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31
아이들의 노래 (1)
두드드드드-
아찔한 부유감과 함께 라마슈트의 세계가 부상하고 있었다.
마치 수면 위로 떠오르려는 거품 방울처럼.
그 거품이 떠오를 때마다 라마슈트의 보랏빛 하늘에는 깊은 균열이 새겨지고 있었고, 그 하늘 아래에 속해 있던 거짓된 동심원들은 바깥에서부터 속절없이 무너지는 중이었다.
“······현실로 부상하고 있어요! 곧 있으면 저희가 있는 이 세계 자체가 무너질 겁니다!”
그렇게 무너져 내리는 라마슈트의 세계에서는 그저 나무가 뿌리 내린 이 섬만이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었을 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무너져 내리는 바깥의 동심원들을 보며 블라드는 이 모든 광경이 처음부터 계획된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처음부터 다 버릴 생각이었어.’
라마슈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오직 아이들의 안위였던 모양이었다.
자신을 따르던 흑마법사들도 그저 수단에 불과했다는 듯 어두운 비명들과 함께 내던지고 있었으니까.
쿠르르르릉-!
“조심하세요! 곧 현실이 옵니다!”
날카롭게 외치는 니벨룬의 경고에 고개를 올린 블라드는 그만 저 위에 보이는 광경을 보며 두 눈을 크게 치켜뜨고 말았다.
“······저게 뭐야?”
내 위에 있는 하늘이 부서져 나가는 그 기이한 광경.
그러나 블라드는 깨어지는 하늘보다도 그 너머에서부터 점점 가까워지는 거대한 그림자에 더욱 놀라고 말았다.
“종탑?”
이곳에 들어오기 전 본 적이 있던 아치우크의 새까만 교회.
그곳 가장 높은 곳에 매달려 있던 교회의 종탑이 보랏빛 하늘 너머에서부터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창밖에서 비치는 풍경처럼, 무너져 가는 이 세계를 향해서.
“이런 미친!”
댕! 대애앵-!
기어이 맞부딪히고 만 세계의 경계 사이에서 하늘은 무너지고 종탑은 떨어지고 있다.
이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귓가로 들려오는 요란한 종소리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세계와 세계의 부딪힘 속에서 블라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고개를 숙이는 일뿐이었다.
쿠과가가강!
“으아아아!”
“빌어먹을! 젠장! 도대체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무지막지하게 부딪혀 버린 현실과 세계의 틈 사이에서부터 들려오는 육중한 울림이 있었다.
그것은 같이 할 수 없기에 밀어낼 수밖에 없는 세계들의 거친 고갯짓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밀려난 것은 라마슈트가 흘린 검은 눈물이 아닌, 현실의 세계였다.
“······크윽! 쿨럭, 쿨럭!”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교회의 잔해를 맞으며 블라드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차마 숨쉬기 힘든 자욱한 먼지 속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이리저리 뒹굴고 있는 교회의 종 뿐.
제 소임을 다했다는 힘없이 누워있는 아치우크의 종을 보며 블라드는 그제야 자신이 현실 세계로 빠져나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블라드! 정신 차려라!]“어서 일어나라 이 녀석아!”
그렇게 드리워진 자욱한 먼지 속에서 애써 블라드를 부르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내면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블라드는 그제야 그곳에서 자신을 불러대는 늙은 사제를 볼 수 있었다.
“저기, 저기를 봐라! 이제 시간이 없어!”
“······!”
전장의 한 가운데서 솟아오른 일행의 앞에는 방금까지만 해도 북부연합군과 싸우던 새까만 망자의 군세가 가득했다.
그러나 피에르의 손가락은 당장 닥쳐 있는 위협이 아닌 저 위에서 꿈틀대고 있는 무언가를 가리키는 중이었다.
“······저게 뭐예요?”
솟아오른 나무는 가지요, 떠오른 뿌리는 꽃봉오리니.
그 위에 선 여인이 두 손을 든 채 무어라 크게 외치고 있었다.
그것은 이 세상을 거부하려는 그녀의 마지막 발버둥이자 신을 향한 크나큰 반항이었다.
“세계 창조의 술이다! 자신이 신이 되고자 하는 최악의 술법이지!”
신이 만든 이 세계가 아닌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려 하는 배교자. 라마슈트.
그런 그녀가 외치는 주문에서부터 떠오르는 검은 물방울이 있었다.
자그마한 점에서부터 시작된 그 새까만 물방울은 라마슈트가 모아놓은 검은 눈물을 먹으며 조금씩 커지는 중이었다.
“······내 평생 이런 광경을 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죽은 자도, 산 자도 모두 침묵한 채 올려다보게 하는 검은 물방울의 모습.
그러나 이 아득한 광경을 눈앞에 두었음에도 주교 피에르의 얼굴에는 어째서인지 기이한 미소만이 맺혀 있을 뿐이었다.
“피에르?”
절망의 순간에서도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은 마치 광신도의 그것과도 같았다.
평생을 헤맸던 어둠 끝에서 헤맨 구마 사제이자 이단 심문관. 주교 피에르.
