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26
불타버린 교회 (3)
불어오는 바람에는 따뜻한 봄의 기운이 가득했다.
그러나 사내들이 눌러 쓴 투구 안에는 여전히 북부의 찬 바람이 깃들어 있었을 뿐.
남쪽을 향해 걷고 있는 수많은 병사들.
셀 수도 없이 길게 늘어선 그들의 등 뒤에는 북부 연합군을 상징하는 일곱 가문의 깃발이 나부끼는 중이었다.
“······적들이 남하하고 있다고?”
북부를 떠나 중앙을 향해 내려오고 있는 북부 연합군.
강철공 티무르가 지휘하는 군세를 확인한 용혈공 사르누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표정을 찌푸리고 말았다.
“그렇습니다. 아버님. 정찰병들의 보고에 따르면 약 4만 정도 되는 병력이 지금 아치우크 근방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4만에 달하는 북부 연합군의 병력.
분명 대규모의 병력이기는 했지만 예상치 못했던 숫자는 아니었다.
다만 사르누스가 당황하고 있는 이유는 그들이 유리한 기점인 성을 내버려 둔 채 오히려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로군.”
성을 끼고 하는 농성이 아닌 회전(會戰)을 택하다니.
만약 일개 필부가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면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었겠지만 지금 4만의 군사들을 이끌고 내려오는 이는 절대 녹록하지 않은 상대, 강철공 티무르였다.
“무슨 속셈이 있긴 있어.”
분명 무슨 이유가 있긴 있을 터.
티무르씩이나 되는 자가 아무런 이유 없이 성을 뛰쳐나왔을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사르누스는 그가 그리려고 하는 그림을 쉽사리 알아볼 수 없었다.
“······혹시.”
그렇게 고민하는 사르누스의 천막 위로 한 무리의 철새들이 날아가고 있었다.
높은 하늘에 몸을 뉘인 채 봄을 따라 북쪽에서부터 내려오는 철새들.
그러나 그 새 중에서도 이질적인 색깔을 지닌 새 한 마리가 있었다.
까악- 까아악-
다른 철새들이 날아가는 방향과는 다르게 수도 브리간테스 쪽으로 날아가고 있는 새하얀 비둘기 한 마리.
그 비둘기의 발목에는 누군가에게 전하는 티무르의 비밀스러운 쪽지가 묶여 있었다.
※※※※
아무도 없는 동부가도를 따라 내달리는 무리가 있었다.
가장 앞장선 검은 말의 뒤로 휘날리는 깃발과 함께.
고작 며칠 거리 뒤로 중앙의 군세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블라드 일행은 지금 자야르가 알려주었던 사특한 무리의 본거지를 향해 쉴 새 없이 나아가는 중이었다.
“아치우크는 오른쪽 길일세!”
“알아요!”
정확히는 그곳보다 더 북쪽인 곳을 향해서.
그쪽이 아니라고 외쳐대는 피에르의 말에 블라드가 큰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는 지금부터 북부정교회의 본산(本山)으로 갈 겁니다!”
블라드는 지금 아치우크가 아닌 북부정교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요제프를 향한 마음은 여전히 조급했지만 블라드의 머릿속은 그만큼이나 차가운 상태였다.
“거기서 일단 병력부터 얻어오자고요. 흑마법사 놈들이 백 명이 넘는다는데!”
자야르가 말하기를 라마슈트의 저택 안에 숨어 있는 흑마법사들은 세 자릿수가 넘어간다고 했었다.
마치 대륙에 있는 모든 흑마법사들을 끌어다 모은 모양새였으니 그토록 어두운 곳에 고작 4명만이 침입하는 것은 그저 자살 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많이 컸군. 예전에는 앞뒤도 못 가린 채 면죄부나 찢던 놈이.”
“······뭐라는 거예요.”
세차게 불타오른 듯 보였으나 정작 블라드의 푸른 눈은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이제는 바로 앞에 들이닥친 일뿐만 아니라 저 뒤에 있는 일까지 생각해보려 하는 북부의 기사.
비록 품고 있는 색깔은 달랐으나 지금 보이는 블라드의 눈빛 속에서 조금이나마 요제프가 떠오르는 것은 그저 착각만은 아닐 것이다.
“워워!”
그러나 달려가던 일행 사이에서 날카롭게 들려오는 라두의 외침이 있었다.
“앞에 저 까마귀들 뭐야!”
놀란 듯 하늘을 향해 가리키는 라두의 손끝으로 마치 검은 구름 같은 것이 꾸물거리고 있었다.
까아악- 까악-
저 위의 하늘에서부터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다가오기 시작하는 까마귀 떼들.
