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39
밤하늘의 별들 (2)
이것은 환상이다.
왜냐하면, 지금 보이는 바스토폴의 성벽은 며칠 전 내가 직접 부수고 온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보이는 성벽의 반짝임만큼은 오히려 현실의 것보다 훨씬 영롱한 것이었다.
“······소드마스터.”
현실 위에 덧칠한 누군가의 세계.
나라는 존재를 확고히 자각한 사람이 그린 이 세계는 믿는 만큼 현실이 되는 세계.
그리고 그런 세계를 그릴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단 하나. 검의 정점이라 불리는 소드마스터 뿐.
“방패를 다오.”
저기 결투장 위에서 나의 발톱을 막았었던 기사가 서 있다.
소년을 위해 자신의 명예보다는 의무를 선택했던 그의 이름은 아른슈타인의 파블로.
“내가 너의 가능성을 지킬 수 있게.”
가능성이란 아름다운 것이며 그것을 스스로의 세계로 표현할 수 있는 어린 존재들은 귀한 것.
그렇기에 마땅히 그 순간을 보호한 기사의 방패에서부터 밤하늘의 별빛 하나가 머물기 시작했다.
“덤벼라. 사르누스.”
“······이 버러지 같은 것들이!”
평소라면 감히 올려다보지도 못할 존재.
그러나 블라드의 세계에서만큼은 동등한 그가 방패를 까닥이자 더는 참지 못한 사르누스가 뛰쳐 들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그야말로 가공할만한 충격.
현실에서 받아냈다면 사지가 찢겨나갔을 그 충격에 파블로가 뒤로 주욱 밀려나기 시작했다.
“크으윽!”
방금 와닿은 것은 이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 완벽에 근접한 사르누스의 세계였다.
그러나 자신이 맹세한 의무를 짊어진 파블로의 무게만큼은 그의 세계보다 아주 조금은 더 무거운 것이었다.
“······너는 자격이 있다.”
똑같은 금발과 똑같은 푸른 눈.
그리고 그때와 같은 결투장에 서 있는 파블로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사르누스를 보며 그날의 소년을 떠올렸다.
“이 전장은 충분히 명예롭고.”
쾅! 콰앙! 쾅! 쾅!
사르누스가 내지르는 검격 한 번에 파블로가 들고 있던 방패가 끊임없이 깨어져 나갔다.
그러나 그가 들고 있는 방패는 현실의 것이 아닌 의지로 만들어진 세계.
방패를 들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꺾이지 않는다면 밤하늘에 떠 있는 저 별은 영원히 파블로의 것이었다.
“······그러니 너는 너의 이름을 말해도 좋다!”
다시 한번 산산이 조각난 방패 사이에서부터 순간, 파블로의 견갑이 밀쳐 들어왔다.
방어를 중시하는 기사가 자신의 방패조차 내던지며 만들어 낸 단 한 번의 순간.
“크윽!”
사르누스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파블로를 보며 두 눈을 크게 떴다.
가장 오래된 용조차 놀라게 만드는 기사의 기지(機智).
그러나 사르누스가 내지른 경악은 자신을 밀어내는 파블로가 아닌 그의 등 뒤에서부터 달려드는 사내를 향한 것이었다.
“흐아아압!”
성벽 같은 사내의 뒤에서부터 달려드는 그 기사의 이름은 쇼아라의 블라드.
여태껏 파블로가 가리고 있던 그의 오러가 사르누스의 어깨를 벼락같이 스치고 지나갔다.
“······!”
전혀 예측하지 못했기에 미처 돋아나지도 못한 황금빛 비늘.
그렇기에 새겨지고 만 상처 위에서 붉은 핏줄기 하나가 짙푸른 밤하늘 위로 솟구쳤다.
“블라드! 네 이놈!”
남의 피는 탐했어도 자신의 피는 내놓지 않았었던 탐욕스러운 용.
그 붉은 핏줄기에 분노한 사르누스가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블라드의 모습은 사라진 뒤였다.
