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55
키하노 외전- 어린 가능성들을 위해 (1)
마을에 있는 모두가 잠들어 있을 깊은 밤.
오직 풀벌레 소리만이 들려오는 고요한 콘수에그라에서 누군가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미안해.”
엉성하게 짜인 판자 사이로 달빛 한 줄기가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마땅한 감옥조차 없어 어딘가의 창고 안에 갇혀 있던 세계수의 신녀.
무릎을 모은 채 고개 숙이고 있는 그녀를 푸른 달빛이 위로하듯 감싸고 있었다.
“내가 꼭 구해주려고 했었는데.”
엘프들의 숲, 알브헤임에서부터 이곳 콘수에그라까지 먼 곳을 달려온 신녀였지만 지금 그녀는 마법사들이 만들어 놓은 우리에 갇히고 만 신세였다.
아마 내일이면 도착할 사르누스에 의해 수도로 끌려가게 될 신녀였지만 정작 그녀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불안한 미래 때문이 아니었다.
-너무 아파요! 인제 그만 해요!
-잘못했어요. 저 좀 제발 꺼내주세요!
그녀를 정말 괴롭게 하는 것은 지금도 귓가를 통해 들려오는 어린 정령들의 울음소리.
지금도 불을 환히 밝힌 사몬테의 풍차에서는 어린 정령들이 외치는 비명이 쉴 새 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왜 저 아이들을 내버려 두시나요. 어머니.”
자신을 이곳까지 홀로 보낸 세계수의 계시를 원망하게 될 정도로 가녀리고 애처로운 소리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녀는 그저 무릎 사이로 눈물 자국 가득한 얼굴을 파묻을 뿐이었다.
힘없이 고개를 숙인 신녀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마법사들의 실험에 아파하는 어린 정령들은 울고 있었고.
그러나 그들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어주는 이는 지금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
오직 단 한 사람만을 제외하고는.
오늘은 오직 상처 입은 자들만이 깨어있는 밤.
그렇기에 여관방에 홀로 깨어있던 기사는 지금도 왼쪽 눈가를 어루만지며 조용히 사몬테의 풍차를 노려보고 있었다.
※※※※
양 떼들이 우는 소리만 들려왔던 콘수에그라였지만 오늘만큼은 어째서인지 떠들썩해 보였다.
평소와는 다르게 말끔한 옷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의 모습이 그랬고, 빗자루를 든 채 이곳저곳을 쓸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랬다.
“오늘 드라굴리아 가문에서 아주 귀하신 분이 오신대요.”
“용이라던데. 그것도 순혈을 타고 나신 분.”
“정말로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지셨대요. 세상에 내가 죽기 전에 용을 다 뵙네.”
마을 사람들은 지금 콘수에그라로 오고 있다는 용의 소식에 한창 들떠있는 중이었다.
완벽함에서 태어났기에 보석처럼 아름답다는 존재들.
그저 한 번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영광일 용을 맞이하기 위해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신다! 지금 마을 어귀에 도착하셨어!”
“다들 줄부터 서라고! 애들 못 뛰어나가게 단속하고!”
매섭게 외쳐대는 촌장의 소리에 마을 사람들이 재빨리 길 한켠으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맞이하게 될 용의 모습에 긴장한 듯 보였지만 가슴을 타고 오르는 흥분만큼은 감출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부터 화려하게 빛나는 황금색 마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황금색은 오직 완벽함에서 태어난 용들만이 취할 수 있는 색.
그 색을 알아본 마을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어서 오십시오! 사르누스 드라굴리아 님!”
마을 사람들을 지나친 마차가 멈춰서자 마법사 사몬테가 다급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여태껏 마을에서 보였던 모습과는 달리 아주 공손해 보이는 자세와 함께.
“이 누추한 곳까지 와주시다니 정말 몸 둘 바를······.”
이윽고 열리는 문에서부터 고귀한 용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햇빛에 비치는 머리는 찬란한 금발이었으며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서늘한 푸른색.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보다도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존재감은 아마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완벽함의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수고했다. 사몬테. 이제야 쓸만한 동력원을 찾았다지?”
“그, 그렇습니다. 사르누스 님.”
이곳에 있는 모두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음껏 내려다볼 수 있는 사르누스의 눈동자가 천천히 주변을 훑기 시작했다.
“너무 늦지 않아 다행이로군.”
고귀한 용인 그가 이 한적한 마을까지 온 이유는 사몬테의 실험을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보다도 사르누스가 주의 깊게 보려 한 것은 예전에 자신들이 짓밟아 놓았던 어린 가능성인 키하노 프라우센.
“그런데 보이질 않는군.”
“네?”
그러나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그가 찾고 있던 갈색 머리는 보이지 않았다.
용들조차 놀랄 정도로 찬란한 가능성을 내보였던 프라우센 가문의 막내아들.
