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37
마지막 조각 (2)
봄이 만든 푸른 초원 위로 기사들이 모이고 있었다.
앞서 나간 블라드를 뒤쫓지 못해 뒤늦게 도착하고 만 연합군의 기사들.
그런 그들이 이 초원에서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하늘 높은 곳을 활공하고 있는 거대한 용의 모습이었다.
“······맙소사.”
누가 보아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황금빛 몸체.
떠오르는 태양빛 보다도 더 반짝이는 용의 모습은 그야말로 신께서 만드신 가장 완벽한 모습에 가까운 것이었다.
“블라드.”
몰락한 용의 잔재 따위가 아닌 진실로 고귀한 용. 사르누스.
그러나 루트거의 시선만큼은 용이 내뿜는 위세보다 그 밑에서 달리고 있는 금발의 기사를 먼저 담고 있었다.
크아아아아-!
저 높은 하늘에서부터 분노로 가득 찬 포효를 내지르는 용이 있었다.
“누아르-!”
그리고 그 아래서 검은 말과 함께 초원을 달려 나가는 금발의 기사도.
서로를 향해 달려가면서도 조금도 양보하지 않을 거라는 듯 속도를 줄이지 않는 두 개의 세계.
너무나 진한 그 색들의 향연에 루트거는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잡았다!”
그렇게 감은 두 눈에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것은 진창에서 태어났음에도 언제나 별을 바라보던 소년의 목소리였다.
“잡았어요!”
그 소리에 이끌리듯 다시금 눈을 뜬 루트거는 저 앞에서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블라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지막 조각!”
저 위에서 울부짖는 용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치켜든 손을 불끈 쥐고 있는 블라드.
그 녀석이 이제야 자신에게 다다른 기사들을 향해 크게 외치고 있었다.
지금부터 우리의 차례라고.
거대한 세계에 의해 수없이 갈라지고 만 우리가 나설 차례라고.
“······다들 깃발을 들어라!”
루트거가 내지르는 함성에 이제야 정신을 차렸다는 듯 하나둘씩 대륙의 깃발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힘차게 내달리기 시작하는 용살자를 꿈꾸는 무리들.
고작 영지전 따위에서는 볼 수 없는 기사들의 향연에 푸른 초원이 세차게 울리기 시작했다.
※※※※
크아아아아-!
“크흑!”
귓가를 스치는 거대한 포효에 블라드가 잠시 휘청이기 시작했다.
-네 이놈! 네놈이 끝까지!
가지고 있는 존재감은 거대하고, 퍼트리는 압박감은 마치 산과도 같다.
그러나 저 위에서 들리는 사르누스의 분노보다도 지금의 블라드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바로 손에 쥐고 있는 조각의 속삭임이었다.
-어서 나를 취해라! 그리하면 너는 완벽해질 수 있어!
강철의 도시 바스토폴에서도 들어본 적 있던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때보다도 더욱 붉게 빛나는 용의 조각은 지금도 쉴새 없이 블라드의 세계를 파고들려 하고 있었다.
[블라드! 블라드 정신차려라!]“······끄으으!”
하늘에서 다가오는 위협과 손에서부터 시작된 유혹.
그 강렬한 외침 사이에서 세차게 고개를 내젓는 블라드의 머리 위로 다시금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어서 내놓지 못해!
새하얗게 빛나는 일각수의 뿔이 다급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대를 현혹하려는 검은 말의 움직임도 결국은 기수와 함께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
콰지직!
그러나 날카롭게 다가온 용의 발톱은 어설피 움직인 누아르가 아닌 그사이에 끼어든 전혀 다른 대상을 짓이기는 중이었다.
“······파블로!”
“끄으으으!”
그 기사의 세계는 성벽과도 같은 세계.
그러나 가장 오래된 용 앞에서는 단 한 순간밖에 벌어주지 못한 세계가 블라드를 향해 외치고 있었다.
“어서 가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파블로가 타고 온 말이 주저앉기 시작했다.
그러나 달리기 시작한 누아르는 그들을 뒤로한 채 저 앞에 보이는 기사들을 향해 달려 나갈 뿐이었다.
“수고했다! 블라드!”
“어서 태세 정비해!”
그렇게 도망치는 블라드를 스쳐 지나가는 두 개의 깃발이 있었다.
“다들 준비한 대로 간다! 진형을 갖춰!”
“제국 헌병대! 드디어 오귀스트 님의 복수를 할 때가 왔다!”
스투르마의 성벽을 두른 바예지드의 깃발과 검은 번개를 상징하는 제국 헌병대의 깃발.
그 깃발을 들고 있는 기수들의 뒤로 각자의 세계를 뽑은 기사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인간 놈들이!
