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53
키하노 외전- 빛을 잃어버린 별들 (1)
옆으로 비켜선 자세는 날카롭게 세워진 칼날과도 같다.
교묘하게 놓아둔 왼발은 상대로 하여금 대응할 방향을 강제하고 있었고.
“나는 프라우센 가문의 키하노다.”
보이는 모습은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었으나 내뿜는 기세만큼은 검의 대가와도 같은 모습.
빠져나갈 틈도, 그렇다고 파고들 틈도 허락하지 않는 키하노의 기세에 정체 모를 그림자는 잠시 당황하고 말았다.
“이제 너의 이름을 말해라.”
완벽한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잘 만들어진 함정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는 듯 차분히 고개를 든 침입자가 키하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인간들 따위에게 알려줄······.”
어디서도 보기 힘들 금색 눈동자였다.
잠시 그 색에 매료되고만 키하노였으나 어느새 눈동자에서부터 떠오른 오망성이 흉악하게 빛나고 있었다.
“······키하노!”
그 오망성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아챈 앤드류가 경고하려 했으나 이미 뻗어낸 그녀의 손이 더 빨랐다.
“이름 따위는 없다!”
크르르르-!
빠르게 뻗어낸 그녀의 오른손에 키하노가 잠시 움찔했다.
그 기민한 반응 속도는 충분히 칭찬할 만한 것이었으나 정작 쏘아진 것은 키하노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것이었다.
“······늑대?”
까드드득!
마치 화살처럼 날아와 어느새 검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하는 푸른색의 늑대.
그야말로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키하노가 당황하자 품에 있던 앤드류가 정신 차리라는 듯 크게 외쳐대었다.
“정신 차려라 이 놈아! 이건 정령이야! 정령!”
나의 세계를 표현하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마법사처럼 신비를 이용할 수도, 기사들처럼 검을 휘둘러서도 그려낼 수 있는 것이 바로 나만의 세계.
그리고 지금 키하노의 검을 물어뜯고 있는 이 늑대 또한 저 앞에 있는 침입자가 그려낸 세계 중 하나였다.
“빌어먹을! 정령은 또 웬 말이야!”
오직 알븐헤임의 엘프들만이 다룰 수 있다는 정령들.
그 정령이 자신을 향해 으르렁거리자 키하노가 재빨리 뒷걸음질 치며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 조그만 마을에 별의별 게 다 튀어나오네!”
왜냐하면, 세계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세계뿐이니까.
그것을 잘 알고 있는 키하노가 있는 힘껏 늑대를 떼어내고는 재빨리 검 끝을 늘어뜨리기 시작했다.
“영감님! 잠깐 좀 빌립시다!”
검을 세워 막아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자세를 흐트러뜨린 키하노,
그런 그를 보며 금색 눈동자에 의아함이 떠올랐으나 어느새 늘어뜨린 키하노의 검은 연못에 닿아 자그마한 파문을 만들어내는 중이었다.
“······이래서 진작 오러를 깨우쳤어야 하는 건데.”
키하노의 검이 연못에 닿자 시끄럽게 울던 개구리들의 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 대신 울리기 시작하는 것은 연못에서부터 퍼지는 자그마한 동심원.
키하노의 검에서부터 시작한 수면의 파문이 어느새 정체 모를 침입자가 있는 곳까지 퍼지고 있었다.
“후우.”
어느새 화살에 시위까지 메긴 그녀의 시선이 날카롭다.
그러나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이곳은 정당한 계약에 따라 내가 빌려온 세계.
잠시 주어진 찰나의 시간마저도 집중하려는 키하노의 검을 따라 조금씩 연못의 물이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스파앗-!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침입자가 더는 기다리지 않겠다는 듯 힘껏 화살을 쏘아냈다.
마치 날개라도 달린 듯 유려한 몸짓으로 다가오는 화살.
그 화살의 움직임을 보며 키하노의 눈이 잔뜩 좁혀지고 있었다.
‘이건 피하면 안 돼.’
지금 날아오는 화살은 그저 나의 행동을 강제하기 위한 견제일 뿐이다.
그 판단이 맞다는 듯 어느새 뒤로 돌아온 늑대의 기척을 느끼며 키하노가 이를 악물었다.
“키하노! 뒤에!”
이 이상 피하면 반드시 몰린다.
막다른 곳까지 몰리면 더는 피할 수 없고.
