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28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2)
열 명이 넘는 사내들이 뛰고 있었으나 좁고도 어두운 복도는 그저 조용할 뿐이었다.
가끔 들려오는 갑옷 소리만 아니었다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그런 은밀한 움직임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죠?”
“나도 모르네.”
세계의 틈바구니에서 몰래 자리 잡고 있었던 라마슈트의 세계.
구마사제들이 열어준 통로를 타고 들어온 일행은 지금 어딘지도 모를 복도를 헤매는 중이었다.
“우리가 어디로 들어왔는지 도무지 시작점을 가늠할 수가 없어. 일단 어디라도 기준을 잡을만한 곳이 필요할 것 같네.”
가장 앞장서 달리는 블라드의 등 뒤로 귄터가 지도 한 장을 펼친 채 고민하고 있었다.
마치 커다란 동심원을 그려 넣은 듯한 자그마한 지도였다.
그러나 전체적인 모습은 하나의 원이었다 할 지라도 지도에 빽빽이 들어차 있는 통로들의 표시는 지금 이곳이 얼마나 복잡한 장소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확실한 것은 우리는 이곳의 중심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거지.”
“중심에 뭐가 있는데요?”
블라드의 질문에 앞을 바라보던 귄터가 말을 꺼내기가 껄끄럽다는 듯 조심스레 마른 입술을 긁적였다.
“나무가 한 그루 있다고 하더군.”
이 세상 그 누구도 몰라보았던 이곳은 세계의 틈 사이에 숨겨두었던 라마슈트의 세계.
그러나 안개 가득한 도시에서 잠시나마 그녀의 세계를 잠시 엿볼 수 있었던 블라드는 지금 귄터가 말하는 나무가 무엇인지를 알아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에게는 아마 익숙한 녀석이지 아닐까 싶은데.”
“······.”
뿌리는 하늘로, 가지는 땅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거꾸로 표현한
나무가 블라드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
콰직!
요란한 소리와 함께 검붉은 피가 흩날리고 있었다.
마치 장작처럼 호쾌하게 쪼개진 시체 한 구가 만들어낸 핏물이었다.
“이런 니미! 암만 죽여도 끝이 없어!”
옹골찬 몸집의 사내가 휘두르는 도끼 끝으로 검붉은 핏방울들이 안개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애써 만들어낸 공백은 또 다른 물결에 밀려 그저 숨 한 번 내쉴 만큼의 여유밖에 가져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자식들! 그동안 많이도 모아놨구나!”
사납게 소리를 질러대는 사내의 등 뒤로는 도끼를 상징하는 커다란 깃발 하나가 휘날리고 있었다.
하르키타의 카로이. 북부를 대표하는 기사 중 하나.
강철공의 도시 바스토폴에서 블라드와 함께 미르셰아를 상대했었던 그는 지금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망자들의 군대를 향해 자신의 거친 분노를 쉼 없이 표현하는 중이었다.
“전선이 조금씩 밀리고 있습니다. 공작님.”
“······.”
죽은 자를 죽이고 죽은 자가 죽이고 마는 악몽과도 같은 전장.
그 전장 위를 나부끼는 북부의 일곱 깃발 아래서 강철공 티무르가 의연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이미 쏟아져 나온 시체들만 수천입니다. 문제는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른다는 점입니다.”
“용혈공의 군대는?”
“······약 이틀하고도 반나절 거리에 있다고 합니다.”
말하는 볼코프의 목소리가 끝으로 갈수록 조금씩 뭉개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북상하는 용혈공의 군대는 자신들의 사정을 알고 있기라도 하다는 듯 진군 속도를 높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잘못하면 끼어버릴 수도 있겠군.”
지금 북부연합군의 앞에는 죽은 자들의 군대가 있었고 뒤에서는 바짝 북상하는 용혈공의 군대가 있었다.
그야말로 불길 속에 뛰어든 나방과도 같은 위태로운 모습이었지만 강철공 티무르에게는 이렇게 움직여야 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기 전에 이 일을 마쳐야 하겠어.”
쿠오오오오-!
강철공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새까만 교회 안에서부터 들려오는 커다란 포효가 있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거대한 외침이었다.
-저, 저게 뭐야!
-몬스터다! 몬스터!
성벽을 부수는 공성 병기에 비견될 정도로 크고도 육중한 몸체.
치켜세워져 있는 송곳니만큼이나 꿈틀거리는 근육이 흉악해 보이는 녀석은 감히 마주하기 힘든 시뻘건 눈을 부릅뜬 채 앞을 가로막은 병사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오우거······. 오우거다!
-그런데 머리가 왜 두 개야!
자연재해나 다름없다던 용만큼이나 상대하기 어려운 몬스터라는 오우거.
그러나 지금 녀석의 어깨 위에는 누군가에 의해 거칠게 꿰매어진 또 하나의 머리가 달려 있었다.
크아아아아!
되살아 난 자들 뿐만이 아니었다.
본래 흑마법사란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을 만들어내는 존재들.
