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
뒷골목의 소년 (2)
도시 쇼아라.
바예지드 백작 가문이 가지고 있는 세 개의 도시 중 하나인 쇼아라는 언제나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었다.
두 개의 강이 맞닿는 북부 물류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북부의 명문가인 바예지드 가문의 위세까지 합쳐져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도시였기에.
때문에 사람들은 도시 쇼아라를 가리켜 밤에도 마치 낮과 같이 빛나는 도시라 하며 북부의 등대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찬란함 아래에는 언제나 빛에 의해 가려진 그림자가 숨어 있기 마련이니.
도시의 찬란한 불빛 아래에 숨겨져 있는 모두가 알면서도 고개를 돌리는 구역이 하나 있었다.
쇼아라의 온갖 더럽고 추잡한 것들을 모아 하나의 구역 안에 때려놓은 슬럼가의 존재가 그것이었다.
“2층 초는 20실버, 3층 초는 30실버.”
“······한 번에 많이 사면 더 얹어주는 건 없냐?”
“20실버, 30실버.”
“블라드 임마, 내가 너 구걸하고 다녔을 때 쥐여준 빵이 몇 개인데 좀 더 챙겨봐!”
머리가 반쯤 벗겨진 뚱뚱한 중년인이 혀가 꼬부라지는 발음으로 외쳤지만 금발의 소년은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낼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마누라 엉덩이나 주무르시든가.”
“어허~! 이 눔 쉬키 보게. 애미애비가 없어서 배우지 못해 이러는가? 그러지 말고······.”
욕망과 욕정으로 축축해진 공기.
끊이지 않는 음악소리와 사람들의 고함은 화려하게 치장된 4층짜리 건물에 울려 퍼지고 있었으나.
“······눈, 눈깔 새꺄!”
얼큰하게 취한 중년인의 귀에는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그의 모든 감각을 잡아두고 있는 것은 앞에 앉아 있는 금발 소년의 푸른 눈빛뿐이었다.
이제야 겨우 16살이 된 소년이 내뿜는 기세라고 하기에는 기이하게 무게감이 있는 눈빛이었다.
“······애비는 누군지 모르고 애미는 예전에 죽어서 배우질 못해 그런가 봐.”
블라드는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그쪽 집안 자제도 애비가 건강히 오래 살아야 나처럼 안 될 텐데.”
“2층 초! 3개!”
블라드의 눈을 피하자마자 정신을 차린 중년인은 재빨리 초를 움켜쥐고는 은화를 던지듯 떨궜다.
“손님 이거 100실버짜리 동전인데?”
“너 다 가져 새끼야!”
“좋은 밤 보내십쇼. 손님!”
“재수 없는 파란 눈깔 새끼!”
아까까지만 해도 잡아먹을 듯한 눈빛을 부라렸던 블라드였으나 의도하지 않은 팁이 들어오자 허리를 깊이 숙이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짭짤하네.”
블라드는 손에 든 100실버짜리 은화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쇼아라는 발전한 도시인만큼 수많은 창관들이 있었으나 이곳 ‘장미의 미소’만큼 이름을 날리는 곳은 몇 없었다.
이곳의 주인이자 마담인 마르셀라의 뛰어난 미모도 미모였거니와 술이나 여자들, 중간중간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 또한 훌륭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언제나 성황인 이곳에서 얌전히 앉아 초를 팔기만 하는 블라드라도 팁의 명목으로 한푼 두푼 모으는 것이야 어렵지 않았다.
물론 그 과정은 험난한 것이기도 했다.
“꺄아아아악!”
“이 걸레 같은 년이! 얌전히 몸만 팔 것이지 어디서 사기까지 치고 있어!”
2층 복도에서 창녀 하나가 머리채를 붙잡힌 채 손님에게 끌려 나와 얻어맞고 있었다.
“내가 무슨 사기를 쳤다 그래!”
“내가 용병 생활만 20년이야! 어디서 되지도 않는 약을 팔고 있어!”
갈색 머리의 창녀는 훤히 드러난 젖가슴으로 인한 수치심보다도 눈앞에서 휘둘러지는 남자의 주먹이 더 두려운 듯 두 팔을 앞으로 내젓고 있었다.