그렇다면 남는 것은 오직 나를 향해 다가오는 파멸뿐.
“흐아아압!”
그렇다면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오직 정면돌파일뿐.
날카롭게 날아드는 화살을 향해 키하노가 돌진하기 시작했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키하노의 움직임에 바로 뒤까지 돌아온 늑대가 그만 목표물을 놓치고 말았다.
“······달려든다고?”
오히려 화살을 향해 달려드는 키하노를 보며 금색 눈동자가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옆도 뒤도 아닌 오히려 앞을 향해 뛰어들다니.
그야말로 예측할 수 없었던 의외성이었으나 아직 키하노 앞에는 정령의 힘이 가득 실린 화살 한 발이 남아있었다.
“크읍!”
까가각! 까각-!
마치 살아라도 있는 듯 미끈하게 휘어지는 화살을 키하노의 검이 억지로 밀쳐내기 시작했다.
“이이익!”
검과 화살이 만난 순간은 그야말로 찰나였으나 그 짧은 시간 동안 부려야 했던 키하노의 기교는 그야말로 수십 가지.
검을 아는 검사라면 누구라도 눈이 휘둥그레질 장면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이곳에는 키하노의 진가를 알아봐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콰직-!
억지로 비틀어 낸 화살이 순간 키하노의 왼쪽 눈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섬뜩한 순간마저 흘려내는 데 성공한 키하노가 이제는 바로 앞에 있는 침입자를 보며 짙은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 차례인가?”
“······!”
잔잔한 파문에서 시작되어 거친 파도가 된 키하노의 검.
그 검이 어느새 정체 모를 침입자를 향해 휘둘러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쪽이 한번 막아보시던가!”
파아아앙-!
잠잠했던 언덕이 흔들리고 잠들어 있던 양들도 화들짝 깨고 말 정도의 강렬한 울림.
그 울림과 함께 힘껏 퍼져 오른 물보라가 있었다.
저 하늘에 있는 달까지 닿을 정도로 높게 솟아오른 그 물보라는 자그마한 우물 하나 없던 콘수에그라의 언덕을 촉촉이 적시기 시작했다.
※※※※
“······엘프라. 엘프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데.”
저 멀리서 올라오고 있는 횃불들을 보며 키하노가 입에 물고 있는 풀잎을 뱉어내었다.
“정령술사랑 상대해보는 것도 처음이고.”
“······.”
“뭐야. 왜 여기까지 온 거야.”
한밤중에 생긴 갑작스러운 난리에 남작이 보낸 징수관이 병사들을 끌고 오는 모양이었다.
하긴, 이제 힘이 다 빠져버린 키하노로서는 옆에 있는 여인을 들고 내려갈 수도 없었으니 다행인 일이기는 했다.
“너희가 있는 알븐헤임에서 여기 콘수에그라까지는 그야말로 대륙의 끝에서 끝 아닌가? 도대체 이 먼 곳까지 온 이유가 뭐야?”
하얀 달빛 아래 비치는 백금발이 아름다웠다.
이제야 쓰고 있던 두건을 벗어낸 엘프 여인은 여태껏 많은 여자들을 만나봤던 키하노조차도 잠시 움찔했을 정도의 미인이었다.
그러나 키하노는 아직 여인의 이름을 알지 못했고, 지금 밧줄에 묶여 있는 여인 또한 자신의 이름을 말해줄 생각은 없는 듯 해 보였다.
“······말하기 싫으면 말든가. 어차피 알아봤자 어디 써 먹을데도 없고.”
점점 가까워지는 병사들의 횃불이 고요한 언덕을 요란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방금 키하노가 뿌려댄 물보라 때문인지 올라오는 속도가 꽤나 더뎌지고 있었다.
“키하노 프라우센. 프라우센 가문의 막내 아들.”
“음?”
그렇게 하릴없이 밤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키하노의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뭐야. 말할 줄 알았네?”
“······.”
이름은 몰랐으나 마주하는 금안(金眼)은 익숙했다.
어째서인지 모를 그 친밀감은 아마 방금 마주했었던 그녀의 세계 때문일 것이다.
“그래. 이렇게 된 거 통성명이나 하자니까. 나는 분명히 아까 내 이름을 말했······.”
“그리고 한때나마 용을 꺾었던 기사.”
아직은 둘밖에 없는 언덕.
스쳐 지나가는 바람마저 잔잔한 지금, 키하노는 오랜만에 듣는 예전의 호칭에 잠시 굳은 듯 멈춰버리고 말았다.
