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36
마지막 조각 (1)
아직 눈조차 제대로 녹지 않은 새하얀 북부의 가도.
대륙에서도 가장 늦게 봄이 찾아온다는 그 길을 마구 내달리는 마차가 있었다.
“이랴! 이랴!”
반짝이는 갑옷을 입은 기사들과 그들이 호위하는 밤색 빛깔의 마차.
척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일행이었으나 지금 그들은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한다는 듯 황급히 얼어붙은 북부 가도를 내달리는 중이었다.
“그레고리 경! 서둘러야 하네!”
지친 말들이 내뿜는 입김은 짙어지고 차가운 바람에 얼어붙은 사내들의 땀방울들은 이미 수염에 잔뜩 달라붙어 있었다.
그러나 이런 강행군에도 그들이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방금 쇼아라에서 용의 그림자가 보였다고 하네!”
그것은 지금 이들의 뒤를 쫓아오는 존재가 바로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용이었기 때문에.
평범한 적도 아니며, 음험한 함정도 아닌 용이라는 존재가 뒤쫓는 그들은 스투르마에서부터 출발한 페테르의 호송대였다.
“이런 젠장! 너무 빠르잖아!”
이번 호송대의 책임자인 기사 그레고리는 마차에서 들려오는 라그무스의 목소리에 입술을 짓이기고 말았다.
쇼아라의 높은 하늘에서 보였다던 가장 오래된 용의 그림자.
그 그림자가 쫓는 것은 아마 이들이 보관하고 있는 용의 조각일 것이다.
“처음부터 안 될 것 같더라고!”
스투르마에 있던 용의 조각을 운반한 지도 오늘로써 2주째.
태어나서 이렇게까지나 내달려본 적 없던 그레고리였지만 그들의 뒤를 따라오는 용은 어느새 북부를 가로질러 새하얀 설원까지 다가온 참이었다.
“막심! 데어마르까지 앞으로 얼마나 남았나!”
“그래도 반나절은 더 가야 합니다!”
“빌어먹을!”
얼마 남지 않았지만, 도저히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거리.
굳이 계산하지 않더라도 이대로는 임무 달성이 불가능함을 깨달은 그레고리는 옆에서 나란히 달리고 있던 라그무스를 쳐다보았다.
“하시게.”
떠오르는 태양을 막을 수 없듯이, 지금 날아오는 용 또한 인간이 막을 수 없는 존재.
재해와도 같은 용이라는 존재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가오는 파멸을 그저 앉아서 지켜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두 번째 안으로 간다!”
준비되었다는 듯 끄덕이는 라그무스의 모습에 기사들을 가리키는 그레고리의 손가락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막심! 케이드!”
가장 강한 자들이 아닌 가장 빠른 기사들을 뽑아내는 그레고리의 손가락.
그레고리의 손짓이 닿을 때마다 내달리던 기사들이 말을 몰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냥꾼의 아들인 기사 케이드와 기마술에 일가견이 있는 기사 막심까지는 당연한 선택.
그러나 그레고리의 마지막 손가락만큼은 방금과는 다르게 조금은 머뭇거리고 말았다.
“······도와주겠나?”
지금 그레고리의 손가락이 멈춘 곳에는 색색의 천들을 머리에 묶어놓은 야만족 전사가 있었으니까.
자신들을 초원의 아들이라 부르는 부다아트 족의 전사 아게.
예전에는 뺏고 빼앗는 관계에 불과한 그들이었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사내 중 아게만큼 빠른 이는 아마 없을 터였다.
“이제야 나를 봐주시는군. 제국의 기사.”
조금은 긴장된 물음이었으나 정작 대답하는 아게의 얼굴에는 평온함이 가득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성벽 안쪽을 내주었던 값은 치를 생각이었으니까.”
용살기사단과 린드부름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고 말았던 부다아트 족.
그러나 짙은 눈그늘의 청년이 내주었던 성벽 덕분에 그들은 죽음과도 같던 설한의 추위를 피할 수 있었다.
“본래 목숨값은 목숨으로만 갚을 수 있는 법이지.”
가장 오래된 용이 그어놓은 틈을 따라 갈라져 있던 북부인과 야만족들.
그러나 그레고리가 전하는 용의 조각만큼은 그 틈을 건너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
조금씩 녹아가는 북부 가도를 따라 쇼아라를 향해 올라가던 블라드와 기사들이 있었다.
입고 있는 복색만큼이나 보이는 모습도 천차만별인 그들은 각자가 속한 깃발들을 높이 치켜든 채 북부의 도시 쇼아라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보인다! 보여요!”
“뭐가!”
순간, 쉴 새 없이 달려가던 그들 사이로 다급하게 외치는 니벨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금색 용이요!”
둥글게 만 손바닥을 양 눈에 대고 있는 니벨룬의 모습이 영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그의 손바닥에 그려진 눈알들이 마구 움직여대는 모습을 본다면 그 누구도 쉽게 니벨룬의 신비를 쉽게 비웃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저기······ 쇼아라. 아니, 초점이 너무 갔다.”
