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51
키하노 외전- 수상한 마을 (1)
통통하게 튀어나온 아이의 볼이 귀여웠다.
키하노의 손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여대는 눈동자까지도.
여기 좀 보라며 눈깔사탕을 흔들며 아이를 유혹하던 키하노 조차도 그 꾸밈없는 모습에 그만 실소를 지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요즘 계속해서 밤에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응.”
“어른들은 못 듣는데 너랑 네 친구들만 듣는 그런 소리란 말이지.”
“으응.”
초롱초롱한 눈은 여전히 키하노가 들고 있는 사탕을 향해 있었지만, 어느새 펼친 아이의 손가락은 저 위에 있는 언덕을 향해 있었다.
기다란 팔을 늘어뜨린 채 마을 언덕에 서 있는 풍차를 향해서.
“저 풍차요. 저기서 자꾸 누가 울어요.”
“······울어?”
“응. 울어요. 풍차가 밤마다요.”
풍차가 운다고 말하는 아이의 말에 옆에 있던 얀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의 말을 듣는 키하노의 눈빛은 침착하게 가라앉아 있을 뿐이었다.
“나 다 말했는데······. 이제 사탕 주시면 안 돼요?”
말을 마친 아이가 어서 사탕을 달라는 듯 키하노를 향해 한껏 양손을 펼치고 있었다.
그 앙증맞은 모습에 들고 있던 눈깔사탕을 놓아준 키하노.
손 위에 놓인 눈깔사탕을 보며 아이가 함박웃음을 짓는 동안 키하노가 조용히 굽힌 허리를 피기 시작했다.
“풍차가 운다라.”
밤마다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풍차에 관한 소문.
그러나 오직 어린아이들만 들었기에 모두가 쉬이 넘어갔던 풍문이었지만 지금 키하노의 눈빛은 진지해져 있었다.
“······지금 5명째 똑같은 말을 하는데.”
그것은 아이들 하는 증언이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어린아이들이라 할지라도 똑같은 말을 5번이나 반복해서 듣는다면 귀 기울일 만한 증언이 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 마법사 놈은 풍차 근처에도 오지 말라고 했단 말이지.’
그러나 어제 만났던 그 삭막한 인상의 마법사는 풍차 근처에는 다가가지도 말라고 말했었다.
충고인지 아니면 경고일지 모를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그때의 일을 떠올린 키하노가 마지막 남은 눈깔사탕을 깨물며 깊은 생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
“어쨌거나 풍차 근처에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한적한 마을치고는 촌장의 집은 꽤 잘 만들어져 있었다.
이만한 집을 짓기 위해서는 아마 인망이 높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그만큼 뒤로 해먹은 게 많았을 거라 생각될 정도로.
“마녀를 위한 조사도 좋지만, 그곳만큼은 좀 피해 주면 좋겠군.”
그러나 지금 이곳에서 키하노를 맞이하는 사람은 촌장이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화려한 자수가 새겨진 로브를 입고 있는 삭막한 인상의 사내.
차림새만 보아도 마법사처럼 보이는 중년인은 이제야 막 도착한 키하노를 보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기서 하는 게 나름 보안을 요구하는 실험이거든. 그러니 부디 이해해주길 바라네.”
들리는 말투에는 잘 배운듯한 기품이 깃들어있었다.
거기다 평범한 사람이면 쉽게 걸칠 수 없을 것 같은 비싸 보이는 로브까지.
아마 식탁 위에 방만히 걸쳐 놓은 양발만 아니었다면 키하노 조차도 격식 있는 사람이라 착각했을 정도였다.
“뭐······. 그 정도만 해주면 자네가 하는 일에 딱히 신경 쓰지는 않겠네.”
그 예의 없는 행동에 정작 옆에 있던 징수관이 쩔쩔매고 있었으나 키하노를 대하는 사내의 모습은 너무나 태연할 뿐이었다.
고귀한 핏줄인 프라우센의 이름 앞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남자.
자신을 사몬테라고 밝힌 그는 마치 이곳이 자신의 땅이라도 된다는 양 그렇게 키하노를 맞이하고 있었다.
“드라굴리아 가문이 직접 주관하는 실험이라니 어쩔 수 없지요.”
“이해가 빠른 젊은이군.”
그렇지만 눈앞에 있는 사내가 아무리 무례한 행동을 보인다 하더라도 드라굴리아라는 이름 앞에서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긴 했다.