“······저건!”
대신 그곳에서 보이는 것은 하늘을 뚫을 듯 솟아 있는 어린 세계수.
어느새 데어마르의 결투장이 아닌 엘프들의 숲속에 서 있게 된 사르누스는 저 앞에서 자신에게 시위를 겨누고 있는 군청색 머리의 엘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의 푸르름은 모두 선조들의 눈물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치켜뜬 왼쪽 눈에 오망성을 환히 띄운 바라디스.
“그러니 이제 조금은 받아내도 되겠지.”
어머니 세계수를 잃은 채 불타던 자신들의 숲을 떠나야만 했던 엘프들.
대를 이어 쌓이고 만 그들의 분노가 이 시대의 엘프가 메긴 화살 끝에 맺히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은!”
타앙-!
들렸을 때는 쏘았고 보였을 때는 이미 다가와 있었다.
그만큼 빠른 바라디스의 화살은 수백 년을 참아왔던 엘프들의 화살.
그 화살에 머물러 있던 수많은 정령이 가장 오래도록 살아남은 용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크으으윽!”
콰드드득-!
마치 자신이 내뿜었던 용의 숨결과도 같이.
온통 붉고, 푸르고, 짙푸른 녹색인 것들이 찬란히 빛나며 사르누스의 검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블라드-!”
그러나 사르누스는 이 오색찬란한 색깔들의 향연에서도 자신에게 달려드는 단 하나의 색깔만큼은 확연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나와 같이 금색으로 빛나는 기사의 머리카락이었다.
“흐으아아아!”
화살처럼 쏘아졌으나 어느새 검의 모습으로 다가온 바라디스의 화살.
그 화살과 함께 쏘아진 이는 세계수의 수호자 블라드였다.
“이 같잖은 술수······!”
가장 날카로운 용을 막고 사특한 존재들을 막아주었던 세계수의 기사.
그를 기억하고 있는 정령들의 별빛이 어느새 블라드의 검 끝에 맺히고 있었다.
“이게 고작 같잖은 술수로 보여?”
끄득! 끄드드득!
세차게 마주한 둘의 검이 점점 사르누스 쪽으로 밀리고 있었다.
완력이라면 절대 지지 않을 순혈의 용 사르누스였지만 이미 블라드의 곁에는 수많은 정령들이 그 작은 손을 보태주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판단했으니까 당했던 거겠지. 이 일격필살의 검술에!”
의외의 움직임으로 가능성을 선점하고 한발 앞서는 통찰력으로 전장을 통제하는 검술.
명예로운 결투사가 창안한 그 검술이 지금 블라드의 세계 안에서 완벽히 구현되고 있었다.
“지금이에요!”
“뭐?”
티이이잉-
정령들이 붙잡고, 블라드가 검으로 막아 세운 가장 오래된 용.
그 용의 뒤에서부터 맑디맑은 검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 차례로군.”
마치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튕긴 듯한 그 소리.
그 청명한 소리와 함께 방금까지만 해도 숲이었던 곳이 푸르른 목초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역시 너는 최고의 용몰이꾼이다. 블라드.”
지금 떠오르는 별은 활화산과도 같은 세계.
가장 단단한 용조차 갈랐던 루트거의 검이 어느새 깊은 자신의 세계에서부터 거대한 분노 한 줄기를 뽑아내고 있었다.
우르르르릉-!
검을 들어 올릴수록 강해지는 지면의 울림.
그와 함께 새빨갛게 터져 나오는 용암들을 보며 사르누스의 두 눈이 커져갔다.
“내 이름은 바예지드의 루트거다.”
북부를 짓밟았던 용들의 발자국이 있었다.
그 발자국의 끝은 결국 수많은 북부인을 죽음 속으로 내몰고 말았으니.
“북부의 핏값을 받아낼 루트거 바예지드!”
오직 스스로를 깊게 관조할 수 있는 기사만이 쓸 수 있는 세계.