반드시 확인해야 할 가능성의 불씨였건만 그는 지금 있으라고 말한 곳에서 보이지 않고 있었다.
※※※※
“끄으응!”
고귀한 용을 맞이하기 위해 모두가 자리를 비우고 만 사몬테의 풍차.
그렇기에 아무도 없을 그곳을 지금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기어오르고 있었다.
“뭘 이렇게 높게 지어놨냐!”
지금 키하노가 기어오르는 풍차는 콘수에그라에 있는 풍차 중에서도 가장 높고 크게 지어진 것이었다.
그렇기에 누구라도 쉽게 오르기 힘든 풍차였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의 키하노는 그 흔한 밧줄 하나 없이도 성큼성큼 잘도 올라가는 중이었다.
“······이거 진짜 나중에 원래 손으로 돌아오는 거 맞죠?”
“맞다니까! 이놈이 속고만 살았나.”
어깨 위에 올려놓은 앤드류가 의심하지 말라는 듯 뒷다리를 땅땅거렸지만 아무래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검을 잡고 살아야 하는 검사의 손이 개구리처럼 변해 있다면 누구라도 지금의 키하노처럼 반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멀쩡한 입구 놔두고 왜 벽을 기어오르느냐 이 말이야. 너 진짜 정신 나간 거 아니냐?”
“사몬테의 공방을 봐야 한다니까요.”
“그러니까 왜?”
“아······. 아까 말했잖아요!”
개구리처럼 폴짝폴짝 벽을 기어오르는 모습이 여간 경망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런 키하노를 밑에 있는 얀이 불안한 듯 바라보고 있었지만, 어느새 그가 모시는 기사는 날개가 달린 곳을 지나 사몬테의 공방이 있는 창가까지 다다른 참이었다.
“밤새도록 애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니까!”
아무도 없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숨죽인 키하노의 목소리가 긴박했다.
“안 그래도 이 풍차. 처음 봤을 때부터 엄청 수상했다구요.”
창문을 통해 조심스레 사몬테의 공방을 살피던 키하노가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한눈에 담기도 힘든 풍차의 날개.
“봐봐요. 이 자식들 풍차에다가 바람천도 안 달아 놨다니까.”
그러나 잔뜩 녹이 슬어버린 날개에는 풍차라면 당연히 달아 놨어야 할 바람천이 보이지 않았다.
바람을 받아 날개를 움직이는 것이 본래 풍차가 해야 할 목적이건만 애초에 그럴 의지조차 없었다는 것처럼.
콰직-!
“그러니까 내가 한 번 자세히 봐야겠다는 거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팔꿈치로 창문을 찍어 내린 키하노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금이 간 유리들을 뜯어내었다.
레이디들과의 비밀스러운 만남을 위해 배워놓은 기술이었건만 역시나 뭐라도 배워두면 언제라도 쓰게 되는 법이었다.
“······.”
깨어놓은 구멍을 통해 창문의 잠금장치를 제거한 키하노가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사몬테의 공방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비록 앤드류가 딱히 다른 보안장치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조심스러워서 나쁠 것은 없었으니까.
“방 한번 엄청 더럽네. 마법사들은 다 이런가?”
“나는 안 그랬다 이놈아.”
“서류들도 여기저기 흩어놓고 말이야. 마법사들 이거 안 되겠어.”
“······.”
정식으로 방문했을 때는 허락되지 않았던 사몬테의 공방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처음 보는 사몬테의 공방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갖가지 서류들로 온통 엉망인 모습이었다.
“······이건 뭐야. 설계도인가?”
알아보기 힘든 글자들로 가득했던 서류들이었지만 그중에서도 키하노의 눈길을 잡아끄는 종이가 한 장 있었다.
골치 아파 보이는 글자와 수식 대신 달랑 그림 하나만 그려져 있는 종이.
마법에는 문외한인 키하노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그림은 지금 그가 있는 이 풍차의 단면도를 그려낸 것이었다.
“뭐 이렇게 톱니바퀴들이 많은 거야.”
그렇게 살펴보기 시작한 사몬테의 풍차에는 너무나 많은 톱니바퀴들과 파이프들이 매달려 있었다.
도대체 무엇에 쓰려고 이렇게까지 많이 만들어 놓았는지 모르겠으나 평범한 풍차라면 절대 달려 있지 않을 기계 장치들이 수두룩했다.
“······키하노.”
“왜요. 나 바빠요.”
슥 훑어본 그림에 흥미가 떨어졌다는 듯 다시 주변을 살피는 키하노였지만 정작 어깨에 매달려 있던 앤드류는 무언가 놀랐다는 듯 두 눈을 끔벅여대고 있었다.
“이거······. 우리가 지금 있는 이곳. 아무래도 그냥 풍차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니까요. 내가 아까부터 수상하다고 했잖아요.”