“조용할 날이 없군.”
블라드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앞에 있는 초들을 챙긴 채 2층으로 올라갔다.
“손님. 무슨 일입니까?”
“블라드! 나 좀 살려줘!”
“웬 꼬맹이가 와서 지랄이야! 여기 마담 불러와 새꺄!”
블라드는 조용히 들고 있던 초 상자를 복도에 내려놓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마담을 만나려면 은화가 아니라 금화가 필요할 텐데.”
“장사를 엿같이 하는데 무슨 금화야! 이 새끼야! 마담이 없으면 니네 애미라도 불러오든가!”
2층 복도에서부터 시작된 소란이 건물 곳곳에 울려퍼지자 1층 로비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몇몇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지켜보기 시작했다.
무릎에는 교태를 부리는 창녀들이.
왼손에는 맥주, 오른손에는 담배를 들고.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다는 싸움 구경을 바라보기 위해서.
“······말이나 들어볼까?”
블라드는 애써 두 눈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자신을 20년 동안 용병생활을 해왔다는 남자를 향해 물었다.
“이 초!”
남자는 분하다는 블라드에게 초를 집어던지며 외쳤다.
“이거 7분짜리 아니지? 뭔 놈의 초가 바지만 벗었는데 다 타!”
블라드는 자신의 발치로 굴러오는 타다만 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간을 재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장미초.
한 초가 다 탈 때마다 7분이 걸리는 이 초는 손님과 창녀들의 시간을 잴 때 쓰는 기준이자 거래 수단이기도 했다.
“좋아 그럼.”
블라드는 내려놓은 상자를 뒤져 2층에서 사용하는 초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저 앞에 시계 보이지? 지금부터 내가 초에 불을 붙여서 이게 7분이 되나 보자고.”
흥청망청 놀아야 하는 1층 로비에는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시계가 달려 있지 않았지만, 시간에 민감해야 하는 2층과 3층에는 시계가 달려있었다.
“내가 왜 사기꾼들 말을 들어야 하지?”
자신을 용병이라 말한 사내는 팔짱을 끼며 블라드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하자고.”
“······.”
눈앞에 보이는 푸른 눈동자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는 눈빛.
조직의 보스인 호르헤는 그런 블라드의 눈빛을 보며 어느 골목에 가도 대장을 할 녀석이라 평하고는 했었다.
“만약 7분이 안 되면 손에 쥔 여자는 계속 패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시고.”
블라드는 신발 밑창에 성냥을 죽 그으며 말했다.
“대신 이게 진짜 7분짜리면 손님은 여기서 나한테 뒤지게 맞는 거야.”
“······뭐?”
용병이 말릴 새도 없이 초에 불을 붙인 블라드는 복도 한가운데 초를 내려놓고는 고개를 까닥였다.
“블라드······.”
그저 불안한 듯 어깨를 떠는 가련한 창녀만이 초가 아닌 블라드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1분, 2분, 3분.
시간이 지나고 창관에 모인 모든 사람의 이목이 쏠리기 시작할 즈음.
“어?”
여전히 창녀의 머리채를 쥐고 있던 용병의 눈이 커지는 순간.
“7분 됐다 새끼야!”
블라드는 전광석화와 같은 몸놀림으로 허리에 차고 있던 몽둥이를 휘둘렀다.
빠악-!
매서운 일격에 용병의 머리 위로 시뻘건 피가 튀어 올랐다.
“꺄아아악!”
갑작스러운 블라드의 일격으로 틈이 생기자 여태껏 붙잡혀있던 창녀가 빠져나오고.
“너는 오늘 뒤졌어!”
블라드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용병의 목덜미를 붙잡고는 방금 그들이 나왔던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찰칵-
“사기는 네가 먼저 쳤지! 20년 묵은 용병 새끼가 이렇게 뱃살이 늘어졌어?”
빠악-! 빠악-!
“끄아아악!”
“그리고 오늘따라 왜 이리 우리 엄마를 찾는 사람이 많아? 부모 없는 하늘 아래서 서러워서 살겠냐!”
잠겨진 방문.
그 속에서 쉴새 없이 들려오는 타격음과 남자의 비명 소리.