전조도 없이 일행들을 향해 내려앉는 새까만 까마귀들을 보며 블라드는 다급히 달려나가던 누아르의 고삐를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거 벌써 눈치챈 거 아니야?”
라두의 예상이 맞는다는 듯 까마귀 떼들은 새까만 장막처럼 죽 늘어선 채 일행들의 앞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그 불길한 모습에 블라드가 차고 있는 검집에 손을 가져다 대려 할 때쯤, 까마귀 떼 너머에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늦지 않아 다행이군.”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일행을 멈춰 세웠던 까마귀 떼가 다시금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까마귀들이 비켜난 곳에는 아까는 전혀 보이지 않던 검은 망토의 사내들이 가득했다.
“기다리고 있었네.”
“······마커스?”
바예지드의 숨겨진 검들과 그들의 대장인 이름 없는 남자.
북부를 아우르는 정보망의 주체들이 지금 블라드의 앞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내보이고 있었다.
“북부정교회까지 가려는 판단은 훌륭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네. 이미 우리가 준비해 두었으니까.”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갑작스레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무리를 보며 블라드는 날 선 태도를 내비쳤지만, 그 또한 마커스가 예상했던 바였다.
“자야르가 알려줬지. 지금 자네가 아우슈린을 떠나서 아치우크로 향하고 있다고.”
“자야르?”
“물론 어떤 방법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는지는 묻지 말게. 그거야말로 우리 조직의 비전이니까.”
별것 아니라는 듯 차분히 입을 여는 마커스였지만 그런 그를 보는 블라드의 눈빛은 점점 차가워질 뿐이었다.
“자야르랑 진작에 연락하고 있던건가요?”
“그렇지.”
“······그럼 당신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거네요?”
“그래.”
자야르에서부터 마커스까지.
남들은 다 알았지만, 나만은 몰랐다 말하는 요제프의 사정.
무심히 그렇다고 말하는 마커스의 마지막 끄덕임에 블라드의 눈동자가 기어이 파랗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꽈악-!
“그런데 왜 나한테는 말을 안 해줬어. 이 개자식아.”
“······!”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하던 마커스였지만 이번만큼은 놀라고 말았다.
저 앞에 있었던 블라드가 어느새 자신의 앞에 다다라 멱살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기사들만이 알아챌 수 있는 간격을 유지하고 있었건만 블라드는 그런 것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듯 눈 깜짝할 새도 없이 마커스의 앞으로 다가와 버렸다.
챙! 채챙! 챙!
“그 손 놓으시오! 블라드 경!”
“진정하십시오. 저희에게도 사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뒤늦게 반응한 까마귀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검을 빼 들었지만 마커스를 노려보는 블라드의 눈빛에는 여전히 분노가 가득했다.
“내가 우스워?”
“······.”
“아무리 보안이 중요하더라도 나한테는 알려줬어야지. 안 그렇냐고?”
그동안 속은 것이 분하다는 것이 아니었다.
블라드가 정말로 분한 이유는 그동안 자신이 요제프의 울타리 밖에 서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어딘가 속해 있을 곳이 필요했던 뒷골목의 소년에게 있어서 요제프라는 울타리는 나를 세상에서부터 지켜주는 자랑스러운 경계선이었으니까.
“······너한테만큼은 알려주지 말라고 하시더군.”
“누가?”
“요제프 님이.”
“뭐?”
꽉 잡힌 멱살 사이로 억눌린 마커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에 정작 숨이 막혀가는 것은 마커스가 아닌 그의 멱살을 붙잡고 있는 블라드였다.
“모두가 널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북부의 우리에서부터, 용혈공, 교황청, 황실······.”
쇼아라의 블라드.
용의 피를 이은 채 북부에서 태어난 소년.
교황청이 제작한 면죄부를 찢었으며 그에 대립하는 북부 정교회의 교황에게 인정을 받은 기사.
“그리고 라마슈트라는 여인까지.”
그리고 소드마스터의 맹세와 함께 하는 그의 유일한 계승자.
대륙에 있는 모두에게 인정받을 자격뿐만 아니라 미움받을 자격까지 마땅히 갖추고 있는 블라드라는 존재는 어쩌면 키하노 프라우센이라는 걸출했던 기사만큼이나 대륙 모두의 시선을 잡아끄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런 네가 요제프 님에 대해 진심으로 분노하면 분노할수록 그분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
“······하.”
마커스의 말에 블라드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 깊은 탄식을 내지르고 말았다.
어두운 달을 향해 요제프가 나아갔을 때, 블라드는 그를 향해 울부짖고 있었다.
프라우센에 의해 꿰뚫린 복부를 부여잡은 채 가지 말라고 외쳐대는 블라드의 목소리에는 분명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을 정도의 진심 어린 분노가 깃들어 있었을 것이다.
“훌륭히 임무를 완수했군. 블라드.”
