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33
아이들의 노래 (3)
떨어지는 별을 붙잡고자 내민 손들이 있었다.
그것은 아직 제대로 피어나지 못한 작고도 어린 아이들의 손이었다.
누구의 지시도, 강요도 아닌 오직 자신만의 의지로 내민 어둠 속의 그 손들은 요제프와 함께 블라드를 붙잡아주고 있었다.
-오랜만이로군.
“······그러게요.”
마주 잡은 손 너머로 보이는 요제프의 얼굴은 주위의 어둠 때문인지 그 어느 때보다도 창백해 보였다.
그러나 블라드를 보며 지어주는 그 웃음만큼은 햇빛이 스며들던 집무실에서 본 모습에서 조금도 변한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끄응!”
한없이 떨어질 것만 같던 거꾸로 된 나무의 세계.
나를 붙잡아 준 손들에 의해 겨우 끌어 올려진 블라드는 그제야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들을 알아챌 수 있었다.
“······너희들이구나.”
드디어 발을 디딘 새까만 어둠 속에는 블라드를 보며 숨죽이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온통 새까맣게 칠해진 눈가가 가련해 보이는 아이들.
그럼에도 눈앞에 있는 자신 만큼은 알아본다는 듯 갸웃거리는 고개들을 보며 블라드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할 말은 많은데 일단 나중에 하자구요.”
-그래.
우리의 사정은 다음에 이야기 하자는 블라드의 말에 요제프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 자신이 떨어졌던 곳을 올려다보는 블라드는 어딘지 슬퍼 보이는 요제프의 기색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닫히기 시작하는군.]“······.”
어둠이 가린 아이들의 희미한 시선에서는 블라드라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환하게 빛나는 별빛만이 존재했을 뿐.
그렇게 하늘에서 떨어진 별이 다시금 위를 올려다보자 곁에 있던 아이들도 다 같이 위를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다른 길은 없었죠?”
-그렇더군.
그러나 올려다본 곳에서 비치는 빛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어두워만 질 뿐.
점점 닫혀만 가는 바깥 세계와의 통로를 보며 블라드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럼 어떻게든 저곳으로 올라가야겠네요.”
-위까지 올라갈 방법이 있나?
웅-웅웅-웅
그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 블라드의 검이 울기 시작했다.
별에서부터 태어나 세계수의 각인을 새긴 검이.
지금 내가 쥐고 있는 검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아챈 블라드는 결연한 표정으로 요제프를 바라보았다.
“······제가 한 번 만들어 볼게요.”
다시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일.
검이 말하는 울림을 들으며 블라드는 자신의 왼쪽 눈을 깊게 감았다.
“후우······.”
이 꿈과도 같은 세계에서 헤매는 아이들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그렇게 하기 위해 블라드는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아우슈린에서의 감각을 다시 한번 일으키기 시작했다.
“진짜, 한 번만 다시 해보자.”
콰직-!
긴장된 심호흡과 함께 힘차게 꽂아 넣은 검에서부터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블라드가 감고 있는 왼쪽 눈과도 같은 색으로.
지금 보이는 그 빛은 어린 세계수가 빌려주었던 그때의 색깔과도 같은 것이었다.
-응? 저게 뭐야?
-초록색인데?
두드드드드-
오직 고요할 뿐인 라마슈트의 세계에서 블라드가 만들어내는 균열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저거 새싹 아니야?
그 균열은 영원히 멈춰 있을 이 세계에 강렬한 변화를 가져오는 신호이기도 했다.
“흐으아아아!”
소드마스터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세계를 그릴 줄 아는 자를 뜻한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기사는 유일무이한 소드마스터의 계승자. 쇼아라의 블라드였다.
-블라드!
블라드가 꽂아 넣은 검에서부터 환한 초록빛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색은 지금 블라드가 그리고자 하는 세계의 빛.
환하게 새어 나오는 그 빛은 지금 곁에 있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모닥불 옆에서 서성이는 아이들에게까지도 닿고 있었다.
“끄으으으아아!”