블라드는 아까 참았던 분노까지 더해 눈앞에 있는 사내를 내려치는 데 집중했다.
“아······잖아!
“입 닥쳐 새끼야!”
술에 취한 구경꾼들은 자신들이 기대했던 싸움이 보이지 않자 입맛을 다시며 다시 무릎에 앉아 있던 창녀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빠악-!
몽둥이 소리와 남자의 비명소리.
4층에 앉아 있던 검은 머리의 여성이 아래를 향해 손짓하자 악단의 음악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분노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묻힌 채 그저 조용히 흘러갈 뿐이었다.
이곳은 쇼아라.
이곳은 장미의 미소.
흘러 지나가는 인생들이 모여 잠시 고여있는 곳일 뿐이었다.
※※※※
떠들썩한 밤이 지나고 고요한 아침 햇살이 적막과 함께 장미의 여관에 내려앉았다.
고풍스러운 장식들로 치장한 아침의 장미의 미소는 분위기만으로는 어느 귀족의 별장과도 같은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화려한 문양 하나마다 검은 머리 여인의 한과 눈물이 담겨 있었지만, 그것을 알아봐주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블라드.”
“오. 안나.”
마지막 남은 고객까지 정중하게 골목 바닥에 모셔두고 온 블라드를 부르는 여자가 있었다.
“눈가가 시퍼레졌네. 며칠은 쉬어야겠어.”
“그렇긴 하지. 그래도 어디 안 부러진 게 어디야.”
그녀는 어젯밤 용병의 폭력에 시달리던 갈색 머리의 창녀였다.
“고맙다고.”
시퍼렇게 멍이 든 눈으로 배시시 웃으며 무언가를 건네는 여자.
블라드는 물끄러미 그녀가 내미는 것을 바라보았다.
“잘 먹을게.”
그것은 달걀이었다.
“지금 여기서 먹어. 그거 날달걀이거든.”
“흐음······.”
블라드는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짓는 안나를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알았어.”
손가락으로 달걀의 밑부분을 깨고 죽 들이키는 블라드.
안나라 불린 여자는 블라드의 목젖이 움직이는 것을 흐뭇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요즘 남자들이 거칠어져서 걱정이야. 이럴때일수록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사내가 필요한데······.”
“잘 먹었어.”
안나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달걀 껍질을 보며 씁쓸히 웃었다.
“······언제든 생각 바뀌면 말해. 수수깡 같이 생긴 붉은 머리 꼬맹이보다야 내가 더 벌지 않겠어?”
“그럴지도.”
블라드는 그 말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아 참. 안나!”
“응? 왜?”
혹시나 싶은 기대감에 안나는 눈을 크게 치켜뜨며 블라드를 바라보았으나.
“앞섶을 너무 열어놓은 거 아냐? 아직 겨울인데 몸조리는 잘해야지.”
“······이것도 감사의 표시야.”
블라드의 지적이 있고 나서야 안나는 자신의 앙가슴을 가렸다.
다시 고개를 들자 어느새 자신의 앞에 있던 블라드는 복도의 끝으로 사라지고 난 뒤였다.
“팔아먹을 수 있는 게 몸뚱아리 뿐인데 요걸로는 영 넘어오질 않네······.”
아무도 없는 복도 한가운데서.
누구 하나 의지할 곳 없는 여인이 서글프게 미소 지었다.
※※※※
“호르헤. 누가 초에 장난을 쳐놨어요.”
1층은 술과 음식을 파는 로비.
2층과 3층은 창관.
그리고 4층은 창녀들과 직원들의 거주공간.
블라드는 4층에 마련되어 있는 식당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는 사내에게 보고했다.
“7분이 아니더라고요.”
“그래?”
거대한 덩치를 가진 호르헤라 불린 남자는 블라드의 보고에도 별로 개의치 않아 하고 있었다.
“7분이 아니었다니까요.”
“응. 그래. 그렇다더라.”
구운 소세지, 블랙 푸딩, 해시브라운에 하얀 밀빵.
언제나 호르헤가 먹는 아침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가 먹는 식단만큼이나 호르헤라는 남자는 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내 말 이해했어요? 누가 우리 밥줄에 초를 쳐놨다니까요?”