“이런 개자식들이!”
자신조차 모르는 임무였다.
그러나 요제프는 자신이 따로 지시하지 않았어도 블라드가 분명 옳게 움직여주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동안 요제프가 보아왔던 블라드라는 사람은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 있었어도 언제나 빛나기를 원했던 사람이었으니까.
“······.”
“가자. 요제프 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그러나 높게 든 블라드의 손은 갈 곳 없는 분노에 의해 부들거릴 뿐이었다.
차마 들고 있던 손을 끝까지 내려치지 못한 것은 그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마커스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내해 줘요”
“그래.”
내가 가진 분노에 정당한 대가를 치러줄 사람은 오직 라마슈트와 프라우센 뿐일 것이다.
그렇게 천천히 멱살을 푸는 블라드를 보며 마커스는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안내해 주마. 네가 원하는 그곳까지.”
※※※※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냔 말이다!
-왜 북부 연합군이 아치우크로 들이치는 거요!
거품처럼 일렁여대는 라마슈트의 세계.
아직은 여린 나무 한 그루로 지탱하고 있는 그녀의 세계에서 지금 흑마법사들이 외쳐대는 아우성이 가득했다.
“무슨 일인가요?”
불안에 가득 찬 그들의 아우성은 지금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라마슈트에게도 들려올 정도였다.
아우슈린에서 큰 힘을 쓰고만 라마슈트는 자신이 정양하는 와중에 발생한 변고를 보며 신경이 크게 날카로워져 있었다.
-지금 아치우크로 북부 연합군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용혈공을 상대하려던 군대가 왜요?”
누가 보아도 분명 북상하는 용혈공을 막기 위한 군대였다.
그러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북부연합군의 행보에 라마슈트조차 미려한 눈썹을 구기고 말았다.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희를 둘러싸고 있는 숫자가 범상치 않습니다.
마치 짜 맞추기라도 했다는 듯 기민한 움직임이었다.
그만큼 아무것도 없는 폐허, 아치우크로 들이닥친 북부연합군은 흑마법사들이 어떠한 조처를 하기도 전에 이미 마을을 빈틈없이 감싸버린 뒤였다.
“연결을 끊으세요. 지금부터 아치우크로 향하는 문을 폐쇄하겠어요.”
그저 군사들만 있었다면 별문제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치우크라는 마을은 그저 입구였을 뿐이지 이들의 본거지는 아니었으니까.
사특한 신비로 감춰놓은 거품 안의 세계는 간파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그곳으로 향하는 문을 여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라마슈트 님······.
그러나 라마슈트를 바라보는 기사의 푸른 귀화는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문이 닫히질 않습니다.
“그게 무슨.”
아치우크와 연결되어 있던 라마슈트의 통로는 끊기질 않고 있었다.
아무리 닫으려 해도 그 문을 끈덕지게 붙잡고 있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군대만 온 것이 아닙니다. 북부 정교회 또한 같이 왔습니다.
“······!”
사특한 어둠에는 신의 빛으로 대항해야 하는 법.
오랫동안 키워왔던 암적인 존재들을 향해 드디어 북부 정교회의 칼날이 올바른 곳에 찾아 들고 있었다.
“분명 용혈공을 막기 위해 내려오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과 함께 침대에서 내려온 라마슈트의 발이 당황한 듯 허공에 떠돌기 시작했다.
“분명히 그가······.”
북부연합군이 내려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했었다.
그렇기에 우리와는 관련 없는 일이라고도.
북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검은 눈동자의 청년은 분명 자신을 향해 안심해도 좋을 일이라고도 했었다.
“······요제프 바예지드.”
그 이름을 떠올린 라마슈트는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사정없이 입술이 구기고 말았다.
아무 일도 아니라고 말하며 자신들을 안심시킨 사내의 이름은 요제프 바예지드.
스스로 마신 죽음을 통해 신임을 내비치던 북부의 청년이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
몇십 년 전에 돈 전염병으로 불타버리고 말았다는 마을, 아치우크.
평소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폐허였지만 지금 그곳에는 수만의 병사들이 만드는 긴장된 침묵이 가득했다.
“까마귀들에게서 전보입니다. 방금 블라드 경과 무사히 접촉했다고 합니다.”
“좋아. 진군을 늦춘 보람이 있군.”
그 보고를 들은 강철공 티무르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보다 늦어진 진군이기는 했지만, 결과는 좋았으니 되었다.
결국, 모여야 할 이들이 모두 모이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제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블라드가 왔다는 보고를 들은 강철공 티무르는 자신의 옆에 있는 노인을 향해 조심스레 고개를 숙였다.
보이는 인상은 인자한 노인 그 자체였으나 그가 입고 있는 붉은 색 법복만큼은 분명 범상치 않은 것이었다.
