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50
키하노 외전- 프라우센 가문의 망나니 (2)
콘수에그라.
투를레크 남작령에 자리한 어느 곳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마을.
그래도 평범할 뿐인 이 마을에도 특별한 광경 하나 정도는 있었으니 그것은 저 멀리 언덕 위로 늘어서 있는 풍차들의 모습이었다.
“······으으.”
봄이 찾아온 언덕에는 풀을 뜯어 먹으려 돌아다니는 양 떼가 하얀 구름처럼 퍼져 있었다.
거기다 이제야 막 피기 시작한 색색의 꽃들까지.
멀리서 본다면 하나의 그림처럼 보일듯한 평화로운 풍경이었지만 지금 그곳에 서 있는 소녀의 얼굴에는 잔뜩 찌푸린 표정만이 가득했다.
“요즘 따라 왜 이렇게 바람이 사납지?”
마을에 풍차가 있다는 것은 곧 이곳이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이라는 뜻.
그러나 예년과 비교해봐도 너무나 날카롭게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소녀는 쓰고 있는 모자를 놓치지 않으려 힘껏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응?”
그렇게 세찬 바람이 지나가고 다시금 잠잠해진 콘수에그라의 언덕.
그제야 감았던 눈을 뜬 소녀가 무언가 발견이라도 했다는 듯 저 앞에 있는 풍차를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저게 뭐지?”
높게 솟은 풍차의 작은 창으로 촛불처럼 반짝이는 빛이 있었다.
마치 여기 좀 봐달라는 듯 희미하게 깜빡이는 정체 모를 빛.
그러나 소녀가 그 빛을 알아봤을 때는 어느새 언덕에는 다시금 세찬 바람이 몰려오고 있었다.
※※※※
“아니, 이게 지금 걸으라고 만든 길이야?”
숲속에 새겨진 오솔길을 걸어가는 일행이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타고 있던 늙은 말과 작은 나귀의 고삐를 붙잡으며 끌고 가면서.
그렇게 낑낑거리며 걸어가는 남자의 이름은 키하노 프라우센.
누구한테 얻어맞기라도 한 듯 얼굴에 온통 시퍼런 멍이 든 키하노는 지금 진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자신의 말을 밖으로 끌어내려 애쓰는 중이었다.
“진짜! 이해가! 안 간다니까! 이딴 것도 도로라고 통행세를 받아먹는다고?”
날씨가 봄이어서일까.
불어오는 바람에는 따뜻한 기운이 서려 있었지만 정작 그 날씨 덕에 도로는 죄다 진창이 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여행자들이 돌아다니기에는 영 까다로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는 그런 말이다.
“빌어먹을 용 놈들. 위에서 꺼드럭댈 줄만 알지 정작 이런 건 살펴볼 생각도 안 한다니까.”
“키하노 님.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바짝 약이 올랐는지 씩씩대는 키하노의 입에서는 용들을 욕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얀이 깜짝 놀랐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예전에 저희 마을에서도 욕하다가 끌려간 사람이 있다구요.”
“······.”
“진짜라니까요?”
정말로 놀랐다는 듯 호들갑을 떠는 얀을 보며 키하노는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하긴 이런 세상이긴 했다.
아무도 없는 숲길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그들을 욕할 수 없는 용들의 시대.
그런 시대를 탈 없이 보내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묵묵히 고삐나 끌면서 걸어가는 수밖에.
“아무튼 길 좀 시원시원하게 뚫었으면 좋겠다는 말 아냐. 만약에 나였으면 이렇게 수도를 중심으로 해서 이렇게 동서남북으로 큰 가도를 설치한 다음에······.”
용들이 지배하는 이 세계는 이미 완벽하다.
그런 세상에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곧 용들에 대한 반항을 뜻하는 것.
그러나 이 시대의 젊은이인 키하노에게는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그림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예끼 이놈! 그딴 쓸데없는 소리나 해대니까 가문에서 쫓겨났지.”
그러나 더 나은 미래를 그리는 것은 인간이 아닌 오직 용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키하노가 그리는 그림은 이루어질 수 없는 망상에 불과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 말 할 기력이 남아 있으면 하루빨리 마을에 도착할 생각이나 해라! 하여튼 요즘 젊은것들은. 쯧쯧.”
키하노는 얀의 머리 위에서 파닥거리는 개구리의 말에 그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꿈꾸는 이상은 높았으나 어차피 지금의 자신은 진창 위에서 늙은 말의 고삐나 잡아당기는 신세.
