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4
별들도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1)
“대련 중인가 보군.”
저택을 걷던 페테르는 바로 아래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내밀었다.
“종자들인가.”
“그런 듯싶습니다.”
그곳에서는 교관의 지도하에 종자들이 서로 모여 목검으로 대련을 하는 중이었다.
페테르는 종종 이런 식으로 기사들이나 종자들이 하는 훈련을 몰래 지켜보고는 했었다.
가문의 가주일 뿐만 아니라 북부를 대표하는 기사 중 하나인 페테르 바예지드.
그 정도로 명망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동경의 대상이 될 만한 인물이 언제 어디서나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은 이곳에 있는 종자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고는 했다.
“잠시 지켜보지.”
“네.”
게다가 훈련 중에서 특출난 점을 보이는 사람은 나름의 보상을 통해 사기를 진작시켜주고는 했기에 바예지드 가문의 기사와 종자들은 언제나 실전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훈련하고는 했다.
모두가 페테르의 의도대로였다.
“저 녀석인가.”
“금발 머리라고 듣긴 했었습니다.”
“처음 보는 녀석이기도 하니 맞겠군.”
평소에도 훈련상황을 확인하던 페테르였지만 오늘은 특별히 한 명의 종자에게 더욱 눈길이 가고 있었다.
“멀끔하게 생겼군.”
멀리서도 눈에 띄는 금발 머리의 종자.
언제나 아픈 손가락이던 자신의 둘째 아들이 데려온 아이가 그곳에 있었다.
“가주님. 저곳에.”
블라드를 보기 위해 집중하던 페테르에게 조언자 라그무스가 페테르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자야르로군.”
“아무래도 저희처럼 몰래 지켜보는 듯싶습니다.”
라그무스가 가리킨 곳에는 애꾸눈의 기사 자야르가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금발 소년을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뭐든지 처음은 신경 쓰이기 마련이지.”
자야르가 처음으로 종자를 들인 것을 알고 있던 페테르는 조용히 미소 지을 뿐이었다.
“어디 볼까.”
요제프가 데려왔으며 자야르가 신경 쓰는 녀석.
“······.”
“매서워 보이는군요.”
그 녀석이 지금 저 아래에서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종자를 상대로 매섭게 검을 휘날리고 있었다.
“어설프군.”
“그렇습니까?”
마법사인 라그무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겠지만, 페테르는 한 번의 검놀림만으로도 블라드의 수준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번뜩이는 것이 있군. 요제프가 매료될 만하겠어.”
“확실히 덩치 큰 녀석보다는 무언가 남달라 보이는 면이 있군요.”
매섭다.
빠르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는다.
“기특하군.”
“무엇이 말입니까?”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재능 같은 것들보다도 페테르는 블라드의 다른 면을 더 높이 사고 있었다.
“어설프게나마 배운 것을 써먹어 보려 하는 것이.”
살벌하게 벌어지는 공방 속에서도 금발 소년은 주눅 들지 않은 채 이리저리 움직이며 상대방의 움직임을 의도해내려 하고 있었다.
시도하고 도전한다.
저 아래의 소년은 더 나아지고자 하는 발버둥을 치는 중이었다.
“엉망이야.”
누군가의 발놀림을 닮은 그 움직임은 비록 너무나 어설퍼 웃음마저 나올 정도였지만 페테르는 어떻게든 해보려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응원하게 만드는 그런 움직임이었다.
“좋다.”
덩치 큰 종자의 목검이 하늘 높이 올라갔다.
마치 마무리를 지으려 하는 동작이었으나 이 모든 것은 금발 소년이 의도한 것이었다.
“끝났군.”
페테르의 말대로 금발 소년은 어느새 상대방을 깔고 앉아 안면을 후려치고 있었다.
큰 동작을 유도한 뒤 재빨리 복부를 후려쳐버린 것이다.
비록 진행은 어설펐지만, 결과만큼은 명쾌한 움직임이었다.
“훈련인데 저렇게 두들겨도 되는 건지······.”
“내버려 두게. 기사가 되려면 저 정도의 의기는 있어야지.”
