며 나아가는 소리뿐.
그러나 아무리 조용하게 움직인다 해도 43척의 배가 만드는 소음을 모두 감출 수는 없는 법이었다.
“······!”
그리고 여태껏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니다벨리르는 바로 그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습격이다!”
파수꾼의 애처로운 외침과 함께 안개에서부터 불이 번져 오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부터 시작된 번쩍임은 어느새 바람을 타고 바르보사의 함대를 향해 매섭게 날아오고 있었다.
“포탄이 날아온다!”
“드워프들이다! 다들 일어나!”
콰가가가강-!
시작은 조용하였으나 와닿을 때는 재앙과도 같았다.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나뭇조각들.
그와 함께 퍼져나가는 선원들의 비명 소리가 짙은 안개를 뚫고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적 타격 성공!”
“쏜 포탄들 대부분이 명중하였습니다!”
틈을 노린 기습이자 선제 타격.
안개라는 변수를 살린 니다벨리르의 공격이 바르보사의 함선들을 사정없이 가격해대었다.
대응 사격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적들을 보며 선원들이 오랫동안 쌓아놓았던 함성을 내질러대기 시작했다.
“······어쩐지 느린 이유가 있었군.”
그러나 지금의 선전에도 올무카르의 표정은 잔뜩 굳어져 있을 뿐.
쏘아대는 포탄은 요란했음에도 정작 멈춰서는 바르보사의 함선들은 단 한 척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어?”
“저것들 뭐야.”
환호성과 함께 신나게 포탄을 날리던 선원들도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자욱했던 포탄의 연기가 걷히고 그제야 보이는 광경은 자신들이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저 미친놈들이······.”
43척의 배가 마름모꼴의 한 무리가 되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바르보사의 함대.
방금까지의 포격으로 진형 바깥쪽에 있던 함선들은 걸레짝이 되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전진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겉면은 처참히 피격당했어도 내부의 기능들은 여전히 멀쩡하다는 뜻이었다.
“철갑! 철갑이다!”
“저 미친놈들이 배에다 철갑을 둘렀다!”
바람은 순탄했으나 적들의 움직임은 유난히도 느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두르고 있는 갑옷의 무게가 그만큼 무거웠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뭔 놈의 돈 지랄을 저렇게까지 하는 거냐.”
니다벨리르의 드워프들은 배 한 척한 척마다 꼼꼼히 둘러놓은 철갑을 보며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전사이자 작업자인 그들은 저렇게까지 철갑을 두르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자원과 금화가 소모될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놀라시기에는 너무 이른데.”
마름모꼴의 진형 한가운데, 눈에 환히 띄는 붉은색 돛 아래서 웃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위에서 휘적이는 깃발을 올려다보며 천천히 바람의 방향을 가늠하는 중이었다.
“적 함대! 포문을 열었습니다!”
“전 함대 전속 전진! 이대로 빠져나간다.!”
받았으면 갚아주는 것이 남부에서의 도리.
올무카르는 불어오는 바람이 자신들을 향해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재빨리 전장을 빠져나갈 것을 명령했다.
“어딜 가시나! 드워프 형씨들!”
쾅! 쾅쾅! 쾅!
바다 위를 떠도는 성벽에서부터 화려한 불길들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서, 정해진 각도를 향해서.
“준 만큼은 가져가셔야지!”
바르보사의 붉은 수염이 떨리고 있었다.
야성과도 같은 그의 감각이 지금의 공격이 성공할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바다는 알았어도 드워프들이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뭐야 이건!”
상대와의 간격을 가늠하는 것은 선장이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 중 하나.
그러나 황금공 바르보사는 어느새 미묘하게 흐트러져버린 간격을 보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뿌우우우우-!
노를 젓지 않는 이상, 아니 설사 그렇다 할 지라도 지금의 기동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니다벨리르의 함선들은 어느새 뱃머리를 돌린 채 포격이 닿는 범위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나고 있었다.
“물레방아?”
