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25
불타버린 교회 (2)
눈을 떴지만, 여전히 감고 있는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새까만 어둠뿐이었으므로.
어딘지도 모를 자그마한 방 안에서 눈을 뜬 요제프는 여전히 빛 하나 새어들지 않는 공간을 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자야르가 빠져나갔으니 다행이로군.”
이제는 익숙해져야 할 어둠이었지만 그 속에서 요제프는 여전히 눈뜬장님과도 같았다.
그때마다 손을 내밀어주었던 나의 충실한 기사가 있었지만 이제 그는 관짝과도 같은 어둠 속이 아닌 초록빛이 가득한 숲속에 있을 것이다.
끼이익-
비록 자신은 여전히 이 어둠 속에 남아 있었을지라도.
지금 자신의 옆에 자야르가 없음에 오히려 안심할 수 있었던 요제프는 더듬거리는 손길로 옷을 차려입고는 방을 나섰다.
‘아무리 봐도 신기하군.’
방을 나선 요제프가 걷고 있는 복도는 처음에 보았을 때만큼이나 여전히 새까맣고 어두울 뿐이었다.
그러나 정작 주변을 식별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 이는 라마슈트라는 여인이 깔아놓은 신비 덕분일 것이다.
“······.”
혼자서 쭉 이어진 복도를 따라 걷던 요제프는 자신의 앞에 흑마법사들이 나타날 때마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최대한 그들의 시선을 잡아끌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그렇게 조심스레 벽 쪽으로 비켜선 요제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들의 말을 엿들을 수 있었다.
-지금 북부 연합군이 이쪽으로 내려오고 있다던데.
-아무래도 북상하는 용혈공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겠지.
-이러다가 괜히 우리한테까지 불똥 튀는 건 아니겠지요?
평소에는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었던 사특한 존재들.
그러나 지금만큼은 숙인 고개를 제대로 펼 수 없을 정도로 잔뜩 모여있는 그들의 모습에 요제프는 목덜미가 서늘해질 지경이었다.
‘······이렇게나 많았다니.’
고귀한 귀족인 요제프는 자신의 아버지가 사특한 존재들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예산을 쏟아붓고 있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 숨어 사는 자들은 여전히 이렇게나 많았고 바예지드의 고생은 그저 방향키를 잘못 잡은 선장처럼 애먼 바다를 휘두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여차하면 또 금화를 뿌리면 되겠지.
-살론타 남작은 뼛속까지 선민의식이 가득한 사람이오. 전처럼 북부에 대한 적대감만 일깨워준다면 무리 없이 우리에게 협조할 테지.
-하긴, 우리 같은 흑마법사보다도 북부인들이 더 밉다는데 어찌하겠소. 가끔 보면 인간들은 헛된 증오심 때문에 자신들까지 불태우고는 한단 말이지.
“······.”
그 말과 함께 점점 등 뒤에서부터 사라져가는 흑마법사들의 기척들.
그 기척들이 멀찍이 사라졌음을 확인한 요제프는 그제야 깊게 숙였던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이런 식이었군.’
살짝 깨문 입술로 자신의 분노를 표현한 채로.
여태껏 보였던 자신들의 노력이 그저 헛수고였음을 깨달은 요제프는 조금씩 타오르는 분노를 잠재우려 애쓰고 있었다.
‘이래서 찾을 수 없었던 거야.’
어둠 속에 숨어 사는 흑마법사들.
깊숙한 곳에 숨어 있었기에 도저히 찾아낼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특한 존재들이었지만 스스로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온 요제프는 이제야 그들을 찾을 수 없었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갈라진 틈 사이에서 웃고 있는 자들이 있다.
딛고 있는 땅이 다르며 태어난 피부색이 다르고 믿고 있는 신이 다르기에 그어질 수밖에 없는 세계와 세계의 틈 사이에서.
그 틈 사이에서 쉴 새 없이 증오와 차별을 키워온 이들은 이제는 새까만 손가락을 치켜든 채 서로를 죽이라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밖에 있었을 때는 알 수 없었지만, 스스로가 어둠에 닿았을 때는 알 수 있었다.
저자들이 교묘하게 갈라 세운 세계의 틈 사이에서는 지금도 불길한 독들이 새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새까만 손가락을 든 채 자신들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증오와 차별을 보며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자들은 지금도 웃고 있었다.