페테르는 멈췄던 발걸음을 움직이며 저 멀리에 있는 기사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종자를 멀리서 내려다보고 있던 애꾸눈의 기사가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다.
※※※※
블라드는 언제나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발견하고 움직여야만 오늘의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었으니까.
“그만! 그만!”
교관의 부름에도 블라드는 대련을 가장한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크으으······.”
“한 번만 더 그때처럼 내 눈앞에서 실실 쪼개봐라.”
그렇기에 이번에도 먼저 움직이기로 했다.
조만간 신고식을 가장한 구타행위가 있을 것은 뻔한 일.
녀석들에게 둘러싸여 가만히 얻어맞느니 미리 기세를 꺾어 놓겠다는 것이 블라드의 판단이었다.
위협이 다가오고 있는데 손 놓고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블라드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일이었으니까.
“대답해. 씨발아.”
“알, 알았어.”
도를 뛰어넘는 블라드의 난폭한 행동에 덩치 큰 녀석은 겁먹은 눈빛으로 알았다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두들겨 맞고 있는 녀석은 그날 식당에서 침을 뱉었던 소바닌의 옆에서 함께 낄낄대던 녀석이었다.
뒷골목 식으로 표현하자면 소바닌이 데리고 다니는 똘마니랄까.
“그만 하라니까! 내 말이 우습나!”
“죄송합니다. 너무 몰입하다 보니까.”
블라드는 교관의 호통이 있고서야 떨어져 나갔지만 쓰러져 있던 녀석은 쉽사리 일어서질 못했다.
‘뭔 놈의 눈빛이!’
방금 자신에게 으르렁대던 블라드의 눈에 흐르고 있던 것은 분명 살기였다.
일개 대련에서는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이었으며 또한 난생처음 맞닥뜨린 날 것의 느낌이기도 했다.
눈을 감아도 바로 앞에 있는 것만 같은 그 시퍼런 눈빛에 쓰러진 종자는 쉽게 일어서지 못했다.
“······.”
“······.”
그리고 그 모습을 이곳에 있는 모든 종자들이 보고 있었다.
그날 식당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느새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난 블라드는 소바닌의 옆으로 다가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저 녀석한테 미안하다고 전해줘. 내가 한번 몰입하면 정신을 못 차리고 그러거든.”
“이 미친 새끼가.”
블라드가 웃으면서 말하고 있었기에 겉으로만 봤을 때는 가벼운 농담을 나누는 것만 같아 보였지만 둘이 나누는 대화는 살벌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너한테도 미리 사과할게.”
소바닌은 인상을 찌푸린 채 가만히 블라드를 노려보았다.
비록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블라드의 눈만큼은 섬뜩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너는 저 정도로는 안 끝낼 거니까.”
“뭐?”
소바닌은 긴장하고 있었다.
여태껏 이런 놈은 없었다.
귀족은 아니었지만, 부친이 꽤 큰 상단을 운영하는 소바닌이었기에 겁을 주기도 전에 미리 숙이고 들어오는 녀석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자식은······.
“기대해도 좋아.”
이 새끼는 진짜 미친 새끼다.
실실 웃으며 말하는 블라드를 보며 소바닌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요제프 님은 뒷골목에서 미친개를 데려왔다.
“스프 간이 심심하면 부를 테니까 그때와서 침 좀 뱉어달라고.”
소바닌의 눈앞에서 미친개가 웃고 있었다.
소바닌은 블라드의 미소를 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미친개는 사람을 무는 데 주저하지 않으니까.
※※※※
“대장, 괜찮아? 다른 놈들이 해코지하고 그러지는 않았어?”
“요즘 아주 좋아. 다들 나만 보면 설설 피해서 목욕할 때도 넓게 쓰고 그래.”
“······좋은 게 아닌 것 같은데?”
고트의 말에 블라드는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하긴 그렇게 종자들을 쥐어패고 다녔으니.”
고트는 블라드를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지었다.
“하루에 세 명씩은 작살내고 다니니 다들 대장을 피해 다니지······.”
“싸울 때는 먼저 치는 게 낫다는 주의라서.”