아무런 색깔도 존재하지 않던 라마슈트의 세계에서부터 블라드가 그려내는 그림이 조금씩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그마한 새싹에서부터 시작했으나 어느새 저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것이었다.
-저건······.
태어나기는 용으로 태어났으나 그리고 싶어하는 것은 찬란한 꽃 한 송이.
그렇게 이 시대의 소드마스터는 아이들을 위한 계단 하나를 그려내고 있었다.
드드드드득-!
피어오르는 뿌리는 나를 알아봐 준 초록색.
솟아오르는 줄기는 나와 함께 하는 하얀색.
그리고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꽃잎은 언제나 내가 바라왔던 달의 푸른색.
“타고 가요!”
이 어두운 세계에서부터 하늘을 향해 피어오르는 꽃 한 송이가 있었다.
그것은 요제프도 본 적 있었던 소년의 세계였다.
“내가 받치고 있을 테니까!”
언제나 있어야 할 자리에서 피어나는 그 꽃의 이름은 쇼아라의 블라드.
어린 가능성을 위해 피어난 이번 세대의 꽃이 어서 자신을 밟고 오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
“크아아아아!”
부들부들 떨리는 눈가에는 이미 시뻘건 핏줄들이 가득했다.
“프라우센-!”
분노와 고통.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용의 푸른 눈동자.
그 눈동자가 가리키고 있는 사람은 죽음에서 되살아 난 황제. 프라우센이었다.
“······사르누스. 이 어리석은 용아.”
프라우센의 등 뒤에서부터 흉측한 뿌리들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프라우센을 무시 한 채 바로 앞에 있는 사르누스를 향해 시꺼먼 혀를 날름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 빌어먹을 자식! 끝까지!”
완벽함을 꿈꾸는 세계에 퍼지고 만 독 한 방울.
황실의 조각 속에 숨어 있던 빛바랜 세계 하나가 사르누스의 심장을 사납게 찔러대고 있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죽는다.”
자신을 향해 울부짖는 용을 향해 프라우센은 걷고 있었다.
죽어가는 병사들을 밟으며 등 뒤로는 사특한 나무를 부리면서.
지금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년들의 노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프라우센은 그저 그렇게 죽음을 그려내며 걷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만이 나에게 남은 마지막 의무일 테니까.”
오직 품고 있는 마지막 의무만은 놓지 않으려 애쓰면서.
그렇게 치켜든 은색의 기사에게는 어느새 빛바랜 색 하나가 맺혀 있었다.
“내가, 내가 이대로 끝날성싶으냐.”
고통에 힘겨워하는 가장 오래된 용의 머리 위로 흉측한 뿌리들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검보다도 날카로우며 성보다도 무거운 뿌리들,
그 뿌리들을 보며 사르누스는 분노어린 피거품들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아느냔 말이야-!”
“······!”
순간, 꽉 물어버린 사르누스의 입가에서부터 날카로운 송곳니들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치켜지는 용의 푸른 눈.
그 눈에 비친 완벽함의 잔재에 프라우센은 자신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나는 용이다! 완벽함을 꿈꿀 수 있는 용이란 말이다!”
콰가가가강-!
집채와도 같은 뿌리들이 기어이 사르누스를 덮치자 땅 위에 가득 쌓인 시체들이 이리저리 흩날리기 시작했다.
뿌리의 육중함을 이기지 못해 솟아오른 자욱한 먼지들과 함께.
“······사르누스.”
끄득! 그드드득!
그렇게 핏물과 섞인 붉은 안개 속에서 빛나고 있는 눈동자가 있었다.
감고 있는 왼쪽 눈에서부터 가장 완벽한 세계를 꿈꾸고 있는 사르누스의 눈동자였다.
“이렇게는 절대 못 끝내지.”
성벽과도 같은 거대한 뿌리를 들어올리는 사르누스의 오른팔에는 온통 황금빛 비늘들이 가득했다.
오직 순혈의 용만이 재현할 수 있는 그 완벽한 모습에 프라우센은 한껏 긴장하기 시작했다.
“겨우 네놈 따위에게 발목 잡히려고 수백 년을 버텨온 게 아니다. 프라우센.”
