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32
아이들의 노래 (2)
나무 안의 세계는 너무나 따뜻하고 안락했다.
마치 나를 안아주는 어머니의 품처럼 정말 떠나고 싶지 않은 그런 세계였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그러나 모닥불에 있던 몇몇 아이들은 요제프를 따라나서고 있었다.
아무리 어린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언제까지고 이곳에 멈춰 있을 수는 없다는 듯이.
-아저씨. 이제 우리 어디로 가요?
-길 아는 거 아니었어요?
그러나 이들이 헤매고 있는 이 세계는 출구 없는 나무의 세계.
자신을 꿰뚫은 뿌리를 통해 본의 아니게 이곳까지 끌려온 요제프는 도대체 어디로 나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게 말이다.”
내가 들어온 곳이 있을 테니 어딘가 나갈 곳도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보이는 것은 깜깜한 어둠뿐.
오직 등 뒤의 모닥불만이 비치는 그곳에서 아이들은 앞으로 나아갈수록 점점 어두워지는 주위에 하나둘 요제프의 옷깃을 붙잡기 시작했다.
콰직! 콰지직!
“응?”
그렇게 헤매고 있는 요제프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태껏 편안한 고요함만이 감돌던 이곳에서 처음으로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음.
그 소음과 함께 비치는 머리 위에 빛에 요제프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제 그만하자!
“······블라드?”
마치 메아리처럼 멀리서 들려오는 것만 같은 누군가의 목소리.
-이제 그만하자고!
그러나 아무리 멀리서 들려도 확연히 알아들을 수 있는 그 목소리는 분명 나와 함께해주었던 기사의 목소리였다.
※※※※
“으아아아! 당했어요!”
니벨룬의 비명과 함께 처참히 뜯겨 나간 양탄자의 조각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이리저리 휘청이고 마는 블라드와 니벨룬.
신비라는 천 쪼가리에 겨우 발을 디디고 있던 그들은 추락하는 양탄자 위에서 위태로이 휘청거릴 뿐이었다.
“수고했다.”
“네?”
그러나 블라드는 자신이 추락하는 그 순간에도 저 앞에 있는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나무 가장 높은 곳에서 주문을 외워대는 여인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아무리 망가졌어도 혼자 내려갈 정도는 되지?”
“블라드? 블라드 님?”
“그러면 조심히 가라!”
“아니죠? 설마 아니죠?”
슈아아악-!
지금 블라드의 눈동자에 맺혀 있는 세계는 오귀스트가 알려준 가장 옳은 길을 찾는 세계.
그 세계가 지금 매섭게 날아오는 뿌리 한 줄기를 비추고 있었다.
마치 그곳밖에는 길이 없다는 듯이 그렇게.
“나도 아니었으면 좋겠어!”
뿌리를 아슬아슬하게 피해간 양탄자 위에서부터 블라드가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곧이어 느껴지는 아찔한 추락감에 날개 없는 용은 이를 악물고 말았지만, 이제는 정말 이 방법뿐이었다.
“으아아아아!”
콰득! 콰드득!
추락하고 마는 찰나의 순간, 그 순간을 틈타 스쳐 지나가는 뿌리에 검을 꽂아 넣은 블라드.
손끝에서부터 전해지는 무지막지한 충격감이 고통스러웠지만 블라드는 끝까지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됐다!”
그렇게 기어이 검을 손잡이 삼아 뿌리 위로 올라선 블라드는 저 앞에 있는 나무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뱀처럼 낭창거리는 흉악한 뿌리를 타고서.
그 뿌리를 타고오는 블라드를 향해 나무 위에 있던 목 없는 기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놈이 넘어오고 있다!
-쇼아라의 블라드! 저 미친놈!
-막아라! 뿌리를 끊어!
자신을 타고 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뿌리가 제 몸을 마구 뒤흔들고 있었으나 검사란 그 어떠한 순간에도 균형을 잃어서는 안 되는 법.
언제 어디서나 전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일격필살의 계승자는 그 흔들림 속에서도 자신의 목표를 잃지 않고 있었다.
[바로 앞에 놈들이 있다!]“흐으으······.”
[내가 뭐라고 했었지? 기선제압은 어떻게 하라고 가르쳤었냐!]“흐아아아!”
키하노의 목소리와 함께 새까만 뿌리를 가르는 블라드의 화려한 지평선.
그 황금빛 지평선의 끝에서부터 빛나는 세계 하나가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비록 위에 있는 달보다는 작은 것이었지만 분명 저 아래에 있는 모두가 알아볼 수 있는 그런 빛이었다.
“내 앞을 막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라!”
목 없는 기사들을 가뿐하게 뛰어넘는 황금빛의 세계.
라마슈트의 수족들은 자신들을 뛰어넘어가는 블라드를 그저 멍청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바로 자신들의 앞에서 날아오는 황금빛의 검풍을 발견하지도 못한 채.
