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30
검은 눈물을 흘리는 여인. 라마슈트 (2)
온통 새까만 공간이었다.
내려다본 나의 손바닥조차도 구분할 수 없는 그런 곳.
그러나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은 이 공간에서도 희미하게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하나 있었다.
“······노래?”
캄캄한 어둠 속에서 홀로 서 있던 요제프는 저 앞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의아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어디인지, 어째서 여기에 오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저 앞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만큼은 분명 선명했으니까.
······돌자, 돌자. 성냥 주위를 돌자.
마치 어린아이들이 부르는 것만 같은 노랫소리였다.
희미하게 들려오던 그 소리에 홀린 듯 걸음을 옮기던 요제프는 곧 저 앞에서 보이는 자그마한 모닥불 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부르던 노래가 끝날 때까지.
부르던 모두가 넘어질 때까지.
돌자, 돌자. 성냥 주위를 돌자.
저 앞에서 흥겨운 노랫소리와 함께 자그마한 아이들이 모닥불 옆에서 뛰놀고 있었다.
누가 곁에 온 지도 모른 채 흥겹게 뛰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분명 평화로워 보였으나 지금 상황에서만큼은 분명 위화감이 느껴지는 모습이기도 했다.
“······쉬질 않는군.”
그렇기에 요제프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먼 곳에서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깜깜한 어둠 속, 도저히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는지 알지 못할 정도로.
그러나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그 시간 속에서도 조금도 멈추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은 분명 기이한 것이었다.
“······.”
그저 끝없이 끝없이 돌고만 있을 뿐.
나아갈 곳을 찾지 못해 멈춰 있을 뿐인 어린아이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제자리에 머문 채 빙글빙글 돌고만 있었다.
“계속 저러면 안 될 텐데.”
누군가는 멈춰줘야 할 것 같은 그 광경을 향해 요제프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여태껏 아무도 찾지 않았던 아이들을 향해서.
그렇게 요제프의 발걸음이 가까워질수록 모닥불을 뛰놀던 아이들의 고개가 하나둘씩 돌아가기 시작했다.
-누가 온다.
-누구지?
비록 눈동자가 있어야 할 곳에는 온통 공허한 구멍만이 존재하고 있었을 뿐이었지만.
그 상처와도 같은 시선은 부디 너희들만큼은 세상 어두운 곳을 보지 말라며 검은 여인이 막아 놓은 것이기도 했다.
-저게 뭐야?
-반짝이는데?
그러나 여인이 틀어막은 그 공허한 시선을 통해서도 보이는 빛이 있었다.
온통 빛바랜 것이었지만 이 어두운 곳에만큼은 그 어떠한 것보다 빛나는 것.
오직 라마슈트가 피워놓은 모닥불만 존재하던 이곳에서 새로이 반짝이는 그 빛은 아이들의 흥미를 돋우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은색이네. 이쁘다.
있어야 할 자리에서.
죽음이라는 정당한 대가를 치른 채로.
어둠을 헤치며 아이들을 향해 다가가는 요제프의 어깨 위에는 누군가가 두드려준 빛바랜 은색 하나가 빛나고 있었다.
※※※※
콰직-!
일렁이는 보랏빛 하늘 아래서 블라드가 달리고 있었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목 없는 자들을 사정없이 부수면서.
그렇게 삶과 죽음을 잇는 새하얀 다리 위에서 또 한 명의 거짓된 망자가 쓰러지고 있었다.
-크으으윽!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블라드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푸른 귀화가 흔들려 대었으나 삶이란 본래 전진하는 것.
이미 정당한 대가를 치른 블라드는 멈춰 버린 죽음을 뒤로 한 채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블라드 님! 저 앞에!”
뒤에 있는 기사들의 희생을 밟고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일행들.
그렇게 다리를 건널 대가를 치러낸 일행의 앞으로 어느새 목표했던 나무가 보이고 있었다.
“모시암 때보다도 더 큽니다!”
하늘을 가리키는 니벨룬의 손끝 너머로 높게 솟아 있는 역천의 나무가 있었다.