자신에게 치켜세워진 프라우센의 검을 보며 사르누스의 눈빛이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용이 바라보는 시선은 프라우센도, 흉측한 뿌리도 아닌 저 뒤에서 나를 보고 있는 보석과도 같은 세계였다.
“그리고 너만 수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르누스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 눈치챈 프라우센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그곳에 보이는 이 시대의 용 한 마리.
“······!”
사르누스의 의도를 알아챈 프라우센이 다급히 사특한 뿌리들을 향해 손짓했지만 이미 인간의 육신을 벗어던진 사르누스의 돌진은 전장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빠른 것이었다.
“······아버지?”
콰직-!
완벽함을 탐하는 굶주린 미소와 함께 핏방울이 솟아올랐다.
드리워진 드라굴리아의 깃발 위로 튀어 오르는 새빨간 용의 피.
감히 대항할 수 없는 이전 세대의 용을 보며 미르셰아의 푸른 눈동자가 찢어질 듯 커지고 있었다.
※※※※
쿠드드드드-!
“으으윽!”
온통 새까만 어두운 공간 위로 껍질과도 같은 잔해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러나 블라드는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잔해들보다 지금 자신을 밟고 오르는 아이들의 세계가 더욱 버거울 뿐이었다.
“꼬맹이들 주제에 뭐가 이렇게 무거운거야!”
꽂아 넣은 검에 의지한 채 잔뜩 굽어진 블라드의 등 뒤에서부터 작디작은 손들이 커다란 꽂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개미와도 같은 그 작은 몸짓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위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었다.
저 위에 보이는 빛을 향해서, 지금 귓가에 들려오는 소년들의 노래를 따라서.
[버텨라! 지금 오르는 아이들 하나하나가 세계 그 자체니까!]육체의 무게는 깃털처럼 가벼울지라도 영혼의 무게만큼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블라드는 저 위를 향해 오르려는 아이들을 위해 끝까지 이를 악무는 중이었다.
“······등골 빠지겠네. 진짜!”
솟아오를 날개까지는 달아줄 수 없었지만 밟고 올라갈 계단만큼은 만들어 주겠다는 의지.
그러나 지금 블라드가 발휘하고 있는 그 숭고한 의지는 그저 맹세나 맹약 때문에 발휘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들 이렇게 힘들었나 봐요?”
[······.]그것은 나라는 사람 또한 누군가의 등을 타고 올라왔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밟아가는 발자국 하나하나마다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었다.
쇼아라의 작은 대장간에서부터 시작한 그 얼굴들은 지금의 블라드를 위해 기꺼이 자신들의 등을 내어준 사람들의 얼굴들이었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이렇게까지는 안 했을 텐데.”
뒷골목의 소년에서부터 소드마스터의 계승자로.
장식 없는 검에서부터 용을 죽이는 검까지.
이 모든 성장들은 블라드라는 가능성을 믿고 밀어주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
그들의 희생을 통해 피어난 이 시대의 기사는 받은 값을 정당하게 치러야 하는 의무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쟤네들은 왜 안 간다는데!”
-잠시만 기다려봐라!
그러나 나의 등을 타고 오르는 아이들의 뒤로는 아직도 모닥불 옆에서 웅크리고 있는 아이들이 가득이었다.
사납게 부서지고 있는 이 세계를 보면서도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기가 무서운 아이들.
그 아이들은 어머니의 품과도 같은 이 세계에서 그저 두 눈을 꼭 감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나가지 않으면 영원히 이 세계에 갇히고 만다. 정말 그러고 싶은 거냐?
차분히 어르는 요제프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아이들의 움직임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꽉 닫은 눈을 통해서도 보이는 빛바랜 별의 흔들림.
그러나 아이들은 그 빛을 따라 움직이기 싫다는 듯 여전히 누군가를 기다리며 움츠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젠장! 빨리 올라가라고!”
이미 꺾여버린 어린 가능성을 위해 검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블라드는 고개를 숙인 채 가쁜 숨을 내쉴 뿐이었다.
“······주세요.”
그 순간 바닥에서부터 떠오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뭐?”
