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35
이번에는 우리의 방식으로 (2)
그것은 저물어가는 황혼과 함께 찾아왔다.
번져가는 붉은 노을 속에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그렇게 소리 없이 조용히.
“저건······.”
그렇기에 바스토폴을 지키던 경비병들이 태양 속에 떠오른 작은 점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너무 늦고 만 뒤였다.
왜냐하면, 점에서부터 시작한 작은 어른거림은 어느새 거대한 그림자가 되어 강철의 도시를 덮치고 있었으니까.
“저, 저게 뭐야?”
크아아아아아-!
감히 눈으로는 가늠하기도 힘든 빠른 속도로.
마치 빛처럼 빠르게 다가온 그것은 이미 붉은 숨결을 가득 들이마신 채 발밑에 있는 성벽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습격이다! 종을 울려라!”
“이런 젠장! 너무 빨라!”
“발리스타가 닿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황금빛과 함께 황급히 깨어나기 시작하는 강철의 도시.
그러나 이제야 막 침입자를 확인한 바스토폴의 대공망은 감히 자신들에게 짓쳐 드는 황금색 용을 막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와이번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용에게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세상에.”
주인 없는 도시의 성벽만으로는 도저히 대항할 수 없는 거대한 세계.
그러나 병사들이 그 세계의 거대함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용이 품고 있던 숨결은 세차게 뿜어져 나온 뒤였다.
“브레스다!”
“도, 도망쳐!”
쿠과가가강-!
뿜어낸 압력만으로도 성벽을 무너뜨릴 것만 같은 강렬한 숨결이었다.
그러나 그것과 함께한 열기는 저 뒤에 보이는 황혼보다도 더 붉은 것이었으니.
-으아아아아!
-뜨거워! 살려줘!
병사들의 비명과 함께 태양이 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지는 태양은 서쪽이 아닌 북쪽의 성벽을 따라 천천히 기울어지는 중이었다.
크아아아아!
시뻘겋게 달아오른 강철이 온갖 시체들과 함께 섞여 녹아내리고 마는 그 참혹한 광경.
그 모습은 마치 오래전, 가장 완벽한 용에게 짓밟히던 수많은 세계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바스토폴! 드디어 내가 이 도시를 불태워보는구나!
제국의 초대 황제와 함께 가장 마지막까지 항전했다던 바스토폴.
그러나 이제 녹슬어 버린 이 도시는 더는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되어줄 수 없었다.
※※※※
“······방금 바스토폴이 함락당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나지막히 들려오는 페테르의 말에 데어마르의 홀에서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기 시작했다.
북부뿐만 아니라 지역과 종족을 뛰어넘은 수많은 기사가 모여 있는 자리였지만 이들 중 그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할 정도의 고요함이었다.
“고작 5일이었다. 사르누스가 아치우크의 전장에서 떠난 지가.”
중부의 마을 아치우크에서 제국 최북단의 도시 바스토폴까지 고작 5일.
아무리 날개 달린 존재라 할지라도 한 달은 넘게 걸릴 그 거리를 고작 5일 만에 주파했다는 소식에 몇몇 기사들은 그만 억눌린 경악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그야말로 상식을 뛰어넘는 속도지.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몰락한 용의 잔재들을 너무 무시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제국의 황제이자 검의 정점인 소드마스터가 직접 갈라놓았던 가장 완벽한 용의 잔재들.
그러나 갈가리 찢긴 그것 중에서도 가장 오래도록 살아남은 용은 어느새 완벽한 조각들을 모아가며 그때의 악몽을 재현하려 하고 있었다.
“이로써 황제께서 나누신 5개의 조각 중 3개의 조각이 사르누스의 손에 들어갔다.”
황실이 가지고 있던 조각.
프라우센이 은퇴한 자신과 함께 세상 속에 숨겼던 조각.
그리고 방금 빼앗긴 강철공의 조각까지.
“그러니 이제 이 땅 위에 남은 것은 단 하나. 내가 가진 바예지드의 조각뿐이지.”
저 하늘 위에 떠 있는 검은 달이 가진 조각을 제외한다면 이제 사르누스가 노릴 수 있는 조각은 단 하나뿐.
예전에는 라브노마의 조각이었으나 지금은 바예지드가 가진 그 조각뿐이었다.
“그렇다면 백작님이 보관하신 그 조각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누군가가 내뱉은 질문에 기사들 사이로 긴장된 침묵이 감돌기 시작했다.
어쩌면 인간들에게 있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는 용의 조각.
그 조각의 향방이야 이번 전투의 승패를 가를 중요한 변수일 테니까.
“그 조각은 현재 스투르마를 떠났다.”
바스토폴을 가리키던 페테르의 지휘봉이 천천히 다음 도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새하얀 설원을 지나 린드부름의 둥지를 넘어.
북부의 동쪽에서부터 서쪽을 가로지른 그의 지휘봉은 어느새 북부의 등대라 불리는 한 도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쇼아라를 지나고 있지.”