그런 그들에게 있어 머리 하나 더 달린 오우거를 만들어낸 것쯤은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빌어먹을······.”
카로이는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거대한 그림자를 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두 쌍의 눈동자.
그 흉측한 눈빛과 마주친 하르키타의 기사는 남들과는 다르게 오히려 자신의 도끼를 강하게 움켜쥘 뿐이었다.
“그래 어디 한 번 와 봐라!”
세찬 북풍의 설한을 견디며 살아남은 북부의 사내들은 좀처럼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그것이 설사 머리가 두 개 달린 오우거라 할지라도 말이다.
“으아아아!”
죽음과도 같은 포식자를 향해 시체들의 물결을 거슬러 가는 기사.
그 용맹한 모습에 하르키타의 다른 기사들마저도 사기충천 된 모습으로 외마디 고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이 새끼가!”
하늘을 메울 듯 날아오는 거대한 몽둥이를 그 옹골찬 몸으로 구른 카로이는 재빨리 녀석의 허벅지를 베어내었다.
크아아아!
“크힉!”
그로 인해 울려 퍼지는 포효의 압박이 심장을 압박했으나 이미 불타올라버린 카로이에게 있어서는 조금의 타격도 주지 못하고 있었다.
“키 한번 더럽게 크네!”
한 번의 도끼질로 상처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 낸 흉터를 잡고는 한 걸음, 한 걸음씩 오우거를 타고 올라가는 카로이.
거대한 거인 앞에서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그의 용맹은 방금까지만 해도 지쳐있던 병사들의 마음속에 다시 한번 불을 댕기는 것이었다.
“뭘 봐. 자식아.”
흙먼지로 엉망진창이 된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기어이 오우거를 타고 오른 카로이는 용케도 저 높은 곳에 있는 머리 하나에 닿을 수 있었다.
그곳에 있는 머리통이 카로이를 향해 팔을 뻗어대고 있었지만, 목표를 포착한 나무꾼의 도끼질은 이미 힘껏 휘둘러진 뒤였다.
“죽어! 새끼야!”
힘껏 들어 올린 카로이의 도끼날이 햇빛에 반짝여대었다.
이윽고 느껴질 손맛에 카로이의 얼굴에 사나운 미소가 번져갔지만 크게 휘둘러진 그의 도끼는 그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을 뿐이었다.
“으잉?”
이미 떨어져 나간 머리 하나가 자신이 타고 왔던 저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있었으니까.
단 한 번의 예리함을 견디지 못하고 그렇게 데굴데굴.
“수고하셨소. 카로이 경.”
“응?”
멍청한 표정으로 바라본 그곳에는 머리를 바짝 넘긴 훤칠한 사내가 서 있었다.
반대쪽 어깨에 서 있는 그의 이름은 로므니에의 기예르모.
북부를 대표하는 또 다른 기사 하나가 카로이를 보며 히죽 웃고 있었다.
“당신이라면 충분히 시선을 끌어줄 줄 알았지.”
“······기예르모! 이 개새끼가!”
카로이의 욕설이 크게 울려 퍼졌지만, 기예르모의 웃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이제는 북부를 대표하는 기사뿐만 아니라 오우거 슬레이어까지 될 자신이었기에.
“머리 하나 정도는 선물로 드리도록 하지.”
그가 휘두르는 검 끝이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오우거의 머리를 따라 세차게 휘둘러지고 있었다.
※※※※
-내, 내 평생의 역작이!
어두운 방 안, 몇몇 사내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부터 비통한 절규 하나가 퍼지고 있었다.
-무려 오우거씩이나 되는 건데! 저 미친놈들이!
그들이 숨죽이며 바라보고 있는 수정구에는 지금 천천히 쓰러져 가는 오우거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잘못 만들었나? 생각보다 너무 힘을 못 쓰는데.
-아니, 그렇진 않았어. 아마도 뒤에서 외쳐대는 사제들의 기도 때문일걸세.
-게다가 상대가 기예르모와 카로이야. 첫 출전치고는 대진운이 너무 나빴어.
누구는 울고 누구는 분석하고.
밖에 보이는 광경을 보며 자신들이 만든 피조물에 열띤 토론을 벌이는 그들은 모두 새로운 생명 창조에 자신들의 죽음을 바친 흑마법사들이었다.
신비를 다루는 방법에 따라 이곳저곳에 모여 있던 그들은 지금 누군가의 피조물이 무너진 모습을 보며 날카롭게 눈을 빛내고 있었다.
쿠웅! 쿵!
그러나 그들의 시선은 끝까지 수정구에 맺혀 있지 못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쾅! 쾅! 쾅!
무언가를 부셔 대는 요란한 소음.
그와 함께 흔들리기 시작하는 새까만 벽면까지.
불길한 소리와 함께 그들이 앉아 있던 책상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워지는 그 소리에 몇몇 흑마법사들이 서둘러 수인을 짚어대기 시작했다.
콰가강!
-이건 도대체 뭐야!
-벽이 터졌다! 무너졌어!
그러나 짚고 있던 그 수인이 마무리가 되기도 전에 귀를 찢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이들을 덮쳐왔다.