“이제는 나밖에 없군.”
그 말과 함께 요제프는 다시 한번 앞을 향해 걸어나가고 있었다.
이제는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서 있어야 할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
비록 누군가에게 맹세하지는 못한 몸이었지만 그럼에도 요제프는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좀 더 깊은 어둠 속을 향해 홀로 나아가고 있었다.
※※※※
“우리 아우슈린은 자네의 도움을 절대 잊지 않을 걸세.”
한층 더 늙어버린 늙은 제로니모가 블라드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러나 맞잡은 손을 통해 전해지는 그의 힘찬 손짓은 겉모습과는 다르게 생기가 넘칠 뿐이었다.
“루가 족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장로 님.”
가야 할 곳을 알았으니 이제는 떠나야 할 때.
제로니모와 작별의 악수를 나누던 블라드는 그의 옆에 서 있는 루가 족의 대모를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좋아하더군. 역시 더러운 골목보다야 푸르른 숲이 낫겠지.”
그 시선을 알아차렸다는 듯 루가 족의 대모가 고개를 끄덕여대었다.
“처음에는 악연인 줄 알았더니 지금 보니 은인이었군. 하긴, 때로는 아무리 복된 것들이라도 흉한 가면을 쓰고 찾아오기도 하는 법이니까.”
아무도 환영해주지 않는 떠돌이 인생들이었지만 엘프들의 숲은 넓었고 어린 세계수는 환영해주었다.
빛나는 두더지가 뚫어준 굴을 따라 함께 걸어왔던 어린 루가 족의 아이들이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며 블라드는 그제야 마음속에 짊어지고 있던 짐을 덜어낼 수 있었다.
“잠시, 잠깐만요.”
“응?”
순간 장로들의 틈을 뚫고 나오는 여린 몸체가 있었다.
자그마한 두더지를 머리에 얹은 채 걸어나온 신녀의 손가락에는 마디마디마다 둘려 있는 붕대가 선명했다.
“······이런 건 처음 해봐서요. 좀 이상하죠?”
부끄럽다는 듯, 혹은 미안하다는 듯 블라드를 올려다보는 신녀의 눈빛에는 왠지 모르게 물기가 가득했다.
그러나 블라드는 소녀가 비치는 민망함보다도 그녀가 들고 있는 자그마한 깃발에 더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아니.”
북부의 바예지드에서부터 시작해 중부의 아른슈타인까지.
그동안 블라드가 나라는 사람을 증명하기 위해 모아왔었던 수많은 가문의 인장들이 어린 신녀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그 수많은 문장을 보며 블라드는 여태껏 걸어왔던 자신의 여정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그린 그림보다는 이게 훨씬 나은데.”
“응?”
그리고 이제 그 깃발의 마지막에는 어린 신녀가 새겨넣은 나무 한 그루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바늘이란 걸 처음 들어본 어린 신녀가 새겨넣은 그 문장은 저 위에 보이는 어린 세계수와 조금은 닮아 있었다.
“빼곡히도 들어찬 문장들이군. 제국의 절반 정도는 이 깃발 안에 있겠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신녀의 머리 위로 바라디스가 손을 건네왔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바라디스.”
나이와 종족을 떠나 그동안 함께 고난을 거쳐 왔던 레인저들의 대장,
그는 앞에 보이는 블라드의 손을 거침없이 잡으며 말을 이었다.
“이어진 고리 속에서 갚고 갚음은 의미가 없는 걸세. 그러니 언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불러주게.”
처음 보았을 때는 감히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었지만 이제 둘 사이에는 맞닿은 면만 있었을 뿐 불쾌한 골짜기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블라드는 더 이상의 멋쩍은 인사는 필요 없다는 듯 누아르의 고삐를 돌릴 뿐이었다.
“내가 한 말 잊지 말고.”
떠나려 하는 블라드의 등 뒤로 루가 족의 대모가 나지막히 외치는 전언이 있었다.
부디 다른 이의 세계를 너무 깊게 찌르지 말거라.
그렇게 하다가는 분명 너의 세계도 상처 입고 말 테니까.
“······알겠습니다.”
트드드득-
자신을 마지막까지 걱정해주는 대모의 말을 끝으로 숲 사이에서는 자그마한 오솔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뿌리 내린 나무들이 스스로 비켜 만들어 준 그 길은 정확히 블라드가 향하려는 마을을 향해 새겨지고 있었다.