북부와 중앙의 정예들이 가장 오래된 용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 수만 해도 대략 수십 명.
그 모습을 본 사르누스는 감히 자신에게 도전하는 이 열등한 종자들을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었다.
【전부 무너져라!】
세차게 달아오르는 조각에서부터 뽑아낸 하나의 문장.
그것은 용의 분노를 실감하지 못하는 이 무지몽매한 기사들을 향한 사르누스의 분노이자 가르침이었다.
쿠르르르릉-!
용이 내뱉은 강력한 의지에 푸른 초원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위를 달리는 말들까지도 집어 삼킬 정도로 거대해진 균열은 어느새 용과 기사들의 사이를 가르며 격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용언(龍言)이오!”
공포에 떨며 울부짖는 말들을 억지로 돌려세운 기사들은 다른 길을 찾아 우회하는 수밖에 없었다.
“벌써 이렇게까지 완벽해졌을 줄이야!”
이 세상에 자신만의 진리를 세운다는 용의 언어.
그저 문헌으로만 전해지는 용의 가능성을 보며 제국헌병대장 로드리고는 그만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감히 인간 놈들 따위가!
크아아아아-!
초원을 가득 메우는 용의 울부짖음에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무게감이 깃들어 있었다.
공포도, 주저함도 아닌 의지 자체를 꺾어버리고 마는 용의 포효는 오직 자신만의 세계를 갖춘 기사들만이 극복해 낼 수 있는 것이었다.
“크으으윽!”
“도저히 못 버티겠어!”
그것도 단단히 자신만의 세계를 쌓아 올린 자들만.
귓가에서 흘러나오는 시커먼 핏물과 함께 대륙의 정예라 불리는 기사들 사이에서도 이탈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런!”
시간은 너희의 편이 아니며 지금 서 있는 이곳은 나의 전장일지니.
자신에게서 도망가는 자그마한 세계들을 보며 사르누스의 푸른 눈동자가 둥글게 휘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완벽한 용처럼 고민하지 않아.
그러나 웃고 있는 용의 표정과는 다르게 불룩 솟아오른 목덜미에는 새빨간 열기가 가득 맺혀 있었다.
-그저 다 죽여버리고 싶을 뿐이지.
이 시대 가장 완벽에 가까운 용이 폐 속 가득 분노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것은 이 세상 모든 것을 불태울 수 있다는 용의 숨결, 브레스.
바스토폴의 성벽조차 녹여버렸던 용의 분노가 바예지드와 제국헌병대의 깃발을 노려보고 있었다.
※※※※
“빌어먹을! 인간 놈들은 하라고 말만 하면 다 되는 줄 아는 모양이지!”
기사들과 용이 날뛰는 전장에서부터 조금 떨어진 곳.
잔뜩 창백해진 블라드가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이곳에는 지금 니다벨리르의 드워프들이 잔뜩 모여 하나의 공성 병기를 조립하는 중이었다.
“시간과 예산이 보장하는 완성도야말로 곧 품격이라는 걸 왜들 몰라!”
고함에 가까운 시구르손의 투덜거림이었지만 그와는 반대로 조립되어가는 병기는 점점 제 모습을 찾고 있었다.
점점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병기의 모습은 바스토폴에서도 본 적 있던 발리스타.
다만 그 거대한 크기가 만들어내는 활의 장력만큼은 와이번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선장! 선장님! 저기 좀 봐요!”
그러나 주어진 시간은 드워프들에게 있어 가혹하리만치 짧았다.
왜냐하면 가장 오래된 용의 분노가 지금 목구멍을 타고 기사들을 향해 쏘아지려 하고 있었으니까.
“······젠장! 일단 쏴!”
“하지만 아직 조준경이.”
“그냥 쏘라고 자식들아!”
그야말로 처음으로 시도하는 시범운행이자 실전 운용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옳을 때가 아닌 가장 필요할 때를 선택하기로 한 시구르손은 제대로 조립되지도 못한 발리스타의 몸체를 억지로 돌리며 저 앞에 있는 용을 조준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지금 아니면 쏘지도 못해!”
홀로 조준대에 선 시구르손의 눈앞으로 거대한 용 한 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이곳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듯 바예지드와 제국 헌병대를 노려보고 있는 황금색 용.
“선조들의 복수다.”
타아앙-!
그 빛나는 비늘을 향해 니다벨리르가 쏘아 올린 거대한 창 촉이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기 시작했다.
※※※※
“전원 산개해-!”
루트거의 외침이 크게 울렸지만 바예지드의 기사들은 차마 그 명령에 따를 수 없었다.
쿠르르릉!
땅은 여전히 세차게 요동치고 공포에 질린 말들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었으니까.