지금 앞에 보이는 늙은 말처럼 현실이라는 진창에 주저앉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용들이 만든 세상에 순응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래도 경치는 나쁘지 않네.”
그렇게 낑낑거리며 올라온 언덕 아래에는 시원하게 펼쳐진 콘수에그라의 목초지가 펼쳐져 있었다.
보기만 해도 속이 탁 트이는 초록색의 물결.
방금까지만 해도 들끓기만 했던 가슴을 달래주는 것만 같은 그 광경을 보며 키하노는 크게 숨을 들이마셔 보았다.
※※※※
“이름.”
“······키하노.”
“나이.”
“스물.”
“여기는 무슨 일로 왔어?”
별것 없는 마을이라 생각했으나 앞에서 붙잡는 경비병들의 태도가 꽤나 빡빡했다.
“거기 쓰여 있잖아. 당신네 영주님이 보내서 여기 온 거라니까?”
영주의 직인이 찍힌 명령서까지 보여줬으나 여전히 풀리지 않는 경비병들의 태도.
도저히 답이 없는 그들의 키하노도 슬슬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요즘 여기에 마녀가 나온다며. 그거 잡으려고 왔다고.”
여기저기 진흙이 잔뜩 튄 모습이 영 미덥지는 않았지만 가지고 온 영주의 명령서만큼은 진짜였다.
게다가 나름 기사랍시고 종자까지 데리고 다니는 모습이 그래도 구색은 맞춘 것 같아 경비병들도 더는 붙잡을 이유가 없긴 했다.
비록 애완용이라며 데리고 다니는 개구리가 영 미심쩍어 보이기는 했지만.
“······콘수에그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키하노 경.”
“그럼 나 이제 들어가도 되는 거죠? 아저씨들.”
“네. 들어가시죠.”
앞을 막고 있던 창이 들어 올려지자 콘수에그라로 통하는 목책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등 뒤에서 다시금 들려오는 경비병들의 소리에 키하노는 잠시 걸음을 멈춰 세우고 말았다.
“마을에 들어가시면 곧바로 징수관님께 보고부터 해주시길 바랍니다?”
“······징수관? 촌장이 아니고?”
보통 이런 마을이라면 촌장이 대소사를 처리하는 일이건만 갑자기 징수관이라니.
이 자그마한 마을에 영주가 직접 보낸 관리가 있다는 사실에 키하노의 눈빛에 이채가 돌기 시작했다.
“네. 그리고 가능하다면 마을에서는 정숙을······.”
“아이고. 참 비싼 마을이네. 들어가기도 어렵고 들어가서 움직이기도 어렵고.”
그 말과 함께 돌아선 키하노가 경비병들을 향해 의미심장하게 웃기 시작했다.
“진짜 여기에 마녀라는 게 있긴 있나 봐?”
마녀(魔女).
신비를 다루는 마법사들과는 달리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이적을 행하는 사람들.
여태껏 있다고 들어 보기만 했던 그들이 정말 이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키하노의 표정에 흥미롭다는 표정이 감돌고 있었다.
※※※※
“저기 키하노 님? 여기가 아닌데요.”
차마 막아 세우지는 못하겠다는 듯 뒤에서 달라붙는 얀의 목소리가 애처로웠다.
“경비병들이 바로 징수관한테 가라고 그랬잖아요······.”
“나도 알아.”
왜냐하면, 지금 이들이 서 있는 곳은 징수관이 머물고 있다는 곳이 아니라 전혀 엉뚱하게도 술집 앞이었으니까.
그러나 마치 이곳이 맞는 길이라는 듯 너무도 자연스럽게 걸어가는 키하노의 모습에 초보 종자인 얀은 그저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얀, 네가 뭘 몰라서 그래. 원래 책임자를 만나기 전에는 몸에 묻은 먼지도 좀 털고, 술로 입가심도 좀 하고 그러고 난 다음에나 찾아가는 게 예의에 맞는 거야.”
“······진짜요?”
“아니면 네가 어쩔 거야. 그냥 따라 들어와야지.”
무언가 의심쩍다는 듯 표정을 찌푸리는 얀이었으나 키하노는 이미 술집에 문을 열고 들어간 뒤였다.
“흠흠. 꽤 괜찮네.”
척 봐도 전형적인 보통 마을의 술집이었다.
1층에서는 술과 음식을 팔고 그 위에 있는 2층에서는 여관을 겸하는 그런 술집.
