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18
재회 (1)
주위에서 느껴지는 시선들이 날카롭다.
홀로 가죽 수통에 담긴 술을 넘기고 있던 자야르는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목 없는 자들의 시선을 느끼며 뚜껑을 닫았다.
“왜 한 잔씩들 드릴까?”
따스한 봄날이었건만 목 없는 자들이 서 있는 이곳만큼은 아직도 서리가 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자야르는 그런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차가운 시선들을 향해 이죽거릴 뿐이었다.
“아. 마실 입들이 없으셨지. 내가 그걸 몰랐었네.”
죽은 자들 사이에 서 있는 유일하게 온기 있는 자.
주위의 광경과는 너무나 이질적인 그 모습이 마치 결이 다른 그림과도 같아 보였지만 자야르는 한 발자국도 밀려서지 않은 채 죽음들 사이에 서 있었을 뿐이었다.
“자야르.”
점점 험악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때마침 자야르를 향해 조심스레 부르는 손짓이 있었다.
이제야 비츠카야 백작과 이야기를 마치고 나온 요제프가 부르는 손짓이었다.
“어떻게 되셨습니까?”
“협조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백작은 아우슈린을 자신의 마지막 돌파구로 생각하는 모양이야.”
아우슈린을 향한 비츠카야 백작의 집착은 분노와 욕망을 장작 삼아 이미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라마슈트의 명을 받아 백작의 집착을 확인하고 온 요제프는 저 앞에 보이는 광경을 보며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백작의 병사들과 함께 움직인다. 아무래도 살아있는 자는 살아있는 자와 함께 움직이는 것이 맞겠지.”
지금 요제프의 시야가 닿고 있는 곳에는 온갖 불길한 것들이 가득했다.
죽음에서 되살아 난 목 없는 자들이 있었다.
사지가 온통 뒤틀려버린 저주받은 존재들도.
그림자처럼 떠도는 저주 어린 영체들과 온갖 곳에 사지가 달린 커다란 시체 덩어리까지도.
이 모든 존재들이 라마슈트라는 거대한 어둠에 이끌려 온 흑마법사들이 만들어 낸 사특한 것들이었다.
“······이렇게 보니 그야말로 장관이로군. 그동안 어찌 이렇게 많은 이들이 숨어 있었는지.”
마치 인세에 재현된 지옥과도 같은 야영지의 모습에 냉정을 유지하던 요제프조차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평소에는 그토록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던 존재들이었건만 지금은 눈길 닿는 곳곳마다 있었으니 아무리 요제프라 할지라도 냉정을 유지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이것들을 도대체 누가 치워낼 수 있을까.”
한 눈으로 담기에는 너무나 많은 어둠이었다.
각오하고 있던 자신조차도 차마 눈을 뜨고 보기 힘들 정도의 어둠들.
그러나 지금 보이는 이 모든 사특한 존재들은 결국 의무를 다해야 하는 자들이 여태껏 무시하고 있던 찌꺼기들이었으니, 결국 누군가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독을 감당해야만 했다.
“가지. 여기에 더 있다가는 숨이 막혀 죽고 말겠군.”
“알겠습니다.”
애써 고개를 돌린 요제프가 죽음이 가득한 야영지를 넘어 비츠카야의 주둔지로 향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이 모든 것들이 그동안 쌓아왔던 업보일 것이다.
귀족은 권력을 가지는 대신 의무를 지며 신앙은 믿음을 가지는 대신 책임을 져야 하지만 지금의 권력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으므로.
그렇기에 요제프는 결국 이들이 만들어낸 종기들이 결국은 자신들의 세대에서 터지고 말 것임을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
녹음이 무성한 숲이었다.
위에서 올려다본다면 마치 초록색으로 칠해진 바다가 아닐까 싶을 만큼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숲.
그 숲 한가운데서는 지금도 어린 세계수 한 그루가 빼꼼히 솟아올라 녹색의 바다를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지금 비츠카야 군의 동향은 어떻지?”
그러나 이 평화로운 광경 속에서도 바라디스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을 뿐이었다.
봄이라는 계절답게 밖에 보이는 풍경이 꽤 그럴싸했지만 정작 바라디스의 얼굴에는 여유라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어 보였다.