“······그래요.”
하늘 같은 강철공의 예우와 함께 일어서는 노인.
북부정교회의 교황인 콘라드는 화려한 법복과는 어울리지 않은 낡은 성서를 집어 들고는 미소 지었다.
“너무 늦지 않아 다행입니다. 혹여나 내 다음 대까지 이 짐을 넘겨줄까 싶어 언제나 고민이었지요.”
격렬한 성전을 앞에 두고 있었음에도 콘라드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맺혀 있었을 뿐이었다.
삶의 끝이 저물어가는 이때, 드디어 다음 대를 위한 빚 하나를 청산하고 갈 수 있음을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안드레아.”
“네. 교황님.”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 교황은 옆에 있는 주교 안드레아를 조용히 불렀다.
“혹시라도 내가 잘못되면 말일세. 그때는 내 다음 교황을 맡아 줄 수 있겠는가?”
“······교황님?”
조용한 목소리였지만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단호했다.
북부정교회의 일곱 주교들과 함께 강철공을 앞에 둔 교황의 말에 주교 안드레아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 그게 무슨.”
“나의 시대는 이제 끝나네.”
잔뜩 주름진 교황의 두 손이 안드레아를 덮고 있었다.
“격렬한 태풍이 몰아치던 세월이었네. 어린싹들은 차마 자리 잡지 못했던 그런 시대였지.”
그렇게 올려놓은 안드레아의 손끝으로 자그마한 감촉이 전해져 왔다.
검소했던 교황이 언제나 차고 다녔던 낡디낡은 로자리오가 보내는 감촉이었다.
“그러나 태풍이 지난 뒤에는 양생(養生)의 시간이 필요한 법. 그리고 나는 자네처럼 무언가를 잘 키워내는 사제를 본 적이 없어.”
신께서는 남을 구원함으로써 자신 또한 구원받을 거라 말씀하셨다.
쇼아라의 블라드. 이제는 북부를 넘어 대륙을 가로지르는 그 이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그 이름을 직접 품어준 사람은 바로 사제 안드레아였으니, 그는 자신이 건져 올린 이름으로 스스로를 증명한 사람이 되었다.
“여기까지가 나의 의무인 것 같네.”
그 말과 함께 떠나는 교황을 보며 안드레아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온통 불타버린 교회로 걸어 들어가는 늙은 교황의 모습.
천천히 걸어가는 그의 등 뒤에서부터 성가대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임하시기 옳은 곳이로다.”
자신을 수행하는 고위 사제들과 함께 마침내 어두운 교회 안으로 들어선 콘라드 교황.
그곳에서 온통 거꾸로 된 교회의 문양을 본 콘라드 교황이 조용히 성호를 그었다.
단호하게 바른 모습으로.
드드드득-
그와 함께 진동하기 시작하는 거품과도 같은 세계.
거꾸로 된 문양을 옳게 돌리는 교황의 성호에 따라 그동안 저 밑 수면에 감춰져 있던 세계 하나가 반전하기 시작했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이 곧 그분의 성전이요. 집이니라.”
교황이 외치는 구절에 맞춰 거꾸로 된 문양이 세차게 떨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건물이 돈다! 끌려나간다고!
-왜 여기에 교황이 있는거야!
그와 함께 진동하는 거품 속의 세계에서는 쉴 새 없이 아우성쳐대는 사특한 자들의 비명이 가득했다.
라마슈트가 만든 나무의 거짓된 뿌리조차 차마 잡을 수 없는 세찬 진동이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이곳 또한 그러하리라. 그리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려 한다면.”
교황이 직접 집전하는 장엄한 미사의 뒤에서부터 수백 명의 사제가 외우는 성경 소리가 가득했다.
그들의 기도 소리는 감춰져 있던 세계의 문을 붙잡고 거짓된 뿌리로 서 있던 나무의 고개를 떨구게 하는 것이었다.
“······그분께서 너희를 멸하시리라.”
그득-! 그드드드득!
그렇게 마치 거꾸로 뒤집히는 한 척의 배처럼.
교황이 힘겹게 흘리는 땀이 바닥으로 떨어질 때마다 교회의 밑바닥에서부터 새까만 거품 한 덩어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동안 라마슈트가 숨기고 있던 새까만 저택이자 신을 거부하는 세계 그 자체였다.
“저, 저게 뭐야!”
“으아아!”
병사들의 비명을 타고 땅이 내지르는 거대한 굉음과 함께 새로이 등장한 새까만 건물 하나가 있었다.
댕- 대앵-
처량한 종소리와 함께 끄집어내진 그 건물은 마치 누군가가 불태우기라도 한 듯 온통 새까만 그을음으로 가득한 교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