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3
뒷골목의 소년 (3)
“소매치기야.”
낭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블라드의 뒤로 버레이가 말했다.
“어색했고 멍청했고 능력 없었지. 그래서 걸렸어.”
“······.”
블라드는 버레이의 말에 대답하기 보다는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아이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었다.
“손가락 잘랐어?”
“아니.”
“발목은 그었어?”
“아니.”
어린 소매치기의 상태를 물어보는 블라드를 보며 버레이는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귀여운 후배가 반드시 은화를 넘겨줄 것이라 확신했기에.
“엄청 싱싱한거야. 그냥 적당히 손질만 했어. 가서 날로 먹어도 될걸?”
“하하하하!”
“그럼! 맛 좋으라고 적당히 두들기기까지 했는데!”
뒤에 있던 호르헤 패밀리들이 버레이의 말이 웃기다는 듯 큰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좋아.”
블라드는 한숨을 내쉬며 품 안에서 반짝이는 은화를 꺼냈다.
“역시! 우리의 자랑스러운 후배라면 거래에 응할거라고 확신했지.”
“다음부터는 나 부르지 말고 그냥 죽여버려.”
“왜 이러실까. 우리는 조직원이지 살인마가 아니라고.”
“같은 패밀리 등쳐먹는 놈들 주제에.”
막내 격인 블라드가 험한 말을 내뱉어도 호르헤 패밀리에 속해있는 조직원들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들은 이미 험한 뒷골목에서 살아남은 블라드를 인정했기에.
어린 동생의 험한 투정 정도야 사나이의 배포로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는 것이었다.
“형님들은 한잔하러 가신다!”
“가서 성병이나 걸려라.”
“역시 유망주! 몽둥이는 맵고 혀는 날카로운 블라드!”
“가운데 몽둥이도 매운지는 모르겠지만!”
“하하하!”
게다가 블라드는 어린 나이임에도 두각을 드러내는 존재였다.
어디에 있든 간에 날카로운 송곳들은 주머니를 튀어나오기 마련이니.
멀쩡히 살아남은 것도 모자라 뒷골목 어린 부랑자들을 휘어잡았던 블라드는 이미 슬럼가에서 활동하는 여러 조직들의 관심을 받는 존재이기도 했었다.
아직 조직의 부름을 받지 못한 뒷골목의 어린 부랑자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며.
인재가 필요한 조직들에게는 1순위 영입대상인 소년.
그것이 블라드라는 16살짜리 소년이 가지고 있는 가치였다.
“일어나. 죽여버리기 전에.”
“읍읍······.”
블라드는 발끝으로 결박되어 있는 소년을 툭툭 치며 말했다.
“방금 나 돈 뜯긴 거 봤지? 분위기 파악해.”
“응······.”
살벌한 블라드의 경고에 양손은 결박되고 재갈까지 물려있던 검은 피부색의 아이는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안간힘을 다해 어떻게든 스스로 일어서는데 성공했다.
“푸하! 블라드 미안. 적당히 하고 빠지려고 했는데.”
소매치기 한 것이 미안하다는 것인지 잡혀버린 것이 미안하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블라드는 눈앞의 흑인 소년이 진심을 담아 사과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빡-!
“악!”
“열 받네 진짜.”
흑인 소년의 뒤통수를 호쾌하게 때린 블라드는 피곤한 듯 양 손바닥으로 눈을 비벼댔다.
“5골드는 또 멀어져 가는구만.”
“돈 필요해? 그럼 빌려. 외팔이 잭한테.”
“그 사람한테 돈을 빌리느니. 차라리 쥐약을 먹고 말지”
호르헤와 같이 뒷골목을 휘어잡는 또 다른 보스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블라드는 고개를 내저었다.
“어디 부러졌어?”
“아니.”
“그럼 당장 꺼져 새꺄.”
“······형한테 말할 거야?”
자신이 방금 반병신이 될뻔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흑인 소년은 그저 지금의 일이 자신의 형에게 알려질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40실버는 네 형한테 받을 거다.”
“안돼! 블라드 제발!”
“그럼 네 형은 나한테 40실버를 건네주고 병신같은 너는 400대는 후려치겠지.”
블라드의 푸른 눈동자가 흔들림 없는 것을 본 흑인 소년은 두려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올 미래를 예측했다.
“다음에는 걸리지 말아야지······.”
“멍청해서 그런지 전혀 발전이 없구나.”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음의 성공을 다짐하는 어린 소매치기를 가게 밖으로 내보낸 블라드.
뒷골목 끝으로 사라지는 흑인 소년을 지켜본 블라드는 고개를 들어 장미의 미소를 올려다보았다.
화려한 불빛이 없는 장미의 미소는 고요함만이 가득해 보였다.
그러나.
“······오늘은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 날이야.”
죄 없는 애꿎은 손님 하나를 작살내고 해맑은 마담의 비리를 들었으며 선배들한테 돈까지 뜯긴 오늘.
원래대로라면 장미의 미소로 들어가 잠을 청해야 할 테지만 오늘만큼은 밝은 햇살을 맞아보기로 했다.
흑인 소년이 움직인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블라드.
그의 코끝으로 물안개와 함께 짙게 깔린 비린내가 느껴지고 있었다.
※※※※
창녀들의 기사 호르헤.
돈벌레 외팔이 잭.