아무리 용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삼킬 것만 같은 시뻘건 용암들이 루트거의 검 끝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이런 빌어먹을!”
날개가 있지만 펼칠 수 없고, 두 발이 있지만, 꽁꽁 묶여버리고만 사르누스.
그런 그의 머리 위에는 어느새 찬란히 타오르는 루트거의 세계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콰르르르릉-!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용암을 온몸으로 얻어맞을 수밖에 없는 황금색 용.
칼날보다 매섭고 용암보다 뜨거운 루트거의 세계가 어느새 완벽했던 황금색에 조금씩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이제야 느껴지는 뜨거움 때문일까.
앞에 있는 블라드를 마구잡이로 밀쳐낸 사르누스는 어느새 또 다른 세계에 다다라 있었다.
“여긴 또 어디냐!”
앞에 보이던 세계수도, 뒤에서 날뛰던 활화산도 없는 세계.
이번에 블라드가 그려낸 세계는 온통 새하얀 눈으로 가득한 북부의 설원이었다.
“가장 빠른 용을 죽인 곳.”
가장 빠른 용. 린드부름을 죽인 설원.
“이곳 정도라면 당신 마지막에 어울리지 않겠어?”
“블라드! 네 이노옴!”
그 설원 위에 홀로 서 있는 블라드를 보며 사르누스가 이를 악물었다.
“네가 이 모든 일의 원흉이렷다!”
아른슈타인의 파블로, 바예지드의 루트거, 그리고 아우슈린의 바라디스까지.
모두가 훌륭한 기사들이었지만 사르누스에게 덤벼들기에는 역부족인 기사들이었다.
“이 빌어먹을 세계를 당장 멈춰주마!”
그러나 블라드의 세계 안에서만큼은 얼마든지 빛날 수 있는 별과도 같은 기사들.
그리고 지금 하얀 설원 위에 있는 밤하늘에서는 또 다른 별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다.
“너를 죽여서!”
블라드를 향해 달려드는 사르누스의 등 뒤로 거센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가장 빠른 용인 린드부름보다 더욱더 빠를 수밖에 없는 완벽에 근접한 용의 돌진.
[······보면서 판단하면 늦는다!]단단하고, 빠르며, 날카롭고, 거대하다.
몰락한 잔재들을 통해 하나하나 나뉘어 있던 특성들은 본래 가장 완벽한 용이 지니고 있던 것들.
[예측해서 대응해라!]“······!”
그리고 지금 블라드를 향해 달려드는 용은 이 시대 가장 완벽한 근접한 사르누스였다.
“죽어라!”
분노에 의해 잔뜩 달아오르고 만 그의 세계가 드디어 블라드를 향해 거칠게 포효했다.
콰가가강-!
“크으으으으!”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속도로 무엇보다 날카롭게.
그 공격을 겨우 예측해낸 블라드였지만 막았다 해서 물리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용으로 낳아줬더니 소드마스터가 되다니!”
기세를 잡았다면 절대로 놓치지 마라.
그것이야말로 사냥감을 대하는 포식자의 자세일 테니.
쾅! 쾅쾅! 쾅!
물러나는 블라드를 향해 쉼 없이 들이치는 거대한 사르누스의 분노.
단단한 그의 검에서부터 시작된 핏빛 오러가 어느새 블라드의 별빛 어린 검을 잡아 세우며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쓰레기들 속에서 자라면 어찌 될까 뿌려봤더니! 감히 내 발목을 잡아!”
날카로운 검보다 더 아프고 불어오는 설한보다도 더 차갑다.
지금 들려오는 사르누스의 말은 블라드에게 있어 그런 것이었다.
“네까짓 게 도대체 무언데 완벽함을 향한 나의 과업을 막는 거냐!”
내 존재의 시작은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내 존재의 의미는 누군가에게 먹히기 위해서.
그렇게 태어난 소년을 향해 그의 아버지가 어서 죽어버리라 외치고 있었으니까.