“주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검은 눈물과 함께 솟아오른 여인.
그러나 형체 없이 녹아버린 듯 잔뜩 꾸물거리는 그 모습은 도저히 산 자의 것이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라마슈트.”
자신의 마지막 힘까지 쏟아부어 검은 달을 지탱하고 있던 여인.
그 여인이 지금 여전히 자신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위해 지친 몸을 이끌고 블라드의 앞에 나타났다.
“부디 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검은 달을 띄울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을 위해서.
되살아난 황제도, 가장 오래된 용도 봐주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검은 눈물을 흘리는 여인이 이제야 피어난 꽃 한 송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저에게 당신이 가진 조각을 나눠주세요.”
죄악으로 가득한 여인 라마슈트.
그러나 그녀가 품고 있는 아이들만큼은 죄가 없었으니.
“제발.”
“······.”
검은 달이 가라앉고 있었다.
지옥과도 같은 이 전장을 향해서.
그러나 모두가 죽고 죽일 뿐인 이 지옥에서 아이들을 위해 울어주는 여인은 오직 검은 눈물을 흘리는 이 여인뿐이었다.
달을 향해, 안녕
쇼아라의 뒷골목은 언제나 어둡고 더러운 곳이었다.
그러나 블라드는 마음속에 항상 그때의 풍경을 담아두고는 했었다.
아마 그것은 뒷골목에 대한 향수라기보다는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괜찮아.”
어린 시절 기억하는 몇 안 되는 기억 중 하나.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온 어머니는 얼굴이 잔뜩 부어있었다.
장사 밑천이라 할 수 있는 얼굴이 시퍼렇게 부어오르고만 그녀였으나 적어도 아들에게만큼은 힘껏 미소를 지어주고 있었다.
“어서 먹어. 식겠다.”
그녀가 내미는 수프 그릇에는 두툼한 고기 조각들이 들어있었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마담의 호통을 들으니 아마도 자신을 위해 슬쩍한 고기인 모양이었다.
“이거 훔친 거야?”
“응.”
아이를 위해 고기를 훔친 어머니.
그러나 그녀가 내미는 수프에는 따뜻한 온기만이 가득할 뿐.
“뭐 어때. 내가 내 아들 먹이겠다는데.”
누군가에는 더러운 창녀이자 도둑이겠으나 지금 내 앞에서만큼은 오직 단 하나뿐인 소중한 사람.
그런 그녀가 내미는 수프를 보며 어린 블라드는 그렇게 작은 방 안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잘 먹을게.”
그녀가 들고 온 수프는 죄로 만든 것이었지만 또한 사랑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블라드는 그저 시퍼렇게 물든 어머니의 얼굴이 안쓰러웠을 뿐이었다.
※※※※
“누군가는 나한테 줘야 해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이제는 형체조차 잃어가는 여인이 블라드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어쩐지 허무해 보이는 그 손짓은 지금, 이 순간 그녀가 이 세상에 보일 수 있는 마지막 몸부림 같은 것이기도 했다.
“주겠다고 약속했단 말이에요.”
눈앞에 있는 용은 아니었지만 앞서 있었던 가장 오래된 용과 되살아난 황제는 그녀에게 약속했었다.
가장 완벽한 존재에서 떨어져 나왔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조각을 주겠노라고.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한 명 정도는 나한테 줘야 한다구요.”
그러나 지금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점점 저물어가는 검은 달 뿐.
살인자이며, 배교자.
오랜 세월 동안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독을 퍼트렸으며 수많은 사람들을 지옥 속으로 밀어 넣은 악의 창시자.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블라드 아우레오.”
그러나 지금 블라드가 바라보는 라마슈트의 면(面)은 악에 물든 광인이 아닌 아이들을 위한 어머니의 모습일 뿐.
지금도 울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오는 작디작은 손길들을 보며 블라드는 이를 악물고 말았다.
-왜 울어요. 수녀님.
-울지 말아요.
아무도 봐주지 않는 이 어두운 공간에서만큼은 라마슈트는 누군가의 어머니였다.
그러나 블라드는 이미 그녀의 수많은 죄악을 보아온 사람.
