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95
용을 죽이는 검(Dragon Slayer) (1)
남의 것을 빼앗기는 쉽다.
다른 이의 노력을 비웃는 것은 즐겁다.
누군가의 도전이 산산이 조각날 때마다 나는 참을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
왜냐하면, 너희들의 실패가 곧 나의 완벽함을 증명하고 있으므로.
“끄으으······!”
손에 쥔 불길한 조각이 뜨겁게 타올랐다.
거칠게 흐르는 피를 따라 푸르렀던 눈동자는 새파래지고 악물었던 송곳니는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본래 너의 모습이라는 듯 그렇게.
“흐아아아!”
이제는 완전히 흡수되어 형태마저 잃어버린 용의 조각.
블라드는 검을 뽑아내며 그 불길한 기운을 떨쳐내려 애썼다.
“······지랄하고 있네!”
콱!
뒤에서는 용이 울부짖고 밑에서는 새까만 파도가 넘실거리는 절벽 한가운데.
깎아질 듯 위태로운 그곳에서 블라드는 절벽 한가운데 검을 박아넣었다.
위로 향하려는 그 몸짓은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속삭임이 아닌 자신이 했던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웅- 웅웅웅-
그런 블라드를 보며 검이 울고 있었다.
주변의 위협과 내면의 유혹을 짓밟으며 위를 향해 오르려는 자신의 주인을 보면서.
그저 어렸을 뿐인 세계수의 검은 자신이 누군지는 알았으나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몰랐던 존재였다.
그아아아아-!
“나는! 그렇게 살기 싫다고! 이 새끼들아!”
그리고 이제는 알았다.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용들을 향한 블라드의 거친 포효는 미완의 검을 깨웠고, 힘겹게 내뻗는 손짓 하나하나는 완성을 향한 방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 내게 맹세한 것처럼 위를 올려다봐라!]키하노의 외침을 따라 블라드의 심장이 울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심장이 아닌 블라드가 그동안 품고 있었던 것에서부터.
“크윽!”
키하노의 외침을 따라 절벽 위를 오르던 블라드는 순간, 흉갑 깊숙한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열기에 그만 외마디 신음을 내지르고 말았다.
갑작스레 뜨거워지는 흉갑 근처의 주머니는 노(老)기사들이 건네주었던 동전들을 보관하고 있던 곳이었다.
“······키하노?”
[네 검이 깨어나려나 보다.]늙은 기사들이 자신들의 명예로 산 녹슨 동전.
비록 잔뜩 녹슨 겉모습은 볼품없었으나 블라드가 몰라봤던 그 안에는 반짝이는 은색의 빛이 깃들어있었다.
늙은 기사들이 블라드에게 건네주려 했던 그 동전의 색깔은 진정한 은빛이었다.
[은색의 기사에 의해서.]웅웅- 웅웅웅-!
소년이 기사가 되고 싶어 한 것처럼 미완의 검 또한 자신을 완성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블라드가 기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올바른 방향을 알려준 별빛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지금 블라드의 가슴에서부터 천천히 옮겨가는 은색의 빛들처럼.
손에 쥔 검이 빛나고 있었다.
태어나기는 별로 태어났으나 주인을 위해 용의 조각을 머금고자 하는 검이.
그 검의 의지를 따라 흘러나온 올바른 진은(眞銀)들이 용의 흉포함에서부터 어린 검을 보호해주고 있었다.
이제는 온통 새까매져 어디가 하늘이고 바다인지 모를 그곳에서.
홀로 빛을 발하며 새로이 태어나려는 별이 하나 있었다.
스스로가 원하는 그 별의 이름은 바로 용을 죽이는 검(Dragon Slayer)이었다.
※※※※
“······저놈 왜 저래?”
먼바다에 서서 두 괴수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바르보사는 갑작스레 움직임이 굳어진 레비아탄을 보며 의아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크라켄의 공격이 있긴 했지만 방금까지만 해도 우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기고 있던 놈이 왜 도망가?”
용이란 본래 가장 완벽에 가까운 존재.
그렇기에 물러섬이 없어야 할 녀석이었지만 지금의 레비아탄은 서둘러 빠져나가기라도 하겠다는 듯 섬을 두르고 있던 미끈한 몸뚱이를 풀어내고 있었다.
“절벽 한 번······. 겁나게 높네!”
