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27
데어마르에서 온 초대장 (1)
“이런······.”
교관은 비록 기사는 아니었으나 다양한 방면에 경험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병사로서 바예지드 가문에서 복무해왔으며 숱한 전투를 치렀고 또한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페테르는 그런 그의 경험을 높이 사 종자들을 교육하는 교관의 지위를 맡겼고, 그런 이유로 교관은 십 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바예지드 가문의 종자들을 교육해 왔다.
그러나 오랫동안 종자들을 교육해 온 그에게도 오늘 같은 경우는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오늘은 왜 이것밖에 안 왔지?”
연병장에 모여있는 종자들을 보며 교관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평소보다 절반도 모여있지 않은 종자들을 보며 교관은 의아해하고 있었다.
무슨 사고라도 났나?
식중독인가?
아니면 나에 대한 반항?
많은 생각들이 교관의 머릿속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왜 다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서 있나? 내게 대답해 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나?”
교관의 외침에 종자들은 자연스레 한 곳을 향해 시선을 모았다.
“······블라드 말해봐라.”
그곳에는 입술은 터지고 군데군데 시퍼런 멍이 들어 있는 금발 소년이 서 있었다.
“아픈가 보던데요.”
“뭐?”
이제야 튀어나온 성의없는 대답에 교관은 눈썹을 찡그렸다.
“어디가 아픈가 봐요. 당분간은 못 나올 것 같더라고요.”
“······.”
교관은 블라드의 대답에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프다고?”
그럴 리가 없었다.
어제만 하더라도 날뛰던 녀석들이 한 명도 아니고 열 명이 넘게 갑자기 아플 리가 없지 않은가.
“······.”
블라드의 대답에 무언가 석연치 않은 것을 느낀 교관은 다시 한번 모여있는 종자들을 쳐다보았다.
‘없군.’
소바닌.
그리고 그 녀석과 뭉쳐 다니던 종자들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지금 이곳에 모여있는 종자들은 소바닌과 친하지 않은 녀석들과 저번 몬스터 토벌전에 기사들을 따라 나갔었던 종자들뿐이었다.
‘싸웠나?’
간혹 그런 경우는 있었다.
한참 혈기 넘치는 소년들을 모아놨으니 이래저래 투닥거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몇 년에 한 번 정도는 패싸움이라 할 만큼 싸움이 크게 번지는 경우도 있었다.
‘다들 멀끔한데?’
그러나 지금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남아 있는 녀석들은 딱히 패를 지어 다니는 녀석들도 아니었거니와 패싸움을 벌였다기에는 다들 멀끔해 보일 뿐이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상처 입은 녀석은 이번에 새로 들어온 종자인 블라드 뿐.
‘설마.’
순간, 교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의 사태를 온전히 설명해 줄 가능성이라고는 오직 이것 뿐이기도 했다.
“······너 혼자 했냐?”
자연스레 떠오르는 결론을 입 밖으로 내뱉은 교관이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그저 해맑은 것일 뿐이었다.
“오늘은 사람도 별로 없는데 말 타는 것 좀 더 연습해봐도 됩니까?”
“······.”
교관은 자연스레 자신의 질문을 뭉개는 블라드를 보며 깨달을 수 있었다.
네놈이구나.
‘그것도 열 명이 넘는 녀석들을 혼자서.’
여태껏 이런 경우는 없었다.
교관은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혼자서 열 명이 넘는 패거리를 정리한 종자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었다.
이 녀석은 규격 외다.
교관은 뒷덜미를 스치는 긴장감에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그래.”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소년을 향해 교관은 그저 고개를 끄덕여줄 수밖에 없었다.
※※※※
한 달에 한 번 있는 기사들 간의 정례회의.
가장 높은 곳에 앉아 있는 페테르를 중심으로 기사들은 넓게 깔린 붉은 융단을 사이에 둔 채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딱히 의도한 아니었지만, 한쪽에는 루트거를 지지하는 기사들이, 다른 한쪽에는 중립을 지키는 기사들과 함께 요제프를 따르는 기사들이 서로를 마주 보는 중이었다.
“······조만간 임무를 나설 루트거 님과 기사들의 부재를 대비해 근무표를 재조정하였다.”
페테르의 바로 한 단 밑에 서 있는 노년의 기사.
머리뿐만 아니라 수염까지도 온통 하얀색으로 물들어버린 남자였으나 목소리만큼은 누구보다 또렷하고 힘이 있는 사람이었다.
실제로 기사들은 그가 보내는 눈빛 하나하나에 맞춰 반응하는 중이었다.
페테르의 허락 아래 바예지드 가문의 모든 기사를 쥐락펴락하는 사람.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
“그러니 경들은 본인들의 임무를 다시 한번 확인하길 바란다.”
