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10
그가 갈라진 이유 (1)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는 듯 백작의 얼굴이 부루퉁했다.
그 옆에 서 있는 파블로도, 서재의 문을 지키고 서 있는 경비병들의 얼굴도 그랬다.
아직 동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에 끌려 나오고만 아른슈타인의 사람들은 눈앞에 있는 블라드를 보며 다들 속으로 자그마한 한숨을 내쉬는 중이었다.
“건강해 보여 다행이군. 블라드 경.”
“걱정에 감사드립니다.”
“혈기 또한 넘치는 것 같아 더욱 그렇네.”
“······죄송합니다. 백작님”
매우 피곤해 보이는 아른슈타인 백작을 보며 블라드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말을 내뱉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이제 막 일어났으니 상황 파악이 안 되었겠군.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줘야 할까.”
“아닙니다. 백작님. 이미 제 마법사로부터 대강의 상황을 전해 듣고 왔습니다.”
용살검을 훔치려던 라두를 흠씬 두들겨 패던 새벽이었다.
그 요란한 소리에 달려 나온 니벨룬과 피에르게서부터 대강의 상황을 전해 들은 블라드는 이미 요제프의 배신과 실종에 대해 알고 있던 참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아직도 실감이 나지는 않습니다.”
“하긴. 2주나 누워있던 참이니 제정신을 차리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겠지.”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은 나를 스쳐 지나가던 요제프의 모습이었다.
푸른 달 아래서 창백히 걸어가던 그의 뒷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현실감이 없어서 여전히 꿈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그래도 한번 물어보고는 싶군. 앞으로 어찌할 생각인가?”
“······.”
가까이서 마주한 백작의 눈빛은 마치 차가운 냉차의 향기와도 닮은 것이었다.
씁쓸한 향기처럼 내 정신을 붙잡는 그의 눈빛에 블라드는 그제야 가슴팍에서 올라오는 통증을 느낄 수 있었다.
“손님으로 초대받아 주인에게 큰 피해를 드렸으니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아직 회복하지 못한 큰 상처에도 불구하고 깊이 고개를 숙이는 블라드의 모습에는 분명 진심이 담겨 있었다.
예의에 관해서는 까칠하다고 알려진 아른슈타인 백작조차도 흡족한 표정으로 보고 마는 그런 자세였다.
“그러니 부디 저에게 기회를 주시길 바랍니다. 이 땅의 주인에게 끼친 피해를 보상할 수 있도록.”
그러나 백작은 모를 것이다.
지금 보이는 블라드의 모든 자세는 전부 요제프의 모습을 따온 것이라는 걸.
약했지만 어디서나 당당했던 짙은 눈그늘의 남자는 블라드가 동경하기에 충분한 존재이기도 했으니까.
“어떤 기회를?”
백작을 올려다보는 블라드의 눈빛이 빛나고 있었다.
요제프는 말했었다.
기회는 바로 위기 속에 있는 것이라고.
프라우센의 습격으로 온통 흐트러지고만 아른슈타인이었지만 그렇기에 잔뜩 붕 뜬 이때야말로 지금의 말을 꺼내기에 적합한 순간이었다.
“아른슈타인의 문장을 빌려주십시오.”
블라드는 고개를 돌려 서재 구석에 꽂혀 있는 아른슈타인 가문의 문장을 바라보았다.
온통 엉망이 된 서재였음에도 홀로 꼿꼿이 서 있는 깃발의 모습은 백작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저에게 백작님의 문장을 빌려주신다면 그들의 심장을 꿰뚫을 때 가장 먼저 아른슈타인의 이름을 외치겠습니다.”
나를 당신의 분노를 대신할 검으로 삼아달라.
그렇게 한다면 그들을 꿰뚫을 때 가장 먼저 아른슈타인의 이름을 외쳐드릴 테니.
“······.”
똑. 똑.
서재에 서 있는 사람은 셋이었지만 들리는 소리는 하나뿐이었다.
모두의 침묵을 틈 타 들리는 소리는 테이블을 두들겨대는 아른슈타인 백작의 손가락 소리였다.
