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09
다시 일어설 때에는 (2)
어둠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걸려있는 횃불 하나 없어 주위를 분간하기도 힘든 복도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새까만 제 속을 내비치고 있었고 이제는 바로 앞에 있는 사람조차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깜깜해진 상태였다.
그런 어둠 속에서 요제프는 눈뜬장님과도 같은 처지였다.
-앞이 보이질 않나?
“······그렇소.”
앞이 보이질 않는다는 요제프의 말에 깜깜한 어둠에서부터 푸른색의 귀화가 떠올랐다.
주위를 밝히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광량이었지만 적어도 불을 밝힌 자의 윤곽만큼은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그런 빛이었다.
-아직 복용이 덜 된 모양이로군.
목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는 그저 텅 빈 투구만이 올려져 있는 남자.
아른슈타인의 영지에서 아이들을 납치했었던 목 없는 기사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 서늘한 눈빛을 요제프에게 들이대었다.
-배어 있는 냄새는 이미 짙은데 말이지.
마치 킁킁대는 듯한 그의 모습에 요제프는 절로 긴장하고 말았다.
목 없는 자가 지금 자신에게 무엇을 확인하고 있는지를 알아챘기 때문이다.
“얼굴은 없는데 냄새는 맡을 수 있나 보군.”
-코에서 맡는 냄새가 아니니까.
애써 의연한 척하려 노력했지만 떨리는 말끝만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요제프를 보며 투구 속에 비치는 푸른색 귀화가 차갑게 휘어 들어갔다.
-죽음에서부터 비롯되는 썩은 내는 육체가 아닌 영혼을 통해 맡는 거다. 바예지드의 요제프.
육체가 썩어서 내는 시취보다 더욱 강렬한 것이 바로 영혼이 썩어 내는 냄새일 것이다.
그런 끔찍한 냄새를 요제프에게서 확인한 목 없는 기사는 다시금 몸을 돌려 좁은 복도를 따라 앞장서기 시작했다.
-그 차는 라마슈트님께서 내어주신 은총이니 부지런히 마시도록 해라. 정말로 죽음에 다다르고 싶지 않다면.
끼이이익-
그 말과 함께 목 없는 기사의 손끝에서부터 어둠이 문을 열고 있었다.
바로 앞에 있었지만 보이지 않았던 문이었으며 혼자서는 빠져나갈 수 없는 저주가 서린 문이기도 했다.
-들어가라. 기다리고 계신다.
“······.”
산 자는 절대 다다를 수 없기에 그동안 교회의 누구도 찾아낼 수 없었다던 타락한 성녀의 흔적.
그러나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요제프에게만은 제 모습을 보여주는 그 문을 보며 요제프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
“블라드 경은 아직 일어나지 못했나?”
“그렇습니다. 백작님.”
어지러운 서재의 모습만큼이나 내쉬는 백작의 한숨이 복잡했다.
무어라 위로하기 힘든 백작의 얼굴에 파블로는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먼 곳에서 손님들이라 반갑게 맞아주었더니 한 명은 혼수상태고 또 한 명은 아예 영지를 부숴놓고 나가는군.”
넋두리를 내뱉으며 벽난로 앞에 쪼그려 앉은 백작의 뒷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만약 파블로가 지금 백작이 들고 있는 장작이 그동안 아끼던 책상의 잔해였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초라함을 배는 더 크게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새해부터 이러니 참 심란하군.”
그러나 어찌하겠나.
이미 일은 벌어졌고 나를 노리는 적은 많으니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수밖에.
미련 가득한 손길로 들고 있던 밤나무 잔해를 난로 안에 밀어 넣은 백작은 대충 책으로 쌓아 올린 무더기 앞에 서서 깃털 펜을 집어 들었다.
“산도르라는 자가 말했던 것처럼 요제프 바예지드와 관련된 일은 북부 연합에게 맡기면 되겠지.”“그렇습니다. 그들도 그렇게 해주기를 바랄 겁니다.”
“좋아. 보상금은 나중에라도 톡톡히 받아내도록 하고.”
북부의 명문 가문인 바예지드의 차남이 사특한 존재와 손을 잡았다는 것은 아주 민감한 문제였다.
귀족에게 있어 명예는 중요한 것이며 그에 따른 평판은 보증서와도 같은 것이기에 굳이 자신이 독촉하지 않아도 바예지드가 알아서 해결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대충이나마 영지 일을 수습했으니 이제부터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블라드 아우레오에 관한 일일세. 내가 말한 대로 조사해왔는가?”
