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17
최고의 길잡이 (2)
드드드득-
기이한 진동이었다.
끊길 듯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진동.
지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오래 이어지는 그 진동에 시체처럼 앉아 있던 남자가 감았던 눈을 조용히 뜨기 시작했다.
“······결국, 이렇게 되었군.”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공간이었다.
그러나 프라우센은 마치 앞이 보이기라도 한다는 듯 자연스레 일어나는 중이었다.
“사르누스.”
프라우센의 세계는 이미 빛을 잃은 세계였다.
그러나 가슴 속에 박아넣은 조각을 통해 용의 세계는 엿볼 수 있었으니, 지금 프라우센은 감고 있는 그의 왼쪽 눈에서는 서서히 용의 모습을 갖춰가는 사르누스와 그에게서 도망가려는 블라드가 떠오르는 중이었다.
“네가 결국은 나와의 맹약을 깨고 용의 조각을 삼키고 말았구나.”
굳은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프라우센이 조용히 미소 짓기 시작했다.
점점 짙어지는 가장 오래된 용의 존재감과 그에게서 달아나려 하는 가장 완벽한 용의 흔적.
어찌 그렇게 예전의 자신이 예측한 대로 똑같이 움직이는지 프라우센은 오히려 허탈해질 지경이었다.
“그것이 독인 줄도 모르고.”
마지막 말을 마친 프라우센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향하는 문 앞에 섰다.
가장 오래된 용이 기어이 황실의 조각을 삼키고 말았으니 이제는 자신이 움직여야 할 차례였기 때문에.
“역시 너를 살려두기를 잘했다. 사르누스.”
문을 열어젖힌 그곳에서도 프라우센을 반기는 것은 어둠뿐이었지만 그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바닥에 깔린 그림자들을 밟아나갈 뿐이었다.
이 길을 걸어가는 도중에도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고 있었기에 그는 이제 자신이 뿌려놓은 일들의 마무리를 지어야만 했다.
※※※※
치이익-
성냥이 타는 소리와 함께 어두웠던 굴에 불이 밝혀지고 있었다.
어깨를 맞닿아야 할 정도로 좁고도 깊은 굴에서 이제야 서로를 알아볼 수 있게 된 일행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이게 다 뭐랍니까? 구멍이 왜 생겼죠?”
“나도 모르지. 마법사인 네놈이 모르면.”
“젠장. 지릴 뻔했잖아!”
한참을 떨어져 내렸던 라두는 그 기억을 떠올리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흔들어대었다.
그러나 그 끔찍했던 부유감과는 달리 자신들은 아무런 상처 없이 멀쩡했고 그 이유는 아마도 지금도 빛나고 있는 작은 두더지 때문일 것이다.
뀨-!
이제야 정신을 차린 일행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블라드를 향해 쏠리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블라드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빛나는 두더지를 향해서였다.
“저 쥐새끼는 뭐냐.”
“쥐새끼가 아니라 두더지입니다. 두더지.”
“두더지인데 왜 빛나? 지가 무슨 반딧불이야?”
기이한 모습의 두더지를 보며 일행이 조금씩 웅성대고 있었으나 정작 녀석은 자신을 칭찬하는 줄 아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칭찬이라도 듣고 있는 것 같은 그 모습에 니벨룬은 자신도 모르게 주머니에 있던 빵 조각을 건네줄 정도였다.
“······빵가루 떨어지잖아. 이 자식아.”
이제야 의식이 되돌아온 블라드는 자기 머리 위에서 욤뇸뇸 거리는 두더지를 올려다보며 잔뜩 인상을 찌푸려대었다.
그러나 그런 민폐에도 녀석을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은 지금의 구멍이 아니었다면 자신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죠?”
“그거야 파 놓은 놈한테 물어봐야지.”
길은 하나였지만 뻥 뚫린 굴은 앞뒤 방향으로 나 있었다.
그중에서 어느 곳을 선택해야 할지 몰랐던 블라드는 손가락을 들고는 퉁명스레 두더지의 옆구리를 찔러대었다.
“이제 어디로 가. 인마.”
뀨-!
블라드가 꾹 지른 손가락에 놀랐다는 듯 자세를 일으킨 두더지는 곧 짧은 팔을 들고서는 어느 곳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온통 깜깜한 굴이었으나 녀석이 가리키는 방향은 아까 달아나려 했던 산 쪽이었고 도시에서 빠져나온 루가 족이 향했던 곳이기도 했다.
