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03
고요한 밤, 거룩한 말 (2)
눈 내리는 밤이었다.
내리는 눈송이가 땅에 닿는 소리까지 들리는 그런 조용한 밤이기도 했다.
홀로 마구간 목책 위에 걸터앉아 있던 블라드는 망토를 끌어안고는 가만히 내리는 눈송이들을 바라보았다.
“여기는 눈이 좀 늦게 오네.”
고향인 쇼아라였다면 지금은 눈이 오다 못해 쌓여 있을 시기일 것이다.
그러나 중부에서도 내륙에 속해 있는 도시 발레타에서는 이제야 눈이 내리고 있었으니 블라드는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멀리까지 왔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맛있냐?”
푸르르륵-
구유통에 머리를 처박고 있던 누아르가 블라드의 말에 푸르륵 거리며 자신의 기꺼움을 표현했다.
먹을 것이 부족한 겨울이었으나 지금 누아르의 구유통에는 알 굵은 콩들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너도 참 운도 좋다. 하필이면 오늘이 해방절(解放節)이라니.”
오늘 누아르가 먹는 먹이가 풍족한 것은 단순히 다가올 임무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방금 블라드가 말한 것처럼 오늘은 인류가 가장 완벽한 용에게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해방절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건국왕이자 교회가 인정하는 성인, 그리고 기사들의 기사이기도 한 소드마스터를 기념하는 오늘은 인간이며 가축이며 할 것 없이 모두가 풍족한 저녁을 먹는 날이기도 했다.
“엄마가 내 생일도 이쯤이라고 그랬었는데.”
[그래?]그리고 블라드가 태어난 날도 아마 이쯤이라고 했었다.
너무 어렸을 때 들었기에 확실히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뒷골목의 소년은 분명 눈 내리는 겨울에 태어난 아이였다.
“그나저나 또 아이들을 잡아간대요. 그놈들은 애들한테 뭐 원수라도 졌는가.”
하릴없이 나뭇가지로 바닥을 긁어대던 블라드는 아까 백작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크게 입김을 내 불었다.
아른슈타인 백작은 도시와 영지 외곽을 돌며 아이들만을 납치하는 정체 모를 괴인이 있다고 했었고 그 말을 들은 블라드는 자신이 목표하던 곳에 제대로 찾아왔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안개 가득한 마을과 모시암에서처럼 이곳 아른슈타인 영지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분명 이유가 있을 거다. 아이들만을 잡아가는 이유가.]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블라드는 그들이 무슨 이유를 대든 간에 절대 이해해 줄 생각이 없었다.
“무슨 이유를 대도 절대 납득 할 수는 없을 거예요.”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블라드는 문득 고개를 들고는 저 아래에 있는 집들을 내려다보았다.
불이 켜져 있는 집들 사이로 드문드문 어둠만이 가득한 집들이 있었다.
“특히 저기 불 꺼진 집에 앉아 있는 사람들한테는요.”
모두가 기뻐해야 할 날이었지만 그런 오늘이었기에 더욱 슬퍼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심정을 잘 알고 있는 블라드는 누아르의 등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깊은 입김을 내뱉었다.
※※※※
모두가 숨죽이고 있는 마을이 있었다.
이제야 겨우 몇십 가구들이 모여 사는 그런 작은 마을이었다.
그러나 오늘, 이곳에 있는 마을 주민들이 숨죽이며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 것은 단순히 밤이 깊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콰드드득-!
순간, 고요함만이 가득했던 마을 한 곳에서 침묵을 부수는 요란한 소음이 들려왔다.
자그마한 집 한 채가 무너져 내리며 만드는 소리였다.
그 집은 마을의 유일한 약초꾼이 있는 집이었으며 얼마 전 4번째 생일을 맞은 아이가 있는 집이기도 했다.
“안돼! 아이! 내 아이!”
달 밝은 밤, 아이를 빼앗긴 여인이 정체 모를 사내를 향해 울부짖고 있었다.
지금 그 사내가 들고 있는 아이는 가난한 부부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보물이었으며 다음날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희망 같은 것이었다.
-······.
그러나 울고 있는 여인을 바라보는 사내의 눈빛은 그저 차갑기만 할 뿐.
달빛 때문인지 더욱 시려 보이는 푸른색 귀화는 그저 무심한 모습으로 제 갈 길을 향해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사내가 어깨에 메고 있는 낡은 망태에서부터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콰앙-!
“······드디어 찾았다.”
그리고 그 울음소리를 따라 찾아온 기사들이 있었다.
요란히 부서지는 문과 함께 달빛을 등진 기사가 웃고 있었다.
“드디어 네 놈의 면상을 볼 수 있겠구나.”