마치 여기로 오지 말라는 듯 흉측한 뿌리를 휘둘러대는 녀석은 과연 니벨룬의 말처럼 모시암의 나무보다도 크고 높게 자라있었다.
“······!”
그러나 블라드의 눈에는 저 앞에 보이는 나무의 웅장함 따위는 보이지도 않았다.
두근-!
그저 높이 솟은 뿌리에 꿰뚫려 있는 누군가만이 보이고 있었을 뿐.
멀리 있었음에도 알아볼 수 있는 검은 머리는 분명 여태껏 블라드가 찾고 있던 색이기도 했다.
“으······.”
‘이제 왔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언제나 나를 반겨주던 검은 눈동자의 청년이 있었다.
화사한 햇빛을 등진 채 깍지낀 두 손으로는 항상 턱을 받치고 있던 그런 모습으로.
‘와서 차나 한잔 들지. 내가 이제 위스키는 못 마시거든.’
잔뜩 내려앉은 눈그늘에는 짙은 피로가 가득했지만 그럼에도 나를 반겨주었던 이 세상 몇 안 되는 사람.
시간이 지나도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그의 모습은 블라드에게 있어 몇 안 되는 위안 중 하나였었다.
“으아아아아!”
이제 다시 그 모습은 볼 수 없게 되었지만.
하늘 높이 솟은 뿌리에 꿰뚫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검은 머리의 남자.
잔뜩 초라해져 버린 요제프의 모습에 블라드의 푸른 눈동자에 시뻘건 핏줄들이 올라서기 시작했다.
“라마슈트-!”
지금의 이 그림을 그려놓은 검은 여인을 향해서.
검은 눈물을 흘리던 누군가의 어머니.
숨이 막혀 죽어가던 어린아이들.
내가 직접 눈을 감겨 주었던 불행한 창녀와 길을 알려주었던 성기사.
그리고 이제는 나를 거둬주었던 커다란 울타리까지.
“반드시 죽여버리겠다-!”
우르르르릉-!
그 모두를 지키지 못한 용 한 마리가 사납게 울부짖으며 죽음을 향해 뛰쳐들어갔다.
-크으윽!
-막, 막아라!
다리의 끝자락에서부터 가속하기 시작하는 황금색의 지평선.
누군가의 삶을 밟아 새하얀 경계를 넘어 이제는 죽음을 향해 뛰어 들어가는 오늘의 태양이 기어이 라마슈트의 세계에서부터 떠오르려 하고 있었다.
“블라드! 쇼아라의 블라드!”
지금 내가 달려가는 그녀의 세계를 지우기 위해서.
그 빛을 알아본 검은 눈물의 여인이 나무 아래서 울부짖기 시작했다.
“너 때문이야! 이게 다! 너희들 때문이야!”
찬란히 빛나는 것이었으나 결국 이 세상 모두는 비치지 못할 빛.
그런 빛들이 만든 그림자에 가려져 허덕이던 그녀는 이제 모든 것을 내던진 채 새까만 손가락을 펼치고 있었다.
콰아아앙-!
죽고, 죽이고. 그렇기에 도저히 한 곳에는 서 있을 수 없는 두 개의 세계.
떠오르려 하는 태양을 짓누르는 새카만 밤하늘에는 빛나는 별 하나, 달 하나 없이 그저 슬픈 비구름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내 아이들 좀 그만 내버려 둬!”
“그놈의 아이들! 아이들! 이젠 지겨워!”
라마슈트를 향해 검을 치켜드는 블라드.
그런 블라드를 향해 다리에서 되돌아온 목 없는 기사들이 뛰어들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런 데까지 끌려와서!”
그러나 목줄 죄인 용이 감은 왼쪽 눈에서부터는 어느새 시뻘건 불길들이 치솟고 있었다.
라두의 세계는 반쪽짜리 열등감이 가득한 세계.
완벽할 수 없기에 끝없이 타오르고 마는 그의 세계는 지금 이단 심문관이 내려치는 법봉과 함께 커다란 불의 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네가 말하는 그 아이들 때문에 죽어간 사람이 몇인 줄 알아?”
