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54
키하노 외전- 빛을 잃어버린 별들 (2)
오늘은 아주 조용한 날이었다.
원래는 1층에서 떠들고 있을 마을 사람들도 오랜만에 생긴 일거리에 자리를 비운 데다가 지금 2층에는 오직 키하노와 그의 일행뿐이었으니까.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앤드류 님.”
그렇게 자기들만 남은 여관에서 일행은 실로 오랜만에 여유라는 것을 즐기는 참이었다.
지금 세숫대야 안에서 첨벙거리며 헤엄치는 늙은 개구리처럼 말이다.
“이렇게 보니까 진짜 개구리 같은데요.”
“······이 무례한 녀석. 당장 그 말 취소하지 못하겠느냐.”
“개구리긴 개구리잖아요.”
“떽! 이 세상에 말하는 개구리가 어디 있어!”
앤드류는 방금 얀의 말이 영 불편하다는 듯 볼을 불룩 불려대며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그 말에 딱히 반박하기도 힘든 것이 누가 보더라도 지금의 앤드류는 개구리가 맞긴했다.
“키하노 이 놈아! 나를 언제까지 이리 내버려둘 생각이냐!”
“······.”
“그러니까 볼 일 다 봤으면 빨리 뜰 생각을 했었어야지! 네 놈이 미적거리니까 결국 발목을 잡힌 것 아니냐!”
불퉁한 표정으로 세숫대야에서 빠져나온 앤드류는 옆에 있던 고깔모자를 고쳐 쓰고는 키하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앤드류의 성화에도 키하노는 그저 아무 말 없이 창밖의 풍경을 보고 있을 뿐.
왼쪽 눈에는 하얀 붕대를 감은 채 가만히 앉아 있는 키하노의 모습에 앤드류는 괜스레 조바심이 나는 것만 같았다.
“우리가 했던 계약을 잊은 것 아니겠지? 어서 빨리 내 몸을 찾으러 가야 할 것 아니냐.”
불의의 사고로 개구리가 되어버린 앤드류는 지금도 자신의 몸을 찾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목표도 대신 움직여 줄 키하노가 없다면 이루기 힘든 염원에 불과한 것일 테다.
“······그나저나 눈은 괜찮은 거냐? 검 잡는데 이상 있는 건 아니지?”
아무리 바쁜 여행길이라도 가끔의 휴식은 필요한 법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키하노는 휴식을 취한다고 보기에는 너무 힘이 빠져 있었으니 한시가 바쁜 앤드류로서는 나름대로 안달이 날 만도 했다.
“사실 안 그래도 요즘 따라 날아다니는 날벌레들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거든? 그러니까 내가 진짜 개구리가 되기 전에 빨리······.”
“안 괜찮아요.”
뒷다리까지 탕탕 내려치며 목청을 높이던 앤드류였지만 나지막히 들려온 키하노의 목소리에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뭐라고?”
“괜찮은 줄 알았더니 나중에 보니까 안 괜찮더라고요.”
그 말과 함께 키하노가 여기 좀 보라는 듯 눈가에 두른 붕대를 잡아 내렸다.
“아무래도 그 여자가 제 눈을 잘못 건드린 모양이에요.”
오른쪽 눈, 왼쪽 눈.
이렇게 번갈아 눈을 떠보던 키하노가 앤드류를 보며 침울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이게 왼쪽 눈으로 보면 색이 더 짙어 보인다니까요.”
상처 입은 왼쪽 눈으로 본 세상은 어째서인지 색깔이 더 짙어 보였다.
마치 한 폭의 유채화처럼 색이 짙어진 주변 풍경을 둘러보며 키하노는 그만 한숨을 푹 내쉬고 말았다.
※※※※
감옥이라고 하기에는 조금은 허접한 어딘가의 지하.
여기저기 놓여져 있는 감자 자루들이 지금 이곳이 평범한 창고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정작 신녀를 감싸고 있는 것은 어른 팔뚝보다 더 두꺼운 쇠창살이었다.
그것도 마법사들이 직접 주문을 새겨넣은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창살.