비록 용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들의 이름을 수행하는 자를 함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도대체 이 조그마한 마을에 무슨 실험인가 싶긴 하지만 그 정도야 협조해 드려야겠죠.”
“그렇지.”
그러나 지금 사몬테의 앞에 서 있는 남자는 소문이 자자한 프라우센 가문의 망나니.
아마 그동안 앞뒤를 재가며 행동했다면 키하노의 이름 앞에 망나니라는 단어가 붙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꽤 공교롭네요. 드라굴리아 가문이 지켜보는 마을에서 그 보기 힘들다는 마녀까지 출몰하다니 말입니다.”
“······.”
“이게 다 우연이 겹친 일이라면 참 신기한 일이긴 하겠습니다.”
웃는 척하고 있지만 웃지 않는 프라우센의 아들과 여전히 굳은 표정을 풀지 않는 드라굴리아의 마법사까지.
그 둘이 만드는 불편한 분위기에 얀은 그만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았다.
※※※※
“키하노 님을 괜히 따라왔나 봐요······.”
촌장의 집을 떠나 아까 왔던 여관으로 돌아가는 길.
자그마한 나귀를 끌며 걸어가던 얀은 불안한 목소리로 앞에 있던 키하노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저도 찍히는 건 아니겠죠? 무려 드라굴리아의 사람인데요.”
아무래도 얀은 방금 있었던 일이 꽤 불안한 모양이었다.
하긴, 시골 마을에서만 살아왔던 소년에게 있어 방금의 장면은 충격일 수밖에 없는 일이긴 했다.
“······그래. 드라굴리아지.”
“네?”
“그런데 왜 드라굴리아가 파문당한 마법사를 쓰고 있었을까?”
그러나 앞서 걷고 있던 키하노의 귀에는 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을 뿐.
“그것도 남부의 몰락 가문 출신 마법사를 말이야. 그렇게까지 사람이 급했나?”
“······키하노 님? 지금 뭐라고 하시는 거예요?”
쉴 새 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키하노의 분위기가 어딘가 낯설어 보였다.
여태껏 얀이 보았던 모습과는 전혀 달라 보이는 그런 모습이었으니까.
“남부 출신, 몰락가문. 이런 게 다 무슨 말이에요?”
“뭐가?”
“아니, 방금 말씀하신 거요. 누가 파문당했다면서요.”
한참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던 키하노.
그런 그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얀을 보고서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는 듯 얼굴에 표정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파문은 사몬테가 당했지.”
“······네?”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지껄이기 시작하는 키하노.
그런 그의 모습에 얀은 당황한 기색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이 파문을 당했어요? 아까 그런 말이 나왔었나요?”
“그걸 뭐 말해야 아나. 그냥 보면 아는 거지.”
너무나 태연히 대답하는 키하노를 보며 얀은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을 정도였다.
남부 출신, 몰락가문의 자제, 거기다 파문당한 마법사라는 말까지.
그런 정보야말로 말로 들어야지 어떻게 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단 말인가.
“······저는 지금 키하노 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너도 봤잖아. 사몬테가 입고 있던 로브 말이야.”
“로브가 왜요?”
여전히 멀뚱멀뚱 거릴 뿐인 얀을 보며 키하노가 인상을 찌푸렸다.
마치 왜 그것도 못 알아보느냐며 말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굉장히 화려한 자수가 새겨진 로브였단 말이다. 그런 화려한 형태는 주로 남부에서 유행하는 문양이거든.”
“네.”
“거기다 신고 있는 장화가 반짝거렸지? 그건 이미 방수 처리를 했다는 뜻인데, 그렇게까지 장화를 관리하는 지역은 오직 습지가 많은 남부지역 사람들밖에 없어.”
“아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을 보았으나 담아낸 정보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예리했던 키하노의 관찰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들어보니 남부 출신인 것 같기는 하네요. 그런데 몰락 귀족이란 건 무슨 뜻이에요?”
“그 사람이 끼고 있던 반지가 귀족들이나 쓰는 가문의 인장 반지였거든. 그런데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문양이었으니 적어도 한 세대 전에는 몰락한 가문의 것이라 볼 수 있지.”
도대체 그 짧은 만남의 시간 동안 언제 반지까지 봤단 말인가.