“어림잡아도 천 명은 되는 군사들입니다. 비츠카야 백작이 이번만큼은 사활을 건 것 같습니다.”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은 모양새입니다. 정찰병들의 보고에 따르면 지금 당장이라도 진격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무겁게 물어본 질문 뒤로 다급한 대답들이 들려왔다.
경험 많은 레인저들조차 긴장할 만큼 지금의 상황은 급박했고 이제 그 시작이 머지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군.”
보고를 들은 바라디스는 속으로 자그맣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천 명에 가까운 인간들의 군대와 더불어 지금도 계속해서 합류하고 있는 되살아난 자들까지.
인간들의 군대야 해볼 만하다 치더라도 세계수의 바로 앞까지 쳐들어왔다던 되살아난 자들의 존재는 조금씩 바라디스의 신경을 갉아 먹는 중이었다.
“결계는 언제 다시 복구된다고 하지?”
“빨리 잡아도 한 달은 더 걸릴 거라고 합니다.”
들려온 보고를 들은 바라디스는 살짝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한 달.”
창밖 너머 보이는 어린 세계수 아래에는 지금도 힘겹게 허리를 굽힌 채 무언가를 끄적이는 노인들이 가득했다.
장수족인 엘프답게 숲에 서 있는 나무들보다 오랜 삶을 살아왔을 장로회의 장로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노쇠한 육체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전에 깨어졌던 숲의 보호 결계를 다시 이으려 애쓰는 중이었다.
‘상황이 만만치가 않군.’
나이와 직위에는 상관없이 능력 있는 자들이라면 모조리 바삐 움직여야 하는 지금의 상황.
어쩌면 가장 날카로운 용인 니드호그들이 쳐들어왔을 때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었으나 어디 하나 도움 구할 곳 마땅치가 않은 것이 지금 엘프들이 처한 현실이었다.
똑똑똑.
“음?”
순간, 바라디스와 레인저들이 있던 집무실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이 시각에 자신을 찾아올 사람이 없는 것을 알고 있던 바라디스는 의아한 눈빛과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엘프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지?”
“······그것이.”
지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엘프는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한시도 빠짐없이 세계수를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엘프였으니까.
그러나 지금 그는 창백한 안색으로 이곳에 서서는 바라디스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죄송합니다. 바라디스 님.”
“무엇이?”
세계수를 지키던 엘프였다.
정확히는 세계수와 함께 바라디스의 여동생인 신녀를 지키던 엘프.
그 엘프가 지금 바라디스의 앞에 서서는 면목이 없다는 고개를 떨구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신녀님께서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안전을 중시해야 하는 때였다.
그러나 세계수와 함께 소중히 지켜야 할 신녀가 밖으로 나갔다는 말에 집무실에 있던 엘프들의 안색이 급격히 바뀌기 시작했다.
“어째서 그러셨지. 이유가 있을 텐데?”
“모르겠습니다. 손님을 마중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막무가내로 나가버리시고 말았습니다.”
“손님?”
자신들이 아무리 앞을 막아서도 끝끝내 밖으로 나서고 말았다는 세계수의 신녀.
손님이 왔다는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위험한 밖으로 나가버린 그녀의 행동에 바라디스는 기묘한 기시감을 느끼고 말았다.
“손님이라······.”
평생 밖으로 나가본 적 없던 신녀였지만 오늘처럼 고집을 부리며 숲 밖으로 나서려 했던 적이 있었다.
자신이 직접 맞이하지 않으면 안되는 귀한 손님이 온다는 말과 함께.
아마 그때가 블라드라는 인간들의 기사를 처음 만났던 때임을 바라디스는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레인저들을 보내라. 신녀님을 호위해.”
그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선 바라디스는 창가로 다가가 밖에 있는 어린 세계수를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더욱 흔들거리는 것만 같은 녹색의 나뭇잎들.
바람이 불지 않음에도 움직이는 나뭇잎 사이사이에는 무언가 기쁜 듯 날뛰고 있는 어린 정령들이 가득했다.
※※※※
빼곡히 나무들이 들어선 엘프들의 숲이었지만 가끔은 이렇게 햇빛이 충만한 공터도 있기 마련이었다.
푸르른 토끼풀이 가득한 숲의 한 공터.