바예지드 가문의 기사단장 안탈라스.
그의 진행에 따라 회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다음 안건은 교회에서 보낸 성물들을 배분하는 건이다.”
안탈라스는 특유의 날카로운 감각을 통해 예전과 달라진 분위기를 감지해냈다.
‘좋을 만도 하겠지.’
그러나 그것을 굳이 걸고넘어질 생각은 없었다.
“······.”
“······흠.”
왜인지 여유로워 보이는 자야르와 미묘하게 표정이 굳어 있는 루트거를 지지하는 기사들.
안탈라스는 그 미묘한 신경전을 눈치채고 있었으나 이번만큼은 가만히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동안 위축되어 있던 요제프 쪽 기사들의 기를 한 번 정도는 살려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 서 있는 요제프 쪽 기사라고는 자야르와 보르단 단 둘뿐이긴 했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무언가 건의할 사항이 있는 자는 발언해도 좋다.”
“······.”
짧은 침묵을 통해 더는 할 말이 없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기사들을 보며 안탈라스는 가장 높은 곳에 앉아 있는 페테르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전할 것은 다 전했습니다.”
“수고하셨소.”
회의는 끝났다.
이제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가주의 해산명령만이 남아 있을 뿐.
그러나 이어져야 할 명령 대신 미묘한 침묵이 흐르고만 있었다.
“······?”
기사들이 무언가가 어긋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즈음.
그 순간 자야르는 페테르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의미를 알 수 없는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
“자야르 경!”
우르르 빠져나오는 기사들 사이로 누군가가 자야르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다가왔다.
“뭔가.”
“다 알면서 그러십니까.”
그레고리는 얼굴 가득 난 수염을 한껏 일그러뜨리며 웃고 있었다.
“이미 소문 다 퍼졌습니다.”
“무슨 소문 말인지.”
안대를 만지작거리며 모른 척하는 자야르를 보며 그레고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자야르 경의 종자가 푸닥거리를 크게 했다면서요? 그것도 혼자서 다 쓸어버렸다는데.”
“······그런가?”
알면서도 의뭉스럽게 행동하는 자야르였지만 그레고리는 딱히 불쾌감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다.
‘한 번 정도는 생색낼 만도 하지.’
그동안 요제프를 따르던 기사들은 마땅히 가슴을 펴고 다닐만한 일이 없었다.
그들이 모시고 있는 요제프라는 사람은 루트거처럼 빛나는 사람이 아니었던데다 5명밖에 안 되는 적은 수의 기사로는 무언가 일을 도모하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점점 기울어져 가는 세력 판도에 그저 안간힘을 내며 버티고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실로 오랜만에 당당히 어깨를 펼 수 있었다.
“······쯧.”
“누굴 물지 모르는 사나운 개를 데려왔군.”
혀를 차며 옆을 스쳐 지나가는 기사들이 있었지만 자야르는 그저 심드렁히 바라볼 뿐이었다.
아주 조금의 비웃음만을 머금은 채로.
“햐- 제가 역시 사람 보는 눈은 있습니다. 뭐라 했습니까? 고놈이 참 남자답고 기세도 단단하고······.”
“밥 정도는 같이 먹으라 말해 두었네.”
“모시는 기사를 따라 성품 또한 훌륭하고.”
“내친김에 다른 녀석들도 소개해주고 그러는가 본데.”
“······저 한 번 가져다 쓰십시오. 조금은 힘들고 어려워도 됩니다.”
그레고리의 말을 들으며 자야르는 괜히 안대를 어루만졌다.
자야르는 다른 감정들은 몰라도 기쁜 마음만큼은 크게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드러내지만 않았을 뿐 속으로는 그도 블라드를 기특하다고 생각하고는 있었다.
14명이나 되는 녀석들을 혼자서 쓸어버렸으니 이 정도 무용이라면 요제프 또한 미소 지을 만한 일이었다.
‘이 정도는 해줘야지.’
자신 정도 되는 기사가 그만큼 정성을 쏟았는데 이 정도는 상환해주는 것이 맞을 테다.
그렇게 생각하며 자야르는 요제프의 집무실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
저택 조용한 곳에 있는 요제프의 집무실.
그곳에 다다른 자야르는 조용히 자신이 왔음을 알렸다.
“들어오게.”
방 주인의 허락이 떨어지자 자야르는 손잡이를 잡아 돌리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괜찮으십니까?”
“살 만은 해.”
그곳에는 눈그늘이 더욱 짙어진 요제프가 피곤한 기색으로 앉아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상자와 함께.
“아버님이 블라드에게 선물을 보내오셨네.”
자야르의 시선을 눈치챈 요제프는 상자의 정체를 말해주었다.
“또 땅콩 같은 것은 아니겠죠?”
“······강렬한 기억이기는 했지.”
