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34
이번에는 우리의 방식으로 (1)
넓디넓은 도로가 군사들로 인해 꽉 메워져 있었다.
얼핏 보아도 수만은 되어 보일 것 같은 군사들.
왼쪽에는 황실의 깃발을, 오른쪽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새겨져 있는 깃발을 들고 있는 그들은 궁정공 아르망이 자신의 마지막 여력을 다해 보낸 군대였다.
“정지! 전군 정지!”
하얀 비둘기가 보냈던 강철공의 신호를 따라 동부 가도를 따라 북상하던 궁정공의 군대,
용혈공 사르누스가 이끈 군대의 뒤를 바짝 쫓으며 북쪽으로 올라가던 그들이었지만 한시가 급한 지금에도 멈출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저것이 대체 무엇인가?”
이번 원정대의 사령관으로 임명받은 아른슈타인 백작은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언제나 냉철한 이성을 바탕으로 상황을 읽고자 하는 그였지만 지금 보이는 광경만큼은 도무지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설마······ 달인가?”
점점 저물어가는 태양 위로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마치 흑진주처럼 반짝이는 자그마한 달 하나.
익숙한 광경 위로 떠 오르는 그 이질적인 존재에 아른슈타인 백작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두가 침묵한 채 하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비록 어두운 곳에서 태어났으나 품고 있는 가능성만큼은 반짝인 채로 떠오르는 달.
마치 누군가가 그려 넣은 것만 같은 그 달이 지금 모두가 보는 하늘 위에서 이 땅을 비추고 있었다.
-······.
그러나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오늘 처음 떠오른 그 달의 빛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처연했고 또한 슬퍼 보이는 것이었다.
※※※※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달이로군.”
수만 명의 시체가 쌓여 있는 참혹한 전장.
그곳에서 떠오르는 달을 올려다보며 웃음 짓는 남자가 있었다.
“떠오른 저 달과 함께 완벽한 조각 또한 돌아오지 않겠지. 훌륭한 선택이었다.”
“······.”
시체들은 쌓여 있고 그 높던 나무는 무너져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교회의 잔해 밑에서는 교황을 찾으려는 사제들의 손길이 분주했지만, 그들을 제외하고서는 이 땅 위에 서 있는 모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널브러져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게나 훌륭한 선택이었으면 진작에 이렇게 하지 그랬습니까.”
그토록 모두가 지쳐있었다.
지금 블라드의 발아래 누워 있는 남자처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그랬다. 그녀는 이미 미쳐버린 여자였으니까.”
심장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멈춰가는 빛바랜 황제 프라우센.
그는 지금 용이 남긴 지독한 상처를 품은 채로 블라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아무도 믿지 못했던 거였지. 그녀도, 너도. 그리고 나까지도.”
점점 허물어져 가는 육신 위로 잠시 검은 달이 비추는 달빛이 머물렀다.
여태껏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자그마한 달빛.
그 달빛을 보고 있던 프라우센의 눈길은 어느새 블라드에게 업혀있는 검은 머리의 남자에게 머물러 있었다.
“지금 시대의 일은 지금의 기사들에게 맡기는 것이 맞는 거였음에도.”
모든 것이 끝난 지금에서야 프라우센은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있어야 할 자리에서 서 있어야 하는 이들은 이미 죽어버린 자신이 아닌 앞으로 이 땅을 이끌어나갈 젊은이들이었다는 것을.
“가장 오래된 용은 떠났다. 북쪽에 있는 조각들을 가지기 위해서.”
내가 뿌린 가능성들을 믿지 못한 내가, 과연 어린 가능성들을 탐하던 가장 오래된 용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그러나 단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점이 있다면 저 기사 안에 깃들어 있는 또 다른 나만큼은 결국 옳은 길을 걸었다는 것일 테다.
“그는 용의 날개를 가졌다. 그러니 따라잡지는 못할 거다.”
그렇기에 마지막으로 허물어져 가는 육신을 억지로 들어 올린 되살아난 황제.
그의 빛바랜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강철공의 도시 바스토폴이였다.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그 무엇보다 강력해지겠지. 너는 이제부터 그것을 막아야 한다.”
[······.]블라드는 프라우센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내가 태어난 북부의 땅을 가리키는 그의 손가락이 점점 흩어져 사라질 때까지.
“······그 사람이 어디로 가든 상관없어요.”
그러나 정작 블라드가 바라보는 곳은 프라우센이 가리키는 곳이 아니었다.
“용의 세계만으로는 그에게 대항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이미 나마르카에서 사르누스를 만나 본 적 있던 블라드는 이미 용의 세계만으로는 그에게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블라드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저 먼 북쪽에 있는 도시 쇼아라.
“그러니 이번에는 당신의 방식이 아니라 제 방법대로 해결할 겁니다.”
내가 태어난 도시가 있고 나를 믿어준 동료들이 있으며 내가 구해낸 가능성들이 있는 북부의 땅.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수많은 색깔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완벽에 근접한 용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몰랐다.