“안 돼.”
각자의 세계를 이루는 면(面)들은 모두 다채로운 것이었다.
그 면면마다 다른 이들은 보지 못하는 자신만의 모습이 있겠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라마슈트라는 세계는 이미 너무나 많은 죄를 지어온 세계였다.
“네가 그렇게 울어봤자 나는 흔들리지 않아.”
지금 나의 세계를 밟고 올라가는 아이들이 있었다.
이 시대의 기사가 만들어 준 옳고도 바른길을 따라가는 아이들이.
그러나 지금도 이 어두운 곳에서는 갈 곳을 잃은 채 슬퍼하는 아이들이 가득했다.
아마 그 아이들을 이대로 내버려 두면 울고 있는 그녀와 함께 다시는 꺼내지도 못할 지옥 속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그러니까 너는 이곳에 남는다. 라마슈트.”
“······.”
너만은 안 된다고 말하는 블라드의 목소리에 힘없이 무너져가던 라마슈트의 고개가 멈췄다.
그와 함께 들어 올려진 그녀의 시야에는 어느새 붉게 울고 있는 한 자루의 검이 비치고 있었다.
“너는 이곳에 남아서 대가를 치러야 하니까.”
웅웅-웅-
검이 울고 있었다.
자신의 세계 안에 깃든 용의 조각을 꺼내면서.
나를 이루는 근본이었으나 이제는 필요 없는 가장 완벽한 세계.
가장 오래된 용도, 되살아난 황제도 내어주지 않았던 그 세계가 어느새 블라드의 손에서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
쿠구구구구-!
비극만이 가득한 마을, 아치우크를 향해 떨어지는 달이 있었다.
애써 모은 눈물로 띄워 올린 그 달은 누군가의 염원에도 부질없이 그저 땅을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을 뿐이었다.
“흐! 흐흐흐!”
그리고 그 달이 만드는 그림자 아래서 가장 오래된 용 하나.
힘없이 널브러진 뿌리들을 뒤로 한 채로 웃고 있는 사르누스의 얼굴에는 수백 년을 기다려왔던 환희가 가득했다.
“그래도 아프긴 아프구나. 과연 최고의 결투사가 준비한 비수다웠어.”
“······쿨럭!”
여전히 고통스럽다는 듯 심장을 부여잡고 있는 사르누스였으나 그 얼굴에는 차마 숨기기 힘든 환희가 가득했다.
“이제야 너를 내 밑에 두는군. 프라우센.”
왜냐하면, 지금 내 아래에는 그 시절 가장 증오했었던 기사 프라우센이 쓰러져 있었으니까.
비록 가장 완벽한 용조차도 가지고 싶어했던 그의 빛은 잔뜩 바래지고 말았지만 이 썩어빠진 육신으로도 줄 수 있는 정복감은 아직 남아 있을 터였다.
“······아들의 피를 빨다니. 용이 아니라 괴물이 되었군.”
“죽었다 살아난 너만 할까.”
콰득!
그 말이 불쾌했다는 듯 사르누스의 검이 프라우센의 복부를 관통했다.
“이것 봐. 아파하지도 않잖아.”
“······.”
그러나 잔뜩 비집어진 프라우센의 상처에서는 그저 썩어가는 진득한 핏물만이 가득했을 뿐.
살아남기 위해 아들을 죽인 용.
돌아오기 위해 신념을 버린 황제.
목적에 무너지고만 그 시대의 기사들이 지금 광기 어린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부터 네 심장에 있는 조각을 빼낼 거다. 그럼 너는 그저 썩어가는 시체가 될 뿐이겠지.”
그러나 아무리 광기에 취해 있었을지라도 지금 사르누스는 프라우센을 짓밟고 서 있었으니, 이 전장의 승리자인 그는 마땅히 전리품을 누릴 자격이 있는 존재였다.
“그리고 나서는 바스토폴로 날아갈거다. 그곳에서 같잖은 강철공의 조각을 챙겨야겠지.”
“끄으으!”
“스투르마에 있는 바예지드의 조각도 챙기고. 빌어먹을 라브노마가 빼돌린 그 조각 말이다!”