가장 오래된 용이라는 거대한 세계에 짓눌리고 만 기사들은 지금 저 앞에 보이는 붉디붉은 화염의 씨앗을 보며 차마 내뱉지도 못할 경악성을 삼키는 중이었다.
휘이이이잉-
마치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긴장된 전장.
그저 용이 삼키고 있는 숨 하나의 차이로 삶과 죽음이 갈리고 말 이때, 기사들의 등 뒤에서부터 날아오는 드워프들의 세계가 있었다.
-······!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꺼지지 않을 불꽃에서부터 제작된 창 촉.
가장 완벽한 용이 제일 경계했던 가능성 중 하나가 지금 사르누스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됐다!”
억지로 날린 것이긴 하지만 분명 제대로 된 궤적이었다.
그렇기에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위치로 날아가는 드워프들의 창 촉에 사르누스는 품고 있던 숨결을 그쪽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크와아아아!
마치 하늘을 꿰뚫을 듯 쏘아져 나가는 붉은 빛줄기.
과연 그 기세가 헛된 것이 아니라는 듯 용의 숨결에 닿은 구름들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살벌하구먼.”
기사들은 구해냈으나 결국 용에게 닿지 못한 드워프들의 창 촉은 흔적도 없이 녹아 저 하늘을 향해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시구르손은 닿지 못한 자신들의 창 촉을 아쉬워할 겨를도 없었다.
“······어쩐지 창고에 창 촉만 남아있더라고.”
분노한 용의 눈길이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을 향해 있었으니까.
시구르손이 타고 있는 발리스타를 향해 다시 한번 맺히고만 파멸적인 용의 숨결.
지금 그것은 앞에 있는 기사들이 아닌 방금 자신을 크게 위협했던 드워프들의 무기를 향해 있었다.
“가장 완벽한 용 때 다 불탄 거였나 보네!”
콰가가가강-!
서둘러 뛰어내린 시구르손의 등 뒤에서부터 거대한 열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마치 수백 개의 폭탄이 동시에 터진 것만 같은 그 광폭한 열기에 시구르손은 꼼짝없이 자신의 죽음을 그리고 있었지만 그런 그의 등을 받쳐주는 손길이 있었다.
“생김새는 작달막한데 가지고 노는 것은 크시군.”
“뭐?”
엉망진창인 모습으로 굴러오는 드워프를 잡아주는 군청색 머리의 남자.
치켜뜬 왼쪽 눈에 오망성을 크게 띄워 올린 바라디스의 손끝에서는 어느새 물의 정령들이 그리는 마법진이 떠오르고 있었다.
콰가가가강-!
※※※※
-어서 나를 가져라. 저기 보이는 용처럼 날아보고 싶지 않으냐.
“크으으······.”
-세상을 땅 아래 두는 쾌감이 얼마나 대단한지 너는 모를 거다. 어린 용아. 그저 네가 보고 겪어온 세계만이 전부일 거라 생각해서는 안된다.
다급히 도망친 블라드의 손에서는 여전히 붉게 물든 용의 조각이 들려 있었다.
마치 아교로 붙인 듯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그것은 그 어떤 조각보다도 블라드에 대한 집착을 내보이고 있었다.
[······마지막 용들이 다 모여 있어서 더 강력해진 모양이군.]가장 완벽한 용에 가까워진 두 마리의 용.
그들이 보이는 용의 세계에 고무되고만 붉은 조각은 지금이라도 어서 자신을 취하라고 속삭이는 중이었다.
어느 쪽이 자신을 가져가도 결국 하나의 용만이 살아남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블라······.]그 모습을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블라드의 왼팔에 새겨두었던 루가 족의 문신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검은 번개를 형상화한 저주와도 같은 신비.
그러나 그 신비를 발동하려 했던 키하노는 갑작스레 휘청거리는 블라드의 모습에 잠시 하던 행동을 멈추고 말았다.
“안 보여.”
마치 무언가를 찾기라도 하는 듯 이리저리 휘적여대는 블라드의 손.
마치 장님과도 같아 보이는 그 행동에 쉼 없이 외치던 용의 조각도, 키하노도 모두 잠시 침묵하고 말았다.
크아아아아-!
그로 인해 나의 내면은 잠시 조용해졌지만 지금도 전장이 된 이곳은 누군가의 고함과 함성으로 가득할 뿐이었다.
-몰아! 몰아내라고!
-날개부터 노려야 해!
가장 오래된 용 아래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대륙의 기사들.
-남은 발리스타가 이제 없나!
-예비로 들고 온 부품 말고는 없습니다!
세찬 불길 옆에서 수염이 타들어 가는 것도 모르는 채 쉴 새 없이 부품들을 챙겨오는 드워프들.
-정령들을 깨워내라! 일단 용의 날개부터 봉쇄해야 한다!
