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3
포기하지 않았기에 (2)
정적이 휩싸인 식당 한가운데서 고트는 블라드를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대, 대장.”
그와 동시에 식당에 있던 수많은 시선이 갖가지의 비웃음을 품은 채 블라드가 앉아 있는 곳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다들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
블라드가 먹고 있던 스프 위로 노란 덩어리가 떠오르고 있었다.
누군가의 침 덩어리였다.
“이거 미안하네. 나는 쓰레기 냄새가 나기에 여기가 쓰레기통인 줄 알았지 뭐야.”
“하하하하!”
블라드의 뒤에서 크게 웃으며 서 있는 세 명의 종자가 있었다.
‘생각보다는 이르네.’
블라드는 자신을 도발하는 종자들을 향해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올 것이 왔다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언젠가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거라 예상은 하고 있었으니까.
바예지드 가문은 북부에서도 명망 높은 가문.
그런 곳에 잠깐 발을 담갔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경력이 되는 것이었기에 지금 이곳에 있는 종자들은 하나같이 괜찮은 집안에서 보내온 자제들이었다.
귀족은 아니더라도 나름 귀한 도련님들이 모여 있던 곳에 뒷골목 출신 녀석이 들어왔으니 당연히 반발이 있을 터.
주둔지에서도 한 번 겪어본 일이었기에 블라드는 일단은 참아 넘기기로 했다.
‘익숙하기도 하고.’
멸시와 모멸, 그리고 무시는 언제나 익숙한 것이었다.
물론 익숙하다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블라드는 이번만큼은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조용히 숟가락을 들어서.
“대장······.”
수프에 떠 있는 침들을 떠내어 바닥에 흩뿌렸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수저를 들어 스프를 떠먹기 시작했다.
“······.”
“······.”
계획되어 있던 괴롭힘에 식당에 있던 종자들이 키득거리며 바라보고 있었지만 방금 블라드가 한 의연한 태도에 모두가 웃음을 멈추고 말았다.
기묘한 침묵이었다.
“······뭐야. 저놈.”
여태 들어온 신입 중 지금과 같은 행동을 하는 녀석은 없었다.
화를 내거나, 겁을 먹거나 아니면 넉살 좋게 웃음이라도 짓거나.
그러나 뒷골목에서 왔다는 저 녀석은 자신들의 예상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고요해진 식당 안에서 블라드는 자야르가 한 말을 생각했다.
‘지금부터 네가 하는 모든 행동은 전부 요제프 님의 명성과 직결된다는 것을 알아둬라.’
블라드의 성질머리를 잘 알고 있던 자야르는 신신당부하며 행동을 조심하라 일렀었다.
‘받은 것이 있으니 이 정도는 참아야겠지.’
블라드는 자신이 분에 넘치는 기회를 받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참을 수만 있다면 요제프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조용히 넘길 생각이었다.
‘어떻게 조져야 하나.’
다만 뒷골목 출신으로서 꿈틀거리는 흉악함만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의연히 스프를 넘기고 있을지라도 자연스레 뿜어져 나오는 것이 있었다.
야생과도 같았던 뒷골목에서도 블라드를 사람들에게 각인시켜주었던 푸른 눈동자.
그 눈동자가 시퍼렇게 타오르고 있었다.
“건방진 새끼.”
자신이 의도했던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자 시비를 걸던 종자가 으르렁거리며 블라드에게로 다가왔다.
“너는 나중에 보자. 신고식 한번 화려하게 해줄······.”
“이름이 뭐냐.”
으름장을 놔서 겁을 줄 생각이었으나 금발 머리 녀석은 소바닌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뭐?”
스산한 목소리와 함께 천천히 돌아가는 블라드의 고개.
“이름이 뭐냐고.”
파랗게 타오르는 소년의 눈동자를 마주친 종자는 순간 주위가 깜깜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지금 모시고 있는 기사보다도 더욱 위압감을 풍기는 눈빛이 그곳에 있었다.
“소, 소바닌이다.”
자신도 모르게 소바닌은 말을 더듬고 말았다.
그런 기세였다.
“소바닌.”
블라드는 스프를 씹어 넘기며 조용히 소바닌의 이름을 읊조렸다.
물려고 하는 개는 짖지 않는다.
죽이려 하는 자는 화내지 않는다.
“기억해 뒀다.”
그저 조용히 노려볼 뿐.
어느새 식사를 마쳤는지 비어있는 식판을 들고 블라드가 일어났다.
“신고식 기대하고 있으마.”
소바닌은 스쳐 지나가는 블라드의 목소리를 들으며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여, 여기가 어디라고 뒷골목에서나 굴러먹던 천한 고아 새끼가.”