“꽤 괜찮은 한 수군.”
어느새 의자에 등을 깊게 묻은 아른슈타인 백작이 웃고 있었다.
속이 뻔히 보이는 수이기는 했지만, 그것을 쥐어짠 블라드의 의도가 기꺼웠기에 보이는 미소였다.
“그래. 이렇게 해야지. 사람이란 본래 시도라는 걸 해야 하는 거야.”
“······.”
“그 태도 마음에 들었네. 좀 더 신중했다면 좋았겠지만”
본래 사람은 만들어진 것보다는 자라난 것을 보며 더 큰 기쁨을 느끼고는 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지금 백작은 비록 속이 환히 들여다보이기는 해도 어떻게든 해보려는 블라드의 야성적인 발버둥에 큰 점수를 주고 있었다.
“주겠네. 나의 문장.”
백작은 처음 이 저택에 들어왔을 때 블라드가 가져왔던 작은 깃발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타고 있던 검은 말에 매달려 있던 그 깃발은 소드마스터의 규율만큼이나 오래된 기사들의 관습이었다.
“받아 간 나의 문장으로 자네와 자네 일행들의 결백을 증명하게.”
중부의 맹주 아른슈타인의 이름은 분명 곳곳에서도 통할 이름이었다.
북부면 몰랐어도 중부에서는 아무런 기반이 없던 블라드였기에 프라우센과 요제프의 뒤를 쫓기 위해서는 그의 협조가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감사합니다. 백작님.”
“부디 잊지 말게. 자네가 나한테 내건 조건을.”
그러나 대가 없는 협조는 없는 법.
백작의 입은 웃고 있었으나 블라드를 바라보는 눈만큼은 웃고 있지를 않았다.
“요제프의 심장에 반드시 내 문장을 꽂아야 하는 걸세.”
“······.”
뒤돌아선 블라드는 그의 눈을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잡고 있는 문고리만큼이나 차가운 그의 목소리에는 분명 무시하기 힘든 무거움이 깃들어 있었다.
※※※※
“나. 나는 라두 드라굴리아요. 제국 귀족인 나에게는 자격이 있소.”
홀쭉 쪼그라든 노인의 얼굴이었으나 나오는 목소리만큼은 젊은 것이었다.
그 기묘한 어긋남이 견디기 힘들었던 듯 니벨룬의 표정이 조금씩 구겨져 가고 있었다.
“정당한 포로의 권리를 주장하겠소. 나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으니!”
드라굴리아 저택의 지하에서부터 제정신이 아니었던 라두였으나 지금은 어느새 제 안위를 챙길 만큼 회복한 상태였다.
비록 그 안위를 내뱉는 경위가 꽤 비루한 것이었으나 이 정도면 북부로 가는 도중에 객사하지는 않을 것 같아 보일 정도였다.
“그러니까 남의 검을 훔치기는 왜 훔쳐요. 그게 블라드 님이 얼마나 아끼는 검인데.”
“훔친 게 아니다! 그냥 가서 본 건지!”
“그 정도면 훔친걸세. 훔친 거야.”
이른 새벽부터 난리를 겪은 니벨룬과 피에르는 힘이 빠졌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라두를 죽일 듯 후려치는 블라드의 주먹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으니까.
빼앗는 인생만을 살아온 전직 소매치기는 누군가에게 빼앗기는 것을 죽는 것보다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어쨌거나 피에르 님은 저를 보호해 줄 의무가 있으십니다. 당신께서 신의 이름으로 저를 이곳까지 데려온 것 아닙니까?”
“······하여간 용놈들 치고 마음에 드는 놈이 하나 없구만.”
피에르는 자신에게 달라붙는 피에르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목숨을 살려준 일에 감사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안전을 보장하라며 소리치는 꼴이라니.
이거야말로 물에 빠진 놈을 건져줬더니 보따리까지 내놓으라는 격 아닌가.
“······일단 진정하고. 설마 죽이기야 하겠나.”