과연 뒷골목 출신답다.
블라드를 보며 고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식당에서의 사건 직후, 블라드는 고트가 놀랄 정도로 빠른 행동력을 보여주었었다.
블라드는 종자 중에서도 소바닌과 친하게 지내며 거들먹거리는 녀석들을 추려낸 후, 마치 양을 노리는 늑대처럼 한 명씩 따라가 녀석들을 짓패버리고는 했다.
화장실에서, 목욕탕에서, 저택의 으슥한 복도에서.
혼자 떨어져 있던 녀석들은 누구나 블라드의 시퍼런 눈빛을 봐야만 했다.
호르헤는 말했었다.
적당히 패면 기어오른다고.
“그건 범죄야. 그 정도로 패면 범죄라니까.”
“나는 원래가 범죄자야. 폭행 정도면 오히려 양호한 편이지. 그리고 티 안 나게 때려서 괜찮아.”
“아, 그랬었지.”
고트는 블라드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도 또래 녀석들과 엉켜 다니기에 블라드를 잠시 평범한 소년으로 착각했었지만 블라드는 17살도 안 된 나이에 거친 용병들 사이에서도 십인장을 했던 녀석이었다.
“너무 위화감 느껴질 때까지 패지 말라고.”
“그거야 저놈들 하기 나름이지.”
둘은 두런두런 말을 나누는 사이 어느새 식당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블라드를 보고도 못 본 척하는 하인들과 이미 얻어맞아 감히 쳐다보기 힘들어하는 종자들이 앉아 있었다.
“봐봐. 안 건드니 편하고 좋잖아.”
“······.”
“오늘 점심은 소시지로군.”
고기를 봐서 기분이 좋은지 블라드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식판을 들었다.
그리고 웃으며 걸어가는 블라드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하나 있었다.
“하나만 더······.”
배식대 앞에서 넉살 좋게 웃으며 소시지를 더 요구했던 블라드였으나 앞에 있는 하녀는 바예지드 가문에서 잔뼈가 굵은 중년의 하녀였다.
“그러면 뒤에 사람이 못 먹어.”
“그러지 마시고······.”
“······.”
단호히 눈짓으로 거부하는 중년의 하녀를 보며 블라드는 별수 없이 배식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요제프 님만 아니었어도 드러누웠을 텐데.’
마른 생김새와는 다르게 블라드는 식탐이 있는 편이었다.
태어난 장소가 장소인지라 자연스레 박혀있는 본능 같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협상에 실패한 후 조금은 실망한 얼굴로 식탁에 앉은 블라드와 고트.
“그래도 이게 어디야.”
“용병 때보다야 호강이지. 안 그래 대장?”
그들이 식기를 집고 이제 막 음식을 입에 넣으려 하는 순간.
“아, 안녕.”
누군가가 블라드의 앞에서 어색한 인사를 건네왔다.
“······넌 뭐야.”
이번에도 시비를 걸까 싶어 살짝 인상을 찌푸린 블라드였지만 지금 앞에 앉아 있는 녀석은 시비를 걸만한 녀석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작달막한 키에 통통한 볼, 그리고 살에 파묻혀 잘 보이지 않는 눈까지.
“나는······포틀리라고 해. 포틀리 칸노르.”
입 밖으로 꺼내기에 미안하지만 굴리면 굴러갈 것 같이 생긴 녀석이었다.
“그래. 포틀리 나한테 무슨 볼일이지?”
“그······.”
블라드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사내 녀석이 자신의 앞에서 식판을 들고 주저하는 모양새가 영 보기 좋지 않았던데다 우물거리는 모양새를 보니 말을 꺼내기에도 시간이 걸릴 것만 같았으니까.
“앉던가 꺼지던가.”
“응?”
“위장 곤두서게 내 앞에서 서성대지 말라고.”
엄연한 축객령이었으나 블라드의 말을 앉아도 된다는 말로 받아들인 모양인지 포틀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앉으라고 해줘서 고마워.”
“······.”
