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52
키하노 외전- 수상한 마을 (2)
하얗게 비치는 달빛 아래, 푸르른 목초지가 끝나는 지점.
푸른 잔디가 우거진 수풀로, 그리고 다시 무성한 나무로 이어지는 숲에서부터 조용히 일어서는 그림자 하나가 있었다.
“······.”
환히 비치는 달빛 아래서도 그림자가 머문 어둠은 벗겨지지 않았다.
마치 주위에 있는 나무들이 스스로 가리기라도 한 듯 전혀 빈틈없는 어둠이었다.
그렇기에 빛나는 것은 오직 맹수처럼 빛나는 한 쌍의 눈동자일 뿐.
“빌어먹을 인간 놈들.”
자그맣게 내뱉은 목소리에는 차마 감추지 못한 분노가 흐르고 있었다.
마치 조용히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찻물처럼.
그리고 가녀린 목소리를 따라 흐르는 그 분노는 저 아래 보이는 인간들의 풍차를 향해 있었다.
“······내가 꼭 구해줄게.”
그 말과 함께 정체 모를 인형이 다시금 어둠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무성한 숲속, 홀로 나무들이 만들어 낸 어둠 사이에 숨어 마을을 내려다보던 존재.
하늘 위에 떠 있던 달이 이제야 찾아낸 그것은 분명 시리도록 빛나는 백금발을 가지고 있었다.
※※※※
“흐음.”
풍차 안에 들어선 키하노가 신기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기 시작했다.
을씨년스러운 바깥의 모습과는 다르게 정작 안쪽은 깔끔하게 정돈된 사몬테의 공방을 보며 놀란듯한 모습이었다.
파직-! 파지직-!
거기다 아무것도 없는 유리관에 갑자기 번개가 생겨난 모습을 보았으니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는 일.
지금 있는 풍차에서도 가장 높은 곳, 저기 사몬테가 서 있는 자리에서부터 갑작스레 흘러나온 번개를 보며 키하노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고 말았다.
“······저것도 마법인가.”
기이하게 생긴 톱니바퀴들과 거미줄처럼 얽힌 파이프들이 가득한 사몬테의 공방.
괜스레 그곳에서 어슬렁거리던 키하노는 방금 번개가 생겼던 유리관 같은 것들이 주변에 많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무슨 실험을 하는지는 몰라도 아주 요란하네.”
분명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유리관들이었다.
그러나 어느 것에서는 차가운 이슬이 맺히고, 또 어느 유리관에는 새빨간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마법으로 만든 현상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제 조사는 충분히 하셨습니까? 키하노 님.”
신기하다는 듯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키하노의 뒤에서부터 로브를 입은 젊은이가 걸어 나왔다.
위에서 실험에 열중하는 사몬테를 대신해 나온 그의 제자였다.
“아, 조사요? 그렇죠. 볼 건 다 본 셈이죠.”
더 둘러볼 것이 있느냐 말하는 제자의 말에 키하노는 은근슬쩍 자신의 속 주머리를 건드렸다.
툭-
그러자 답하듯이 돌아오는 자그마한 진동.
이제 되었다는 듯 말하는 그 진동에 키하노가 웃으며 사몬테의 제자를 바라보았다.
“정말 신기한데요. 안에 아무것도 없는데 이것저것 생기니.”
“하하. 그럴 겁니다. 아무래도 처음 보시면 신기할 수밖에 없겠지요.”
삭막한 인상의 사몬테와는 지금 키하노 앞에 있는 청년은 사람 좋은 웃음을 띠며 그를 상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연스레 지은 그 미소 속에서도 자신을 향한 비웃음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키하노는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어쩌면 지금 보시는 광경이야말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요.”
“······네?”