이게 아니라는 듯 다급히 손가락 몇 개를 핀 니벨룬은 이번에야말로 보인다는 듯 저 앞의 광경을 상세하게 읊기 시작했다.
“쇼아라를 이미 지나친 모양이에요! 아무래도 저희처럼 가도를 따라 날아오는 것 같습니다!”
크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모두에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지금 달려가고 있는 우리와 반대쪽에서부터 날아오고 있다는 가장 오래된 용.
조금 있으면 마주치게 될 그 흉폭한 모습을 떠올리며 몇몇 기사들이 침을 꿀꺽 삼키기 시작했다.
“그래?”
그러나 가장 앞서 달리던 블라드만큼은 다른 기사들과는 다르게 조금은 안심했다는 눈치였다.
“아직 늦지는 않은 모양이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말은 가장 알맞은 때를 맞춰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높은 하늘에 있어야 할 용이 도로를 찾아 내려왔다는 것은 아직 찾아야 할 것을 찾지 못했다는 증거.
“어? 어!”
그러나 지금 들려오는 니벨룬의 다급한 목소리는 블라드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 없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내려오는데? 내려와요!”
“어디로!”
오직 자신밖에 볼 수 없는 광경이었지만 니벨룬은 그것마저 잊었다는 듯 긴장된 숨을 헐떡이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마차로!”
둥글게만 니벨룬의 손바닥 너머로 보이는 광경이 있었다.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거대한 용의 그림자와 그 용이 사납게 잡아채려는 밤색의 마차까지.
“마차가 부서졌어요!”
날아오는 용을 향해 오러를 휘날리는 바예지드의 기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검은 단단한 황금빛 비늘에 막혀 그저 헛된 시도로 끝났을 뿐이었다.
“다들 빠르게! 시간이 없어!”
용의 발톱 끝으로 요란하게 비산하는 마차의 파편들이 있었다.
신비를 통해 보이는 그 처참한 광경에 니벨룬은 여기까지 그들의 비명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
“끄으으으······.”
아직 녹지 않은 눈 위로 붉은 핏물들이 어지러이 흩뿌려져 있었다.
파편이 되어버린 말들과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기사들의 시체.
그 참혹한 광경과 함께 꺾여져 있는 바예지드의 깃발 아래서, 기사 그레고리는 정신을 잃은 채 죽은 듯 쓰러져 있었다.
“꽤 멀리까지 도망치셨더군.”
“······언제 어디서나 길을 찾는 것이 마법사의 도리 아니겠소.”
지붕은 부서지고 이제 형태만이 남은 마차의 잔해 안에서 마법사 라그무스가 힘겹게 웃고 있었다.
“그래 봤자 헛수고인 걸 왜 모르나. 발버둥 칠수록 본인만 고통스러운 것을.”
그러나 용혈공 사르누스는 그 웃음이 반갑지 않다는 듯 얼굴을 찌푸릴 뿐이었다.
“그냥 태어난 대로 땅에서 기며 살면 될 것을.”
고작 땅을 기는 인간 녀석들 주제에 자신을 고생시킨 북부의 기사들.
그들을 갈가리 찢었음에도 여전히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 사르누스의 푸른 눈동자에는 여전히 꺼지지 않은 분노가 가득했다.
“조각은 어디 있나?”
“쿨럭! 쿨럭! 크으······.”
거친 손길로 라그무스의 멱살을 잡아 올린 사르누스는 여태껏 그가 깔고 앉아있던 새까만 상자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피투성이의 노인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내어주지 않으려 했던 검은 상자였다.
“음?”
그러나 지금 사르누스가 바라보는 그 상자에는 언제나 감겨 있어야 할 은색의 쇠사슬이 보이질 않았다.
“······아무리 땅을 기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뜀박질 정도는 할 수 있는 법 아니겠소.”
쇠사슬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피로 그은듯한 수많은 수식이 그려져 있었을 뿐.
용혈공 사르누스는 붉게 물들어있는 라그무스의 손목을 보며 그 핏물들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쪽도 이제는 늙으셨나 보오. 늙은이가 가린 용의 흔적도 못 알아보실 정도니.”
자신의 신비로 용의 흔적을 지워내고 또한 유혹해 낸 마법사 라그무스.
잔뜩 늙은 그의 얼굴 위로 인생 마지막 웃음을 그리는 주름들이 가득했다.
“이 빌어먹을 야만인 놈들이······.”
콰직!
불길한 소리와 함께 목이 꺾여진 라그무스의 육체가 힘없이 늘어지기 시작했다.
“끝까지 방해를 해?”
그와 함께 사르누스의 푸른 눈동자가 노려보는 곳은 새하얀 숲속.
신비가 사라진 지금에서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조각의 기척이 눈이 가득 내린 숲속에서부터 느껴지기 시작했다.
※※※※
크아아아아-!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분노어린 용의 포효에 나무 위에 앉아있던 눈들이 힘없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숲마저 공포에 질리게 하는 가장 오래된 용의 분노.