그리고 당황한 눈빛의 레비아탄이 바라보고 있는 곳은 바로 렘노스 섬의 절벽 위.
저 밑에서부터 기어이 절벽을 기어 올라오고만 블라드가 있는 곳이었다.
“자식. 가까이서 보니까 더 못생겼네.”
감히 올려다보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레비아탄이 바로 앞에 있었으나 땀을 닦아내는 블라드는 그저 웃고 있을 뿐이었다.
가장 거대한 용과 가장 완벽한 용의 조각.
마주한 둘의 몸체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 났으나 용들의 세계에서만큼은 가장 완벽한 조각을 쥔 블라드가 전혀 밀릴 이유가 없었다.
“조금 모자란가?”
두근-!
자신이 서 있는 절벽과 레비아탄과의 거리를 가늠해보던 블라드.
뛰어야 할 거리가 너무 멀다고 생각하던 그 순간 들고 있던 검에서부터 불길한 붉은 색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용의 조각을 머금고 있던 용살검이 블라드에게 보내주는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아니, 안 모자라네.”
검을 따라 흐르는 흉포함을 더해 좀 더 완벽한 육체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고양감을 느끼며 블라드는 저 앞에 있는 가장 거대한 용을 노려보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닿겠어.”
서 있는 자리는 여전히 같았으나 속해 있는 세계가 달라졌다.
어느새 한눈에 들어올 듯 가까워져 버린 레비아탄을 보며 블라드는 검을 치켜들었다.
“······후우.”
블라드는 키하노가 알려준 일격필살의 묘리에 따라 몸을 잔뜩 웅크렸다.
마치 쏘아져 나가려는 화살과도 같은 모습으로.
소드마스터에게서 시작된 이 검술은 단 한 번의 일격을 중시하는 검투사의 검술에서부터 시작한 것이었다.
“갑니다.”
[그래.]용의 육체 위에서 펼쳐지는 소드마스터의 검술.
자신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가능성에 키하노 또한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만 같았다.
“흐읍!”
발을 굴렀던 땅이 움푹 패이자, 방금까지만 해도 그곳에 있던 블라드의 모습이 사라졌다.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희미하게 남아있는 황금빛의 잔상과 뒤늦게 휘몰아치는 작은 바람뿐.
그아아아아아-!
절벽 위에서 시작된 황금빛이 어느새 내질러 대는 레비아탄의 포효를 뛰어넘어 그 몸체에 다다르고 있었다.
절벽 밑의 파도도, 바로 앞에 있는 괴수들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몸짓이었다.
까드드득-!
“치잇!”
검을 박아넣은 레비아탄의 몸체에서부터 뼈를 가르는듯한 섬찟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정작 블라드는 곤란하다는 듯한 잇소리를 내고 말았다.
스스로가 행했음에도 예측하지 못했던 속도가 목표한 위치를 뛰어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번!”
그러나 꽂힌 것은 자그마한 검이었을지라도 와닿은 것은 존재에 대한 위협 그 자체였다.
구오오오오-!
용살검에 대한 가능성을 파악한 레비아탄은 블라드를 떨쳐내기 위해 커다란 비명과 함께 온몸을 크게 휘둘러대었다.
“젠장!”
웬만한 산봉우리보다 거대한 그 몸짓에 허물어진 렘노스 섬이 위태로이 흔들려 대었다.
그 몸짓에 저 멀리 있는 함선들조차도 제 몸을 못 가눌 정도의 커다란 파도가 퍼져나가고 있었다.
-······!
레비아탄의 돌발 행동에 크라켄 또한 놀라고 있었지만 오래된 정령은 자신의 할 일을 잘 알고 있었다.
크라켄은 다시금 바닷속으로 들어가려는 레비아탄을 온몸으로 휘감기 시작했다.
더는 바다에 들어갈 수 없도록, 블라드에게 그 거대한 몸체를 드러내도록.
거대하다 못해 웅장하기까지 한 뱀과 오징어가 서로를 꽉 잡아챈 그 모습에 인간도 드워프들도 그만 할 말을 잃고는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보인다.”
마치 두 개의 밧줄이 엉켜 팽팽하게 당겨진 것만 같은 상황.
딛고 있는 레비아탄의 몸체가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느낀 블라드는 이미 바다에 들어가고 만 머리가 아닌 섬을 둘러싼 거대한 몸뚱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날카롭게 세워진 용의 눈동자에는 어느새 오귀스트가 알려준 최적의 길이 그려져 있었으니까.
