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46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 어깨까지 으쓱여대는 블라드였다.
그러나 그 모습이 못마땅한 모양인지 루트거는 인상을 찌푸릴 뿐이었다.
“가지고 있는 영향력은 일개 가문을 뛰어넘으면서도 정작 살고 있는 곳은 그냥 여관 아니냐. 너 때문에 발생하는 민원이 한 둘인 줄 알아?”
“정말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보르단이 시장직에서 물러나고 싶다는 걸 막은 게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강철공께서 땅도 내어주겠다는데 도대체 왜 독립을 안 하는 거야?”
최초의 소드마스터는 제국을 세운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 새로 등장한 소드마스터는 나라를 세우기는커녕 가져야 할 영지조차 거들떠보지 않았으니 세간의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모시암은 어때? 여전히 주인이 없는데”
“연고도 없는 곳인데 싫어요.”
“그냥 뒷골목 일부를 자치구로 떼어줄까?”
“굳이 저 없어도 알아서 잘 돌아가던데요.”
“······.”
마치 여기까지가 자신의 역할이라는 듯 확실하게 선을 긋는 이 시대의 소드마스터.
명예는 가졌으나 권력에 대해서만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블라드를 보며 루트거가 다시금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제가 쇼아라에 있는 게 그렇게 불편하세요? 오히려 이득이지 않나요?”
“그렇지. 그렇긴 하지······.”
황실의 권위가 추락해버린 지금, 정통한 자격을 갖춘 블라드가 있는 쇼아라만큼 주목을 받는 도시는 없을 터였다.
당연히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이득을 계산한다면 당연히 블라드가 머물러 있는 것이 좋겠지만.
“그런데 누구랄 것도 없이 다 나한테 압박을 주니까 그렇지. 솔직히 말해서 골치 아프달까.”
그러나 빛나는 검을 쥐기 위해서는 그만큼 지불해야 하는 대가도 큰 법.
아예 이렇다 할 대답 자체를 하지 않는 블라드를 대신해 들들 볶이는 사람은 그와 가장 큰 연관이 되어 있는 루트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황제는 안 할거지?”
툭 던진 듯한 말이었지만 순식간에 집무실의 분위기를 무겁게 하는 질문이었다.
옆에 있던 도로테아조차도 잠시 움찔하게 만드는 그런 질문.
루트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집무실 안에는 찻잔이 달그락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있었다.
“······새롭게 시작하는 게 모두에게 좋지 않겠어요?”
시대에서 시작한 비극을 끊기 위해서는 그 시대를 부숴야만 한다.
용의 시대를 부순 키하노처럼, 제국의 시대를 부술 지금의 블라드처럼.
그래야만 짓눌려 질식해 가는 별들이 다시금 하늘 위로 떠 오를 수 있을 테니까.
“알았다.”
시대의 종언을 가장 가까이서 들은 루트거가 웃고 있었다.
역시 너 다운 대답이라는 듯 그렇게.
“못다 한 이야기는 내일 하도록 하지. 피곤할 텐데 이만 쉬도록 해라.”
“그럴까요.”
스투르마에 들어왔을 때는 정오였으나 어느새 기울어진 태양은 조금씩 붉은 기를 머물고 있었다.
“아, 쉬기 전에 너를 찾는 손님들이 있으니까 확인하도록 하고.”
“네.”
“그리고 머무는 동안 한 번이라도 새로 모은 종자들을 봐주면 좋겠는데.”
“······.”
“어떻게 보면 다 네 직속 후배들 아니냐. 애정으로 한 번 봐달라고.”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부탁하는 자세가 묘하게 당당해 보였다.
마치 집세 정도는 내야지라고 말하는 것 같은 루트거의 표정에 블라드는 그저 알겠다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리고 또 뭐요.”
다시금 자신을 붙잡는 루트거의 목소리에 블라드가 매섭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이윽고 들려오는 말에는 그저 조용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도 한 번 뵙고 가줬으면 하는데. 너라면 분명 기뻐하실 테니까 말이다.”
“······.”
모두가 다가올 축제에 떠들썩한 스투르마였지만 오직 한 여인이 있는 곳만큼은 죽음과도 같은 침묵으로 물들어 있을 뿐이었다.