안개를 뿜으며 안개 속으로 사라져 가는 함선들.
어느새 모습을 감추고만 니다벨리르의 함선들을 보며 황금공 바르보사는 그만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이대로 암초 지대까지 유인하겠다. 잠수함들에게 신호를 보내도록.”
“알겠습니다!”
쏘아도 쏘아도 멈추지 않는 함대와 흐르는 바람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함대.
바르보사와 올무카르는 난생처음 맞이하는 낯선 세계를 보며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
-저게 뭐야!
-함선들이다! 바르보사의 깃발이야!
안개 속에서는 매서운 포격 소리가 요란했지만, 북부로 향하는 해역에서는 공포에 질린 비명들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피난을 위해 나사우로 향하는 행렬이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이거 당했군. 이렇게나 빨리 움직였을 줄이야.”
“······.”
요제프의 탄식을 들은 블라드는 들고 있던 망원경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멀리 본 시야를 통해 저 멀리에서 나사우로 향하는 길목을 정확히 틀어막고 있는 함선들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총 5척으로 확인된 함선들에서는 그동안 북부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화려한 황금색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첩보보다 훨씬 빠르군. 아마도 황금공은 이미 서부 해역까지 자신의 영역으로 구축한 모양이다.”
“그러면 이제 어떡합니까?”
피난민들을 노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황금공의 함선들은 이미 북부 해역까지 진출해 있었다.
정확히 길목을 가리고 있는 그 함선들은 혹시라도 있을 북부에서의 지원을 틀어막기 위해 바르보사가 보낸 함선들일 것이다.
“······나라고 언제나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다.”
조심스레 입을 연 요제프는 고개를 돌려 바다 위를 바라보았다.
요제프의 시선이 닿은 그곳에서는 너절한 고깃배 위에서 불안에 떨고 있는 드워프들이 가득했다.
“딱히 방법은 없지만 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
그 말과 동시에 요제프와 블라드의 시선이 동시에 한 사람에게로 쏠렸다.
이 배의 주인인 하벤을 향해서.
“······전에도 말했잖아. 배의 상태가 나사우에나 겨우 갈 정도라니까. 아니 그리고 애초에 저쪽은 5척이나 되잖아!”
“저번에도 한 번 해봤잖아.”
“그건 그때고! 이번에는 딱히 지원도 없잖아!”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바르보사의 함선들은 다가오는 중이었다.
그러나 천천히 다가오는 거대한 함선들 앞에 대항할 수 있는 배라고는 오직 제미나 호뿐.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 하벤은 그만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말았다.
“딱히 숨을 안개도 없고, 암초 사이에 숨겨놓은 쇠사슬도 없어. 저번처럼 무턱대고 돌격하다가는 붙기도 전에 날아오는 포탄에 가루가 되고 말 거야.”
“······.”
제미나 호가 고민하며 멈춰있는 사이, 홀로 앞서 나가는 기이한 더듬이 하나가 있었다.
바다 밑에 있던 불카누의 잠수함이 앞으로 나아가는 행적이었다.
“불카누가 길을 열어줄 거야. 우리는 그 틈을 노리면 돼.”
“그래. 결국은 하자 이거지?”
평생 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언젠가는 정면으로 승부해야 할 때가 온다.
지금처럼 등 뒤에 지켜야 할 사람들이 가득할 때는 더더욱.
“······뭐. 어차피 너 아니었으면 선장은커녕 그 좁은 방 안에서 시달리다 죽었겠지.”
블라드를 마주한 하벤의 표정은 여전히 곤란해 보였지만 다시금 다잡은 선장모의 각은 날카로웠다.
“그래. 해야지 뭐 어쩌겠어.”
볼품없던 방의 주인에서 이제는 넓은 바다의 선장으로.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벽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이제 하벤도 잘 알고 있었다.
“기사님께서 한 번 더 가자신다! 다들 준비해!”
“내가 이럴 줄 알았지!”
“빌어먹을! 결국, 내가 바다에서 죽게 되는구나!”