“너를 낳는 게 아니었다.”
“크으으······.”
“너는 실패작이야!”
어느새 새하얀 빙벽까지 몰려버린 블라드의 목덜미로 사르누스의 검이 다가왔다.
더는 피할 곳 없는 막다른 곳까지 몰려버린 블라드.
그런 그에게 다가오는 사르누스의 검은 마치 낳아준 것도, 그리고 죽이는 것도 모두 내 권리라고 말하는 것 같아 보였다.
“······도대체 당신이 뭔데.”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태어난 소년.
가만히 서 있으면 빠져들고 마는 진창 위에서 자라난 블라드는 어쩌면 실패작일지도 모르는 존재였다.
“나를 실패작이라고 하는 거야.”
드드드득-!
그러나 뒷골목에 서 있던 소년은 언제나 별을 바라보던 아이였다.
그 별은 길을 잃은 나를 위한 유일한 이정표.
그리고 함께 그 별을 바라보던 소녀는 나를 지탱해주던 유일한 지팡이.
“너는 내가 누군지 알지도 못하잖아!”
힘껏 펼쳐낸 블라드의 왼손에서부터 붉은 실타래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마치 여자의 머리카락처럼 보이는 그 실타래는 저 위에서 비치는 별빛과 함께 하나의 형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반드시 돌아간다고 약속했다!”
새하얀 설원 위에 빛나는 한줄기의 별빛.
그 별빛은 노인의 꿈으로 만들고 소녀의 눈물로 샀으며.
또한, 소년의 의지로 휘두르는 장식 없는 검이 비치는 별빛이었다.
“여기서 너를 죽이고! 나는 쇼아라로 돌아간다!”
오른손에는 별빛 어린 검을, 왼손에는 장식 없는 검을.
두 개의 검을 휘두르는 블라드의 세계가 기어이 사르누스의 눈을 스치며 푸르른 눈물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크으으악!”
장식 없는 검이 스쳐 간 자리에 생겨난 사르누스의 비명.
그 비명이 시작된 곳은 자신의 한쪽 눈을 잃어버린 사르누스의 세계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이 빌어먹을 자식! 죽여버리겠다! 죽여버리겠어!”
콰르르르릉-!
분노에 미쳐 날뛰는 사르누스를 보며 블라드가 재빨리 별빛 어린 검을 휘둘렀다.
그 검이 휘두른 궤적은 하얀 설원 위에 기다란 선을 만들며 또 다른 세계를 그려내고 있었다.
“죽이고 싶디면 들어와 봐라!”
블라드의 거친 도발에 천천히 선을 넘어가는 가장 오래된 용.
그러나 타오르는 분노에 미쳐버린 그는 모르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
블라드를 향해 한 발자국씩 걸어갈 때마다 점점 더 깊은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을.
블라드가 품고 있던 세계 중 가장 깊으며 바라보고 있던 별빛 중 가장 빛나는 곳을 향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들어와 보라고-!”
그 세계는 선 하나로 존재의 의미가 달라지는 세계.
도시를 가로지르는 대로 하나를 경계로 섞일 수 없는 두 개의 인생이 나뉘고 마는 그런 곳.
“여기 와서 내가 누군지 보란 말이다!”
이곳은 장미의 미소.
붉은색이 가득한 창관.
그리고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약속한 소년의 둥지.
블라드의 밤하늘 아래서 빛나는 쇼아라의 별빛이 지금 가장 오래된 용을 이끌고 있었다.
별을 품은 소드마스터
화려한 빛이 맴도는 도시로 들어와 그곳을 가로지르는 대로를 건너서.
별 하나가 머무른 초라한 대장간을 지나 어느덧 어두컴컴한 뒷골목에 이른 사르누스.
“······그야말로 시궁창에 어울리는 모습이로군.”
그런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추레한 뒷골목에 서 있는 4층짜리 건물이었다.