사몬테라는 사람이 만들었던 강압적인 분위기에 그저 움츠리고만 있던 얀이었기에 지금 들려주는 키하노의 말이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거기다 전체적으로 옷이 낡았잖아. 성격이 예민해서 옷 자체는 꽤 관리를 하는 모양인데 그럼에도 여전히 낡은 옷을 입고 있다는 건 아무래도 주머니 사정이 신통치 않다는 뜻이지.”
“······그럼 파문당한 마법사라는 말은요?”
하나하나 들을 때마다 과연 그럴듯하게 들리는 키하노의 추론에 얀의 눈이 점점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파문당했다는 것은 어떻게 알아냈을지 궁금하다는 얀의 눈빛에 이번에는 키하노가 할 말이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나도 몰랐지.”
“네?”
방금 사몬테라는 마법사가 파문당했다고 말했으나 정작 그 이유는 모르겠다고 말하는 키하노.
그런 키하노를 보며 얀이 어리둥절하고 있었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키하노가 아닌 다른 사람이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냄새가 고약했단 말이다.”
키하노의 품 안에서부터 노인의 칼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숨어 있던 안이 답답했던 모양인지 연신 눈을 깜빡거리는 개구리였다.
“그놈 주변에서 부리면 안 되는 신비들이 잔뜩 뭉쳐있었지. 그 썩은 내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머리에는 자그마한 고깔 모양의 모자를 쓴 채 키하노의 어깨까지 기어오르는 개구리 한 마리.
인간이었을 시절에는 앤드류라는 이름을 갖고 있던 개구리가 생각만 해도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뒷다리로 머리를 긁어대기 시작했다.
“아마 그게 요즘 마법사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는 흑마법인 것 같긴 한데. 그정도로 신비가 썩었으면 아마 파문도 진작에 당했겠지.”
마법이란 단어는 들어봤어도 정작 흑마법이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봤다는 듯 얀의 표정이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앞에 붙어 있는 흑(黑)이라는 단어가 불길한 것을 뜻한다는 것쯤은 풍겨오는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도대체 이 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괜한 일에 말려든 거 아닌지 모르겠네.”
처음에는 그저 저질렀던 무례를 용서받기 위해 떠난 여행길이었다.
그러나 막상 닿은 이곳은 마녀가 출몰하며 수상한 마법사가 머무는 아주 수상한 마을.
그 마을을 걷고 있던 키하노는 점점 어둑해지는 콘수에그라의 하늘을 보며 작은 소리로 혀를 차기 시작했다.
※※※※
이제는 완전히 어두워져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언덕 위의 풍차.
그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풍차 안에서는 창가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빛과 함께 지금도 십수 명의 마법사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중이었다.
“······투를레크 남작이 아무래도 인선을 잘못한 모양인데.”
그리고 풍차에서 가장 높은 곳. 날개가 매달려 있는 자리.
그곳에 있는 마련된 자신의 공방에서 조용히 아까의 일을 곱씹어보던 사몬테는 아직도 키하노라는 청년이 보여줬던 불손한 태도가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프라우센 가문이 강제로 밀어 넣은 건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자꾸만 자신들을 방해하는 정체 모를 여자 덕에 실험이 지체된 상황.
그 여자를 잡기 위해 쓸만한 기사를 보내 달라고 말했건만 정작 도착한 사람은 투를레크의 기사가 아닌 아직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프라우센의 망나니였으니.
“이거 골치 아프게 되었군. 아직도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정말로 골치가 아프다는 듯 사몬테가 관자놀이를 짓누르며 자그마한 신음을 내기 시작했다.
몰락해버린 가문의 재건과 새로운 실험의 성공을 위해 여태껏 드라굴리아의 지원을 받아왔던 사몬테.
그러나 이제는 그 성과를 보여줘야 할 시기가 다가옴에 따라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점점 제 모습을 드리우는 중이었다.
“······그러니 어서 울어봐라. 이 고약한 녀석아.”
그런 사몬테가 기대할 수 있는 존재라고는 오직 플라스크 안에 들어가 있는 자그마한 뱀일 뿐.
-······!, ······!
사몬테가 붙잡은 플라스크 안에는 어린 뱀 한 마리가 잡혀들어가 있었다.
얼마나 작은지 어른 손바닥에도 못 미칠 것 같은 뱀.
자신을 바라보는 사몬테를 보며 어서 그 손 놓으라는 듯 쉴 새 없이 쉭쉭 거리는 녀석.
아직 채 자라지도 못한 이빨을 날카롭게 세운 어린 뱀은 지금 밤하늘에 떠오른 달처럼 온통 새하얀 색을 지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