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98
어둠 속에 길이 있나니 (2)
가야 할 때가 되었으나 아무래도 겨울은 여전히 물러감이 아쉬웠던 모양이었다.
창문을 붙들고 늘어지는 모양새가 꼭 그러해 보였으니까.
요제프는 창문을 흔들어대는 겨울의 바람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고 말았다.
“그래. 바예지드의 요제프. 꽤 먼 곳에서부터 나를 찾아와주었구만 그래.”
들려오는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난 요제프는 자신과 마주하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타닥거리며 타오르는 벽난로를 등 뒤에 둔 채 웃고 있는 노년의 남자.
꽤 멋들어지게 기른 콧수염이 인상적인 그는 이곳 도시 키시뇨르의 영주인 몰다비르 남작이었다.
“이렇게 직접 뵐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작님.”
“올해의 겨울은 길었고 그만큼 오는 손님은 적었지. 그동안 찾아와주는 사람이 적어 오히려 적적하던 참이었네.”
들려오는 말만으로는 분명 정감 넘치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남작의 눈을 유심히 보고 있던 요제프는 그가 딱히 자신을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랜만에 온 손님이라 할지라도 이번만큼은 딱히 도와줄 수는 없을 것 같군.”
과연 요제프의 생각대로 찻잔을 내려놓은 몰다비르 남작은 어깨를 으쓱이며 거절의 말을 이어갔다.
“아무런 명분 없이 남의 가문 일에 끼어들기가 참 곤혹스럽네. 게다가 자네는 이미 가주 경쟁에서 탈락한 몸이기도 하니.”
남작은 딱히 악의를 가지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날카롭게 다가오는 말이기도 했다.
그는 지금 마땅한 자격이 없는 요제프의 제안은 그저 공허한 외침이나 다름없다며 돌려 말하는 중이었으니까.
남작의 말을 알아들은 요제프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비록 내가 큰 힘을 실어주지는 못하겠지만 부디 이곳에 있는 동안이나마 편하게 쉬다 가시게.”
마주하기에는 껄끄럽고 막상 본다고 해도 딱히 얻어낼 것이 없는 요제프였으나 그럼에도 몰다비르 남작은 그를 모질게 내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어떤 형태로든 지금 위세를 떨치고 있는 바예지드와 척을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자네가 내어준 이 차가 꽤 괜찮군.”
“·····입에 맞으신다니 다행이군요.”
“뭐. 찻잎의 생김새는 시꺼먼 것이 영 그렇긴 했지만 말일세.”
방금의 거절 때문인지 방 안의 공기가 조금은 차가워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요제프는 딱히 실망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애써 실망감을 감추고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가지고 온 다기들도 그렇고, 내어준 차도 그렇고. 젊은 나이치고는 꽤 취향이 고상하군.”
“어머니께서 내어주신 찻잔들입니다. 그분께서는 제가 언제나 몸을 망치는 술 대신 따뜻한 차를 마시기를 원하셨었죠.”
자연스러운 손짓으로 꺼내놓은 다기들을 정리하던 요제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차를 마시는 남작을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평범한 녹차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불길한 검은색이 깃들어 있던 요제프의 차.
천천히 찻물을 꿀꺽거리는 남작의 울대를 보며 요제프의 눈빛이 점점 깊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
요제프가 몰다비르 남작을 만나는 동안 블라드와 니벨룬은 키시뇨르 곳곳을 뒤지는 중이었다.
정확히는 사라진 프라우센과 검은 여인이 남겼을 소문들을 찾아보는 중이었다.
“하아······. 다시 북부로 돌아가 봐야 하려나.”
그러나 열심히 돌아다닌 것과는 다르게 성과는 영 없던 모양이었다.
근사하게 차려입은 기사가 짜증이 난다는 듯 뒷머리를 헝클어뜨려 대자 근처에 있던 손님들이 눈치를 보며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여기 사람들은 뭐 제대로 아는 게 없네.”
천천히 빠져나가는 손님들을 보며 술집 주인이 울상을 지어대었지만 블라드는 그저 본인의 고민에 빠져들 뿐이었다.