바예지드 백작령의 도시 쇼아라.
북서부 물류의 중심 도시이며 불이 꺼지지 않는 뒷골목을 간직한 곳.
그리고 소년이 태어난 그 도시.
자신이 태어난 도시를 가리키는 페테르의 지휘봉을 보며 블라드의 푸른 눈에는 잔잔한 긴장감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조각에 우리보다는 사르누스가 더 가깝게 있다는 것이겠지.”
그러나 지금 내려오는 그 조각이 기사들이 있는 이곳 데어마르까지 온전히 닿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왜냐하면, 바스토폴과 쇼아라의 거리는 아치우크 때보다 훨씬 가까웠으니까.
“······그러니 이곳에 있는 누군가가 마중을 나가줘야만 한다.”
그렇기에 내려오는 조각을 안전하게 맞이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위로 올라가야만 했다.
그래야만 가장 오래된 용이 날아오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받아들 수 있을 테니까.
누군가는 지금 내려오고 있는 조각을 맞이해야 한다는 말에 기사들의 시선이 동시에 한 곳에 쏠리기 시작했다.
“······.”
쇼아라의 블라드.
이제는 대륙의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이름.
자신의 자그마한 깃발 안에 빛나는 이름들을 품고 있는 그 기사를 향해 대륙의 모든 대표가 서로의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
길고도 좁은 복도를 홀로 걷는 사내가 있었다.
워낙 많이 드나들었기에 이제는 안내 없이도 위치를 알 수 있는 데어마르의 저택.
그러나 블라드는 자신이 맨 처음 이 저택에 들어섰을 때는 짙은 눈그늘의 청년과 함께였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페테르 백작의 판단이 맞다. 지금 북부연합군은 이곳에서 움직여서는 안 돼.]인간의 탈을 벗어 던진 용의 위협은 이미 바로 앞까지 다다랐지만 이미 시작한 전쟁은 아무도 멈출 수 없었다.
쉽게 믿을 수 없기에 차라리 서로를 제거하는 것이 안전할 정도로 이미 그들의 세계는 크게 갈라져 있었으니까.
[그야말로 외통수로군. 아마 오래전부터 지금을 준비해왔던 모양이다.]키하노의 말처럼 지금 갈라진 틈 사이에서 누군가가 웃고 있었다.
자신이 갈라놓은 세계들이 서로를 틀어막으며 아우성치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기에 정작 막아야 할 용을 막지 못하는 지금 시대의 모습에 오래된 기사는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뭐 어쩌겠어요.”
북부로 올라오는 황금의 군대가 있다.
쇼아라로 다가오는 가장 오래된 용 또한.
그러나 둘 중 무엇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북부 연합군은 그들 모두에게 제 몸을 내민 채 날아오는 칼날들을 받아드는 수밖에 없었다.
“그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요.”
좁은 복도를 빠져나온 블라드의 앞으로 자그마한 빛이 비치고 있었다.
데어마르의 야트막한 언덕으로 나가는 그 출구는 이제 블라드에게 있어서 익숙한 뒷골목과도 같은 곳이었다.
“이제 왔나.”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블라드를 기다리고 있던 선객이 있었다.
밖으로 나가는 입구에 어깨를 삐딱하게 기댄 그는 블라드에게 있어 낯익고도 그리운 색을 가진 사내였다.
“루트거 님?”
“그래. 나다.”
내가 그리워했던 요제프와 같은 머리 색을 지닌 남자.
비록 생김새는 달랐으나 저 멀리서 웃고 있는 그는 내가 그리워했던 요제프의 미소와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진짜 저랑 같이 가실 생각이세요?”
“용을 잡으러 가는 곳에 용살자가 가지 않으면 누가 가지?”
가장 단단한 용을 베어버린 북부의 기사.
용살 기사단의 명부에도 적혀 있는 루트거라는 이름은 이미 북부를 대표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것일 테다.
“우리 합 좋았잖아. 나만 그렇게 생각했나?”
“하지만.”
블라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는 그를 보며 잠시 망설였지만 데어마르의 언덕에서 블라드를 기다리는 사람은 루트거 혼자만이 아니었다.
“익숙한 자리에서 또 만나게 되는군.”
“······파블로 님.”
“아른슈타인 백작께서 나를 먼저 보내셨다. 다행히 늦진 않았군”
소년의 세계를 가장 먼저 일깨워 준 남자. 아른슈타인의 파블로.
그의 단단하기 그지없는 위용을 보며 굳어있던 블라드의 표정에 조금씩 미소가 번져가기 시작했다.
“건강해 보여 다행이군.”
“로드리고 님.”
“아아. 이제는 제국헌병대장이라고 불러줬으면 좋겠군. 나 승진했거든.”
지금 블라드를 향해 악수를 보내는 그들은 모두 중앙의 궁정공이 보낸 기사들.