“가자.”
나아갈 방향을 정한 블라드는 잠시 고개를 들어 올려 자신들이 떨어졌던 입구를 바라보았다.
검은 장막에 뚫린 구멍처럼 빛나고 있는 저 위에 지면.
그곳에 서 있을 용혈공을 떠올린 블라드는 애써 고개를 돌리며 두더지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저 대신 도망치게 해서 미안해요. 키하노.’
[······괜찮다.]복잡한 자신의 심정과는 달리 곧게 뻗어 있을 뿐인 두더지의 굴.
블라드는 아무 생각 없이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사실에 위로받으며 조용히 자신을 대신해 준 키하노에게 감사의 말을 건넸다.
※※※※
굴에서 빠져나온 일행이 가장 먼저 고개를 내민 곳은 아까 보았던 산이 있던 곳이었다.
도시 나마르카에서도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산이었고 아직도 저 멀리 새까맣게 모여 있는 드라굴리아의 군세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살아남았구나.”
블라드는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루가 족의 대모와 만날 수 있었다.
위치가 노출될 수 있음에도 자그마한 모닥불로 연기를 피우고 있던 그녀는 방금까지도 신비를 부리고 있었다는 듯 땀으로 이마가 축축한 상태였다.
“땅의 정령이구나. 이 녀석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대모는 블라드의 머리 위에 얹혀 있는 두더지가 신기하다는 듯 눈을 밝히고 있었다.
“대모 님이 부르신 겁니까?”
“내가 부르긴 했는데······. 땅의 정령이 튀어나올 줄은 나도 몰랐지.”
설명할 수 없기에 신비이고 예측할 수 없기에 마법이다.
루가 족의 대모는 분명 자신이 부린 신비이긴 했으나 예측했던 결과는 아니었다는 듯 블라드의 머리 위에 있는 두더지를 보며 놀라워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둘 사이에 인연이 있었던 모양이로군. 원래 이 정도의 존재를 부리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한 법이니까.”
어렴풋이 한 짐작이었으나 그녀의 말이 맞았다.
북쪽에서부터 시작된 산맥을 따라 도브레치티에서 이곳까지 내려온 빛나는 두더지.
그 먼 곳에서 단숨에 이곳까지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대모가 뿌린 신비뿐만 아니라 용살검에 맺힌 세계수의 가능성과 함께 블라드와의 인연까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뀨-?
대화를 마친 잠깐의 침묵 사이로 이제는 어떻게 해야 돼 라고 묻는듯한 두더지의 외침이 있었다.
그 소리를 들은 블라드는 주변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다 해서 몇 명이죠.”
“대략 300명 정도지.”
“갈 곳은 있나요?”
블라드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루가 족의 피난민들을 보며 볼을 긁적였다.
그러나 갈 곳이 있냐고 물어보는 블라드의 대답에 대모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었을 뿐이었다.
“이게 다 고향을 잃어버린 죄지. 뿌리내린 땅이 아닌 다음에야 어디에서 우리를 반가워해 주겠나.”
신비를 부리기에 교회가 배척하고 생긴 모습이 다르기에 사람들이 내쫓고 마는 수인족들.
그들의 역사는 곧 방랑의 역사였으니 그나마 근본 없는 땅인 나마르카에서나마 잠시나마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던 그들은 그 너저분한 골목마저도 용들의 방문으로 인해 또다시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일단은 여기서 벗어나죠. 북쪽으로 움직이다 보면 방법이 있을 겁니다.”
블라드는 자신 때문에 터전을 잃어버리고만 루가 족들을 보며 적지 않은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일단은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블라드는 머리 위에 있는 두더지를 올려다보았다.
“최대한 북쪽으로 가고 싶은데.”
뀨-?
“여기 사람들 다 데리고 갈 수 있을 만한 장소 없겠어?”
블라드의 말에 고민이라도 한다는 듯 발을 탁탁 치기 시작하는 빛나는 두더지.
블라드는 자신의 머리 위에서 보이는 그 꼴이 영 마뜩잖았지만 길을 제시해 줄 존재는 이 녀석뿐이기에 차오르는 화를 꾹꾹 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빨리 생각해.”
블라드의 서늘한 재촉에 두더지는 마침내 생각이 났다는 듯 두더지는 머리 위에서 굴러 내려와 자신이 파놓은 굴 앞에 섰다.
뀨뀨-!
마치 이곳으로 가자는 듯 휘둘러대는 짧은 두 팔.