“크으으으-!”
“그렇게 다 찾고 나서 마지막으로!”
복부를 관통했던 검이 사르누스의 외침과 점점 프라우센의 심장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검의 서늘함이 죽음을 가린 심장까지 다다르자 사르누스는 그 감촉을 즐기며 웃고 있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의 가능성도 가져가야겠지.”
가장 오래된 용이 웃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완벽한 가능성에 가까워진 용이.
그 웃음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한 프라우센이었으나 용을 용의 조각으로 막으려 했던 그의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다.
“고맙구나. 프라우센. 그동안 내 아들을 잘 키워줘서.”
사르누스가 내뱉은 마지막 말은 프라우센이 아닌 키하노에게 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쓰러져 있는 프라우센은 그 말을 정정할 만한 기력조차 남지 않았기에 그저 공허한 눈빛으로 하늘 높이 드리워진 사르누스의 검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걸로 우리의 악연을 끝내도록 하지.”
광기 어린 웃음과 프라우센의 심장을 향한 마지막 일격이 치켜 올려졌다.
조용했으나 진득한 사르누스의 웃음은 이 전장에 있는 어떠한 잔해들보다도 검은 것이었다.
쿠르르르릉!
“······윽!”
그러나 갑작스레 느껴지는 진동에 들고 있던 사르누스의 검 끝이 흔들리고 말았다.
“이건 또 뭐냐!”
갑작스레 뒤엉키는 지면에 사르누스는 프라우센을 노려보았으나 되살아난 황제는 그저 저 위에 있는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하하.”
어딘지 모르게 허탈한 웃음과 함께.
지금 그가 바라보고 있는 하늘에서는 자신이 그토록 가리고 싶어했던 붉은 빛줄기가 날아오르고 있었으니까.
“나는 졌지만 너 또한 지게 되었군. 사르누스.”
“뭐?”
무너져가는 나무가 마지막으로 쏘아 올린 가장 완벽한 붉은 빛.
아무도 믿지 못했기에 나는 감히 선택할 수 없었던 그 가능성을 보며 프라우센이 웃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르릉-!
세상을 가를 것만 같은 천둥소리와 함께 점점 무너져가던 검은 달에게로 쏘아지는 붉은 빛이 있었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쏘아진 그 빛에 땅 위에 있던 모두가 고개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저것 또한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
떠오르고 나면 영원히 이 세상과 이별하고 말 검은 달.
그 달이 삼킬 완벽한 조각을 보며 프라우센이 웃고 있었다.
※※※※
쿠르르르릉-!
역천의 나무가 무너지고 있었다.
이제는 가지에서 빨아들일 눈물이 단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기에.
라마슈트 뿐만 아니라 수많은 존재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죄악의 증거가 지금 폐허가 된 아치우크를 향해 쓰러지고 있었다.
“이제······. 우리도 가자구요!”
그리고 모든 것이 무너지는 이 위태로운 공간에서 블라드가 기어 나오고 있었다.
한쪽 어깨에는 요제프를 부축한 채 자신의 세계를 밟아가던 블라드는 드디어 저 위에 보이는 빛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로군.
위를 향해 갈수록 창백해지는 요제프의 눈가로 비치는 광경이 있었다.
마치 이곳이 출구라는 듯 두 사람의 머리 위를 반짝여대던 자그마한 반딧불들.
여전히 자신들을 기다려주던 아이들의 영혼이 이제야 왔냐는 듯 둘을 향해 반짝이고 있었다.
-노래도 들려오고.
밑에서 올라오는 둘을 확인한 반딧불들은 이제야 안심했다는 듯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년들의 노래를 타고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제야 알아 들을 수 있는 신의 음성.
그곳을 향해 날아가는 아이들을 보며 요제프가 웃기 시작했다.
턱!
“그래도 마지막에는 신의 품으로 가나······ 보네요!”
점점 희미해지는 세계를 타고 올라온 블라드는 기어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붙잡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도 이제 집에 가자구요!”
혼자서도 기어오르기 힘든 그 어두운 길을 요제프까지 부축하면서.