창녀들의 기사와 쇼아라의 장미가 지은 뒷골목의 등대.
우뚝 솟은 모습으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장미의 미소를 본 사르누스의 입가에는 진한 비웃음이 머물러 있었다.
“이런 곳에서 자랐으니 자신이 용인 것도 잊었겠지.”
소년에게는 높고도 안락한 곳이었지만, 그에게는 비루할 뿐인 뒷골목의 창관.
그러나 분노에 눈이 먼 그는 전혀 보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 지나온 길에서 자신을 애타게 바라보던 수많은 아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굶주림에 지쳐 있던 아이.
도둑질을 하다 걸려 얻어맞던 아이.
그리고 죽은 어머니를 얼은 땅에 묻지도 못한 채 하염없이 울고 있던 아이까지.
“그 망가진 가능성. 내가 회수해줘야겠구나 아들아.”
있어야 할 곳에 있어 주지 못했기에 생겨나고만 수많은 눈물들.
그러나 사르누스는 이 깊은 내면까지 들어왔음에도 여전히 소년의 슬픔을 봐주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이 원하는 모습만을 찾을 뿐이었다.
끼이이익-
내 피를 이은 아들에게 그저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바랄 뿐인 이 시대의 용.
그 용을 향해 장미의 미소가 자신의 품을 열기 시작했다.
“블라드······.”
“들어오시지.”
이곳은 장미의 미소, 소년의 둥지.
있어야 할 곳에 있어 주지 않았던 아버지를 대신해 블라드를 품어주었던 곳.
“이제 끝을 내자고.”
밤이기에 빛날 수 있는 도시의 뒷골목.
치켜뜬 블라드의 눈동자와 함께 창관의 불빛이 환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쇼아라의 블라드다.”
사르누스가 천천히 밟고 오르는 현관의 계단 너머로 블라드가 검을 뽑고 있었다.
장식 하나 없었음에도 별처럼 빛나는 그것은 분명 블라드의 검.
그렇게 검을 뽑아낸 블라드의 등 뒤에는 수많은 양초들이 자신들의 색을 밝히며 블라드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너의 이름을 말해라.”
“이 빌어먹을 놈이······.”
이곳은 나의 가장 깊은 세계. 내가 창조한 공간.
그곳을 들어오기 전 너는 나에게 존재의 증명을 해야만 한다.
“감히 낳아준 은혜도 모르고 끝까지 기어오르다니.”
용과 인간, 공작과 기사,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
그 모든 것들을 떠나 오직 검으로만 대화하자는 블라드의 말에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던 사르누스의 이성 한 줄기가 끊어지고 말았다.
“감히 이 사르누스 드라굴리아에게!”
크아아아아-!
커다란 포효와 함께 가장 오래된 용이 블라드를 향해 뛰쳐들어가기 시작했다.
용의 이빨과 함께 세운 핏빛 오러.
그 오러를 통해 마땅히 내려다볼 자를 보는 사르누스의 눈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이 여정에서의 마지막 대결이다. 블라드.]그리고 그 눈을 바라보던 블라드도, 그리고 키하노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까지가 우리가 함께한 여정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후회 없이.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봐라.]기선제압은 화려하게, 결투의 끝은 후회 없이.
서로의 이름을 주고받음으로 시작된 둘의 결투가 수많은 별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시작됐다.
콰아아아앙-!
“크으으윽!”
건물 전체를 울리는 굉음이었다.
아무리 그려낸 나의 세계라 할지라도 잠깐은 흔들릴 수밖에 없는 그런 강력한 울림.
그 울림을 정통으로 받아낸 블라드가 끝도 없이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어디 또 한 번 지껄여봐라!”
충격에 휘청이고 마는 블라드를 보며 사르누스가 거친 함성을 내질렀지만 검의 대화는 그저 힘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반격해라!]다시금 들어오는 사르누스의 검이 블라드의 시야에 잡혔다.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한 블라드의 눈동자로.
타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