마지막까지 구겨지는 자존심을 지켜보려 날카로운 말을 내뱉었지만 블라드는 그저 조용히 식판을 반납하고는 식당을 떠날 뿐이었다.
고트가 눈치를 보며 블라드의 뒤를 따라 나갔어도 식당 안에는 묘한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
“대장 괜찮아?”
“속이 안 좋아.”
“이제 어쩔 거야? 하인들한테 물어보니까 소바닌이라는 그 녀석 종자들 사이에서는 대장 격인 모양이던데.”
“대가리가 그놈이야?”
블라드의 물음에 고트는 고개를 크게 흔들었다.
“알았어.”
“조심하라구.”
종자와 하인.
서로가 갈라져야 하는 길목에서 블라드는 고트에게 손 한 번을 휘적거리고는 자신이 갈 곳을 향해 걸어 나갔다.
“난 놈이긴 해.”
수십 명이 둘러싸고 있던 식당에서도 블라드는 마치 자기 집에서 밥을 먹듯 태연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귀신같은 것도 갈라대고 그랬겠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눈에 담기에도 힘든 두려운 존재들을 베어대던 녀석이었으니 동년배들의 협박 따위가 대수일까.
“이래서 사람은 큰 데서 놀아야 해.”
저 멀리 복도 끝 갈림길에서 블라드의 모습이 사라지자 고트도 발길을 옮겼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저 녀석은 이런 곳에서 멈출 사람이 아니니.
고트와 헤어진 블라드는 정해진 일과에 따라 자야르가 있을 수련장으로 향했다.
“별일 없었냐?”
“네.”
“그럼 검 들어.”
점심을 먹고 난 뒤에는 자야르와의 짧은 대련 시간이 있었다.
기사가 자신의 종자를 위해 매일 대련을 해주는 경우는 그리 흔한 것은 아니었다.
맡고 있는 종자가 귀한 집 자식이거나 그 부모가 넉넉히 돈을 안겨주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말해봐라.”
블라드는 코를 쓱 훔치며 자야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만약에 제가 여러 명한테 둘러싸였어요. 그럴 때는 어떡하죠?”
“도망가.”
“도망 못가면요.”
“상대방의 무장을 어디까지 설정한 질문이냐.”
자야르의 물음에 블라드는 수련장을 쓱 둘러보며 말했다.
“뭐, 목검 정도? 작은 방패를 들고 있는 녀석도 좀 섞여 있다 치면요.”
“······그래?”
블라드의 대답에 뭔가 눈치챘다는 듯 자야르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긴 네가 쓰는 검술은 확실히 다인(多人) 전투에 적합하진 않았지.”
“그래요?”
처음 들어보는 검술 평가에 블라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블라드를 보며 자야르는 목검으로 바닥에 선을 그으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너는 네 스승이라는 사람이 무슨 검술을 쓰는지도 모르고 배웠냐.”
‘······가르쳐주는 사람도 자기가 누군지를 모르는데.’
잠시 속으로 투덜거리던 블라드는 대답했다.
“모르겠는데요. 솔직히 뭐 하나 가르쳐준다고 하면 그냥 감사하게 배워야 하는 처지였거든요.”
“그랬겠지.”
십자 형태로 바닥에 길게 선을 그은 자야르는 목검을 휘둘러 묻어 있는 모래를 털어냈다.
“너의 스승은 아마 결투사(Duelist)일거다. 너의 검술은 다인 전투가 아닌 단기접전(單騎接戰)에 특화되어 있거든.”
[오!]뜻하지도 않은 곳에서 자신에 대한 단서를 얻은 목소리가 흥분하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더 물어봐라!]“결투사요?”
왜인지 흥분되어 보이는 블라드의 모습에 이 녀석이 이런 걸 좋아하나 싶었던 자야르는 좀 더 설명해주기로 했다.
“기사라고 다 같은 기사는 아니다. 나같이 가문에 종속된 기사(House-hold knight)도 있고 아니면 기사 작위만을 얻고 떠돌아다니는 편력기사(Knight-errant)들도 있다. 결투사는 편력 기사 중 한 종류라 할 수 있지.”
자야르는 블라드를 보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보통 명예 결투시에 대리자 자격으로 출전하는 기사들을 결투사라고 한다. 더 궁금하냐?”
“그러면 결투사 중 유명한 사람은 누가 있나요? 아니면 예전에는 유명했는데 지금은 소식을 모르는 사람이라거나?”
자야르는 블라드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여기서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년들의 호기심은 무궁무진하지만, 오늘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하루에 하나씩만 배우는 거다. 유명한 결투사들을 알려줄까 아니면 다인(多人) 전투의 기본을 알려줄까?”
[유명한 결투사들!]“다인 전투요.”