그리고 그 분노가 향하고 있는 곳은 지금 세 명의 기사들이 있는 이곳이었다.
“가도로 올라가!”
가도와 숲 사이 어딘가에 나 있는 사냥꾼들의 길.
그 길을 따라 달리고 있던 막심과 케이드, 그리고 아게는 이제 더는 자신들을 숨길 수 없음을 깨닫고는 서둘러 너른 도로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벌써 다들 당한 거야?”
“나도 몰라!”
모르겠다며 고개를 내젓는 케이드의 품속에는 붉은빛을 내는 조각 하나가 들어있었다.
핏빛 술식이 가득한 종이에 싸여있는 그 조각은 마법사 라그무스가 자신의 마지막 신비를 뿌려 이들에게 건넨 것이었다.
“어쨌거나 이제는 우리밖에 없어!”
지금도 계속해서 자신을 취하라 속삭이는 가장 완벽한 가능성의 조각.
그러나 용이 아닌 케이드에게는 그저 성가시게 빛나는 보석 쪼가리에 불과할 뿐.
다만 그 조각의 속삭임은 지금도 저 하늘 위에 있는 가장 오래된 용을 부르고 있을 터였다.
“······저 앞에 보인다!”
말을 타고 달려나가는 기사들의 앞으로 드디어 보이는 푸른 들판이 있었다.
아직 녹지 않은 북부의 가도와 다르게 이제야 올라오는 봄이 가득한 들판이었다.
“온다!”
크아아아!
그러나 그 봄에 닿기도 전에 기사들의 등 뒤에는 거대한 용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이 세상 모든 가능성을 자신의 발아래 두려는 용의 그림자.
그러나 그 거대한 세계 아래에서도 아게는 저 앞에 어른거리는 자그마한 깃발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았다.”
마치 신기루같이 희미하게 보이는 깃발.
그러나 그 깃발은 분명 자신들이 있는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조각 줘.”
“뭐?”
“조각 달라고 나한테.”
등 뒤에서부터 느껴지는 서늘한 용의 입김이 있었다.
그러나 아게는 그 살벌한 기세에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붉게 빛나는 조각을 자신의 투석구에 끼워 넣을 뿐이었다.
“내가 확실히 전해줄 테니까.”
겨울의 길을 지나 이제 봄.
그러나 아직 닿지 못한 그 거리를 계산하며 아게가 투석구를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
나에게로 다가오는 그림자는 점점 새까매지고 있었지만, 저 앞에 있는 검은 말만큼은 아닐 것이다.
내가 가지고 싶어했던 일각수의 자손.
그러나 나보다는 더 잘 어울려 보이는 금발의 기사를 보며 아게가 미소 지었다.
“······그래. 그 녀석은 빨간색을 좋아한다니까.”
크아아아아-!
초원의 아들이 밟는 땅에는 어느새 새파랗게 올라온 새싹들이 가득했다.
그 새싹들이 시작된 방향을 따라 아게가 쏘아 올린 붉은 빛 하나.
그 빛은 용의 발톱을 지나 저 멀리 보이는 누아르의 새빨간 고삐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
쿠과과과광-!
“안 돼!”
용이 만들어낸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북부 가도 위로 커다란 먼지구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눈송이가 잔뜩 섞인 그 먼지구름은 서늘한 바람으로 다가와 블라드의 머리카락을 마구 휘날리고 있었다.
“이런 젠장!”
정말이지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자욱한 먼지 속.
그러나 블라드에게 있어 그것보다 괴로운 것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던 기사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블라드! 위다!]그러나 그들이 보낸 조각은 확실히 블라드를 향해 쏘아졌다.
두근-!
“······위?”
뛰는 나의 심장이 가리키는 방향.
그 방향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린 블라드는 희뿌연 먼지 속에서 보이는 낯익은 붉은 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누아르-!”
-멈춰라!
용과 용의 내지르는 함성 속에서 떠 있는 붉은 빛 하나.
겨울과 봄의 경계 위에 떠 있는 조각을 향해 용과 검은 말이 푸른 초원을 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푸르르륵-!
앞에 보이는 황금색 용의 위용은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었지만 달려가는 누아르의 눈에는 그저 새빨갛게 빛나는 조각만이 가득할 뿐.
히이이잉-!
용의 조각을 향해 달려가는 말의 머리 위로 새하얀 뿔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 뿔은 오직 푸른 초원 위에서 태어난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일각수의 세계였다.
[더 빨리!]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용의 발톱과 소년의 손 사이에서 잠시 붉은 빛이 머물렀다.
같은 색을 지닌 비늘과 금발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마지막 남은 용의 조각.
“······잡았다!”
겨울을 지나온 기사들이 쏘아 올린 용의 조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조각을 붙잡은 것은 봄의 끝자락에서 뻗어낸 소년의 손.
너무 늦지 않게 도착한 블라드의 손끝이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용의 조각을 붙들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