지금도 풍차 안에서는 무엇이 그리 바쁜지 마법사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 바쁜 흐름 속에서도 키하노와 젊은 마법사 사이에서는 기묘한 어색함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사실, 저희가 하는 실험이 바로 그런 것들에 관련된 것이거든요. 쓸모없는 것들을 쓸모 있게 만드는 뭐 그런 것 말입니다.”
그렇게 말한 사몬테의 제자는 더 이상 말해봤자 서로가 골치 아프다는 듯 장난스레 손바닥을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드라굴리아 가문에서도 특별히 신경쓰는 실험입니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실험을 방해하는 것들이 있어요.”
그 말과 함께 사몬테의 제자가 저기 좀 보라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
그 고갯짓을 따라 키하노가 걸어가자 창밖을 통해 보이는 광경이 있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기에 충분히 내려다볼 수 있는 주변의 풍경.
지금 내다보는 풍차의 창가에서는 넓게 펼쳐져 있는 마을의 목초지뿐만 아니라 저 멀리 있는 숲까지도 한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요즘 따라 저희가 쳐놓은 결계가 조금씩 훼손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들짐승들이 그러했나 싶었는데 조사해 보니까 아무래도 사람의 손길이 닿아 있는 것 같더군요.”
그 말과 함께 사몬테의 제자가 품속에서부터 자그마한 돌멩이를 꺼내 들었다.
그냥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돌멩이였지만 그것의 표면에는 복잡하게 새겨진 술식이 가득했다.
“확실히 칼로 부순듯한 모양새군요.”
“그렇습니다. 누군가가 저희를 방해하려 하고 있어요.”
키하노가 이곳에 온 이유는 어디까지나 주변에 출몰하고 있다는 마녀를 잡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지금 사몬테의 제자가 들이대는 돌멩이에는 그 마녀가 행한듯한 불길한 증거가 남아있었다.
“이 결계석을 부쉈다는 것은 적어도 최소한의 신비를 다룰 줄 아는 자라는 뜻입니다.”
양을 잔인하게 죽였으며 동시에 용의 실험을 방해하고 있다.
그 와중에서도 정체 모를 신비를 발현하고 있으니 어쩌면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마녀가 한 짓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키하노 님.”
“네. 제가 최선을 다해서······.”
“또 어찌 알겠습니까. 이번 일을 잘 해결하면 키하노 님을 향한 드라굴리아의 분노가 풀릴 지도요.”
마을의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어차피 마녀라 칭하는 존재만 잡으면 될 일.
그 일을 마무리 하기 위해 인사를 나눈 키하노였지만 방금 들려온 말에는 잠시 움찔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이고. 이런! 이거 제가 괜한 말까지 꺼냈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말로는 죄송하다고 말하고 있었으나 어쩐지 유쾌해 보이는 태도가 꽤 불손했다.
그 말은 즉 방금 내뱉은 말이 실수가 아니라는 뜻.
아마 방금 내뱉은 말은 어제 키하노가 사몬테에게 보였던 태도에 대한 자그마한 복수인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완벽함을 향한 저희의 실험. 프라우센의 일원이신 키하노 님께서 훌륭히 도와주실 거라 믿겠습니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키하노를 보며 사몬테의 제자가 웃고 있었다.
용들의 눈 밖에까지 나고 말았다는 그 소문이 자자한 프라우센 가문의 망나니를 향해서 말이다.
“······물론이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나 키하노는 자신을 비웃는 사내를 보면서도 마주 웃어 주는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완벽함이 가득한 지금의 세상에서는 누구라도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렇게 자신을 향한 비웃음마저 집어삼킨 키하노의 표정에는 차마 숨기기 힘든 쓴맛이 감돌고 있었다.
※※※※
“키하노 님. 키하노 님?”
“······.”
“이제 일어나셔야죠. 해가 지고 있다고요.”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마을의 언덕이었다.
멀리서 본다면 한 폭의 그림 같았을 풍경이었건만 지금 그곳에서는 키하노를 깨우려는 얀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질 뿐이었다.