“그 놈은 진짜 죽일 놈이오! 처음 봤지만, 기사의 감각이 말하고 있소이다!”
배다른 동생이자 또 다른 용인 블라드에게 잔뜩 위축된 라두를 보며 일단 진정시키려 한 피에르였지만 그 수고는 그저 헛되게 날아가고 말았다.
콰앙-!
“왜 이렇게 시끄러.”
“으아아아!”
“도대체 문은 왜 박차고 들어오는 거냐! 문고리라는게 붙어 있잖아!”
셋이 모여 있는 방을 뻥 소리와 함께 차버리고 들어온 블라드를 보며 피에르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블라드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겨우 진정시켜놓았던 라두가 다시 경기를 일으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잘 됐다. 너 잠깐 여기 있어 봐.”
“블라드, 블라드 아우레오! 나는 권리가 있다!”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아까 덜 맞았어?”
평소에도 까칠한 블라드였으나 오늘따라 더욱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라두는 그런 블라드를 보며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판단에 따라 재빨리 입을 닫았다.
“니벨룬. 지금 마법 전보를 사용할 수 있겠어?”
“그럴걸요?”
“그러면 스투르마에 연결해줘. 이미 아른슈타인 백작의 동의는 얻었거든.”
블라드는 니벨룬에게 자그마한 쪽지 한 장을 건네주며 말했다.
그 쪽지는 바예지드의 본가인 스투르마의 저택에 연결된 마법구와 연결할 수 있는 번호가 적힌 쪽지였다.
“루트거 님과 연결해드릴까요?”
“아니.”
“그럼 누구와?”
스투르마라고 하기에 루트거와 연결할 줄 알았던 니벨룬이었지만 정작 블라드는 다른 이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루트거 님의 마법사인 도로테아랑. 그녀에게 각인술에 관해서 물어볼게 있어.”
루트거의 마법사인 수인족 도로테아는 블라드에게 있어 처음 신비를 보여준 인물이기도 했다.
블라드는 가장 단단한 용인 데스웜을 상대할 때 장식 없는 검에 진동의 각인을 새겨준 그녀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 검에 뭘 하나 새겨야 할 것 같아. 그래서 그녀가 가진 정보가 필요해.”
“알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활발히 움직이는 모습이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니벨룬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날 뿐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을 바라보는 블라드의 눈빛은 무언가 단서를 찾았다는 듯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으니까.
“······라두 드라굴리아.”
니벨룬이 나간 방에는 어느새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라두를 바라보는 블라드의 눈동자에 무어라 말하기 힘든 기이한 광기 같은 것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사냥감을 바라보는 포식자의 눈빛과도 같은 것이었다.
“너에 대해 들었다. 용살 기사단 출신이라지?”
“그, 그렇다!”
“사르누스 공작의 심복이기도 했고. 그래서 모시암을 치러 온 군대의 사령관까지 맡았었나?”
니벨룬이 앉아 있던 바짝 끌어당긴 블라드는 라두의 숨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붙어 있었다.
“그래. 내가 그 당시 총 책임자였지.”
블라드의 말에 예전의 자신을 기억했다는 듯 라두의 허리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비록 잔뜩 비루해진 지금이었지만 예전에는 촉망받는 기사였으며 완벽한 용을 꿈꾸던 드라굴리아였던 적이 있던 라두였다.
“너 그 여자랑 알고 지내는 사이지? 검은 상복 입고 다니는 흑마법사 말이야.”
모시암에 있던 드라굴리아의 군대는 분명 수상한 행적을 보였었다.
같이 종군하던 주교 피에르의 주장을 무시한 채로 그저 포위만을 한 채로 반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낸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비록 북부를 압박하기 위한 늦장이었다고는 하나 그렇게까지 원활한 지연이 가능했던 것은 분명 라마슈트와 드라굴리아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증거였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군.”
“발뺌하지 마라. 이야기만 들어도 구린 냄새가 나는데.”