“교회에라도 한 번 가 보시죠. 그쪽이라면 소식을 잘 알 것 같은데.”
“······여기 교회는 교황청 소속이거든.”
블라드는 여기 좀 보라는 듯 왼쪽 흉갑을 툭툭 건드려대었다.
손가락이 두들기는 그곳에는 북부정교회의 교황이 직접 새겨준 글귀가 확연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거기 사람들은 아마 수인족인 너보다도 나를 더 싫어할걸?”
“오. 그러면 안 되죠.”
북부에서는 명예로운 글귀였겠으나 교황청의 세력이 강한 이곳 중부에서는 그저 이단의 증거였을 뿐.
마땅히 도움 청할 곳이 없기에 직접 뛰어본 블라드였으나 들어온 성과는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먹는 모습이 되게 자연스럽네?”
멋대로 앞에 있던 꼬치를 베어 무는 니벨룬을 보며 블라드의 표정이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가게 주인조차도 움찔할만한 표정이었으나 정작 니벨룬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블라드의 입가에 다른 꼬치를 물려줄 뿐이었다.
“어쨌거나 빨리 찾아야 할 텐데요. 서부에서 용들이 계속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 심상치 않은 징조이기는 합니다.”
“맞아.”
니벨룬의 말을 듣던 블라드는 용에 대해 기이한 집착을 보이던 프라우센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도시 모시암에서 삿된 안개를 뿌리던 검은 여인도.
“또 무슨 일을 벌이기 전에 미리 막았으면 좋겠는데.”
사특한 존재들을 베어내는 것은 기사들이 가져야 할 당연한 의무이기도 했으나 블라드에게만은 조금 더 특별한 동기가 부여되어 있었다.
키하노와 연결되어 있는 프라우센.
그리고 안개 가득한 마을에서부터 진작에 악연으로 얽혀있던 검은 여인까지.
계속해서 마주치게 되는 그들을 보며 차마 떨쳐내기 힘든 의무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이로군. 블라드.”
“······!”
고민에 빠져 있던 탓일까.
블라드는 갑작스레 들리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으나 지금 블라드의 옆자리에는 어느새 남자 한 명이 앉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커스 님?”
“무슨 생각을 그리 열심히 하는지 모르겠군.”
얼굴 곳곳에 흉터가 가득한 남자.
마주칠 때마다 새로운 이름을 말해주었던 마커스가 앞에 있는 꼬치 하나를 집어 들고는 블라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는 어떻게.”
“볼 일이 좀 있어서.”
분명 안면이 있고 반가운 사람이기도 했으나 정작 그를 마주하는 블라드의 얼굴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바예지드의 숨겨진 칼날인 마커스가 아무런 의도 없이 이곳까지 왔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무슨 볼일이십니까.”
“예전에도 말했다시피 임무에 대해서는 말해 줄 수 없다.”
“혹시 요제프 님 때문에 온 겁니까?”
“······.”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답하지 않는 마커스는 그저 블라드가 물끄러미 들고 있던 꼬치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도련님은 건강하신가?”
“요제프 님에 대해서는 저보다 더 잘 아실 것 같은데요.”
계승권은 있지만, 가주 경쟁에서는 탈락하고 만 요제프.
그런 그가 멋대로 중부를 나다니며 다른 영주들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은 바예지드에게 영 기꺼운 일은 아닐 것이다.
혹시 그런 이유인가 싶어 마커스를 경계하던 블라드였지만 정작 들려오는 대답은 두루뭉술할 뿐이었다.
“모른다. 그저 겉으로만 봐서는.”
“······?”
“그나저나 묻고 싶은 말이 있는데.”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마커스의 대답에 블라드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대화의 주도권은 아직 흉터 가득한 사내에게 있었다.
“예전에 혼자 동쪽으로 여행한 적이 있었지? 엘프들과 만났을 때 말이다.”
“······그건 갑자기 왜.”
“혹시 그때 무슨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나?”
이번에 마커스가 나타난 이유는 아무래도 요제프가 아닌 자신인 모양이었다.
갑작스레 예전의 일을 물어보는 마커스를 보며 블라드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고 말았다.