창밖에 있는 묘비로 슬픔을 달래며 하루하루 시들어가고 있는 여인.
언제나 나에게 어머니처럼 웃어주었던 그녀를 떠올린 블라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방문을 나섰다.
※※※※
“······얘는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이제는 깜깜해진 복도 한가운데서 조용히 열리는 방문 하나가 있었다.
열린 문을 따라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촛불이 밝히는 붉은 머리.
빼꼼히 문을 연 채 복도를 기웃거리던 제미나는 조용해진 복도의 분위기가 무서웠는지 냉큼 목을 움츠리고 말았다.
“레이디라며. 레이디를 이렇게 혼자 내버려 둬도 되는 거야?”
새로운 백작을 만나러 간다는 블라드는 아직도 소식이 없었다.
거기다 알던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며 나간 고트도 어디서 술이라도 마시고 있는지 이 시간까지 들어오지 않고 있었으니 지금 방에 있는 사람은 오직 제미나 혼자뿐이었다.
“이것들이······. 너희들 돌아오면 다 각오해.”
말투는 험악했지만 내뱉는 목소리는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익숙한 쇼아라에서는 몰랐으나 낯선 스투르마에 닿으니 다가오는 어둠이 그렇게나 무서워진 제미나였으니까.
“안녕.”
“꺄아악!”
그렇게 이제나 올까 싶어 복도를 기웃거리던 제미나의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누가 들어도 청량한 목소리였으나 가뜩이나 움츠리고 있던 제미나에게는 그저 공포스러운 조우였을 뿐이었다.
“저기 나는······.”
“드레스! 하얀색!”
“혹시 블라드······.”
“꺄아악!”
어두컴컴한 복도에 홀로 떠 있는 정체 모를 하얀색 형체가 있다.
거기다 어렴풋이 보이는 모습은 이 저택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린 소녀의 모습이었으니 제미나의 입장에서는 나름 기겁할 만한 광경이기는 했다.
“······나 다음에 올까?”
“히으으윽!”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버린 제미나를 보며 세계수의 신녀가 당황했다는 듯 멈춰 서 있었다.
꿈에서 본 붉은 머리였기에 반가운 마음에 냉큼 달려간 것이 아무래도 실수였던 모양이었다.
“누, 누구세요?”
누구냐고 묻는 제미나의 말에 신녀는 잠시 머리를 긁적이고 말았다.
딱히 이름이 없는 신녀로서는 자신을 무어라 소개해야 제미나가 안심을 할지 고민이 되는 모양이었다.
“저기······. 나는 그냥 이거 주려고.”
그러나 말재주 없는 소녀의 입장에서 진심을 전할 방법은 딱히 많지 않았다.
그저 원래 주려고 했던 그림을 건네주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수밖에.
“이, 이게 뭔데?”
“내가 꿈에서 본 거예요.”
소녀가 건네주는 종이를 잡아든 제미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안에 그려진 그림을 보려 애썼다.
그러나 창가로 스며드는 달빛만으로는 지금 건넨 그림이 무언지 도무지 확인하기 힘들어 보였다.
“이거 블라드가 보면 좋아할 텐데.”
“블라드?”
익숙한 이름이 들려오자 그제야 제미나의 눈에 빛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수의 신녀는 어느새 복도를 향해 뒷걸음질 치는 중이었다.
“아직 나를 보고 웃어주려면 조금 기다려야 하나 봐요.”
“응?”
꿈속에 사는 소녀는 자신을 보며 반갑게 웃어주었던 붉은 머리의 여자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아직 둘의 만남은 서로를 알아보기에는 너무 이른 것이었다.
“그럼 또 봐요. 제미나.”
그렇기에 그림 한 장만을 건네며 돌아서는 세계수의 신녀.
어두운 복도를 향해 내달리는 백금발을 보며 제미나는 얼이 빠진 채 자리에 주저앉아 있을 뿐이었다.
외전- 올려다 본 하늘에는
“이 저택에 귀신이 있어.”
이른 아침,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어슴푸레한 주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블라드는 옆에서 들려오는 제미나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