마치 이들이 주문을 외우고 있다는 것을 눈치라도 챈 듯한 그런 폭발이었다.
“······맞게 왔나 보네.”
벽을 부수며 만들어진 자욱한 돌먼지 사이로 기묘한 침묵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흑마법사들은 자신들의 시야를 가리는 그 돌 먼지보다도 그 속에서 빛나고 있는 황금빛 눈동자에 더욱 시선이 쏠리는 중이었다.
-쇼, 쇼아라의 블라드!
라마슈트가 만든 세계는 나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복잡하고 불리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만든 길을 거부하기로 한 블라드의 등 뒤에는 지금 구멍이 뚫려 있는 벽들이 가득했다.
“길이 너무 어지럽더라고.”
목표를 향한 가장 빠른 길은 직선.
다른 이의 지갑을 노리며 뒷골목의 지붕을 타고 다녔던 전직 소매치기는 이미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누가 좀 알려줘 봐. 한 명은 살려드릴 테니까.”
너희들이 강요한 규칙 따위는 나에게 있어 지킬 의무 따위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새로이 뚫어낸 블라드의 길 뒤에는 사특한 나무를 향한 직선의 길이 조금씩 이어지는 중이었다.
※※※※
“······!”
복도를 내달리던 요제프는 저 앞에 보이는 목 없는 기사들을 보며 재빨리 근처 모퉁이에 몸을 숨겼다.
‘거의 다 왔는데.’
조용히 숨을 헐떡이던 요제프는 저 앞에 보이는 커다란 정원을 보며 안타깝다는 듯 눈썹을 찌푸리고 말았다.
동심원의 중심부이자 유일하게 거품을 올려다볼 수 있는 라마슈트의 정원.
그 흉측한 정원에는 지금 기괴한 모습으로 뿌리내린 역천의 나무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중이었다.
‘숫자가 너무 많아.’
저것만 해치우면 이곳을 크게 흔들 수 있을 터.
그러나 그곳까지 다가가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기사들이 경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검을 다루는 기사도, 그렇다고 신비를 다루는 마법사도 아닌 요제프는 그저 눈앞에 보이는 목표를 보며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이 비루한 몸이 끝까지······.’
바로 앞에 보이는 목표가 있었다.
그야말로 힘껏 뛰어간다면 숨 몇 번 쉴 정도 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였다.
그러나 요제프는 자신의 허약한 육체로는 몇 발자국도 가지 못해 잡힐 것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하.”
이렇듯 요제프에게 있어 원하는 목표라는 것은 아무리 가까워 보일지라도 언제나 먼 것이었다.
귀족으로 태어났으나 언제나 병마와 싸워야 했고 기사의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결국은 소드마스터의 검에 맹세할 수 없었던 존재가 바로 자신이었다.
“그래도 마지막은 할 만하겠어.”
그러나 지금의 요제프는 저 앞에 보이는 목표를 보며 웃고 있었다.
왜냐하면 요제프는 그동안 자신을 붙잡고 있던 한계 하나를 넘어섰음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한 번도 크게 휘둘러본 적은 없었는데 말이지.”
희미한 미소와 함께 가방에서 자그마한 찻잔을 꺼내든 요제프는 그것에서부터 전해지는 자그마한 온기를 느끼며 조용히 심호흡을 해보았다.
“후우.”
저 앞에 보이는 역천의 나무를 향해서.
요제프의 들썩이는 어깨 위로는 어느새 새까맣게 퍼진 죽음의 표식이 가득했다.
“미안합니다.”
콰직-!
찻잔을 쥔 요제프의 손끝에서부터 평소라면 내기도 힘들 강한 악력이 들어갔다.
엔간한 성인 남성을 크게 웃도는 그 악력은 비루했던 육체의 한계를 넘어 드워프들이 만든 찻잔을 조금씩 우그러뜨리고 있었다.
“대신 가장 화려하게 태우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는 손가락을 지나 어깨까지 파고들고만 시커먼 죽음의 형상.
그렇기에 육체의 한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요제프의 어깨가 크게 뒤로 젖혀지기 시작했다.
“흐읍!”
죽음에 물들어버린 남자의 손아귀에서 찻잔이 타오르고 있었다.
영원히 꺼지지 않을 불길로 다듬어진 드워프들의 신기.
모든 사특한 것들을 불태우고 마는 그 찻잔이 어두워져 버린 요제프의 손안에서부터 정화의 불꽃을 피워올리기 시작했다.
“크으윽!”
저 앞에 보이는 세상을 향해 아주 크게.
이제야 비루한 육체를 넘어선 나의 손끝으로.
그렇게 태어나 처음으로 힘껏 휘두른 요제프의 돌팔매가 역천의 나무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쨍그랑-!
아주 조금이었지만, 누구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아주 연약하고 작은 소리였지만.
그렇지만 분명히 힘껏 던져낸 요제프의 세계는 어느새 타오르고 있었다.
거품처럼 떠오른 라마슈트의 세계에 자그마한 구멍을 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