그들이 덕지덕지 새겨놓아 정령조차 부를 수 없게 된 신녀는 지금 자신의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갈색 머리의 남자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이 그림은 뭐지? 직업이 화가신가?”
마치 위험한 짐승이라도 된다는 듯 세계수의 신녀는 지금 커다란 우리 안에 갇혀 있었다.
급조한 것이긴 했으나 성능은 확실한 우리였고 그렇기에 지금 키하노는 안심한 채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다.
“실력이 꽤 그럴싸한데? 어렸을 때 보던 화가들보다도 훨씬 낫잖아.”
“······.”
“밥벌이 선택을 이걸로 하지 그랬어. 괜히 정령들 불러서 여기저기 때려 부수는 거 말고.”
지금 키하노가 들고 있는 그림에는 언덕 위에 서 있는 풍차가 그려져 있었다.
누가 보아도 사몬테의 풍차인 것을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이었지만 정작 키하노가 감탄한 것은 그 주위에 그려놓은 콘수에그라의 정경 때문이었다.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그려놓은 걸 보니 예전부터 이 마을을 보고 있었나 보지? 사몬테가 하는 실험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나?”
지금 물어보는 키하노의 자세는 취조라고 하기에는 유들했고 그렇다고 단순히 물어본다고 하기에는 영 삐딱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차피 입 아프게 물어봤자 대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니까.
그녀가 이곳에 붙잡힌 지 오늘로써 5일째였지만 그 누구도 신녀의 입을 열게 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키하노는 잘 알고 있던 참이었다.
“······예전부터 보고 있지는 않았어.”
그러나 그 어떤 협박에도 입을 열지 않던 그녀의 입술이 지금 키하노의 앞에서는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뭐라고?”
“예전부터 보고 있지는 않았다고. 당신들이 하던 실험을 멈추려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날 밤에 들었던 표독스러웠던 목소리와는 달리 지금 듣고 있는 여인의 목소리는 꽤나 인상적이었다.
인간들의 억양과는 다르게 계속 운율을 타는 것이 마치 바로 옆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 같았달까.
“그럼 여긴 언제 도착한 거지?”
“네 달 전에.”
“네 달 전에 와서 이 그림을 그린 건가.”
“그건 일 년 전에.”
“······응?”
그러나 그 좋은 목소리를 들었음에도 키하노의 표정은 점점 찌푸려지고 있었다.
그것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나 정작 말은 통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뭐야. 지금 이 그림은 여기 도착하기도 전에 미리 그려놨다는 그런 소리인가?”
“응.”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그린 그림을 보지도 않고 그렸다고?”
도저히 말도 안 되는 대답이었지만 신녀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녀의 소리 없는 반응에 키하노의 표정이 점점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좋아.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나 말고 취조관들에게 하라고.”
뭐 아무려면 어떠한가. 이제 자신은 받았던 임무에서 해방된 몸인데.
며칠 후면 도착할 드라굴리아의 사람만 대접하면 또다시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으니 골치 아픈 사정이야 무시해버리면 그만이었다.
“그건 계시야.”
“뭐?”
그러나 닿을 듯 닿지 않는 대화 속에서도 신녀는 끈덕지게 키하노를 붙잡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시란 다가오는 그 순간에야 알아볼 수 있다고 했어.”
그것은 잠시나마 너와 나의 세계를 잇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노력.
이제야 알아본 세계수의 계시를 위해 신녀는 돌아서려는 키하노를 붙잡고 있었다.
“지금의 나 처럼.”
그 말과 함께 여기 좀 보라는 듯 치켜세운 신녀의 손가락이 자신의 왼쪽 눈을 가리키고 있었다.
갑작스레 보인 그 행동에 키하노는 어째서인지 붕대를 두르고 있던 왼쪽 눈이 저려오는 것만 같았다.
“너는 이제 봐야만 해. 키하노. 계속 그러다간 네 안의 별이 죽어.”
어머니 세계수는 그녀에게 풍차의 마을로 가라고 했다.
그곳에 있을 어린아이를 구하라는 말과 함께.