조심스레 말하는 앤드류의 목소리가 긴장된 듯 떨리고 있었지만 지금 키하노는 어제 들렸던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찾느라 여념이 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던 키하노의 시야로 반짝이는 것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냥 풍차가 아니라니까. 이거······.”
“쉿! 조용히 좀 해 봐요.”
고개를 올려 바라본 공방의 가장 높은 곳에는 저번에 보았던 유리관들이 가득 매달려 있었다.
마치 기계장치의 한 부품처럼 단단하게 고정된 유리관들의 모습.
그 광경을 지켜보던 키하노는 어째서인지 상처 입은 왼쪽 눈이 더욱 욱신거리는 것만 같았다.
“안 들려요?”
“뭐가?”
“지금 어디서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사몬테라는 마법사가 무엇을 하든 간에 솔직히 키하노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그가 하는 실험은 드라굴리아가 주관하는 것이었으니 키하노가 딱히 끼어들 수 있는 영역도 아니었으니까.
“······저 위에서 들리는 건가.”
그러나 어린 아이들이 연관되어 있다면 조금은 다를 것이다.
그것도 밤새도록 울부짖을 정도로 아이들이 고통스러워하는 실험이라면 더더욱.
“끄응!”
위로 올라갈수록 아파오는 왼쪽 눈의 상처에 키하노가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그렇기에 벗어젖힌 붕대에는 어느새 붉은 핏자국이 가득했지만 위로 올라가려는 키하노의 손길은 전혀 멈추지 않았다.
“키하노! 상처가 터졌다!”
“나도 알아요!”
왜냐하면, 아무것도 없는 유리관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어젯밤 들었던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선명해지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쉴 새 없이 올라간 공방의 가장 높은 곳.
커다란 톱니바퀴가 평평하게 뉘어져 있는 그곳에는 예전에 보았던 유리관들이 사방에 장식처럼 꽂혀 있었다.
“어딨어?”
눈가에 피를 뚝뚝 흘리며 고개를 돌려대는 키하노의 모습이 다급해 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비어 있는 유리관들뿐, 정작 키하노가 찾으려 했던 울고 있는 아이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없잖냐. 우리 일단 내려가도록 하자.”
“하지만.”
“이놈아 방금 내가 말했잖아! 여기는 평범한 풍차가 아니라니까!”
-······!
어서 내려가자며 앤드류가 재촉하고 있었지만 키하노는 방금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키하노는 귀로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눈으로 본 소리.
그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린 키하노의 왼쪽 눈으로 무언가 희끄무레한 형상이 스쳐 지나갔다.
-그만 괴롭히라고!
톱니바퀴 한가운데서 있는 커다란 유리관에서 하얀색 번개 한 줄기가 파직거리고 있었다.
다른 것들보다도 훨씬 큰 유리관이었지만 이제는 아예 들썩거리기까지 하는 녀석.
그 유리관을 향해 걸어간 키하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내 친구들 그만 괴롭혀! 이 빌어먹을 인간 놈들아!
멀쩡한 오른쪽 눈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상처 입은 왼쪽 눈으로는 보이는 세계.
마치 유채화 속 한 장면처럼 온통 색이 짙어진 그곳에서는 잔뜩 상처 입은 어린 뱀 한 마리가 키하노를 향해 울부짖고 있었다.
※※※※
모두가 떠난 텅 빈 결투장에서 어린 소년이 울고 있었다.
소년이 지금 흘리는 눈물은 억울함에서도, 분노에서도 비롯된 눈물이 아니었다.
“······아버지.”
그것은 어찌할 수 없는 공포에서부터 시작한 눈물이었다.
내가 피워낸 세계를 보며 불같이 화를 내던 드라굴리아의 용들.
그것도 자신들의 어린 용을 제물 삼아 피워낸 키하노의 가능성을 보며 그 시퍼런 눈동자들이 소년의 세계를 마구 헤집어대었으니까.
“제가 잘못한 거예요?”
그러나 지금 울먹이고 있는 키하노에게 그 누구 하나 눈을 마주쳐 주는 사람은 없었다.
존경하던 아버지도, 사랑하던 어머니도 모두 분노한 용들을 달래느라 어린 키하노를 바라봐 줄 틈이 없었으니까.
-더이상 외면하지 마. 키하노.
누구 한 사람도 지켜주지 못했던 소년의 세계.
그렇기에 자신조차 외면하고 있었던 어린 소년의 울음은 지금도 계속해서 키하노의 안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계속 그러다가는 네 안의 별이 죽고 말아.
어쩌면 어젯밤 키하노가 들었던 울음소리는 눈앞의 어린 정령들이 아니라 지금껏 외면하고 있던 소년이 내질렀던 울음일지도 모를 일.
그렇기에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로 결심한 키하노가 앞에 있는 유리관을 향해 한 발자국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