“아니 감히 누가 그랬어!”
호르헤의 앞에서 직접 아침을 만들어주던 검은 머리의 여인이 장난스러운 미소로 말을 가로챘다.
“누가 그랬는지는 이제부터 찾아봐야죠.”
“당연히 찾아야지!”
“내가 찾아요?”
“네가 찾아봐!”
“내가 뭐라고 찾아요?”
“사실은 내가 이미 찾았어!”
“그게 누군데요? 마르셀라.”
장미의 미소의 주인 마르셀라.
쇼아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뛰어난 미모를 지니고 있는 그녀.
30대 중반의 나이였으나 여전한 미모를 유지하고 있는 그녀는 농염한 여인의 모습과 함께 천진난만한 소녀의 미소도 같이 가진 사람이었다.
“나야. 내가 장난쳤어. 술 취한 놈들 등쳐먹으면서 쉽게 꿀 좀 빨고 싶었거든.”
사내들이라면 누구나 탐낼 도톰한 붉은 입술에서 쓰레기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하······.”
블라드는 기가 차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내가 애꿎은 놈만 조져놨구만······.”
주인이 그랬다는데 직원의 입장에서 무어라 할 수 있으랴.
“······복도 바닥이 아니라 난간에다 초를 박아넣었으면 난리 날 뻔했네.”
혹시나 싶어 일부러 바닥에다 놓기는 했지만.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1층에 있던 구경꾼들도 초가 7분짜리가 아니라는 것을 다들 알아봤을 것이다.
마담의 이실직고를 들은 블라드는 힘없는 자세로 의자에서 일어났다.
“어디가? 밥 먹고 가.”
“잠깐 내려갔다 올게요.”
“왜?”
“······방금 내다 버린 놈한테 담요라도 덮어주게요.”
“착하네!”
터덜거리는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오는 블라드.
죄 없는 남자의 머리통을 터트렸다고 해도 양심의 가책이야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는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블라드의 신념중 하나였다.
그런 신념들이 굳건하게 서 있지 않으면 어두운 물결에 금방 휩쓸려가는 것이 이곳 뒷골목의 생리였으까.
“여어! 나의 자랑스러운 후배!”
그렇게 터덜거리며 1층으로 내려오는 블라드를 잡아채는 목소리가 있었다.
“건들지 마. 오늘 나 피곤해.”
“어제 한 건 했다며? 역시 나의 자랑스러운 후배!”
그는 호르헤 패밀리에 속해있는 버레이라는 자였다.
“혹시 어제 초 팔면서 팁 좀 챙겨놨어? 너의 선배들이 오늘 좀 쓸 일이 생겨서 말이야.”
블라드의 시선 끝으로 호르헤 패밀리의 인원들이 보였다.
“엿 먹어.”
“아니 그러지 말고 내 말을 들어봐. 우리는 억지로 후배 돈이나 뜯고 그러는 쓰레기들이 아니야.”
버레이는 블라드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가까이 붙었다.
“뭔 개수작이야.”
“주고받자는 거지. 네가 돈을 주면 우리도 줄 게 있다. 이런 말이지.”
“그게 뭔데?”
이제야 말이 통했다는 듯 버레이가 눈을 찡긋거렸다.
“따라와 봐.”
버레이가 고갯짓을 하자 다른 호르헤 패밀리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지하에 있어.”
블라드는 버레이의 안내에 따라 그와 함께 장미의 미소 지하로 걸어 들어갔다.
술과 식자재를 보관하는 이곳은 장미의 미소를 운영하는데 중요한 곳이기에 특별히 호르헤가 아끼는 버레이가 관리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이곳은 버레이의 영역이었고.
“니미······.”
“어때? 낯익은 얼굴이지?”
아직 호르헤 패밀리에서 막내 격에 속하는 블라드가 이곳에 있는 것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그의 허락이 필요했다.
“40실버만 주면 내어줄게. 이 정도면 진짜 싼 거야. 이런 착한 선배가 또 어디 있느냔 말이지.”
익살스러운 미소를 짓는 버레이의 뒤로 꿈틀거리는 것이 있었다.
이마에 피를 흘리며 애처롭게 블라드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
검은색의 피부를 가진 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