그는 마치 계시처럼 느껴지는 위기 속에서 이제야 자신이 태어난 이유를 찾았다는 듯 그렇게 웃고 있었다.
“······가장 어두운 하늘 아래 서 있는 바로 이 순간. 이런 순간에서 피어오르는 횃불이야말로 진정한 신의 뜻이 아니겠느냐.”
웃는 듯 우는 듯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찡그려져 있는 피에르의 얼굴.
그 얼굴에 떠오른 맹목적인 환희에 방금 보았었던 라마슈트의 미소가 겹쳐 보이는 것은 어째서일까.
“어쩌면 신께서는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나라는 사람을 준비하신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블라드?”
그 말과 함께 들고 있는 피에르의 법봉에서부터 새하얀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피에르가 평생을 품어왔던 신앙이자 의지였던 것.
비록 광기가 섞여 번들거리고는 있었으나 지금 보이는 그 빛은 가장 어두운 곳에 임하시는 신의 뜻이기도 했다.
“이게 아마 신께서 내게 주신 운명인가보다. 가장 밝게 타오르라고 말이야!”
따앙-!
수많은 불신자를 불태우면서도 조금의 흔들림 없었던 피에르의 신성.
그 신성이 지금 용이 들고 있는 검을 통해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니 어서 가서 저 사특한 것들을 베어버리고 오거라. 블라드 아우레오!”
나의 세계를 품은 검 사이로 신비와 신성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빛나는 검을 움켜쥔 블라드의 얼굴에는 한껏 찌푸린 주름만이 가득했을 뿐이었다.
“······진짜 끝까지 신만 찾고 있네.”
“뭐?”
신의 뜻을 품었음에도 어쩐지 불경해 보이는 금발의 기사.
한껏 감은 왼쪽 눈으로 피에르를 노려보던 블라드는 천천히 일어서며 역천의 나무가 있는 쪽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위에 있는 신만 보이고 지금 뒤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은 안 보여요?”
블라드가 가리킨 곳곳에는 온통 시커먼 죽음들이 가득했다.
망자의 군세와 흉측한 뿌리에 의해 죽어가는 병사들.
그리고 나무가 뿌리박은 호수에서부터 떠오르고 있는 여인들의 새하얀 뼛조각들까지.
이 모두가 아무도 봐주지 않는 곳에서 죽어간 반짝이지 못한 세계들이었다.
“······지금 이게 진짜 신의 뜻이라면 둘 다 똑같은 놈들인 거지.”
들고 있는 명분은 모두가 정당할 것이다.
그러나 극단에 다다른 목적은 결국 수단마저 가리지 않았으니, 블라드의 눈에는 아이들을 위해 여인들을 죽였던 라마슈트나 그런 라마슈트를 신의 뜻을 증명할 기회라 말하는 피에르나 모두가 똑같아 보일 뿐이었다.
“니벨룬. 나 아무래도 저 위까지 올라가야 할 것 같아.”
그러니 나라도 알아봐 줘야 한다.
여인들이 흘렸던 검은 눈물도, 모닥불 아래서 뛰놀았던 어린아이들의 모습도.
“신께서 원하신다니까. 그럼 해드려야지.”
지금도 태양을 가린 채 계속해서 커지고 있는 라마슈트의 검은 물방울.
그 물방울이 어떠한 슬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잘 알고 있는 블라드는 조용히 고개를 치켜든 채 자신을 향해 꿈틀거리는 흉악한 뿌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
쾅-! 콰앙! 쾅!
“공작님! 땅 밑에서부터 뿌리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
갑작스레 땅을 뚫고 나오는 새까만 뿌리에 연합군의 병사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그러나 강철공 티무르는 병사들이 내지르는 고통 대신 저 위에 보이는 드라굴리아의 깃발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진형을 굳혀라.”
“하지만 공작님!”
“진형을 무너뜨리지 말라고 했다!”
앞에는 망자들의 군세, 뒤에는 중앙군의 군대.
그사이에 끼고 만 강철공 티무르는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지금의 진형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틈을 주지 마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물러서야 한다.”
지금도 솟아오르는 뿌리들에 의해 병사들이 죽어가고 있었지만, 티무르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북부를 대표하는 강철의 공작에게는 본인이 짊어져야 하는 크나큰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조금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 여기서 군대가 와해라도 된다면 북부는 곧 끝장이야.”
누군가가 내지르는 비명보다는 내가 가진 대의를 위해서.
너무나도 타당한 결정이었지만 그 결정에 대한 대가는 지금도 비명을 내지르는 병사들이 짊어져야 할 몫이었다.
쾅! 쾅! 쾅쾅!
-으아아아!
-뿌리가! 뿌리가!
-살려줘!
“······프라우센.”
드라굴리아의 깃발 위에서 넘실거리는 나무뿌리들.
그 뿌리들이 먹어 치우는 병사들의 죽음을 뒤로 한 채 되살아난 황제와 가장 오래된 용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예전에 비해 시원치 않으시군. 가장 완벽한 용을 가르던 그때의 신위는 어디로 가셨나.”