꾸드득-!
꽂아 넣었던 검을 뽑아낸 블라드는 왼쪽 눈을 감고는 스스로의 세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좀 더 깊은 곳을 향해 그리고 좀 더 넓은 면(面)을 모으기 위해서.
그렇게 자신과 맞닿아 있는 세계들을 모아 다시금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오오오······.”
무너져 가는 섬 위에서 눈물짓고 있던 루흐타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모든 것이 무너져 가는 폐허 위에서 새로이 솟아오르는 거대한 나무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후우.”
나를 받쳐주는 세계는 키하노의 세계.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명예로운 기사.
지금 들고 있는 것은 용을 죽이는 검.
그리고 나의 뒤를 받쳐주는 세계는 바다를 지키던 정령의 세계.
“이걸로 끝내자.”
푸욱-!
기사이며 용살자, 그리고 정령들의 구원자. 블라드 아우레오.
그가 불러낸 세계가 가장 거대한 용의 몸체에 꽂혔다.
마치 산과 같은 모습으로.
그아아아아아-!
“흐아아아아!”
레비아탄이 내지르는 비명과 함께 블라드가 내달리기 시작했다.
가장 거대한 용의 몸체를 가르면서.
자그마한 점에서부터 시작된 레비아탄의 상처가 블라드의 전진에 점점 선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세상에.”
천천히 레비아탄의 몸체를 가르는 황금빛 선.
그 경이로운 빛을 보며 니다벨리르의 드워프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아아아아-!
용으로 태어났으나 별을 꿈꾸던 소년.
별로 태어났으나 용의 조각을 품은 검.
그 둘이 만들어내는 빛이 렘노스 섬을 휘감은 레비아탄의 몸체를 따라 어느새 커다란 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
웅웅- 웅웅웅-
“음?”
모래만이 가득한 황량한 사막.
모든 것이 조용한 그곳에서 온통 색을 잃어버린 남자가 울고 있는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기분이 좋나 보구나.”
손위에서 떨고 있는 은색의 기사.
방금 용의 피륙을 갈랐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침묵하고 있던 검이었건만 어째서인지 지금은 무언가에 반응하듯 덜덜 떠는 중이었다.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아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목소리에 대답한 프라우센은 조용히 검을 휘둘러 묻어있던 핏물을 떨쳐내었다.
이제는 한 줌의 영광도 없이 그저 의무만이 남아버린 기사.
그런 그의 앞에는 가장 단단한 용이라 불렸던 데스웜이 반으로 갈라진 채 건조한 사막을 온통 제 피로 적시는 중이었다.
두근, 두근······.
데스웜의 온기가 식어갈 때마다 조금씩 멈춰가는 프라우센의 심장.
가만히 가슴팍에 손을 가져다 대 본 프라우센은 점점 작아지는 그 소리를 느끼며 눈을 감아보았다.
“······드디어 멈췄군.”
내 것이 아닌 다른 존재의 심장.
온통 말라버린 육체를 뛰게 해주는 녀석이었으나 정작 그 울림을 느끼던 프라우센의 얼굴에는 희미한 불쾌감이 가득할 뿐이었다.
“이 녀석 정도면 네가 말한 소재로 괜찮겠나?”
“물론입니다. 예전에도 한 번 해본 적이 있었지요. 비록 어린 녀석이긴 했지만.”
“그럼 마무리해라.”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여인을 뒤로한 프라우센은 조용히 데스웜의 사체에서 떠나갔다.
“다음에는 어디로 가실 생각이신지요?”
들려오는 라마슈트의 물음에 프라우센은 조용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잠시 서쪽을 바라보던 그는 곧 몸을 돌려 반대 방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중앙으로.”
제국의 중앙.
가장 완벽한 용을 죽인 곳이며 지금은 가장 오래된 용이 있는 곳.
프라우센은 아무 감정도 담지 않은 눈으로 자신이 세운 도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웅- 웅웅······.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그의 손에서 점점 검명이 잦아들고 있었다.
용의 피가 아니면 더는 뛰지 않는 주인의 심장처럼.
사막 너머를 바라보고 있던 프라우센의 눈동자는 어느새 죽은 자의 것이 되어 조금씩 침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