뭐 이런 놈이 있어 하는 표정으로 포틀리를 바라보던 블라드였지만 수줍게 웃으며 앉아 있는 녀석을 내쫓기에도 뭐 했기에 일단은 점심 식사에 주력하기로 했다.
“계속 혼자 먹고 있었거든. 사실 화장실에서 혼자 먹고 그랬었어.”
“······나 지금 밥 먹잖아.”
방금의 대화를 통해 블라드는 괴롭힘의 대상이 자기 이전에는 이 녀석이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소시지 맛있지?”
“닥치고 먹어 그냥.”
그렇다 할지라도 신경 써 줄 이유는 없었지만.
“······이것도 먹어.”
하나밖에 없는 소시지를 한입에 욱여넣고는 아쉬운 듯 쩝쩝거리는 블라드를 보며 포틀리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소시지를 블라드의 식판으로 밀어 넣었다.
“너 지금 뭐 하냐.”
손에 쥘 수 있는 모든 것을 갈망하는 블라드였지만 헛된 동정과 수상한 호의만큼은 예외였다.
그러나 블라드의 날카로운 눈빛에도 포틀리는 조심스레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마치 날 선 손님을 상대하는 점원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네가 이런다고 내가······.”
“이 소시지는 우리 아버지가 납품하시는 거거든.”
“······뭐?”
그동안 괴롭힘을 당해서인지 의기소침한 태도였던 포틀리였지만 아버지를 말할 때만큼은 당당한 모습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바예지드 가문으로 들여오는 고기들은 모두 우리 칸노르 가문이 제공하고 있어. 우리 집은 대대로 축산업과 목축업을 하고 있거든.”
“······계속해봐.”
블라드는 잠시 잊고 있었다.
여기에 있는 녀석들은 하나같이 좋은 집안에서 온 도련님들이었다는 것을.
눈앞에 있는 통통한 녀석도 자신이 뒷골목에 있을 때라면 말도 못 붙여봤을 녀석이었을 것이다.
“아까보니까 소시지를 더 달라고 하던데.”
“그랬지.”
“그거 알아? 소시지는 보존식품이라 육포만큼은 아니더라도 돈 있는 용병들은 자주 찾는 물품이거든?”
“그런데?”
뭔가 초점이 맞지 않는 대화에 블라드가 슬슬 짜증이 나려 하고 있을 때쯤.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나 먹으라고 이것저것 많이 보내주셨거든.”
자기 방에 아버지가 준 소시지나 염장 고기들이 많다며 웃는 포틀리였다.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아서······ 좀 나눠줄까?”
“······.”
블라드는 생각했다.
안드레아 사제님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인맥 하나 정도는 쌓고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이미 척 진 놈들은 어쩔 수 없겠지만 이곳에서 한 명 정도 알아두고 나면 나중에 내 인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래.”
백작 가문에 납품할 정도로 규모 있는 가문의 고깃집 아들이라면 분명 쓸데가 있을 것이다.
꼭 소시지 때문에 포틀리의 방으로 가는 것은 아니라고 블라드는 생각했다.
※※※※
포틀리의 방 앞에서.
블라드와 고트는 입을 크게 벌리고 말았다.
“······너 여기 왜 왔냐?”
“종자가 되려고.”
“······기사도 아니고 그냥 종자면 돼?”
“응. 내가 무슨 기사가 되겠어. 아버지도 별 기대 안 하셨어. 그냥 여기서 적당히 인맥이라도 만들고 오라는 게 아버지의 뜻이긴 했는데.”
그게 잘 안됐다며 쑥스럽게 웃는 포틀리였지만 블라드와 고트의 눈에는 포틀리의 웃음 따위는 보이지도 않았다.
방 안 가득 널려있는 붉은색의 소시지와 염장 고기들.
기사의 흔적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 방을 보며 블라드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 녀석은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 놈이구나.
“내일부터······밥 같이 먹을까?”
“진짜? 그래 줄 거야?”
그렇다면 딱히 배척할 필요도 없겠다.
블라드는 마치 장식품이라도 된 듯이 여기저기 걸려 있는 소시지들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대신 소시지만 가져와.”
포틀리의 소시지는 먹어도 탈이 날 물건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