그렇게 만들어진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서 블라드는 그녀의 멱살을 움켜잡은 채 울고 있었다.
그리고 울고 있는 블라드를 올려다보는 라마슈트의 눈동자에도 짙은 물기가 가득했다.
“너희가 죽였잖아!”
“네가 죽였잖아 요제프를!”
콰앙! 쾅! 쾅!
그러나 같은 슬픔으로 울고 있었을지라도 마주한 두 개의 세계는 도저히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잃었으니 너도 잃어야 하고 나도 잃었기에 너 또한 잃어야 하기에.
“살려내!”
그렇기에 맞부딪히고만 블라드와 라마슈트의 세계.
들고 있는 검조차 사치라는 듯 라마슈트를 내려치는 블라드의 주먹에는 그녀에게서 터져 나온 새까만 핏물이 가득했다.
“살려내라고!”
그러나 아무리 내려친다 해도 지금 마주한 둘은 서로가 잃어버린 것을 내어줄 수가 없었다.
그저 텅 비어버린 가슴 속에 서로가 주고받는 분노만 가득해질 뿐.
“······나는 너희들이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으아아아아!”
부딪힐수록 망가져만 가는 두 개의 세계 사이에서 새까만 나무의 가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오직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그 신호를 보며 라마슈트는 이제야 때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다 죽여버릴 거야.”
[······!]분노로 가득 찬 블라드는 볼 수 없었던 그녀의 미소.
그러나 키하노 만큼은 눈치를 챈 그녀의 수상한 기척은 어느새 어느새 불길하게 꼬고 있는 손가락을 따라 검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시간을 주지 말라고 했잖느냐!]쿠르르릉-!
이 시대 흑마법사들의 거두.
검은 눈물을 흘리는 라마슈트가 몰래 짚어낸 수인에서부터 거대한 진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건 또 무슨 일이야!”
“······다리가!”
갑작스러운 진동에 당황한 라두의 뒤에서부터 여태껏 건너왔던 다리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작디작은 원 위로 수없이 걸쳐져 있던 새하얀 다리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잇던 그 다리들이 무너지자 블라드가 서 있는 이곳은 오로지 죽음만이 가득한 세계가 되었다.
“이익!”
뒤늦게 사태를 알아챈 블라드가 라마슈트의 가슴팍을 향해 검을 내리꽂았으나 이미 그녀는 그곳에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 그렇게.
“내가 정말 몰랐을 것 같아?”
어딘지 지쳐 보였으나 라마슈트는 웃고 있었다.
자신의 의도대로 덫에 빠져들고만 용이 지금 바로 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덫의 미끼는 바로 요제프 바예지드.
“요제프 바예지드가 당신들이 보낸 첩자라는 사실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차분한 미소로 서 있는 라마슈트를 보며 블라드는 섬찟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자신을 향해 울부짖던 여인이었으나 지금은 너무나 환하게 웃고 있었으니까.
그 급격한 심정 변화가 그저 미쳤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깊게 새겨져 있던 용의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비록 내 귀한 아이들을 태울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다리들을 떼어낸 채 둥실 떠오르고 있는 섬 아래에서는 여태껏 보지 못했던 새까만 호수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로 깊어 보이는 그 호수는 여태껏 라마슈트가 흘려낸 검은 눈물로 채워진 것이었다.
“그래도 세 개나 모였으니 이제 됐어.”
“······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용을 보며 잠시 키득거린 라마슈트는 새까만 손가락을 들어 잔뜩 일렁이고 있는 보랏빛 하늘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위를 향해서 하나.
저 뒤를 향해 둘.
그리고 바로 앞에 있는 블라드를 향해 셋.
“비록 그분이 약속한 조각은 둘 뿐이긴 했지만.”
무엇이라도 될 수 있고, 바라는 대로 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조각.
지금 검은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는 그녀의 눈에는 이곳에 모여 있는 세 개의 조각이 보이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내 아이들이 다시 숨 쉴 수 있겠네.”