파블로를 바라보는 백작의 눈빛에 다시금 힘이 돌아왔다.
중부의 맹주이자 궁정파의 선두에 서 있는 아른슈타인 백작은 이미 제국헌병대의 로드리고를 통해 블라드라는 기사가 가진 가치를 전해 들은 뒤였다.
“네. 말씀하신 대로 조사해왔습니다.”
그분의 핏줄은 아니었지만, 의지를 이었을지도 모르는 기사.
어찌 보면 허무맹랑한 주장일 수도 있겠으나 궁정공은 확인하고 싶어 했고 이제 그 마지막 과정을 담당해야 하는 이는 바로 궁정공의 눈이라고도 불리는 아른슈타인 백작이었다.
“블라드 경의 자문 마법사 니벨룬은 남부 부르군드 족 출신입니다. 조사해보니 그들 중에서도 유력 씨족의 자제더군요.”
사람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그 주변부터 파악하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들고 있는 검이니 쓰고 있는 검술이니 하는 것들은 이미 제국헌병대가 확인했을 테니 백작이 확인해봐야 하는 것은 블라드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릇의 크기였다.
“부르군드 족이라······. 수인족들 중에서도 그나마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집단 아닌가.”
“그렇습니다. 제국 건국 초기에는 나름의 영역까지 확보했었던 부족입니다.”
대륙 곳곳까지 발을 뻗치기 힘든 북부 연합과는 달리 아른슈타인의 정보망은 이미 남부까지 향해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니벨룬의 출신을 조사하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들 중에서도 유력 씨족 출신이라고 합니다”
“볼 때는 몰랐었는데 나름 귀한 자제였었군······. 그리고.”
“저희를 들리기 전 블라드 경의 직전 목적지는 드워프 해방 전선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블라드 경의 최측근인 하벤 선장이 최근에 바람 없이 움직이는 배를 건조했다고 하더군요.”
“바람 없이?”
“아무래도 드워프들의 기술을 배워온 것 같습니다.”
스쳐 지나가면 모를 일이나 눈여겨보면 보인다.
그저 유망한 기사인 줄로만 알았던 블라드였지만 아른슈타인 백작은 그의 주변에서 꿈틀거리는 기이한 흐름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해괴한 배로군. 계속해보게.”
파블로의 보고를 듣는 백작의 손끝이 바빠졌다.
아무리 정보를 모은다고 할지라도 그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없다면 모두가 무용지물인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황실에 있을 궁정공을 위해 최대한 건조한 시각으로 블라드를 판단하려 했던 아른슈타인 백작조차도 계속해서 들려오는 보고의 내용에는 들고 있던 펜을 잠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엘프랑 같이?”
“그렇습니다.”
“북부정교회의 교황이 직접 문구를 하사했다고?”
“그렇다고 합니다.”
“압실론 판매로를 끊어놓은 것도······.”
“적어도 제국헌병대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백작의 표정에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내색이 가득했지만 지금 들려오는 정보는 모두 자신이 직접 뿌린 정보원들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동안 잠시 눈을 돌리고 있었더니 북부에서 이런 일들이 있었군.”
아른슈타인 백작이 그동안 블라드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은 그저 단순한 불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동안 백작은 앞으로의 생존을 위해서, 그리고 격렬했던 황실 내부의 암투를 위해서 중부의 동향 파악에 힘쓰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동안 외면하고 있던 북부에서는 어느새 자신도 무시하기 힘들 만한 변수 하나가 제 몸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이건 의미가 없겠어.”
한참 고민하던 백작은 쓰고 있던 종이를 구겨버리고는 옆에 있는 난로를 향해 던져버렸다.
오랫동안 백작을 봐왔던 파블로는 버릇과도 같은 지금 행동이 쉽게 나오지 않는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어떠했나. 자네는 직접 보지 않았었나.”
삐걱대는 의자에서 일어선 아른슈타인 백작은 어느새 창가로 걸어가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쇼아라의 블라드. 그 가능성의 시작을 가장 먼저 본 사람이 바로 자네 아닌가.”
객관적인 파악을 끝냈으니 이제는 주관적인 의견을 들어야 할 때.
그리고 지금 백작의 옆에는 그 의견을 확실히 말해줄 수 있는 기사가 한 명 있었다.
“······기대하지 않은 자리였으나 꽤나 반가운 빛이었습니다.”
아른슈타인의 파블로.
그저 뒷골목의 소년이었을 뿐인 블라드를 위해 소드마스터의 규율을 외쳐준 기사.