그렇기에 이곳에 도착한 신녀는 그동안 풍차에 잡혀 있던 정령들을 구하려 노력했지만 정작 계시가 말한 어린아이는 사로잡힌 정령들이 아니었다.
“정말로 너만의 세계를 찾고 싶다면 더 이상 외면하지 마. 키하노.”
“······.”
마주한 키하노의 눈을 통해 신녀는 보고 있었다.
점점 꺼져가는 불씨를 애써 주워 담으며 울고 있는 아이를.
그 아이는 찬란히 빛나는 별을 가지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그 빛을 내보일 수 없었던 아이였다.
※※※※
오색 창연한 색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색색의 햇빛들이 눈이 부셨다.
그러나 그보다 더 눈이 부신 것은 지금 결투장 주변에 빼곡히 들어찬 수많은 군중의 모습이었다.
“······.”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귀족들이 전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 어린 소년은 그야말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이곳은 명예로운 장소였으니까.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직접 움켜쥔 소중한 무대였으니까.
“대결자들은 앞으로!”
그리고 아마 거기서부터였을 것이다.
지금의 광경에 너무 들뜬 소년이 아버지가 당부했던 말을 잊게 된 때가.
“지금의 결투는 명예를 위한 것임을 두 결투자는 잊지 마시오.”
소년의 바로 앞에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어린 용이 마주 서 있었다.
색색의 빛깔 아래 서 있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완벽.
그러나 평소라면 감히 마주치지도 못할 눈동자 앞에서도 키하노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준비!”
가끔은 그런 날이 있다.
오늘의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고양감으로 가득 찬 날이.
그리고 어린 키하노에게는 바로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시작하시오!”
보이는 색은 선명하고 들리는 소리는 명확하다.
지금의 광경이 어찌나 뚜렷하게 느껴지는지, 눈앞에 있는 어린 용이 어느 곳을 향해 뛰쳐 들어올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을 정도였다.
까앙-!
그래서 키하노는 검을 뻗었다.
어린 소년이라면 감히 반응조차 할 수 없을 용의 이빨을 틀어막았고 재차 들어오려는 검의 진로를 매끈하게 흘려냈다.
“······!”
검이 마주칠 때마다 주위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탄성이 터져 나올 때마다 어린 용의 눈동자는 당홤감에 흔들렸고.
그리고 어린 키하노는 그 하나하나의 장면들이 너무나 즐거울 뿐이었다.
“하하!”
절로 나오는 웃음과 함께 소년의 세계가 넓어지고 있었다.
그 웃음과 함께 빛나는 소년의 검을 보며 어린 용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이건!”
이유는 모르겠지만 오늘의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떠한 검사들은 태어나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할 그 감각 속에서 어린 키하노는 있는 힘껏 자신의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다.
까아아앙-!
검과 검이 맞닿는 소리가 요란히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결투장 위로 떠오른 누군가의 검자루.
나의 머리 위로 떠오른 저 찬란한 별을 보며 어린 소년은 자신의 검을 높게 치켜들었다.
“아버지!”
승리에 대한 기쁨 때문에 발그레 불을 밝힌 키하노가 서둘러 관중석을 훑어보았다.
그러나 저 멀리서 마주친 아버지의 눈동자에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당황과 공포만이 가득했을 뿐이었다.
“······아버지?”
모두가 바라보는 앞에서 완벽한 가능성을 꺾은 프라우센의 아들.
아직도 소년이 들고 있는 검에는 하얗게 불타는 오러 한 줄기가 빛나고 있었지만,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키하노의 개화를 축하해 줄 수 없었다.
“······.”
색색의 유리가 감싸고 있는 이곳은 소년들의 결투장.
그러나 오늘의 승리자인 키하노를 향한 색깔은 분노로 가득 찬 용들의 푸른 눈동자였을 뿐.
사나운 기세로 일어선 용들 사이에서 어린 소년이 피운 꽃 한 송이가 시들어가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어리고, 찬란히 빛나는 꽃이었으나 그 누구도 지켜주지 못한 소년의 가능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