그리고 용을 필사적으로 막아세우는 기사들을 방패 삼아 쉼 없이 화살을 쏘고 있는 엘프들까지.
“······하나도 안 보여.”
조각의 유혹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깊은 세계로 내몰았던 블라드.
그 세계를 통해 블라드가 보는 전장은 가장 빛나는 세계에 짓눌려 빛을 잃어가는 자그마한 별빛들이 가득했다.
“저게 완벽함인가요. 키하노?”
[그래.]보이진 않지만 들리는 비명들이 있었다.
나와 같이 해주었던 세계들이 내지르는 비명들.
그들이 내지르는 단말마에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한 블라드의 세계가 천천히 푸른 눈동자에 맺히기 시작했다.
“너무 높은 곳에 있네요. 아무도 닿을 수 없을 정도로.”
이 세상 모든 세계들은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었지만 크나큰 태양 아래서는 보이지 않는 헛된 별빛과도 같은 것.
그렇게 하늘을 활공하는 금빛 태양 아래 차갑게 식어가는 세계들을 보며 블라드의 감은 왼쪽 눈에서부터 황금빛 지평선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완벽함을 떨어뜨려야겠어요.”
[어떻게.]언제나 답을 알려주던 키하노였지만 이번만큼은 반문하고 있었다.
자신만의 길을 찾은 블라드에게 있어서 나의 정답이란 의미가 없는 것이었으니까.
“밤하늘을 불러서요.”
가장 완벽한 가능성은 필요 없다.
저 위에 떠 있는 가장 크나큰 태양 또한.
홀로 빛나기에 모든 별들을 죽이고 마는 그것을 내려 앉히기 위해서는 모두가 빛날 수 있는 고요한 밤하늘이 필요했다.
“이 조각은 무엇이든 될 수 있죠.”
[원한다면.]“무엇이든 할 수 있구요.”
[네가 바란다면.]키하노의 대답을 들으며 블라드가 들고 있던 용의 조각을 내려다보았다.
용에서 비롯된 나처럼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용의 조각.
또다른 조각을 통해 떠오른 검은 달을 기억한 블라드는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도화지를 가져야 할 때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
블라드가 무심히 던져버린 조각이 푸른 초원 위를 구르고 있었다.
저 위에 있는 태양빛을 받아 빛나는 그것은 그 누구라도 탐낼 가장 완벽한 조각.
그러나 이 시대의 용은 완벽함에 굴하지 않은 채 그저 자신만의 세계를 떠올리려 할 뿐이었다.
[네가 원하는 풍경을 강렬하게 떠올려라. 기억 속에 있다면 더더욱 좋겠지.]“······기억 속에서요.”
용의 조각을 재료 삼아 용이 없는 하늘을 만들려 하는 블라드.
그런 블라드의 머릿속에서부터 떠오르는 밤하늘이 하나 있었다.
“나는 용이 없는 세계를 원해.”
이것은 검과의 대화이자 나의 세계를 현실로 끌어오는 주문과도 같은 것.
“완벽함도 바라지 않아.”
그렇게 끌어올린 자신만의 세계를 현실 위에 그릴 수 있는 자를 소드마스터라 할지니.
“내가 그린 세계에서는 아무도 남을 내려다보지 못했으면 좋겠어.”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를 띄워올린 블라드의 푸른 눈동자에 무언가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 시대의 소드마스터가 별들을 위해 그려내려는 오늘의 밤하늘이었다.
“내가 바라는 세계는 그런 세계야!”
-······!
콰직-!
힘껏 내려친 블라드의 검끝에서부터 붉은 조각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 세상 가장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조각.
그러나 마지막 조각이 향하는 곳은 가장 완벽한 세계가 아닌 블라드가 그려내는 검디검은 밤하늘이었다.
-달을 띄웠다. 네가.
-······같이 띄운 거예요.
-그래. 같이.
높디높은 밤하늘에 있지 못하는 이 시대의 별들을 위해서.
그렇게 자신의 완벽함마저 포기한 용이 바란 것은 모두가 빛날 수 있는 밤하늘.
“이게, 이게 도대체!”
아무도 내려다볼 수 없는 세계에서 추락하는 용이 있었다.
그 용이 휘적이는 날개 위로 먼지처럼 떠오르는 붉은 조각들도.
그 먼지들이 향하는 곳은 또 다른 용의 조각이 있는 저 하늘 위.
-맞다. 우리가 같이 했었지.
아무도 날지 못하는 밤하늘에 홀로 떠오른 검은 달이 있었다.
짙은 눈그늘의 남자를 끌어안으며 안녕이라 외쳤던 밤하늘의 달.
그 달빛이 내려앉는 이곳은 블라드가 그린 세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