검은 눈물을 흘리는 라마슈트의 세계는 괴로움 한 점 없는 죽음만의 세계.
하늘높이 그 세계를 띄워올린 라마슈트는 어느새 차분해진 광기 사이로 자신의 덫에 걸린 용들을 바라보고 보고 있었다.
※※※※
이제는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 아치우크.
그곳을 향해 다급히 들이닥치는 군세가 있었다.
“바로 앞에 북부연합군의 깃발!”
“지금 한참 교전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황제의 깃발보다도 앞서 있는 황금색 용의 깃발.
이제는 두 날개를 활짝 핀 용의 깃발 아래서 용혈공 사르누스가 웃고 있었다.
“······빨리 달려온 보람이 있군.”
웃고 있는 그의 앞에서는 한참 싸우고 있는 북부연합군의 병사들이 가득했다.
하루가 꼬박 넘게 망자의 군세와 대치하고 있던 그들은 갑작스레 나타난 사르누스의 군대를 보며 크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온갖 잡것들은 다 저기 있구나.”
온통 갈라진 세계 사이에서 쉽게 통하는 것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시간 또한 마찬가지.
들어간 일행에게는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밖에 있는 북부연합군은 지금까지 꼬박 반나절을 넘게 대치하던 중이었다.
“너무 쉽게 끝나면 곤란한데.”
가혹한 강행군으로 무려 하루만큼의 시간을 벌어낸 사르누스의 군대.
물론 벌어낸 시간만큼이나 이탈하고 만 병사들의 숫자가 만만치 않았지만 전쟁의 승패가 중요하지 않은 사르누스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지금부터 북부연합군의 뒤를 치겠다.”
그저 많은 인간이 죽으면 그만일 뿐.
제국의 시대를 넘어 다시 한번 용의 시대를 노리는 가장 오래된 용의 깃발이 천천히 앞을 향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조금 늦었군. 사르누스.”
“······!”
그러나 기울어지기 시작하는 용의 깃발은 끝까지 자신이 원하는 곳을 가리키지 못했다.
“하긴, 너는 언제나 약속 시간에 늦고는 했지.”
“······프라우센?”
온통 색이 바래지고만 남자.
아무도 모르게 중앙의 군세 사이에 서 있던 그가 쓰고 있던 두건을 천천히 벗기 시작했으니까.
“그래. 내가 돌아왔다. 이 어리석은 용아.”
그렇게 벗어낸 두건 사이에서 보이는 그의 얼굴.
오직 가장 오래된 용만이 알아볼 수 있는 그의 얼굴은 분명 가장 완벽한 용을 죽인 초대 황제 프라우센이었다.
“제국 황제와의 맹세를 어긴 어리석은 용. 사르누스 드라굴리아.”
쿠르르르르-!
조용히 내뱉은 건국왕의 말과 함께 흔들리기 시작하는 대지.
산 자도, 죽은 자도 모두 당황하고 마는 그 엄청난 진동 속에서 차분한 자는 오직 되돌아온 황제뿐이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죽는다.”
쿠르르르-!
망자의 군세와 북부연합군.
그리고 뒤늦게 도착한 중앙의 군대까지.
그 모두를 가두려는 거대한 나무뿌리가 있었다.
가지가 아닌 뿌리부터 올라와 아무도 모르게 땅을 파고든 그것은 어느새 거대한 전장을 가두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리가 품은 용의 조각들과 함께.”
새까만 교회를 부수며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나무 한 그루.
라마슈트의 세계에서부터 깨어나 드디어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역천의 나무.
그것이 제 모습을 내비치며 전장에 서 있는 모든 것들을 가리기 시작했다.
“······프라우센.”
이곳에 있는 모든 이의 죽음을 먹어 치우기 위해서.
그들의 죽음과 함께 새로이 떠오를 세계의 이름은 검은 눈물의 세계.
어떠한 아이들도 죽지 않을 그 세계를 위해 흉측한 뿌리들이 제 혀를 날름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