뾱-!
꽃을 찾아다니는 나비들만이 나풀거리고 있는 그곳에서 갑작스레 고개를 내민 녀석이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땅 밑을 헤매던 녀석은 머리 위로 비치는 햇빛이 눈 부시다는 듯 그 작은 눈을 잔뜩 찌푸리며 짧은 손을 휘적여대었다.
“됐냐? 이제 나가도 돼?”
뀨뀨-!
“다 왔으면 이제 좀 비키지. 언제까지 내 머리 위에 있을 거야.”
화를 잔뜩 참은 듯한 사내의 목소리였다.
땅 밑에서부터 들려오는 그 스산한 목소리에 꽃잎을 맴돌던 나비들이 놀라 하늘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
고개를 내밀고 있던 두더지 밑으로 사람 머리 하나가 조심스레 솟아올랐다.
비록 흙더미에 의해 더럽혀지기는 했지만, 햇빛에 빛나는 금발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뭐야. 여기가 어디야?”
어두운 굴속에서 고개를 내민 블라드는 갑작스레 보이는 초록색의 향연에 잔뜩 긴장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만 해도 황무지 한가운데 있던 블라드였기에 지금 보이는 광경이 도저히 적응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뀨뀨-!
“도대체 어디까지 데려온 거야. 인마.”
물어보는 블라드의 말에도 이제 자신의 할 일은 다 했다는 듯 축 늘어지고만 빛나는 두더지.
쉴 새 없이 굴을 뚫어 일행들을 이곳까지 이끈 두더지는 잔뜩 지친 몸을 널브러뜨리며 혀를 빼물기 시작했다.
“······그래 쉬어라. 어디든 거기보단 낫겠지.”
지쳐버린 두더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블라드는 녀석을 조심스레 땅 위에 내려놓고는 밖으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잔뜩 긴장한 자세로 귀를 쫑긋거리는 블라드의 모습은 마치 굴속에서 막 빠져나온 늑대를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숲인데.”
예민한 오감을 동원해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파악한 블라드는 지금 자신이 숲 한가운데 서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화사한 색들이 가득한 꽃밭 한가운데였다.
“며칠 거리 내에 이만한 숲이 있었나?”
블라드는 주변에 보이는 풍경에 의아해하며 혼잣말을 내뱉고 말았다.
루가 족의 피난민들을 이끌고 빛나는 두더지가 뚫어 준 굴을 통해 걸어온 지가 며칠.
그러나 아무리 중부의 지리에 어두운 블라드라 할지라도 고작 며칠 거리 내에 이만한 숲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던 참이었다.
“그거야 정령이 인도한 길을 따라와서 그렇죠.”
“······!”
당황해하던 블라드의 옆으로 갑작스레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아무런 기척이 없던 것을 확인했던 블라드는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너는?”
“오랜만이에요.”
그러나 정작 블라드를 놀라게 한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동안 내가 보낸 그림들은 도움이 되었어요?”
바람결에 흔들거리는 꽃밭 앞에서 블라드를 바라보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챙이 긴 넓은 모자를 쓰고 꽃밭 앞에 서 있는 소녀의 모습.
흔들리는 꽃들과 같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서 있는 소녀의 모습은 마치 그곳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전혀 위화감이 없어 보였다.
“네가 왜 여기 있어?”
블라드의 놀란 물음과 함께 땅 밑에 굴에서부터 루가 족의 피난민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랄 것도 없이 밝은 빛에 놀라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며 나온 사람들은 이윽고 보이는 눈앞의 광경에 놀라 입을 크게 벌리고 말았다.
“······여기는.”
더러운 골목도, 황량한 황무지도 아닌 녹색의 물결로 가득한 엘프들의 숲.
이제야 시야를 회복한 루가 족의 아이들은 저 멀리 보이는 커다란 나무를 보며 자신들도 모르게 새된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나무다!”
“뭐야! 나무가 엄청나게 커!”
정령이 인도해 준 길이 있었기에 다다를 수 있었던 동쪽 끝의 숲. 아우슈린.
그 숲을 내려다보던 어린 세계수는 자신을 보며 놀라는 어린 수인족들을 보며 반갑다는 듯 나뭇잎을 흔들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