“······아이. 저녁때 깨우라니까.”
“지금이 저녁이거든요? 이제 조금 있으면 해가 질 시간이라구요.”
옆에서 들려오는 얀의 말에 벌써 그렇게 되었냐는 듯 키하노가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과연 초록색이 가득했던 목초지에는 어느새 노을이 만드는 붉은 물결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양 어디 있냐.”
“네?”
“양 떼 어디 갔어. 아까는 저쪽에 있었는데.”
아직 잠에서 덜 깬 모양인지 갑작스레 양들을 찾는 키하노였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는 그의 눈빛은 평소와는 다르게 진지해져 있었다.
“저기까지 가 있군. 그러면 여기서부터 이렇게 움직인 건가.”
그 말과 함께 키하노가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더니 무언가 표시를 하기 시작했다.
마을의 주변부를 그린 것 같은 자그마한 지도.
그러나 지금 그 지도 위에는 그동안 키하노가 그려놓은 정체 모를 표식들이 잔뜩 새겨져 있었다.
“이게 뭐예요. 키하노 님?”
“목동들이 움직이는 길목.”
“이걸 왜 표시하고 계셨어요?”
“알아보려고. 오늘은 양들이 어느 쪽 목초지로 가는지.”
워낙 꼼꼼하게 그려놓은 표식들이 신기한지 얀이 키하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껏 보여줬던 허술한 모습과는 전혀 맞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보통 목동들은 목초지를 돌아가면서 양들을 풀어놓거든. 안 그러면 목초지가 금방 황폐해지니까.”
“저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미리 말하는 거야.”
네가 왜 이러는지 궁금하다는 듯 눈을 꿈뻑거리는 얀을 보며 키하노가 골치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긁적여댔다.
“아무튼 그렇게 목동들이 주변을 돌다 보면 한 곳쯤은 휴식을 취하는 목초지가 생긴단 말이다.”
목동이라는 직업은 본래 양을 치기 위해 있는 것.
그러나 그들의 또 다른 역할은 바로 마을을 지키는 파수꾼이었으니, 수상한 무리나 몬스터들이 근처에 있다면 그 누구보다도 목동들이 먼저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은 때마침 이곳이 비거든.”
그렇다면 숲에 머물고 있다던 정체 모를 침입자는 아마 목동들의 시선을 피하고 싶을 터.
그렇기에 양 떼가 움직이는 규칙을 몰래 파악하던 키하노는 오늘이야말로 마녀라 불리는 존재가 움직일 적기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풍차 쪽이네요? 그것도 아까 저희가 갔었던 그 풍차.”
“그래.”
주변을 둘러볼 목동도 없고, 시끄럽게 울어댈 양 떼도 없는 유일한 목초지.
그렇기에 사몬테의 풍차까지 가장 다다르기 편할 그곳을 지금 키하노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서 저녁때 깨우라고 한 거란 말이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곱게 못 잘 것 같으니까.”
“······.”
말을 마친 키하노가 아직도 잠이 아쉽다는 듯 입을 쩝쩝거렸다.
그러나 얀은 태평하게 하품을 해대는 키하노를 보면서도 딱히 무어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저녁 드실래요? 아까 여관에서 도시락을 좀 싸 왔거든요.”
“오. 좋지. 빨리 풀어봐.”
여자들한테는 쉼 없이 추근대고 형한테는 얻어맞고 사는 프라우센 가문의 망나니.
모두가 한심하다며 손가락질하는 그였지만 얀은 어째서인지 남들이 아는 모습만이 키하노의 전부가 아닌 것 같았다.
“이거 뭐야? 레몬이야?”
“네.”
“······이거 왜 가져왔어? 레몬 같은 건 먹는 거 아니다 너.”
“고기 같은 거에다가 뿌려 드시면 맛있어요. 저희 마을에서는 다들 그렇게 먹는데?”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오늘은 달도 뜨지 않는 밤이었다.