[잘 가라는 인사인가 보다.]“그러게요.”
이제는 인간들이 만든 도로보다 크게 트여버린 숲의 길을 보며 블라드가 조용히 웃기 시작했다.
한번 품어본 적 있었기에 들을 수 있었던 어린나무의 목소리가 지금도 들려오는 것 같았다.
“가자.”
푸르르륵-
이제 떠나자는 블라드의 말에 누아르는 무언가가 아쉬웠던 모양인지 뒤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같은 정령의 피를 나누고 있기에 알아볼 수 있는 풍경.
그렇게 뒤를 돌아본 누아르의 눈에는 자신을 향해 가지를 흔드는 세계수와 그 위에 앉아 있는 어린 정령들의 모습이 가득했다.
※※※※
새까만 어둠 위로 보이는 것은 하늘이 아닌 수면(水面)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잔뜩 일렁이고 있는 거품의 표면일 것이다.
“······저것은.”
자그마한 신임을 빌어 이제야 흑마법사들의 중심부까지 들어올 수 있었던 요제프는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커다란 중정(中庭)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커다란 정원을 가득 메우고 있는 한 그루의 나무까지도.
“그녀가 뿌리내린 나무지.”
“······!”
갑작스레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에 요제프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자야르도 없는 지금, 요제프에게 말을 걸어줄 존재들이라고는 오직 사특한 흑마법사들밖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불완전해. 정령수의 핵만으로는 창조의 술이 성립되지 않는 모양이더군.”
그러나 요제프의 뒤에 서 있던 사람은 방금 보았었던 흑마법사들이 아닌 온통 색이 바래 있는 남자였다.
조용히 요제프를 지나 난간에 팔을 기댄 프라우센은 아무 말 없이 밖에 보이는 나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프라우센 님.”
여기까지 몰래 온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요제프는 바로 옆에 있는 그의 모습에 최대한 의연해지려 노력하고 있었으나 차마 새고 마는 목소리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네가 요제프 바예지드냐?”
“네? 네. 그렇습니다.”
그러나 방금의 긴장이 무색하게도 먼저 입을 연 것은 프라우센이었다.
프라우센은 허락받지 않았음에도 중심부에 서 있는 요제프의 사정 따위는 궁금하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입을 열 뿐이었다.
“그래. 언제 한 번 너를 불러보고 싶었지.”
“······.”
비록 어제 보았을 때와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딘지 모르게 느껴지는 기묘한 위화감에 요제프는 조금씩 잔뜩 굳어 있던 고개를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저에게 뭐라도 물어볼 것이 있으십니까? 폐하.”
그러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압박감 때문일까, 아니면 난생처음 보는 나무의 기괴한 모습 때문일까.
최대한 공손하게 대답하려 한 말이었지만 요제프는 방금 자신이 큰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제 자신을 폐하라 부르지 말라고 했던 프라우센의 말을 잠시 잊고 만 것이었다.
“······나를 폐하라 부르지 마라.”
과연 그 말이 실수였다는 듯 프라우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다만 요제프는 그의 기세에 압도되기보다는 이어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의아함을 품었을 뿐이었다.
“그래. 네가 블라드라는 녀석을 처음으로 등용했다지?”
“······!”
그리고 방금 품었던 의아함은 확신으로.
마침내 고개를 들어 올린 요제프는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남자를 향해 소리 없는 경악을 내뱉고 말았다.
“그 녀석에 대해 성심성의껏 대답해준다면 오늘의 무례는 못 본 척해주겠다.”
어제 나눴던 대화조차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
지금 요제프가 마주보고 있는 남자는 이미 잔뜩 깨어져 있는 유리병과도 같은 남자였다.
다른 이의 세계를 너무 깊이 찌르지 마라.
그러면 너 또한 큰 상처를 입고 말 테니까.
잔뜩 부풀어 오른 거품 같은 세계 속에서 요제프는 온통 상처 입고 만 남자를 마주하고 있었다.
지금도 조금씩 스스로를 잃어가고 있는 남자.
깨어진 구멍 사이로 기억들을 쏟아내고 있는 남자는 그럼에도 블라드라는 이름만큼은 잊지 않았다는 듯 앞에 있는 요제프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