파블로는 항상 들고 다니던 방패를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제 방패를 내미는 게 전혀 부끄럽지 않은 그런 빛이었습니다.”
“······그래?”
파블로의 대답까지 들은 백작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저 희미한 가능성이었을 뿐인 점 하나가 어느새 선이 되어 그의 눈앞에 그림 하나를 그려내고 있었으니까.
“마법 전보를 준비해라. 궁정공께 직접 보고하겠다.”
오늘의 태양 아래 비치는 나의 저택은 처참한 모습이었으나 그 광경을 내려다보는 백작의 표정에는 어떠한 불쾌감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의 수확을 얻기 위해 지불한 대가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질 정도였다.
※※※※
모두가 잠든 저녁, 아른슈타인의 저택을 움직이는 그림자가 있었다.
잔뜩 굼뜬 움직임이었으나 내디디는 발끝만은 매서운 그런 움직임이었고 내뱉는 호흡 하나하나에는 잘 훈련된 사람만이 내뱉을 수 있는 가느다란 숨소리가 가득했다.
“······.”
자고 있는 하인들의 방을 지나 복도를 거니는 경비병들의 눈을 피해 목표에 다다른 그림자.
끼이이익-
경첩의 울림마저도 신중한 자세로 죽여낸 그림자는 조용히 달빛이 스며든 누군가의 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두근-!
“······조각이다.”
그런 그의 눈에 보이는 검 하나가 있었다.
은색의 물결로 몸을 감싸고 있었으나 거칠게 뛰는 심장이 증명해주는 저것은 분명히 용의 조각이었다.
“저거, 저거면 돼.”
피를 빼앗겨 잔뜩 쪼그라든 손가락이 앙상했다.
그러나 손끝으로 바라는 열망만큼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으니 잔뜩 늙어버린 라두 드라굴리아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용살검을 향해 타는 듯한 갈증을 내보이고 있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조금씩 다가갈수록 뛰어오르는 심장.
비록 낳아준 아비에게 모든 가능성을 빼앗기고 말았지만, 저것만 있으면 다시 나는 용이 될 수 있다.
“뭐해.”
“······!”
그러나 영혼 가득히 차오른 욕망이라 할지라도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만큼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지금 나를 바라보고 있는 푸른 눈동자는 분명 그토록 두려워했던 아버지의 것과 꼭 닮아 있었으니까.
“예전에 버레이라는 선배가 있었는데 말이야.”
창가에 비치는 달빛이 천천히 일어서는 금발에 부딪혀 반짝여 대었다.
몸을 일으킬 때마다 커지는 블라드의 그림자에 라두는 그저 벌벌 떨며 들어왔던 문을 향해 바닥을 길 뿐이었다.
“그 사람이 내 물건을 그렇게 손대고는 했었거든.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동류는 동류를 알아보는 법이었다.
그리고 용으로 태어난 라두는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블라드가 얼마나 커다란 존재인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었다.
“블, 블라드 아우레오.”
모두가 잠든 저택에서 홀로 일어서 있는 남자.
달빛을 등진 채 서 있는 남자의 이름은 방금 라두가 읊조린 대로 블라드 아우레오였다.
“그냥 찔러버렸어. 원래 도벽은 죽어야 낫는 병이거든.”
콰아앙-!
조용한 새벽, 저택에 있는 모두를 깨우는 소리가 있었다.
자고 있던 하인들도 경계하던 경비병들도 화들짝 놀랄 만큼 커다랗게 울리는 소리였다.
“도대체 낳아주신 부모한테 도대체 뭘 배운 거냐 새끼야! 어디서 남의 걸 훔치고 앉아 있어!”
“살려, 살려······.”
그 요란한 소리에 옆 방에 있던 니벨룬과 피에르도 뛰쳐나오고 말았다.
그렇게 뛰쳐나온 복도에서 블라드를 알아본 니벨룬은 손을 들며 반가워했지만 정작 가장 수고했던 피에르는 바닥을 뒹구는 라두를 보며 경악할 뿐이었다.
“아니 이놈아! 내가 어떻게 빼 온 증인인데 때리고 있는 거냐!”
“이거 놔! 내가 오늘 이 새끼 병 낫게 해줄 거니까!”
“이 미친놈이! 일어나자마자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
웅웅웅-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블라드의 검이 울고 있었다.
지금 저 밖에서 형편없이 뒹굴어 대는 두 마리의 용을 보면서.
다만 그 울림에 기꺼움이 깃들어 있는 것은 이제야 잠에서 깬 주인이 반가웠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