“바스토폴에서 한 번 본 적 있었는데 말이지. 마링겐의 랄프일세.”
“포드밀스의 에른스트입니다.”
그리고 강철의 도시 바스폴에서 함께 싸워본 적 있던 북부를 대표하는 기사들.
“이거 배에서 내리니 땅 멀미가 옵니다.”
“쇼아라는 나에게도 인연이 있지. 그때 그 술의 이름이 뭐였더라.”
내가 구원해주었던 드워프 해방전선 니다벨리르의 드워프들과.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우리 엘프들의 관습이지.”
내가 쥔 검과 같은 곳에서 태어난 아우슈린의 엘프들까지.
“······이렇게까지나 많은 기사가 빠져나가면 데어마르는 도대체 누가 지키는 거죠?”
좁고도 긴 복도를 나온 블라드를 기다리는 것은 데어마르의 언덕을 가득 메울 정도의 수많은 기사였다.
내가 보았고, 도움받았으며, 또한 함께 싸웠던 이들 모두는 블라드와 함께 전설과도 같은 황금색 용을 상대하리라 자원한 기사들이었다.
“아버지께서 오래된 기수들을 소집하셨다.”
“오래된 기수들이요?”
“은퇴한 기사들 말이다.”
연합군의 정예들이 빠져나가는 데어마르는 그야말로 구멍 뚫린 성벽과도 같을 것이다.
그러나 블라드의 걱정에도 루트거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듯 팔짱을 낀 채 입을 열 뿐이었다.
“윗세대에게 힘을 빌린 거지. 아마 팔다리 멀쩡한 사람들이라면 지금 다들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을 거다.”
그러나 그 자리는 이미 은퇴한 기사들의 몫이었다.
잊힌 영광에 목말라하던 윗세대의 기사들은 자신들이 아직 쓸모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바예지드의 깃발 아래로 집결하는 중이었다.
“라문드 님도 오시겠네요.”
“그렇지. 아마 그 영감이 제일 빨리 달려올 거다.”
홀로 걷던 복도였지만 그 끝에는 자신을 기다리던 수많은 기사가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무 위의 어린 정령들이 여기 좀 보라며 블라드를 향해 짧은 손을 이리저리 휘적여대고 있었다.
“눈이로군.”
“······저거 눈 아니에요.”
언제나 쓸쓸한 모습만이 가득하던 데어마르의 언덕.
그러나 그곳에 가득 메워진 수많은 세계를 보며 그제야 블라드는 한껏 웃을 수 있었다.
“봄에 내리는 눈이 어디 있어요.”
노래를 부르는 흰 뱀과 까닥이는 세계수의 뿌리.
그리고 그 운율에 맞춰 춤추는 어린 정령들의 축복이 하얀 눈송이처럼 내리며 이곳에 있는 기사들의 갑옷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봄에 웬 눈이지?
-좋지 뭐. 원래 떠날 때 오는 눈은 행운을 주는 법이라던데.
그러나 감고 있는 왼쪽 눈으로 이 아이들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블라드 뿐.
“가죠. 쇼아라로.”
그렇기에 블라드는 저 위에 있는 나무를 향해 있는 힘껏 팔을 흔들어주었다.
주위의 기사들이 이상하게 볼 정도로 크게 흔든 블라드의 팔짓은 이곳에 있는 모든 기사를 대신해 고마움을 표시한 것이었다.
※※※※
“원정대가 출발했습니다. 백작님.”
“······그래.”
뒷짐을 지고 있는 페테르의 등 뒤에서부터 새까만 까마귀 하나가 날아들어 왔다.
얼굴에 상처가 가득한 이름 없는 까마귀는 페테르가 내려다보는 자그마한 관을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은퇴한 기사들과 데어마르의 성벽만으로는 황금공의 군대를 막아 세우기 힘들 겁니다.”
“그래도 해줘야 하네.”
짙은 눈그늘의 사내가 잠들어 있는 관.
그 관을 내려다보던 페테르는 이윽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아들의 얼굴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등 뒤를 받쳐주는 사람도 있어야지.”
이제야 고요한 평온에 다다른 요제프 바예지드.
죽고 말 것을 알면서도 보내고만 못난 아비가 이제야 차갑게 식어버린 자신의 아들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그렇게 해낸 나의 아들아.”
귀족의 피는 푸른색이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차갑게 식는 피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 아비는 네가 자랑스럽구나.”
가슴을 향해 곱게 모여 있는 요제프의 양손에는 검 하나가 들려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아들이 어렸을 적부터 갖고 싶어 했던 기사의 검이었다.
조용히 흘러내리는 아버지의 눈물과 함께 기사들이 떠나고 있었다.
데어마르의 영주와 잠들어 있는 기사, 그리고 춤추고 있는 어린 정령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지역과 종족을 넘어 대륙 모두에서 모인 그들이 향하는 곳은 북부의 도시 쇼아라.
태어난 곳을 향해 달려가는 소년의 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