풍겨오는 음식 냄새만으로도 그곳의 수준을 점쳐 볼 수 있는 키하노는 이 술집이 그런대로 괜찮을 곳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주문이요.”
“여기서 제일 잘 팔리는 게 뭡니까?”
“어차피 파는 게 하나밖에 없는데.”
“그럼 그거 하나랑 맥주 한 잔.”
“키하노 님······.”
“그거 두 개랑 맥주 한 잔 부탁합니다.”
여관의 안주인인 것 같은 여인에게 주문을 마친 키하노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며 얀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사람 많네.”
“그러게요. 여기 음식이 엄청 맛있나 봐요. 저희 마을 술집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거든요.”
사람이 많은 도시라면 몰라도 이곳은 마을이었다.
그것도 영지 변두리에 있는 자그마한 마을.
그러나 지금 이곳 술집에는 꽤 많은 마을 주민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으니 키하노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도 했다.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한창 일할 시간에도 다들 술집에 있는 걸까.”
고개까지 빼 들며 세어본 숫자는 대략 30명.
그것도 한참 일해야 할 나잇대의 남자들이 가득한 지금의 술집이었다.
“여기요.”
“오. 빠르네.”
“스튜야 뭐 항상 끓고 있으니까요.”
주문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금세 튀어나온 스튜.
고기 스튜인지 야채 스튜인지 하여간 죄다 잡다하게 섞인 스튜를 보며 오랜만에 따뜻한 음식을 본 얀의 얼굴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키하노 님!”
“응. 많이 먹어. 어차피 그거 다 네가 빚진 20골드에서 더해지는 거야.”
“······네.”
침울해진 얀이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말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키하노는 스튜를 입에 떠넣을 뿐이었다.
“음. 맛있네.”
오래 끓인 만큼 꾸덕하고 온갖 것이 들어갔기에 진득해진 여관의 스튜.
오직 시골 마을에서만 느낄 수 있을 풍미에 키하노의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렇게 몰려올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러나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들 정도까지 훌륭한 맛은 아니었다.
그것도 해야 할 일까지 팽개쳐가며 몰려들 정도는 더욱 아닌 그런 맛.
-······우리 집 양이 아주 난자가 되어있더라니까. 처음에는 양인 줄도 모를 정도였다고.
-요즘에는 밤만 되면 애들이 무섭다고 경기를 일으키더라고.
-이게 마녀의 수작이지.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뭐겠어.
“······.”
영주의 의뢰를 실행하기 전 일부러 들린 마을의 술집.
오직 그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생생한 소리를 들으며 키하노가 천천히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
“이, 이렇게 누추한 곳에 귀하신 분이······.”
어느새 노을이 져가는 한 도시.
콘수에그라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 에나레스의 시청에는 지금 무겁게 깔린 긴장감이 가득했다.
“미리 연락을 주셨으면 저희가 마중을 나갔을 텐데요.”
“······.”
누군가를 향해 깊게 고개를 숙인 시장의 모습이 꽤나 애처로워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접히지도 않는 뱃살을 억지로 구기느라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법사들의 보고를 받고 왔다. 이제 곧 연구가 막바지에 이를 거라고 하더군.”
“그렇습니다! 그분들께서 저한테도 그렇게 말했었지요!”
그러나 그는 숨을 쉬는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연신 손을 비벼가며 앞에 있는 남자를 향해 말할 뿐이었다.
“혹시라도 보내신 마법사들이 불편을 겪을까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고 대접하고······. 바라시는 목표에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어찌 보면 비굴해 보일 정도로.
한 도시를 책임지는 시장이 보일만 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가 최선을 다해 고개를 숙이는 이유는 앞에 있는 남자가 당연히 그렇게 할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수고했다.”
뒷짐을 진 채 창가에 선 남자의 머릿결이 반짝였다.
점점 짙어지는 붉은 노을에도 제 색을 잃지 않는 화려한 금발이었다.
“이 일이 성공하면 자네의 이름을 기억하도록 하지.”
그렇게 돌아선 남자의 눈동자는 시리도록 푸른색을 띄고 있었다.
오직 순혈의 완벽함만이 표현할 수 있다는 그 눈동자를 바라보며 에나레스의 시장이 힘껏 고개를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사르누스 님!”
노을과 함께 돌아선 사내의 이름은 사르누스 드라굴리아.
이제 막 가문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젊은 용.
그가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인 시장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