“······그래.”
자신이 가리키는 방향이 아니라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이 시대의 기사를 보며 프라우센이 웃고 있었다.
어쩌면 또 다른 실패로 돌아갈지 모르는 시도이겠지만, 그 실패마저도 이 시대의 주인들이 가져야 하는 마땅한 권리일 것이다.
“달이 밝군.”
달 아래 비치는 프라우센의 손가락이 흩어지고 있었다.
마치 덧없이 흩날리는 가루처럼.
그렇게 여태껏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천천히 흩어지고 마는 황제의 육신을 보며 블라드가 조용히 그 속에서 빛바랜 검 한 자루를 들어 올렸다.
※※※※
동쪽에서 떠오른 달이 아직 보이지 않는 멀고 먼 서쪽의 바다.
지금 잔잔해야 할 그곳에는 거대한 배들이 만들어대는 파도가 크게 너울 치는 중이었다.
펑! 퍼퍼펑!
요란한 대포 소리와 함께 선원들의 비명이 난무하고 있었다.
그러나 즐비한 황금색 깃발들 속에서도 붉은 장미 한 송이만큼은 힘차게 나부끼는 중이었다.
“오타르! 제 3탄 준비해!”
“포탄을 장전해라! 정신들 차리라고!”
어느새 회복한 황금공의 선단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북부의 배들이 있었다.
쉴 새 없이 달려드는 황금공의 선박들에 비해 비록 그 수는 적었지만, 양옆에 물레방아가 달린 드워프들의 배는 유려한 회피 기동을 통해 수적 열세를 극복하려 애쓰는 중이었다.
“여전히 쥐새끼처럼 구는구나! 붉은 장미!”
그런 북부의 배들을 보며 황금색 깃발 아래서 크게 웃는 자가 있었다.
“그때처럼 한번 달려들어 보지 그러냐! 이 건방진 애송이들아!”
황금공 카잔 바르보사.
북쪽으로 향한 또 다른 물결 하나가 지금 도시 나사우를 향해 넘실넘실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그것은 북부가 가진 마지막 해로를 잠식하기 위해 다가오는 날카로운 파도들이었다.
“이번에야말로 그때의 빚을 되받아내겠다! 여기에 가라앉힌 뱃값만 무려 34,564 골드나 되니까 기대해도 좋을 거다!”
이곳 서부의 바다에서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손해를 입고 만 그는 지금 기르고 있는 붉은 수염만큼이나 두 눈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런 그가 노려보고 있는 곳은 단 하나, 붉은 장미의 깃발.
그러나 그 깃발 아래 서 있는 외발의 선장 또한 바르보사를 노려보는 중이었다.
“애송이가 아니라 캡틴 하벤이다!”
어느새 측면으로 돌려버린 자신의 배와 함께.
“그리고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빚은 더 져야 할 것 같은데!”
바람에 의지하는 배로써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극적인 선회에 바르보사마저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측면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수많은 대포들.
그러나 바르보사는 자신을 향한 그 대포들보다도 낡은 선장모를 붙잡고 있는 외발의 선장이 더 불길해 보일 뿐이었다.
“······이 거리에서 쏜다고?”
펑! 퍼퍼펑!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바르보사의 앞으로 북부의 대포들이 겨누어지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반짝여대는 대포들은 모두 드워프들이 만든 것.
“발사!”
그것들 하나하나에 그간의 분노를 포탄들이 하벤이 찾아낸 바람을 타고 멀리 쏘아져 나가고 있었다.
“발사! 발사해!”
“드디어 한 번 쏴보는구만!”
“저 개 같은 남부 놈들! 싸그리 죽여버리고 말겠다!”
이 세상 가장 멀리까지 닿을 수 있는 포탄들.
펑! 펑펑!
니다벨리르의 드워프들이 쏘아올린 포탄들이 바르보사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다만 그 포탄들의 뒤를 밀어주는 바람만큼은 드워프들의 기술이 아닌 블라드의 잔향을 따라 올라온 바다의 정령들 때문일 것이다.
※※※※
“아버지. 지금 도시 나사우에서부터 출발한 서부 병력들이 근방 마을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도시 데어마르에 있는 알리시아의 집무실에는 지금 무거운 침묵만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곳으로 달려드는 가이다르와 황금공의 세력은 고작 데어마르의 성벽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용케도 합류했군. 바르보사의 포위망이 두터웠을 텐데.”
가이다르를 따르지 않겠노라 선언한 서부의 영주들이 지금 나사우를 경유해 데어마르 근처에 있는 항구까지 다다르고 있었다.
샤를 라브노마라는 깃발과 함께 북부 전선에 합류한 그들은 앞으로 있을 전쟁에서 소중하게 쓰일 동맹군들이었다.
“북부의 선장들이 최선을 다했다고 합니다.”
“······.”
앞에서 루트거의 보고에 페테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지만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
아마 단 한 마디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긴박한 전투가 그곳에 있었을 것이다.
