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24
불타버린 교회 (1)
잔뜩 눌러붙은 눈꺼풀을 치켜뜬 대모의 눈길이 블라드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가 들고 있는 날카로운 바늘 또한.
치이익-
“큭!”
대모가 내뿜는 담배 연기와 함께 살이 타는 매캐한 냄새가 가득했다.
그녀가 들고 있는 뜨거운 바늘이 블라드의 피부를 꿰뚫을 때마다 방 안의 공기는 무거워졌고 자욱한 연기는 더욱 짙어 지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저주야.”
대모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한 땀 한 땀 새겨져 가는 번개의 문양.
블라드의 손등에서부터 시작한 그 문양은 어느새 어깻죽지까지 타고 올라가 블라드의 왼팔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타인의 세계에 불순물을 넣는 저주. 본래는 우리 마법사들이 기사들을 상대하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었지.”
태연한 척하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블라드의 얼굴에는 이미 고통의 기색이 완연히 번지고 있었다.
지금 루가 족의 대모가 새겨주는 문신은 피부가 아닌 영혼 안에 새겨지는 것이었으니까.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강렬하게 다가오는 고통에 어느새 블라드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가득 맺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순물이 뭔지는 자네도 이미 알고 있겠지?”
고통 때문인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블라드를 보며 대모가 물고 있던 담뱃대를 탁 하니 털어내었다.
하긴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이미 블라드의 안에는 루가 족의 비술을 경험한 적 있던 이가 머물고 있었으니까.
“부디 이 저주로 다른 이의 세계를 너무 깊이 찌르지 말게나.”
후욱-!
그 말과 함께 대모는 폐 안에 머금고 있던 신비로운 연기를 블라드의 왼팔에 뿜어내었다.
머금고 있던 그녀의 진심과 함께 날아든 연기는 어느새 블라드의 왼팔에 스며들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고 있었다.
“······남을 찌른 만큼 상처 입는 것은 결국 자네의 세계일 테니까.”
선으로 이어졌을 뿐일 문신들에게서 점점 색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더욱 확연해지는 검은 번개의 문양.
그 옛날, 가장 완벽한 용을 가를 때 썼었다던 루가 족의 신비는 키하노와 블라드를 처음 만나게 해주었던 번개처럼 온통 새까맸으며 날카로운 것이었다.
※※※※
저 멀리 보이는 황무지를 뒤로 한 채 수많은 군사가 움직이고 있었다.
수도 브리간테스에서부터 집결해 무법자들의 도시 나마르타까지 나아갔었던 황실과 중앙의 군세들이었다.
블라드를 쫓았을 때와는 달리 이제는 수만으로 불어버린 중앙의 군대는 지금도 쉴 새 없이 북부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었다.
“사령관 님. 가이다르 백작이 방금 서부 관문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그래?”
북부 원정군의 총사령관인 용혈공 사르누스는 옆에서 들려오는 미르셰아의 보고에 흥미롭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좁은 협곡을 막고 있던 요새였을 텐데. 그곳을 벌써 뚫어내었다고?”
“그것이······.”
사르누스의 말대로 서부를 틀어막고 있던 올랑바르 요새는 좁은 협곡을 따라 지어진 천혜의 요새였다.
그런 지형을 뚫기 위해서는 당연히 수많은 희생을 강요해야 했으나 어쩐 일인지 그 반푼이 같던 가이다르 백작은 너무나 수월하게 돌파해버리고 만 것이다.
“가이다르 백작이 공략한 것이 아니라 바예지드 백작이 스스로 군사를 물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이다르 백작의 빛나는 전공은 그저 페테르가 내던진 껍데기에 지나지 않은 것.
그 유리했던 진형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미르셰아의 보고에 사르누스의 눈이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과연 북부의 여우답군. 만에 하나의 사태까지 염두에 두고 있어.”
북부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 중 하나인 바예지드와 바라노프.
과연 그들은 용혈공이 휘두르는 홑껍데기들과는 달리 결코 만만치 않은 이들이었다.
“여차하면 보급로를 차단해보려 했더니 이제 그 방법은 못 쓰겠군.”