퍽! 퍼버버퍽!
그 바람이 닿은 곳마다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검은 장미들의 모습.
썩어버린 검은 물감으로 그려낸 이 화려한 그림은 마치 장미의 미소에서 보았던 푸른 달의 기사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내 세계에 깊이 박혀 있는 푸른 달의 빛을 따라.
그렇게 고딘의 검술을 재현해 낸 블라드는 흩날리는 기사들의 파편들을 뒤로 한 채 라마슈트를 향해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라마슈트-!”
달에게 닿기 위해서.
이번만큼은 부숴야 할 달에게 닿기 위해서.
그렇게 달려나가는 블라드의 발걸음에는 분명 내가 원하는 길이 새겨져 있었다.
“비켜 이 새끼들아!”
콰직-!
머리 위로 날아드는 뿌리를 피해 구르고, 자신들을 가로막는 목 없는 기사들을 부수고.
어두운 무리로 가득한 나무 위의 공간이었지만 한 번 가속하기 시작한 블라드의 전진은 그보다도 더 매서운 것이었다.
“멈춰라! 라마슈트!”
바닥에 있는 자가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도약할 거리가 필요하다.
비록 내가 뛰고 있는 이곳이 온통 진창으로 가득하다고 해도 말이다.
“당장 멈추라고 했다!”
웅웅-웅-!
그렇게 블라드는 뛰어오르고 있었다.
발밑에 있는 수많은 칼날을 밟으며 이 모든 비극을 만들어낸 여인을 향해서.
“······블라드 아우레오!”
그녀에게 달려드는 빛은 너무나도 명확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외우던 주문도 멈춘 채 다급히 만들어낸 라마슈트가 결계가 있었지만, 그것은 그저 유리와도 같이 가볍고 깨어지기 쉬운 것이었을 뿐.
콰직! 콰지직!
“꺄악!”
“크으윽!”
마치 오벨리스크처럼 우뚝 솟아있는 라마슈트의 제단.
그 넓지 않은 제단 위에서 산산이 부서진 결계들의 파편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 날카로운 파편 위에서 굴렀을지라도 블라드의 전진은 멈춤이 없었다.
“이번에는 시간 안 준다!”
“······!”
아까의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듯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금발의 기사.
콰득!
“흐으으으······.”
그렇게 조금도 허락되지 않은 거리와 시간 속에서 라마슈트가 휘두르는 손짓은 쉽게 그 끝을 맺지 못하고 있었다.
쾅! 콰직!
“꺄아아악!”
“멈춰 씨발! 멈추라고!”
그렇게 파고든 간격을 통해 고운 얼굴을 후려치고 가녀린 손가락을 베어내고.
그렇게 흉폭하게 들이미는 용의 이빨 앞에서 라마슈트는 고통 어린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이익!”
치이익-
그래도 이대로 멈출 수는 없다는 듯 블라드의 갑옷을 잡아 쥐는 악독한 손길.
그 손길을 통해, 슬픔과 고통, 그리고 온갖 저주들이 블라드에게 달라붙었지만, 어린 도마뱀의 숨결로 만든 드워프의 갑옷은 단 하나의 불순물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사납게 달궈지고 있었다.
“도대체 몇 명이나 더 죽일 셈이냐! 이 미친년아!”
“아이들······. 내 아이들을.”
“그러니까 그 아이들을 위해서 몇 명이나 더 죽일 셈이냐고!”
엉망이 된 라마슈트의 머리채를 잡아 쥔 블라드는 그녀를 질질 끌고서는 저 밑의 광경을 보여주었다.
새까만 나무가 뿌리 내린 저 밑의 세계는 차라리 지옥과도 같은 것.
이제는 딛고 있는 땅조차 믿을 수 없는 그곳에서는 북부와 중앙을 구분하지 않은 채 수많은 비명으로 가득할 뿐이었다.
“저 사람들 보여? 저 사람들 다 죽여서 뭘 어쩔 건데!”
인세의 지옥을 가리키는 기사의 목소리에는 본인조차 감당하기 힘든 분노가 가득했다.
그러나 이미 목적에 매몰되고 만 검은 여인의 눈에는 누군가의 비명이 아닌 나의 세계를 위한 단초로 보일 뿐이었다.
“······너무 더럽죠? 그쵸? 저기는 아무도 못 살려요.”
“라마슈트!”
“저런 흉측한 곳에서 내 아이들보고 어떻게 살라고 그래!”
여인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제는 숨 쉬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여인이 흘리는 눈물은 분명 저 위에 보이는 검은 달과도 같은 빛이었다.
“내 아이들은 저런 데서 안 살아! 저런 더러운 것들이 없는 깨끗한 세상에서 살게 할 거야!”
신을 향한 광기와 아이들을 향한 광기.
그 둘을 보고 있는 블라드는 그 순수한 광기들을 보며 차마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본인들의 세계가 아니었기에 도무지 통하지 않는 광신도들.