이미 블라드에게 한 번 당한 전적이 있던 자야르는 자연스레 경계의 눈초리로 페테르가 보냈다는 상자를 바라보았다.
블라드는 방심할 수 없는 녀석이다.
여러 가지 의미로.
“확인해 봤네. 안심해도 좋아.”
요제프의 말에 그제야 안심한 자야르는 집무실 한 가운데 놓여있는 상자를 열었다.
“호······.”
자야르가 상자를 열자 옆에 서 있던 보르단은 자신도 모르게 자그마한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갑옷이군요.”
그곳에는 누가 보아도 잘 손질된 갑옷 한 벌이 들어있었다.
흉갑, 견갑, 손목과 무릎을 보호하는 관절 보호대 그리고 신발까지.
일개 종자에게 보냈다기에는 너무나 근사한 가죽 갑옷이었다.
“······.”
그러나 감탄사를 내뱉는 보르단과는 다르게 자야르는 진지한 눈빛으로 갑옷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검회색 가죽 갑옷에 비치는 햇빛이 페테르가 자신에게 보냈던 눈빛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오크 가죽이군요.”
“최상급 가죽은 아니지만, 충분히 쓸만한 것이지.”
“그것도 회색 오크의 가죽입니다.”
“······그렇지.”
자야르는 조심스레 회색빛의 갑옷을 꺼내 들어 유심히 살펴보았다.
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장비에 많은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자야르는 단순히 새로운 갑옷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보는군요.”
“역시 그런 의미였나.”
페테르가 보낸 것은 북부에서만 발견되는 회색 오크의 갑옷이었다.
그렇기에 회색 오크 가죽으로 만든 갑옷은 북부의 전사들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자야르는 깊은 눈빛으로 회색 갑옷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녀석이 어디서 페테르 님의 눈에 띄었을까요?”
“그것은 나도 모르지. 잡아서 고문이라도 해볼까?”
“아!”
이제야 둘의 대화를 따라잡은 보르단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회색 오크의 갑옷이었군요!”
보르단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손바닥을 내려치며 자야르가 들고 있는 갑옷으로 다가갔다.
“정말 오랜만에 봅니다. 전대 가주님 때는 자주 봤던 것이었는데요.”
“지금 있는 종자들은 그때보다 못한 녀석들 뿐이니까.”
지금에야 대륙 각지에서 바예지드 가문의 명성을 듣고 기사들이 찾아오고는 했지만, 전(前)대까지만 하더라도 바예지드 가문은 스스로 키워낸 기사들을 통해 세력을 불려왔었다.
지금 기사단장인 안탈라스도 그 당시 바예지드 가문에서 종자부터 시작한 사람이었다.
그때 활동했던 기사들을 일컬어 북부 사람들은 바예지드 가문의 황금세대라고 불렀었다.
이제는 오래된 이야기가 되어버리긴 했지만.
“이곳에 오자마자 한 달 만에 아버지의 인정을 받은 녀석이야. 투자할 가치는 이미 증명했다고 봐야지.”
“그렇습니다.”
자야르는 조심스레 갑옷을 상자에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적어도 지금 있는 종자 중에서는 그 녀석과 비견될 만한 녀석은 없어 보입니다.”
“그 이야기는 들었네. 이미 소문이 쫙 퍼졌더군.”
요제프는 힐끗 눈을 돌리며 자야르를 바라보았다.
서로 눈이 마주친 둘은 자연스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리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좋아.”
요제프는 책상 밑 서랍을 열어 한 장의 편지를 꺼내 들었다.
“비록 뼈아픈 손실이 있긴 했지만 그렇다 해서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지.”
요제프는 편지의 봉투를 열어 자야르에게 건네주었다.
“이것이 뭡니까.”
“다음 걸음.”
편지를 넘겨준 요제프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를 향해 걸어갔다.
한낮의 태양이 눈부신 자리에서 요제프는 가만히 밖을 내다보았다.
뭉게구름이 둥실 떠 있는 푸른 하늘이 보기가 좋았다.
“가능하겠나.”
“음······.”
편지를 확인한 자야르는 요제프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새 그 녀석 뒤치다꺼리하느라 쌓여있던 참이었는데 잘 됐습니다.”
자야르의 말을 들은 요제프는 고개를 돌려 보르단을 향해 말했다.
“준비해주게.”
“어디로 가실 겁니까.”
바예지드 저택에 온 금발 소년이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온몸을 비틀 동안 짙은 눈그늘을 지닌 청년 또한 다시 일어서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그리하여 얻어낸 편지 한 장.
그것은 초대장이었으며 또한 요제프에게 있어서는 기회를 향한 한 걸음과도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데어마르로 가네.”
푸른 하늘 속 뭉게구름은 남쪽을 향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