이제야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프라우센과 사르누스의 등 뒤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뿌리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조각에 굶주려 있던 라마슈트의 뿌리들이었다.
“······기어이 황실의 조각을 삼키고 말았더군. 사르누스.”
“가장 완벽한 용의 조각이니 나에게도 정당성이 있는 것이지.”
맞대고 있는 검과 검 사이로 웃고 있는 사르누스와 굳어 있는 프라우센.
그러나 아무래도 되살아난 황제는 살아남은 만큼 강해지고만 가장 오래된 용을 상대하기가 버거운 모양이었다.
점점 그의 검이 위태롭게 밀려나고 있었으니까.
“그래. 네가 그리할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프라우센은 점점 불리해지는 균형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에게도 아직 남아있는 기회가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황실에 남겨둔 거다. 너보고 삼키라고.”
“뭐?”
일격필살의 검술은 의외성에서부터 시작하는 법.
그러나 의외성이라는 것은 꼭 들고 있는 검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어떻게 가장 완벽한 용을 죽였는지 잘 기억할 거다. 사르누스.”
맞대고 있는 검을 타고 검붉은 피 한 방울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황제의 피, 맹약을 잇는 증거 중 하나.
그렇게 점점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프라우센의 핏방울을 보며 사르누스의 눈이 커졌다.
“······잃어버린 많은 기억 중에서도 아직 그것만큼은 붙들고 있었지.”
이미 부서졌지만, 다시 한번 자신을 부숴버린 황제의 조각이 핏방울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지금 자신의 뒤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비명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그렇게 프라우센은 용을 향해 스며드는 자신의 핏방울을 보며 웃고 있을 뿐이었다.
완벽을 꿈꾸는 용에게 퍼질 자신의 세계들을 보면서.
“프라우센-!”
※※※※
아이들을 위해 새로운 세계를 만들려는 여인.
신을 위해 사특한 존재만을 바라보는 사제.
자신의 땅을 위해 희생조차 감수하려는 군주.
가장 완벽한 존재가 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용과 그 용을 막기 위해 되살아 난 황제까지.
“달려! 니벨룬! 달리라고!”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 모두가 옳고 정당한 것이었지만 결국 그것들을 이루기 위해서는 외면할 수밖에 없는 희생들이 있었다.
지금 죽어가는 병사들처럼, 이미 죽어버린 여인들처럼. 도무지 반짝여 본 적이 없기에 모두가 무시하고 마는 그런 존재들 말이다.
“더 빨리 가라니까!”
“안 된다고요! 이게 한계란 말이에요!”
그렇지만 지금 양탄자를 탄 채 나무를 오르는 블라드만큼은 그들의 슬픔을 보고 있었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 떨어져 있던 뒷골목의 소년은 그 누구보다도 진창에 서 있는 자들의 심정을 잘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다 죽는다고! 이 속도면!”
용도 아니고, 신의 종도 아니며, 귀족도, 황제의 계승자도 아닌 그저 뒷골목의 소년.
그러나 오직 보잘것없던 그때의 소년만이 모두가 내지르는 고통을 멈추기 위해 하늘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거 할머니가 아끼시던 양탄자였는데!”
휘날리는 뿌리를 간신히 피해, 감히 올려다보기도 힘든 높디높은 흉측한 나무를 오르면서.
그렇게 엉망이 된 양탄자를 타고 하늘 위로 올라가는 별 하나가 있었다.
지금도 달려드는 흉측한 뿌리들을 겨우겨우 베어가며 날아가는 그 별은 저 위에 보이는 어두운 밤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달이다.”
“······.”
그렇게 엉망이 된 양탄자를 타고 올라간 하늘에는 새까만 달 하나가 블라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길한 일식처럼 태양을 가린 채 서 있는 그 달은 전장의 모두를 자신의 그림자로 가린 채 오만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난 달이 싫어.”
“네?”
마치 나의 둥지를 부수던 푸른 달의 모습처럼.
색깔은 달랐으나 여전히 떠 있는 달의 모습을 보며 블라드는 예전의 광경을 떠올리고 말았다.
그곳은 장미의 미소.
온통 핏물로 가득했던 창관.
그리고 소년의 세계가 깨어졌던 곳.
“달이 싫다고.”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의 세계를 집어삼키는 라마슈트의 세계를 보며 블라드의 감은 눈에서부터 그때의 푸른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토록 죽이겠다고 외쳤으나 결국은 닿지 못한 나의 푸른 달.
그러나 오늘만큼은 닿을 것만 같은 그 달을 향해 블라드는 자신의 세계를 품은 검을 치켜들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부수고 만다.”
이곳에 있는 영웅 모두가 외면해버린 아무도 보지 못하는 별들을 위해.
그들을 위해 스스로 떠오른 별의 이름은 쇼아라의 블라드.
어두운 밤하늘에서 홀로 반짝이는 블라드의 세계에는 어느새 내가 올려다보았던 푸른 달빛이 섞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