그러나 곧 있을 밤을 기다리는 얀은 괜스레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만 같았다.
정체 모를 마녀보다도 눈앞에 있는 키하노의 다른 모습이 더 궁금해지고 있었으니까.
※※※※
달마저 가려진 밤하늘을 틈타 은밀히 움직이는 그림자가 있었다.
저 멀리 있는 숲에서부터 드넓은 목초지를 향해 달려 나오는 그림자.
‘쏘아졌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그림자는 그야말로 자그마한 발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조용한 언덕을 내달리는 중이었다.
“······.”
과연 그동안 숲속에 숨어서 유심히 지켜본 보람이 있었다.
지금 그림자가 나아가는 방향에는 눈이 좋은 목동도, 예민한 양 떼도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오직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서 있는 인간들의 풍차뿐.
그 풍차를 노려보는 금색 눈동자는 어느새 사나운 기세로 가득 차 있었다.
-으으으으-!
“······!”
그러나 바람이 전해주는 어린 것들의 비명에 그림자는 그만 움찔하고 말았다.
-아파! 아프다고!
-그만 해요! 흐이잉!
어머니 세계수에서부터 태어난 어린 정령들이 내지르는 소리였다.
다들 웃으며 떠나간 아이들이었지만 지금 저 풍차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가만히 듣고 있기에는 너무나 괴로운 비명들이었다.
“이 빌어먹을 인간 놈들이!”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다가왔기에 생생하게 전해지는 비명 소리.
귓가를 뒤흔드는 아이들의 울음에 그녀의 마음이 점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빨리 가야 해!’
그렇기에 아까보다 더 다급한 발걸음으로 나아가는 정체 모를 존재.
신중히 다가갔던 아까와는 달리 지금 내딛는 발걸음에는 어찌할 수 없는 조급함이 깃들어 있었다.
-개굴.
-개굴. 개굴.
‘개구리 소리?’
그렇기에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푸른 들판이었던 곳이 지금 안개가 가득한 연못이 되었다는 것을.
“체형을 보니까 여자인데?”
“······!”
스팟-!
갑작스레 튀어나온 검날에 정체 모를 그림자가 다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이곳은 아까의 들판이 아닌 어느새 습기로 가득차고 만 연못.
방금까지만 해도 발을 받쳐주던 산뜻한 풀들 대신 온통 진창으로 가득한 바닥은 지금도 그녀의 발목을 붙들고 있었다.
“누구냐!”
몸을 억지로 꺾어내며 간신히 피해냈으나 워낙 날카로운 일검이었다.
만약 방금 들린 말이 아니었다면 목이 날아갔어도 할 말이 없을 그런 은밀한 움직임이었다.
“내가 누군지 말해주면, 그쪽도 이름을 알려줄 건가?”
그렇게 바라본 안개 너머에서부터 한 사내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훤칠하게 큰 키에 붉은색에 가까운 갈색 머리.
그러나 지금 보이는 잘생긴 외형보다도 그녀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여유롭다는 듯 웃고 있는 그의 표정이었다.
“내 이름은 키하노다. 프라우센 가문의 키하노.”
그의 스승 중 한 명이 말했었다.
전장을 통제하는 것이야말로 승리를 향한 지름길이라고.
그리고 지금 이곳은 늙은 개구리가 만들어 놓은 키하노의 연못.
“내 이름을 밝혔으니 이제 말해주실까.”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바짝 굽힌 자세가 날카롭게 세운 칼날과도 같다.
마치 단 한 번의 일격으로 너를 가르겠다고 말하는 듯한 그런 자세였다.
“너의 이름을 말해라. 내 검이 너의 목에 닿기 전에.”
프라우센 가문의 망나니 아들. 키하노 프라우센.
그러나 예전에 그를 가리켰던 이름은 프라우센 가문이 낳은 희대의 천재. 키하노 프라우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