“좋다. 예상치 못했던 병력들까지 합류해주는군.”
고개를 끄덕인 페테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작디작은 영지였으나 서 있는 깃발은 수십 개.
그러나 그중에서도 페테르의 눈길을 잡아끄는 자들이 있었다.
“······정말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까지 말이야.”
제국민들이 들고 있는 깃발이 아닌 색색깔의 실로 자신들을 표현하는 사람들.
비록 모두가 내치려 하였으나 요제프만큼은 품어야만 한다고 했던 북부의 야만인들이 지금 이 전장에 같이 서 있었다.
“용의 조각은 지금 어찌 되었지.”
“마법사 라그무스의 인도에 따라 지금 쇼아라 근방까지 왔다고 합니다.”
“어서 합류해야겠군.”
그러나 이 모든 사람들이 모였다 할지라도 서부와 남부의 연합군 앞에서 열세인 것은 당연한 사실.
거기에 강철공이 다급히 보낸 전보에 따르면 용혈공 사르누스까지 용의 조각을 노리고 있었으니 이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페테르는 데어마르보다도 더 높은 성벽이 필요했다.
“피난 준비는 어찌 되었습니까. 알리시아 남작.”
“······.”
순간, 페테르의 말에 집무실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한 여인을 향해 쏠리고 있었다.
이 땅의 정당한 주인이었지만 결국 힘이 없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는 알리시아 하이날 남작.
그녀는 지금 자신의 모자람에 대한 분노로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입을 열고 있었다.
“노인과 아이들을 위시한 피난 행렬은 이미 보냈습니다.”
“그럼 남작님도 이만 쇼아라로 올라가시는 게······.”
너무나 민감한 사항이었기에 페테르 대신 나선 루트거였지만 이윽고 보이는 알리시아의 핏발 어린 눈동자에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저는 제일 마지막까지 이곳에 남아있을 겁니다.”
비록 막아줄 힘은 없지만 떠나보낼 수 있는 마지막 의무만큼은 다하겠다고 말하는 알리시아.
그런 그녀의 단호한 기세에 루트거마저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저의 영지민들이 모두 떠나간 다음에요.”
이제야 희망을 찾은 데어마르였지만 재난과도 같은 전쟁의 물결만큼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 물결은 북부의 기둥인 바예지드조차 버거워하는 것이었으니 내가 지켜야 할 영지를 버려야만 하는 그녀의 선택은 그야말로 팔을 떼어내는 고통과도 같았다.
-······.
그런 그녀의 뒤로 보이는 풍경.
레몬향이 가득한 데어마르의 언덕에서 흰 뱀 하나가 고개를 쭉 내밀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걱정스러워 보이는 그 눈빛은 지금도 저 먼 북부를 날아다니고 있는 황금색 용을 향하고 있었다.
뀨-!
-······?
순간, 이 불안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앙증맞은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 태평한 그 소리는 흰뱀 뿐만 아니라 그곳에 올라타 있던 어린 정령들의 시선까지도 한 번에 잡아끌고 말았다.
뀨?
-······??
조그마한 구멍에서부터 슬쩍 제 머리를 들이민 두더지 한 마리.
평범한 두더지와는 다르게 빛나고 있는 그 녀석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흰 뱀을 마주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한 번에 스투르마까지 갔으면 더 좋았는데요.”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새긴 각인은 여기까지였거든. 녀석도 길은 알아야 할 거 아니냐.”
그 두더지가 파놓은 굴에서부터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자신을 처음 알아봐 주었던 금발의 소년과 세계수에서 이곳까지 찾아주었던 바라디스의 목소리였다.
“그래도 잘 도착했네.”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하나둘씩 어두운 굴을 해치며 나오는 수많은 사내들.
엘프, 수인족, 그리고 인간들까지.
그렇게 종족에 상관 없이 마구 뒤섞여 있는 사내들은 급하게 걸어온 모양인지 모두가 얼굴에 새까만 흙먼지가 가득했다.
“······저기 있겠네요. 페테르 님이.”
데어마르를 지키는 수호신인 흰 뱀은 갑작스러운 이 광경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겠다는 듯 작은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흰뱀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지금 나오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자그마한 뿌리 한 줄기였다.
-······!
그리운 뿌리 한 줄기.
나와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또 다른 세계수 한 그루.
그 나무를 알아본 흰 뱀의 눈에서 어느새 초롱초롱한 물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아버지한테 모셔다드릴게요.”
이제야 서로를 찾은 세계들.
그러나 등 뒤에 업혀있는 요제프만큼은 그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집에 갈 수 있겠네요.”
조각을 찾아 헤매는 가장 오래된 용과 북부를 향해 이빨을 들이미는 수많은 군세들.
그러나 지금 검은 달이 내려다보는 데어마르에는 온갖 색이 가득할 뿐이었다.
마치 흐드러진 꽃밭처럼 보이는 그곳은 단 하나의 색도 겹치지 않은 채 다가오는 위협에 맞서 자신들의 색을 내비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