두더지가 보이는 작지만 격렬한 움직임을 보며 블라드와 루가 족의 대모는 서로 시선을 마주치고 있었다.
※※※※
옆에 보이는 창은 넓고 비치는 햇빛은 따사로운 방이었다.
요제프는 그 빛을 따라 보이는 방 안의 장식품들을 눈여겨보며 조용히 앞에 있던 찻잔을 들어 올렸다.
“엘프들의 양식에 관심이 많으신가 보군요.”
요제프가 둘러보는 방 안은 온통 엘프들과 관련된 장식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엘프들의 장식품들은 지금 당장 경매에 내놔도 한 몫은 챙길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고풍스러운 멋이 있었다.
“예전에는 그랬던 시절이 있었지. 최대한 그들의 비위를 맞춰주려 했었거든.”
그 말과 함께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은 비츠카야 백작은 앞에 있는 요제프를 보며 빙긋이 웃어댔다.
방금 마셨던 차를 깊게 들이마셨는지 하얀 수염에 묻어 있는 찻물이 새까맣게 묻어 있었다.
“엘프들이 보내는 물건들이 곧 내 영지의 특산품이었고 숨통이었던 시절이었지. 물론 지금은 처참하게 망가지고 말았지만.”
한때는 엘프 무역의 중심지였으나 이제는 철저하게 쇠락하고만 도시 타노보.
그곳의 주인인 비츠카야 백작은 지난날의 기억이 쓴 모양인지 혀로 입술을 내두르고는 말을 이었다.
“엘프 놈들은 제멋대로 교역을 끊고 용혈공은 압실론에 대한 의심을 우리에게 모두 몰아버렸으니 아무리 나라도 버틸 재간이 있겠나.”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던 비츠카야 백작은 잠시 요제프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백작인 자신이 가문에서 쫓겨난 남자의 눈치 따위를 보는 것이 우스운 광경이기는 했으나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때마침 이렇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는 자들이 있으니 사람이 영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지.”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지금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요제프라는 남자는 새까만 어둠이 직접 보낸 전령이었으니까.
용혈공이 보냈던 지원이 모조리 끊어진 지금, 영지의 생존을 도모하고 엘프라는 자원을 온전히 독점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비츠카야 백작은 잘 알고 있었다.
“세계수인지 뭔지 엘프의 땅에서 당신들이 원하는 것은 모두 가져가도 좋네. 그동안 자네들이 머물 땅도 식량도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걸세.”
“······.”
백작의 말을 듣고 있던 요제프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기 시작했다.
방금 마셨던 찻물의 효과가 돌기 시작했는지 점점 까맣게 빛나기 시작하는 백작의 두 눈.
자신의 욕망을 전혀 숨기지 않는 백작의 눈빛에 요제프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본래 어둠이란 사람이 가장 어두운 곳에 있을 때 다가오는 법이었다.
도저히 혼자서 벗어날 수 없음에도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을 때 조용히 다가와 그들의 눈을 가리는 것이 바로 어둠이었다.
“백작님의 굳은 의지. 확실히 전달해드리겠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들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다가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내주고 있었으니까.
어린 아들의 목숨을 살리고자 했던 모시암의 남작처럼, 곧 있으면 죽고 말 자신처럼.
시기적절하게 원하는 것을 내미는 라마슈트의 손길은 그 누구라도 쉽게 떨치기 힘든 강렬한 유혹과도 다름없는 것이었다.
“고맙네! 내 이 일이 잘 풀리면 자네에게도 섭섭치 않게 대할 것이야.”
연신 고맙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비츠카야 백작을 보며 요제프는 내려놓았던 찻잔에 다시 손을 뻗기 시작했다.
새까만 색깔만큼이나 쓰고 비린 차의 맛이 요제프는 여전히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 차가 품고 있는 어두운 향은 필요했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드드드득-
“음?”
그러나 뻗고 있던 요제프의 손은 미처 찻잔까지는 다다르지 못했다.
미묘하게 울리기 시작하는 건물의 진동에 내뻗던 손을 멈칫했기 때문이었다.
“지진?”
평소에는 지진 한번 없던 비츠카야 백작령의 도시 타노보.
그러나 오늘만큼은 도시의 모두가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진동이 땅 밑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지하에서부터 파내고 있다는 듯 불쑥 솟아오른 흙더미와 함께 시작된 그 진동은 저 멀리 남쪽에서부터 시작되어 엘프들의 숲이 있는 아우슈린까지 이어지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