방금 내뱉은 대답에 목소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 간청했지만, 블라드에게 있어서는 당장 닥쳐올 일이 중요했다.
“좋아. 들어와.”
자야르의 손짓을 따라 블라드는 십자가의 중심에 섰다.
“다인(多人) 전투의 기본은 각도다. 지금 너는 동서남북 네 방향에 노출되어 있지. 이렇게 되면 최소 4명의 공격을 방어해야 한다.”
“어떡하죠. 그럼?”
“지형지물을 이용해야지.”
자야르는 블라드의 어깨를 붙잡고는 십자가의 끝 쪽으로 세웠다.
“한 곳을 등지면 이제 남은 각도는 세 곳이지? 이렇게 되면 한 명은 막은 거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요. 막힌 곳이 없는 곳에서 싸우면요?”
“굉장히 가혹한 상황에서 싸우게 되겠지. 가능하면 최대한 유리한 장소에서 싸워라.”
“진짜 그런 장소가 없으면요?”
블라드의 집요한 물음에 자야르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그럼 네가 장애물을 만들어야지.”
“뭘로요?”
블라드의 물음에 자야르는 씩 웃으며 말했다.
“상대방의 시체로.”
자야르가 짓고 있는 웃음에는 왠지 모를 무게감이 담겨있었다.
“사람의 사체는 꽤 좋은 장애물이 될 수 있지. 무겁고 부피가 나가며 죽은 뒤 시간이 지나면 단단해지거든.”
자야르의 실전적인 가르침에 블라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빛냈다.
“지금 말했듯이 기본은 각도를 주지 않는 것이고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상대방을 한꺼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요지다.”
스윽-
그렇게 말하며 자야르는 십자 표시 위에서 조용히 움직였다.
“응?”
블라드는 자야르의 움직임을 보며 잠시 당황하고 말았다.
마치 오른쪽으로 움직일 것 같았다가도 눈을 뜨고 보면 왼쪽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어깨와 눈빛, 그리고 발의 위치로 상대방을 현혹하는 고급 기술이었다.
“그것을 만들어내려면 네가 상대방의 움직임을 의도해야 한다.”
[너의 움직임으로 상대방을 제어하라는 이야기다.]자야르의 설명과 목소리의 해설을 들은 블라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 움직임으로 상대방의 움직임을 의도하라는 말인가요?”
“······두 번 말하지 않아 좋군.”
자야르는 자세한 설명 없이도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 블라드를 보며 머리 또한 영특한 녀석이라 생각했다.
실상은 영혼 속에 깃든 목소리가 자세하게 풀어 설명해주고 있었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움직여요?”
“모든 검술은 발걸음에서부터 시작한다. 오늘은 너의 요청대로 다인 전투를 위한 발걸음을 배울 거다.”
자신을 보며 눈을 빛내는 소년을 향해 자야르는 씨익 웃었다.
소년의 눈빛 안에는 열정이 있었고 그보다 더한 절박함이 있었다.
배움에 배고파하는 한 마리의 짐승이 그 안에 있었다.
“따라 해봐라.”
점심부터 시작된 훈련은 황혼 녘이 다가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가능성을 가졌고.
해야 하는 이유도 가졌으며.
스승 또한 두 명을 가진 소년이 있었다.
붉게 물든 황혼 아래서 소년은 춤을 추고 있었다.
“때려치워 임마.”
“······.”
“그딴 식으로 할 거면 그냥 도망이나 쳐라. 그것까지는 뭐라고 안 할 테니까.”
“······오늘 처음 배웠는데 못 따라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비록 그 춤이 보기 괴로울 정도로 민망한 것이긴 했지만 말이다.
비록 타박받고 있었지만 블라드는 실로 오랜만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거칠기는 했지만 자야르는 자신을 배려하고 있었고, 요제프는 믿어주고 있었다.
이런 감정은 그날 밤. 쓰레기 더미 위에서 눈물 지었을 때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문득, 블라드는 지평선 너머로 넘어가는 붉은 해를 보며 쇼아라에 있을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이 보고 싶었다.
※※※※
“뭔 가게 앞에 이렇게 진창이 심해?”
황혼이 물드는 도시의 뒷골목.
그곳에 있는 유일한 대장간으로 들어오는 용병 사내가 있었다.
“뉘쇼?”
“뭣 좀 물어봅시다. 영감.”
늙은 대장장이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해져 있었다.
정말 그럴싸한 물건을 원하는 자들은 쇼아라에서도 유명한 대장간을 찾아갈 테니 결국 이곳에는 돈도 별로 없고 대충 써먹을 만한 물건이나 찾는 녀석들이 오기 마련이었다.
물론 검을 바라보던 금발 소년만은 유일한 예외였지만.
“이런 곳에 올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아 그렇지. 이곳에 뭘 사러 온 건 아니고.”