아무리 좋은 지형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다룰 능력이 없다면 그저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그리고 페테르는 먼 곳에 있는 북부 연합군이 올랑바르 요새를 온전히 다루기 위해서는 얻어낼 이득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방향을 틀겠다. 지금부터 우리는 동부 가도를 통해 움직인다.”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물지 않은 페테르 덕분에 쯧쯧 혀를 차고만 용혈공 사르누스는 처음에 계획했던 방향을 틀어 두 번째 안을 시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북부의 마링겐부터. 그곳부터 점령한 후 곧장 위로 나아가겠다.”
바예지드가 있는 북서부가 아닌 강철공 티무르가 있을 북동부를 향해서.
황금공과 가이다르에 의해 바예지드가 꽁꽁 묶여 버리고 말 지금, 용혈공이 이끄는 군세는 곧장 강철공이 있을 북부의 심장 바스토폴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아버님. 아무리 저희가 수가 많다고 해도 군세를 둘로 나누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선택이 아닐 것 같습니다.”
갑작스레 고개를 튼 드라굴리아의 깃발을 보며 미르셰아가 걱정이 된다는 듯 사르누스에게 간언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계획했던 일 중 하나라지만 하나였던 전선을 둘로 나누는 것은 원정군에게 있어 큰 부담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피해가 클 것입니다.”
“······.”
빠른 시일 내에 전쟁을 끝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만큼 짊어져야 할 희생이 클 수밖에 없는 선택.
그러나 수만의 군세를 차디찬 설원 위로 밀어 넣으려는 사르누스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 알고 있다. 아들아.”
그저 사나운 용의 목소리로 자신의 아들을 향해 조용히 속삭였을 뿐.
“당연히 인간들이야 많이 죽어 나가겠지.”
지금 북부로 나아가는 이들은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 군세인가.
제국에게 반기를 든 북부를 정벌하기 위한 군세인가 아니면 완벽해지려는 용의 입김을 따라 움직이는 허수아비들인가.
“잊지 말거라. 미르셰아. 우리가 추구해야 할 승리가 어느 쪽에 있는지를.”
“······네.”
그에 대한 대답은 지금 사르누스의 앞에서 흔들리고 있는 깃발이 대신 대답해주고 있었다.
용의 목을 잘라내는 본래의 깃발 대신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새겨져 있는 드라굴리아의 깃발.
“이 아비는 너에게 그 옛날 완벽했었던 용의 세상을 보여주고 싶구나.”
자신의 아들을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짓는 사르누스의 머리 뒤로 깃발 하나가 휘날리고 있었다.
황실의 깃발보다도 더 앞에서 휘날리고 있는 드라굴리아의 깃발은 예전의 초라했던 모습과는 달리 지금은 황금빛 용이 활짝 펼쳐낸 거대한 날개로 가득 차 있었다.
※※※※
새하얀 햇빛이 가득한 방이었다.
그저 누워만 있어도 부풀어 오른 솜이불의 감촉이 느껴지는 그런 환한 방.
그러나 정작 그곳에 누워 있어야 할 블라드는 자그마한 책상에 앉은 채 앞에 놓아둔 지도들을 유심히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리고 또?”
“······여기.”
어쩐지 성이 난 것 같은 블라드의 목소리에 잔뜩 늙어버린 손가락 하나가 지도의 한 곳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손가락에 따라 지도에 그려진 동그라미가 늘어갈수록 블라드의 눈썹은 점점 좁혀들고 있었다.
“이번에는 거짓말 아니지?”
“나는 너에게 거짓을 말한 적이 없단다. 동생아.”
“지랄하고 있네.”
옆에서 들려오는 라두의 목소리에 블라드가 사납게 미소 짓기 시작했다.
“그런 놈이 몰래 도망을 치다가 걸려?”
“······.”
창을 넘어 들어오는 오늘의 햇빛이 블라드의 금발에 비쳐 요란하게 반짝여댔다.
그러나 라두는 자신이 가지지 못했던 금발보다도 블라드가 품고 있는 짙푸른 눈동자에 더 큰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때의 전투 이후로 더 깊어진 것만은 같은 블라드의 푸른색은 라두가 두려워했었던 아버지와도 충분히 비견될 정도였으니까.
“갈 거면 얌전히나 갈 것이지. 누아르는 도대체 왜 훔치려고 했던 거야.”
“······빠르니까.”
다시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다는 듯 웃어대는 블라드의 옆에는 늙어버린 라두가 힘없이 서 있었다.
잔뜩 주름진 목덜미에는 새까만 가시나무를 하나 그려 넣은 채로.