그렇게 올라온 블라드의 머리 위에는 아까와는 조금 다른 빛을 보이는 검은 달이 머무르고 있었다.
두드드드드-!
-그래, 가야지.
그러나 죽음을 벗어난 이곳에서도 요제프의 손은 여전히 차갑게만 느껴질 뿐.
그럼에도 짓고 있는 요제프의 미소만큼은 마지막까지 자신을 찾아준 블라드를 향해 있었다.
-미안하다. 여기까지 불러와서.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니까요.”
쿠르르릉-!
블라드와 말과 함께 둘이 딛고 있는 나무가 무너지고 있었다.
자신이 쌓아 올린 죄악을 이기지 못해 쓰러지는 나무였다.
-······철이 든 순간부터, 항상 상상해봤었지. 나의 끝은 어떻게 될까 하면서.
그러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이 순간에도 요제프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언제나 치열하게 살아왔던 짙은 눈그늘의 청년은 드디어 온전한 평화를 찾았다는 듯 그렇게 웃고 있었다.
-허약하게 태어난 것도, 이렇게 살아온 것도 모두 나의 뜻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마지막 순간만큼은 내가 그려보고 싶었다.
“······제발 그런 말은 나중에 말하자니까요.”
그 무너지는 잔해들 속에서 블라드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광경이 자신의 옆에 있었으니까.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언제나 내 삶의 완성은 죽음이라고 생각해왔었지.
블라드가 걸어갈수록, 죽음의 경계선에서 멀어져 갈수록 요제프는 차가워지고 있었다.
나의 어깨를 감싸 쥔 그의 손도, 나를 보며 웃고 있는 미소도.
점점 딱딱하게 굳어가는 그의 손을 어루만지던 블라드는 그만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
크게 뚫린 복부의 상처와 함께 블라드를 보며 웃고 있는 요제프.
여전히 그의 머리 위에 머무는 몇몇 반딧불들이 이제는 떠나야 할 때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달을 띄웠다. 네가. 아이들을 위해서.
“······같이 띄운 거예요.”
-그래. 같이.
내 생에 마지막에 띄워 올린 검은 달을 보며 요제프가 입을 열었다.
-맞다. 우리가 같이 했었지.
내가 가지지 못한 검과 내가 가지고 싶은 별을 주고받으면서.
그렇게 같이했던 둘은 이제 저 하늘의 달을 향해 이별을 고해야 할 때였다.
-고마웠다. 블라드.
요제프 바예지드.
내가 바라던 삶을 가지지 못했던 남자.
-네가 내 삶의 끝을 완성해주는구나.
그러나 내가 바라던 죽음만큼은 가질 수 있었던 남자가 블라드를 향해 웃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으로 들을 수밖에 없는 작별의 인사를 남기면서.
“······저도 고마웠어요. 요제프.”
그 말과 함께 블라드가 점점 굳어가는 요제프를 힘껏 껴안았다.
점점 다가오는 먼지들이 그의 죽음을 더럽히지 않도록 온몸으로 막아가면서.
“그 시궁창 속에서 나를 발견해줘서요.”
만족한 듯 천천히 눈을 감는 요제프의 머리 위로 자그마한 빛 하나가 떠나가고 있었다.
죽음의 마지막 순간, 이제야 찾아낸 요제프의 세계는 반짝이는 검은 색.
비록 검었으나 그의 눈그늘만큼이나 반짝였던 그 빛이 지금 하늘을 향해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정말 고마웠어요.”
검은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반짝이는 작은 불빛들과 함께.
이제는 닿지 못할 세계들이 영원한 작별을 고하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잘 가렴.”
무너져가는 나무 안에서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여인처럼.
외우지도 못한 기도문을 읊조리며 울고 있는 기사처럼.
이제 영원히 사라지고 말 완벽한 조각 하나에 울부짖는 용처럼.
“잘 가요. 요제프.”
이 세상을 떠나는 달을 향해 모두 안녕.
흩날리는 반딧불들과 함께 멀어져 가는 그 달을 향해서 푸르른 별빛 하나가 마지막 인사를 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