힘껏 달려왔는지 숨이 턱에까지 차오르고 있었지만 파블로의 입가에는 차마 감추기 힘든 서늘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동안 닿지 못했기에 차마 막지 못했던 비극이 지금 자신의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들고 있는 아이부터 내려놓으실까?”
-······.
아른슈타인의 파블로.
감고 있는 그의 왼쪽 눈에서부터 그의 세계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노랗게 타오르는 그의 세계는 쇼아라의 블라드라는 가능성을 이끌어낸 세계이기도 했다.
“그럼 반만 죽여드리도록 하지.”
그 옛날, 기사 중의 기사인 소드마스터가 가장 완벽한 용을 죽였다는 오늘.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던 그를 기리기 위해 아른슈타인의 기사들은 초라한 이 마을에 숨어 있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
히이이잉-!
막아! 못 나가게 막아!
몸을 들이대서라도 앞을 막아라!
푸른 귀화를 피워올린 말의 뒷발질이 매섭다.
사내가 타고 있는 말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흉포하게 날뛰고 있었지만 파블로는 스스로 그 폭풍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흐아아!”
콰앙! 쾅!
지축을 흔드는 것만 같은 뒷발질이 있었지만 파블로는 크게 휘청였음에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들고 있는 것은 성벽이었으며 그가 원하는 것은 울고 있는 아이였기에.
어린 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파블로의 전진은 데어마르에서도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도 당당할 뿐이었다.
“일단 내려오라니까!”
파블로의 검술은 화려하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오직 기본에 충실한 단조로운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위협적일 수 있는 이유는 상대의 모든 의도를 틀어막을 수 있는 방패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걱-!
히이이이잉!
모진 발길질에도 기어이 다가간 파블로가 검을 높게 치켜들었다.
이윽고 번쩍인 검날의 움직임에 놀란 말이 번쩍 몸을 들어 올리자 팽팽했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들어가!”
정체 모를 사내의 검은 하나였고 달려드는 기사들은 그보다 많았다.
오늘 일어날지도 모를 어떤 가족의 비극을 막기 위해 누구는 온몸으로 검로를 틀어막고, 또 누구는 말의 진로를 가로막기 시작했다.
“파블로 님!”
“잘했다!”
그리고 우격다짐으로 달려든 기사 하나가 사내의 오른팔을 꺾어가며 애써 울고 있는 아이를 집어 들자 때를 기다리고 있던 파블로가 이를 악물어내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타앙!
더이상 거칠 것이 없어진 파블로가 힘껏 검과 방패를 부딪쳤다.
그러자 보이는 파블로의 세계는 단단한 성벽과도 같은 세계.
갓 피워낸 소년의 세계가 아무리 부딪히고 부딪혀도 흠 하나 생기지 않았던 그의 성벽이 거칠게 전진하기 시작했다.
“반만 죽인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보여주마!”
쾅! 콰앙!
검과 검이 맞부딪혔으나 들리는 소리는 포탄이 쏘아지는 소리와도 같았다.
비록 말을 타고 있는 상대와 대적하는 파블로였지만 지금처럼 뻗어 나갈 길이 없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땅을 디디고 있는 쪽이 유리할 터였다.
-반만 죽인 다라.
그러나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정체 모를 사내의 대응은 침착할 뿐이었다.
-우리에게 있어 그만큼 헛된 협박이 있기나 할까.
“뭐?”
파블로는 사내의 말속에서 불길하게 다가오는 징조를 감지했다.
“우리?”
여태껏 홀로 움직이기만 했던 정체 모를 사내.
그러나 낄낄대는 웃음과 함께 어둠 속에서 기어 나오는 자들은 분명 하나가 아닌 여럿이었다.
-함정은 자네들만 팔 수 있는 게 아니지.
“······!”
당황한 파블로와 기사들을 보며 정체 모를 사내가 웃고 있었다.
인사라도 하듯 정중하게 벗어 내리는 그의 두건 안에는 방금까지만 해도 파블로를 향해 웃고 있던 그의 머리까지 담겨 있었다.
“이 사특한 놈!”
달을 가린 구름 아래서 정체 모를 사내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목을 내려놓은 그들은 땅 위에서 허우적대는 아른슈타인의 기사들을 보며 세찬 발길질로, 날아드는 검날로 그들을 비웃기 시작했다.
“전원 방진! 아이와 가족들을 중심으로!”
흩뿌려지는 핏물 속에서 기사들의 비명이 가득했다.
사냥감인 줄 알았으나 사냥꾼이었던 그들을 보며 파블로는 다시 한번 깊게 감은 눈으로 자신의 세계를 불러일으키려 했다.
콰직-!
크억!
-······!
순간, 갑작스레 날아든 창대에 목 없는 기사 하나가 거칠게 튕겨 나갔다.