코앞에서 으르렁대는 블라드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지만 라두는 애써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애초에 지금 블라드가 물어보려 하는 질문 자체가 북부정교회가 원하는 답이었으며 또한 자신이 거래를 걸 수 있는 유일한 가치 있는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놈들 만난 적 있지?”
“북부에 가서 말하겠다.”
“본거지 알아 몰라? 접선지 정도는 알 거 아냐.”
“북부에 가서 말하겠다.”
살기 위해서 혹은 재기를 위해서 쉽사리 입을 열지 않는 라두를 보며 블라드가 호르헤의 단검을 꺼내들었다.
드워프들이 다듬어 더욱 날이 선 단검은 닫혀 있던 입도 열게 할만큼 새파란 것이었으나 곧 피에르에 의해 저지되고 말았다.
“하지 마라. 고문은 안 돼.”
“왜요?”
피에르의 굳은 표정에 블라드가 멈칫하고 말았다.
아무리 갈 길이 바쁘다 하더라도 내게 붕대를 감아준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아보았기 때문이었다.
“라두 드라굴리아는 제국 귀족이자 신의 보호를 받는 자일세. 그는 제국법과 교회의 섭리를 따라 안전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어.”
“그 보호는 누가 허락했는데요?”
“내가.”
이단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혹독한 고문자인 피에르였지만 라두에게 있어서만큼은 훌륭한 보호자가 되어야만 했다.
“내 이름으로 신의 가호를 요청했네. 다시 말해 그가 가지는 포로의 권리는 곧 내가 치르는 성전이라는 뜻이지.”
“······.”
새벽의 일이야 급작스러운 사고였지만 알고 있는 지금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피에르의 이름 아래 그어진 가호를 무시 할 생각이 아니라면 블라드 또한 라두에게 포로의 권리를 인정해줘야만 했다.
“북부에서 사람들이 언제쯤 온답니까?”
“3일 후일세.”
“시간이 없네요.”
시간이 없다는 블라드의 말에 라두가 더욱 고개를 곧추세웠다.
바로 앞에 있는 위협이었으나 블라드가 정당한 명분으로 자신을 해할 수 없음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포로로서의 권리만 인정해주면 돼요?”
그런 라두를 보며 블라드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사태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라마슈트와 관련이 있는 라두를 이대로 북부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자네는 기사이니까. 라두에 대한 보호는 기사로서의 의무를 행하는 것이지.”
“기사 아니면요?”
“뭐?”
피에르는 서둘러 갑옷을 벗어던지는 블라드는 보며 놀란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니벨룬의 도움을 받아 애써 입은 갑옷이었으나 지금 블라드는 그것들을 훌훌 벗어던지고 있었으니까.
“기사가 아닌 상태에서 때리고 그러는 건 괜찮죠?”
“그게 무슨?”
차마 말릴 사이도 없었다.
민첩한 블라드의 몸짓은 아무리 부상을 입었다고 해도 피에르가 건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퍼억!
“형님! 만나서 반갑네!”
“아니, 아니!”
형님을 부르짖는 블라드의 말을 따라 매서운 주먹질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반가운 건 반가운 건데 왜 동생이 궁금해하는 건 안 알려주는 거야? 지금 나 무시하는거야!”
“이 미친 새끼가! 돌았어!”
절대로 고문은 아닐 것이다.
그저 형을 찾는 동생이 부리는 행패일 뿐이지.
라두는 지금 블라드가 부리려는 수작이 무엇인지를 깨닫고는 두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네가 왜 내 동생이야!”
“아비가 같은데 왜 내가 네 동생이 아니야!”
정보를 알아내려 하는 고문이 아닌 그저 형제의 싸움을 본 피에르는 자신을 바라보는 블라드의 눈빛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 있을까?”
“한 시간이면 될 것 같아요.”
“나가지 마! 나가지 마시오!”
제국법도 그리고 교회의 규율도 형제의 사사로운 싸움까지는 제재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알아챈 피에르는 볼일 보라며 조용히 방 밖을 나서 줄 뿐이었다.
그리하여 보는 이 없는 방 안에서는 동생과 형이 부리는 싸움만이 격렬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