그런 그들을 보고 있는 이 시대의 기사는 그만 미쳐버릴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그래. 그렇게 지랄들을 해라. 나는 내 할 일을 할 테니까.”
그러나 이들과는 달리 블라드가 간직한 세계는 누구의 세계도 아닌 내가 직접 세운 나만의 세계.
오직 직접 보고 들었으며 배운 것들을 통해서만 채워 넣은 나의 세계는 그 어떠한 광기 속에서도 올곧게 블라드를 지켜주고 있었다.
“나는 안 미칠 거야. 너희들처럼은 절대 안 미쳐.”
부디 이 미쳐버린 세상 속에서 내가 처음 품었던 별의 색깔을 잃지 않기를.
광기와 고통이 가득한 아치우크의 한복판에서 블라드는 그렇게 다짐하며 은색의 검을 치켜들었다.
콰직-!
“안 돼!”
라마슈트의 비명과 함께 블라드의 검이 불길한 제단을 파고들었다.
마치 영혼이 깨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이었지만 이를 악문 블라드의 손짓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그만하자!”
세차게 상처를 벌려대는 검날의 끝으로 불거져 나오기 시작하는 새까만 눈물들.
그 눈물들을 알아챈 블라드의 눈에서는 차마 감추기 힘든 슬픔이 가득했다.
“애들한테는 미안한데! 이제 그만하자고!”
콰드드득-!
새까만 제단을 가르는 블라드의 검.
그 검이 번뜩일 때마다 저 위에 있는 검은 달이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쿠오오오오-!
엉망이 되어 울고 있는 여인과 떨어지고 있는 검은 달.
그 가련한 것들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듯 역천의 나무가 제 뿌리를 들어 올렸지만 이미 블라드는 그 자리에 없었다.
콰르르르릉-!
[블라드!]“으윽!”
발밑에서부터 무너져 내리는 제단이 있었다.
저 밑에 있는 수많은 죽음들을 먹으며 내 머리 위에 있는 검은 달을 띄우기 위한 제단이.
[빠져들면 안 된다! 이 제단은 세계의 연결부야!]그렇게 내 발밑에 보이기 시작하는 나무의 세계.
오직 새까만 공간만이 가득한 그 세계에서는 끝도 없는 무저갱만이 그 입을 벌린 채 블라드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런 젠장!”
신비를 알려주는 마법사도 없이 홀로 어두운 세계로 빠져들고 마는 블라드.
아무리 휘저어도 잡을 곳 없는 그 세계 속에서 블라드는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블라드!
“······!”
그러나 블라드는 모르고 있었다.
이 어두운 곳으로 떨어지는 자신일지라도 밑에서 보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빛나는 별과도 같다는 사실을.
-잡았다!
끝없이 추락하는 블라드를 향해 내밀어주는 손이 있었다.
사내답지 않게 새하얗고 비쩍 마르고 만 그 손은 분명 블라드가 잘 알고 있는 이의 손이기도 했다.
“요제프 님?”
그와 함께 수없이 내밀어지는 앙증맞은 손들.
요제프와 함께 보이지도 않는 어둠 속에서 내밀어진 아이들의 손은 분명 블라드를 위해 내밀어진 것이었다.
※※※※
“······미안하구나.”
어린 부제의 손을 잡으며 저 위에 있던 검은 달을 바라보던 안드레아.
그 달이 머금고 있는 지금의 광경은 분명 어린 소년들에게 있어 가혹하기 그지없는 것이었기에 안드레아는 그저 사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러나 그렇다 할 지라도 소년들의 노래는 계속되어야만 한다.
아무리 눈앞에 보이는 세상이 가혹할지라도 너희는 앞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이니까.
“너희가 노래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서 누가 희망을 말할 수 있겠니.”
“······주교님.”
다음 세대의 아이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흉측하고 공포스러울 수 밖에 없는 지금의 광경.
그러나 안드레아는 오직 아이들이기에 부를 수 있는 희망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안고 갈 테니 부디 너희들만큼은 노래를 계속해줬으면 좋겠구나.”
앞서 있는 사람들을 응원하기 위해,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렇게 해달라고 말하는 안드레아의 로자리오는 빛나고 있었다.
“네.”
저 위에서 떨어지는 달 아래서 여인이 울고 있었다.
더러운 이 세상을 향해 가라앉고 마는 세계가 너무나 가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인이 더럽다고 말하는 이 세상에도 울려 퍼지는 노래는 있었다.
“진짜 엄청 찾았잖거든요! 왜 이런 데 있는 거예요!”
-미안하다. 다 사정이 있었어.
소년들이 부르는 노래가 전장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노래를 들으며 올라가는 별 하나도.
“이젠 집에 가자구요.”
누군가가 끌어올려 주는 손길에 구원받은 블라드는 바로 앞에 보이는 요제프를 보며 화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아이들이 웃고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