그러나 노인의 앞에 있는 용병 사내는 나름 실력이 있어 보이는 자였다.
가지고 다니는 무기나 갑옷들, 그리고 곳곳에 쑤셔 넣은 물품들이 그가 경험 많은 용병임을 알게 해줬으니까.
“쇼아라의 뒷골목, 이곳에 오는 건 처음인데.”
“그렇게 보이오만.”
“뒷골목에 대장간이 이곳밖에 없소?”
“그렇지.”
“여기서 검도 만들어주고 그러나?”
“······이제는 못 만들지.”
늙은 대장장이의 대답에 용병 사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초라하고 작은 화로.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도구들. 그리고 무엇보다 뒷골목에서 평생 썩었을 것 같은 볼품없는 노인까지.
가게 이곳저곳을 흘려보는 사내의 눈초리에 노인은 괜스레 멋쩍어졌다.
“도대체 뭘 하려고 그런 걸 물어보시는데?”
“검 하나를 만들고 싶어서 말이지.”
“대충 아무 대장간이나 골라서 하나 만들면 될 일이지 왜 이런 곳까지 와서 검을 찾는지.”
쯧쯧 혀를 차는 노인을 보며 용병 사내 또한 어이가 없었는지 웃고 말았다.
“좀 특별한 검을 만들고 싶어서 그랬수다.”
“무슨 특별한 검?”
사내의 말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화로에 불을 지피던 노인이었다.
“그······귀신도 벨 수 있는 검을 만들고 싶은데.”
“귀신?”
멀쩡하게 생긴 양반이 무슨 생뚱맞은 소리를 하는지 노인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귀신이면 여기 말고 교회나 가보시지.”
“아니, 아니 영감. 그럼 혹시 쇼아라의 블라드라고 들어는 봤소? 듣자 하니 여기 출신이라 그러더라고.”
“블라드?”
낯익은 이름이 낯선 사내에게서 흘러나오자 노인은 화로에 던져넣던 석탄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놈은 왜······혹시 죽기라도 했는가?”
“아시나 보네! 그러면 여기 출신은 맞는 거요?”
이제야 말이 통한다는 듯 용병 사내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친구한테 슬쩍 물어보니까 쇼아라 뒷골목에 있던 대장간에서 맞췄다고 하더라고.”
“무엇을.”
살아있구나.
노인은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사내의 말은 도저히 믿기 힘든 것뿐이었다.
“그 애송이가 귀신을 베었소.”
“귀신?”
“그렇다니까. 저주받은 여자였는데 검에서 광채가 나더니 반으로 갈라버렸다니까.”
지금 낡은 대장간에 들어온 용병 사내는 토벌대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한 채 돌아온 용병 중 하나였다.
죽음의 위기, 그 순간 빛났던 하얀색의 일섬(一閃).
용병 사내에게 있어 자욱한 안개 속 번쩍였던 그 빛은 여태껏 보아왔던 그 어떤 것보다 빛나는 것이었다.
“그 어린놈이 오러를 다뤘을 리가 없잖소. 그래서 검이 특별할 거라 생각한 거요. 그놈이 검을 엄청 애지중지 하기도 했고.”
“······.”
용병 사내는 나름 높은 가능성을 생각해 쇼아라의 뒷골목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래서 귀신도 벨 수 있는 검. 그걸 만들 줄 아는 신묘한 대장장이가 이곳에 있을 거라는 게 내 결론이지. 혹시 아는 짚이는 곳이 있소? 말해주면 적잖이 사례하겠수다.”
“하······.”
용병 사내의 말에 늙은 대장장이는 많은 것이 담겨있는 한숨을 내뱉었다.
애송아 무슨 짓을 한 거냐.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나 같은 놈을 귀신도 베는 검을 만드는 대장장이로 만든 거냐.
“못 들어보셨소?”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그러지 마시고······.”
“물어봐도 아무도 모를 거야.”
아무도 모를 것이다.
아니, 믿지 않을 것이다.
그날 밤 쓰레기들과 함께 떨어져 내린 소년이 귀신도 베어낼 빛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자신이 만들어 낸 검이 그 빛을 머금었다는 것도.
“아무도 모를 거라고.”
“······.”
해가 들지 않는 곳에서 태어난 소년과 초라한 대장간에서 만들어진 검이 빛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사내가 떠나가고.
노인은 하던 일도 멈춘 채 자리에 앉아 멍하니 가게 앞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사람이 지나가는 가게 앞은 진창으로 엉망이 되어있었지만, 노인의 눈에는 보이고 있었다.
별을 바라보던 소년이 만들어냈던 슬픈 발자국이.
언제나 서성이던 그 녀석의 모습이.
1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