“우리에게까지 알려졌던 그 찬란했던 칭호는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남의 세계나 빌리고 다니는 비루한 처지가 되었군.”
“······.”
“그야말로 한심해. 용들이 무서워 가진 날개조차 펼치지 못하는 꼴이라니.”
오늘의 승자는 키하노였고, 패자는 이름 모를 저 엘프였다.
그러나 오히려 당당한 사람은 밧줄에 묶여 있는 엘프였으니 모르는 사람이 지금의 광경을 본다면 아마 키하노가 패배자라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너는 겁쟁이야. 키하노.”
달빛에 비쳐 반짝이는 그녀의 눈동자가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은 보고 있으나 보지 못하고, 듣고 있으나 듣지 않으려 하는 키하노를 향한 비웃음이었다.
“······겁쟁이라.”
이제야 드러난 달을 올려다보며 키하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때는 용조차 뛰어넘는 천재였으나 지금은 자신만의 세계도 갖추지 못한 비루한 프라우센.
태어날 때부터 가진 날개를 스스로 떼어내고만 키하노에게 있어 겁쟁이라는 말처럼 어울리는 단어는 아마 없을지도 몰랐다.
※※※※
“실험이 거의 완료되었습니다. 이제 시연만 해보면 되는 단계입니다.”
흐릿하게 켜진 수정구를 향해 사몬테가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것은 수정구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사내를 향한 공경이자 복종의 표시였다.
“······사고가 있었다고 하던데.”
“아! 네. 그것은 다행히 잘 해결되었습니다.”
흐릿하게 보이는 모습일지라도 깊이 고개를 숙여야 하는 존재.
드라굴리아 중에서도 푸른 눈과 찬란한 금발을 가진 사르누스라면 그 어떤 존재라도 지금의 사몬테처럼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을 터였다.
“투를레크 영주가 꽤 쓸만한 기사를 보냈지 뭡니까. 아마 사르누스 님도 알고 계실 기사입니다.”
“누구냐.”
마법을 다루는 상대이기에 쉽사리 잡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고작 남작 따위가 보낸 기사가 골칫덩이를 잡았다는 말에 사르누스가 호기심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 있잖습니까. 프라우센 가문의 막내아들 말입니다.”
감히 말하기가 송구하다는 듯 숙이고 있는 사몬테의 허리가 더욱 굽혀들어갔다.
그것은 지금 말하려는 이름 자체가 용들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불쾌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키하노 프라우센······. 그 너저분한 망나니 녀석 말입니다.”
“······.”
키하노 프라우센.
귀족부터 평민까지, 대륙의 모두가 아는 프라우센 가문의 망나니 아들.
그러나 용들에게 있어서는 조금은 다른 의미로 기억되는 그 이름을 들으며 사르누스의 눈동자가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다행히 녹슨 검이라도 마녀를 잡을 정도는 되는 모양이더군요. 그래도 프라우센은 프라우센인건지······.”
“시연 날짜가 언제지?”
그 이름을 들은 사르누스가 스산하게 웃기 시작했다.
화가 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즐거운 것인지 알 수 없는 그 웃음을 보며 사몬테의 등 뒤로 자그마한 소름이 돋고 있었다.
“네?”
“직접 보고 싶군. 아무래도 지금 있는 곳이 가깝기도 하고.”
밝게 타올랐던 불은 쉬이 꺼지지 않는다.
아무리 짓밟고 더럽혀도 까맣게 탄 재 안에는 여전히 뜨거운 불씨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확실한 확인을 위해서는 시간이 날 때마다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일주일 안에 닿도록 하겠다. 준비할 수 있도록.”
“네! 네! 사르누스 님께서 직접 와주신다니 그야말로 영광입니다!”
도시 에나레스.
콘수에그라와 가장 가까운 도시.
그곳에 있던 용 하나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키하노라는 자도 계속 옆에 두고 있도록 하고.”
유리관에 갇힌 하얀 뱀이 울고 있었다.
달빛 아래 고개 숙인 남자도, 그리고 어린 정령들을 구하지 못한 세계수의 신녀도.
그들 모두가 사나운 용의 발톱 아래서 제 자리를 찾지 못한 가능성들.
오직 완벽한 가능성만이 추앙받는 지금은 용들의 시대.
그 아래 짓눌린 별들이 여전히 제 빛을 잃은 채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