함장의 각오를 눈치챈 선원들이 재빨리 각자의 자리를 찾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명령에도 불만 하나 비치지 않는 것은 이들에게 있어 블라드와 하벤이라는 존재는 자부심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진창에서 태어났으나 자부심이 된 그런 사람들.
“마법사! 어서 네 자리로 가!”
“제 자리가 언제부터 저기였습니까?”
한낱 동력원 취급을 받은 니벨룬은 평소답지 않게 툴툴대었으나 배 위에서만큼은 하벤의 말이 곧 법이었다.
그나마 렘노스 섬의 대장간에서 열기를 얻어와 다행이라고 중얼거린 니벨룬은 익숙한 손짓으로 배낭에서 자그마한 풀무를 꺼내 돛대 뒤에 섰다.
“블라드 잠시만.”
각자가 저번에 했던 모습대로 자리를 잡아가는 사이, 선수 쪽으로 움직이려던 블라드를 잡아세우는 목소리가 있었다.
“무슨 일이죠. 바라디스.”
“느껴진다. 이번에는 확실해.”
고개를 돌린 블라드는 바라디스의 곁에 모여있는 엘프들을 바라보았다.
아유슈린의 엘프들은 선원들이 뛰어다니는 급박한 지금의 상황에서도 난간에 매달리다시피 하며 바다를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근처를 떠도는 정령들이 있어. 저번보다 더 모여들어 있다.”
바다 쪽을 가리키던 바라디스의 손가락이 이번에는 블라드 검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머니 세계수에서 비롯된 정령들이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지만 아마도 알아보는 것 같아.”
바라디스의 말에 블라드는 서둘러 왼쪽 눈을 감아보았다.
그러자 바라본 세계에서는 과연 그의 말대로 검집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빛을 감지할 수 있었다.
“돛 줄 풀어! 있는 대로 다 풀어!”
“으아아아!”
바라디스의 손끝을 따라 바라본 바다에는 어느새 넘실대는 빛무리들이 가득했다.
그 빛을 본 블라드는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선수 부분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다들 제미나에게 작별 인사나 해 둬라! 이제부터 우리는 지옥으로 갈 테니까!”
인간이 내린 돛 위로 신비가 내뿜는 바람이 와닿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치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가는 제미나 호.
그러나 그 추진력이 자신이 예상한 수준을 훨씬 넘었음을 깨달은 하벤은 놀란 표정으로 니벨룬을 바라보았다.
“이건 저 아니에요!”
“······그럼 뭔데.”
물결 하나 없이 나아가는 제미나 호를 보며 주위에 있던 드워프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기묘해 보이는 움직임도 움직임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달라 보이는 바다 빛이 평소와는 다르게 밝아 보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다! 지금 당장 오러를 풀어라!]돛대를 타고 오르는 블라드를 향해 키하노가 다급한 목소리로 조언했다.
밑에서 내려다본 세계는 이미 빛나는 오징어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나도 안다고요!”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안다.
지금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가장 앞선 곳이 아닌 가장 높은 곳이었다.
왜냐하면 검을 통해 흐르는 세계수의 흔적을 멀리까지 보여주기 위해서는 오직 이 방법뿐이었으니까.
“처음부터 피난민들 안 받아놓길 잘했네!”
유스티아는 지키지 못했지만, 이번만큼은 달라지고 싶었다.
계시라는 것이 맞닥뜨려야 안다지만 그래도 조금은 준비해보고 싶었다.
그런 각오가 있었기에 지금의 제미나 호는 망설임 없이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후우······.”
아찔하게 높아진 망루 위에 도착한 블라드는 있는 힘껏 검을 빼 들었다.
그러자 밝게 비치는 황금빛 세계.
마치 등대같이 빛나는 그 세계를 따라 바닷속 거품들이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점점 거칠어지는 바다 위에서 홀로 빛나는 황금색 불빛.
멀리서 본 그 모습은 마치 세계수의 신녀가 그려준 그림과 똑 닮은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