자신의 아버지와 똑같은 금제를 새겨넣은 라두를 보며 블라드가 차갑게 웃음 지었다.
“······우리 그때 약속했었잖아. 용살 기사단을 없앨 때까지는 도와주겠다고.”
연기로 가득 찬 무법자들의 마을에서 라두는 블라드의 피를 마시며 약속했었다.
지금 루가 족을 향해 쳐들어오고 있는 용살기사단을 막아내겠노라고.
꿀꺽 삼킨 피를 따라 새겨진 그때의 맹약은 여전히 라두의 핏줄을 따라 떠돌고 있었고, 여전히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바라고 있었다.
“내 피가 그렇게 싸지는 않지. 안 그래?”
조용히 웃고 있는 블라드를 보며 라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과연 블라드의 말대로 나마르카에 행했던 둘만의 계약은 아직 지켜지지 않았으니까.
여전히 가장 오래된 용이 이끄는 기사단은 대륙을 누비고 있었고 라두의 정당한 대가는 아직 제대로 치러지지 않은 것이다.
똑- 똑-
단검으로 살짝 그어낸 블라드의 손가락 끝으로 새빨간 핏방울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놓여 있던 찻잔을 따라 천천히 스며드는 선명한 색깔들을 보며 라두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여기가 어디야?”
“어디?”
“네가 방금 찍은 곳.”
블라드는 자신이 들고 있던 지도 두 장을 펼쳐내며 말했다.
한 장은 자야르가 표시한 지도.
또 한 장은 방금 라두가 표시한 지도.
사특한 존재들과 접촉했던 기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라마슈트의 위치를 추적하던 블라드는 드디어 그들의 증언이 일치하는 장소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아치우크.”
살론타 남작 가문의 마을 중 하나인 아치우크.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는 그 마을은 예전에 들렀던 도시인 도브레치티에서 동쪽으로 일주일만 더 가면 닿을 수 있을 곳이었다.
“그래, 그랬었지. 거기서 흑마법사들과 만났었지.”
용혈공의 아들인 라두 드라굴리아는 예전에는 북부의 도시 모시암에 있었던 드라굴리아의 군세를 지휘할 정도로 위세가 있던 이였다.
비록 지금은 이렇게 초라한 모습이 되고 말았지만, 그때 다뤘던 정보들만큼은 여전히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있을 터였다.
“그곳에서 서로 협조하기로 약속했었지.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동맹 관계가 확실했었거든.”
“여기까지 안내할 수 있겠어?”
“물, 물론이지. 그 교회에는 한 번 가본 적이 있으니까.”
교회라는 단어에 순간 블라드의 눈빛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뻘건 피에 목마른 용은 그 눈빛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듯 물어보지도 않은 대답들을 마구 내뱉을 뿐이었다.
“다 무너진 교회. 이제는 전부 다 불타버린 마을에 서 있던 거.”
“······.”
“거의 몇십 년은 비어있던 마을이었어. 길잡이가 없으면 찾, 찾기 힘들거야.”
다 불타버린 마을 위로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교회 하나.
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그 광경을 떠올리며 블라드는 조용히 들고 있던 지도를 접었다.
“마셔.”
블라드의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찻잔을 들이키는 늙은 라두.
그와 함께 목덜미에 새겨진 맹약의 증거가 옅어지고 있었지만, 방문을 나서는 블라드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지 않았다.
[느낌이 오는군. 아마 그곳이 맞을 것 같다.]불타버린 마을 아치우크.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가 된 곳.
그곳에 있을 광경을 떠올리던 블라드는 어쩐지 아이들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네. 그런 것 같아요.”
화사한 복도의 창을 통해 보이는 광경이 있었다.
이제는 아무런 걱정이 없기에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아우슈린의 아이들.
종족을 뛰어넘어 함께 뛰놀고 있는 엘프들과 루가 족의 아이들을 보며 블라드는 잠시 걷던 걸음을 멈추었다.
“······이번에는 끝을 보자구요.”
아주 오래전 불에 탄 그 교회는 고귀한 수녀 한 명이 세운 교회라고 했다.
갈 곳 없는 고아들을 가득 자신의 품에 안았었던 그 여인의 이름은 교황청이 인정한 성녀. 트라마슈.
블라드는 손등 위에 새겨진 문신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그녀의 이름을 읊조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