“불미스러운 일이라면?”
“예를 들어서 누군가의 물건을 빼앗았다거나.”
마커스는 천천히 블라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주위에 퍼지는 존재감은 희미했으나 정작 마주 본 상대에게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그를 보며 블라드는 절로 긴장하고 말았다.
“혹은 아예 죽여버렸다거나.”
“······.”
이해하기 힘든 마커스의 질문에 블라드는 무어라 대답할 순간을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블라드의 표정을 찬찬히 살피던 마커스는 이내 알겠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역시 아니었군. 부디 오해를 잘 풀길 바란다.”
“네?”
짤랑-
블라드의 물음에도 마커스는 아무 말 없이 동전들을 내려놓고는 조용히 가게를 빠져나갈 뿐이었다.
다만 그가 내려놓고 간 동전은 자신이 먹은 값뿐만 아니라 블라드와 니벨룬이 먹은 값까지도 치르고도 남을 만큼이었다.
“중부는 네가 활동하기 좋은 지역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빨리 다른 지역으로 떠나라고 충고해 주고 싶군.”
“······.”
“다음에 보자.”
블라드는 충고와 함께 떠나가는 마커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인파에 섞였다 싶었을 뿐이었는데 어느새 사라져버린 그를 보며 블라드는 복잡한 표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
해가 떨어지고 이제는 성문을 닫아야 할 시간.
히이이잉-!
이제는 행상인들도 딱히 찾지 않을 그 시간에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도시로 다가오는 무리가 있었다.
건장해 보이는 말과 함께 반짝이는 갑옷을 입고 오는 그들을 보며 키시뇨르의 문지기들은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정지! 신분을 밝히시오!”
정해진 의무에 따라 사내들을 막은 경비대장이었으나 말 뒤에 달려있는 깃발을 알아보고는 그만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검은색 바탕의 깃발 위로 내려치고 있는 하얀색 번개의 문양.
단출하지만 강렬히 다가오는 깃발의 문양에 경비대장뿐만 아니라 주위의 경비병들까지 서둘러 손을 들어 경례하기 시작했다.
“저희 도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북부의 기사 블라드 아우레오가 이 도시에 있다는 첩보를 받았다. 그 말이 사실인가?”
그러나 정작 깍듯한 경례를 받는 사내들은 아무런 감흥도 없다는 듯 차가운 질문을 건넬 뿐이었다.
그러나 그 차가움 속에 차마 숨기기 힘든 분노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경비대장은 재빨리 머릿속에서 블라드라는 이름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블라드······. 블라드 아우레오 경이라면 분명 어제 저희 도시에 방문했었습니다!”
어째서 찾는지는 모르겠으나 블라드가 가지고 있던 화려한 금발은 여전히 경비대장의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짙은 눈그늘의 귀족과 함께 찾아온 기사는 차마 세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문양들을 들고 왔던 사람이었다.
“그래?”
깃발 속에 명예를 가득 담고 찾아온 북부의 기사.
그러나 정작 그 대답을 들은 사내들의 표정은 그저 딱딱하게 굳어질 뿐이었다.
“황실을 수호하는 궁정공 아르망 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지금부터 키시뇨르에 있는 모든 성문을 봉쇄해라.”
“······하, 하지만.”
“반문하지 말고 그렇게 해라.”
사납게 번뜩이는 기사들의 눈빛에 경비대장은 그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궁정공 아르망의 이름도 이름이었지만 마치 철천지원수를 앞에 둔 것만 같은 그의 서늘한 눈빛이 더욱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찾았군.”
주인의 허락이 없었음에도 키시뇨르의 성문으로 낯선 깃발을 든 기사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말을 타고 있는 그들 모두가 허투루 볼 수 없을 정도로 빈틈없는 기운을 지닌 자들이었다.
“드디어 오귀스트 님의 복수를 할 수 있겠어.”
검은색 바탕의 깃발 위로 새겨진 새하얀 번개의 모습.
소드마스터에 대한 경의를 담았다고 전해지는 그 영광된 깃발을 들 수 있는 자들은 오직 수도 브리간테스의 치안을 책임지는 제국헌병대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