어찌나 강하게 던졌는지 땅에 꽂혀 있는 창대가 아직도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누구냐!
평원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
그 마을의 주민들이 겨우 세워놓은 목책 너머에서부터 세찬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른슈타인의 깃발과 제국헌병대의 깃발, 그리고 작았지만 수많은 문양들을 박아넣은 북부의 깃발까지.
점점 다가오는 지평선의 먼지들을 보며 목 없는 사내는 서둘러 부하의 몸에 박혀 있던 투창을 빼낼 수 밖에 없었다.
“맞았나?”
[맞았다. 확실히 맞았어.]“처음 던져본 건데 저게 되네요. 볼코프 님 걸 미리 한 번 봐두길 잘했네.”
푸른 눈동자가 인상적인 사내였다.
불끈 솟아오른 어깨 근육이 방금 날아간 투창이 누가 던진 것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쏴아아악-!
콰악!
“보낸 선물이 마음에 안 들었나 보네.”
저 멀리서부터 다시 날아온 투창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드는 블라드를 보며 주위의 기사들이 크게 놀라고 말았다.
신기중의 신기를 부리고 있었으나 용의 피에서 비롯된 감각은 지금의 상황조차 그저 당연한 듯이 받아들일 뿐이었다.
“적들이 도망갑니다!”
“빌어먹을! 놓쳐서는 안 된다!”
아른슈타인의 기사단장은 자신의 기사들에게서 벗어나는 침입자들을 보며 안심했지만, 그와는 반대로 점점 조급해지는 마음이 있었다.
“달려라! 또다시 놓쳐서는 안 된다!”
지금 저들을 놓치면 또다시 사라지는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장의 간절한 외침과는 다르게 마을을 습격한 침입자들은 어느새 말에 올라타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젠장! 말을 타게 둬서는 안 되는데!”
수십의 기사들이 달려들고 있었으나 결국 저들을 잡지 못할 것을 안다.
아른슈타인의 영지는 비옥한 평원으로 가득한 땅이었으며 저들을 가로막을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곳이기도 했으니까.
“······.”
어느새 스쳐 지나가는 마을에서부터 반짝이는 노란빛이 있었다.
블라드는 눈에 익숙한 그 빛이 누구에게서 비롯되었는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빌린 은혜는 갚아야 하는 법이다.]“알아요.”
뒤쫓고 있었으나 멀어지기만 하는 목 없는 기사들.
점점 벌어지는 간격에 뒤따르는 기사들이 지쳐갈 때쯤 홀로 진형을 이탈하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어차피 내 인생은 평생 갚으면서 사는 인생이었어요.”
노인이 내어준 장식 없는 검에서부터 소녀가 흘려준 눈물에 이르기까지.
갚고 갚고 또 갚으며 걸어온 길 위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을 블라드는 잘 알고 있었다.
마침내 걷힌 구름에 푸른 달빛이 너른 평원을 비추며 한 줄기의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치 그곳을 따라 달리면 된다는 듯 밝게 비치는 그 빛을 보며 블라드는 쥐고 있던 말고삐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가자!”
히이이이잉-!
일각수의 혈통을 이은 초원의 아들.
맞닿은 세계를 통해 점점 세워지는 누아르의 뿔이 어느새 중부의 깃발들을 지나치기 시작했다.
“저, 저······.”
아른슈타인의 단장뿐만 아니라 로드리고마저 놀라고 마는 그 속도로.
-······!
“우리가 구면인가?”
그렇게 달려나간 블라드를 보며 목 없는 기사들이 크게 놀라고 말았다.
죽음에게서도 도망친 그들이었으나 밝게 뿔을 세운 검은 말 앞에서만큼은 뒤를 내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머리가 있어야 구면인지 아닌지를 알아보지.”
-너는······.
“쇼아라의 블라드다.”
바로 옆에서 들리는 심장 소리는 온통 색을 잃어버린 자와 닮았다.
바람결을 따라 아스라이 풍기는 차의 향기는 평소 검은 여인이 마시던 것과 같았다.
그러나 자신을 보는 그 미소만큼은 둘이 가진 것과는 사뭇 다른 아주 스산한 것이었다.
“네놈들이 떨치곤 간 아른슈타인의 파블로를 대신해서 왔다.”
검이 울고 있었다.
이제는 자신의 차례라 울부짖는 용을 죽이는 검이.
“가서 놓고 내린 네 놈들의 목이나 찾아와라!”
오늘만큼은 아무도 울지 않는 그런 고요한 밤이 되기를.
불 꺼진 창들을 눈에 담아두고 있던 블라드는 검을 휘두르며 진심으로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오직 그것만이 자신이 받을 정당한 대가라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