돼지도살자 검은 곰.
도박장의 다이스.
그리고 고래사냥꾼 캡틴 후버.
이 다섯이 현재 쇼아라의 슬럼가를 지배하고 있는 보스들이었다.
“그래서 날 찾아오셨다?”
“돈 좀 있어?”
그리고 블라드가 찾아온 하벤이라는 남자는 고래사냥꾼 후버의 조직에 속해있는 사람이었다.
“오랜만에 보자마자 하는 말이 돈을 달라?”
“5골드면 되는데.”
“돈 뜯긴 놈한테 돈을 빌려주면 나중에 돌려받을 수 있나?”
“별수 없었어.”
“안 돼. 넌 신용이 없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하벤.
블라드처럼 화려한 금발이 아닌 특색 없는 갈색 머리의 하벤이었으나 그가 가진 인상만큼은 블라드만큼이나 강렬했다.
“너도 참 너무하다. 어떻게 몸도 성치 않은 장애인한테 돈을 빌려달라고 하지?”
작은 방이었다.
두 사람이 앉아 있으면 꽉 찰 정도의 작은 방.
그렇기에 한쪽 발을 저는 하벤이라도 지팡이에 의지해 찬장에 있는 병 하나를 꺼내 들 수 있었다.
손가락이 세 개뿐인 왼손으로도 말이다.
“그거 먹고 꺼져. 형아는 바쁘다.”
“먹어도 되는 거냐 이거.”
병을 열어본 블라드는 술에서 나는 수상한 냄새를 맡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캡틴 후버의 역작 캡틴Q야. 둘이 먹으면 셋이 죽는 술이지.”
“나중에 독약으로 쓰면 되겠군.”
블라드는 수상한 술을 먹는 것을 포기한 채 하벤의 앞에 앉아 그가 하는 작업을 지켜보았다.
작은 방 볼품없는 책상에 가득 찬 종이뭉치와 그 안에 빽빽이 적힌 숫자와 글자들.
그리고 그것을 쉼 없이 넘기는 하벤.
“분명 나는 글자를 읽고 쓸 수 있는데도 거기에 무슨 말이 적혀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것도 내가 알려준 거지.”
“숫자는 읽을 줄만 알긴 하지만.”
“그것도 내가 알려준 거지.”
툴툴거리는 블라드의 말을 들으며 하벤의 눈가에 웃음이 머물렀다.
하벤은 제미나와 블라드에게는 은인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어렸을 적 뒷골목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던 제미나와 블라드에게 자신의 담요를 나눠준 사람이었으니까.
그가 내어준 온기가 아니었다면 제미나와 블라드는 진작에 얼어 죽었을 것이며 그가 훔쳐 온 빵들이 아니었다면 예전에 굶어 죽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 꼬맹이가 운이 좋았네. 소매치기를 걸려놓고 나처럼 여기 썰리고 저기 안 썰려서 말이야.”
“흐음. 시절이 좋은 것도 있긴 하지.”
뒷골목을 헤매고 다닐 때는 소매치기로 연명하던 세 명이었으나 그것도 하벤이 반병신이 되고 나서는 끝나고 말았다.
“······그러게 저번에 있던 주교와는 다르게 이번 주교는 소매치기보다는 다른 데에 관심이 많으니까.”
하벤은 운이 좋지 않았었다.
하필 그때 쇼아라에 있었던 주교는 도둑질과 소매치기에 민감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두들겨 맞고 끝날 일이었으나 하벤은 주교의 성향을 보여주는 시범으로 손가락이 잘리고 왼쪽 발목이 그어졌다.
하벤의 애처로운 비명이 뒷골목에 울려 퍼졌지만 도시의 찌꺼기와도 같은 어린 부랑자를 감싸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행히 하벤이 밥벌이를 못하는 시기에는 블라드가 세 명을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로는 성장한 후였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블라드, 제미나, 하벤은 서로를 먹여 살리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번 주교는 뭐에 민감하다고 했지?”
“소아성애.”
“아 그랬지 참. 하하하! 제미나가 볼멘소리를 내던 게 기억나네.”
도시에 있는 각 주교의 성향에 따라 교회에서 내 거는 교칙은 조금씩 달라졌다.
저번 주교와는 달리 5년 전 쇼아라에 새로 부임한 주교는 도둑질과 소매치기보다는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은 자였다.
“제미나의 데뷔일이 그래서 강제로 늦춰졌었지?”
“마담이 조심하고 있어. 아무래도 가게가 유명한 만큼 교회의 관심을 받게 되니까.”
팔아먹을게 몸 밖에 없는 뒷골목 어린 소녀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매춘을 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5년 전 새로이 부임한 주교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이 금지되고 말았다.
성인이 아닌 소녀와 관계하는 자는 파문.
이것이 이번 주교가 내건 주요 교칙이었으니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결국 그로 인해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제미나는 지금도 설거지나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아마 나이를 채우기 전까지 제미나는 교회와 마담의 보호 아래서 처녀로 있을 수밖에 없는 신세일 것이다.
“순결한 창녀지망생이라니! 무슨 임신한 처녀 같은 말이야! 하하하!”
“게다가 여전히 몸은 하나도 안 컸어. 제미나가 성인이 된다 해도 그 녀석이랑 자는 놈은 반드시 파문당할걸?”
“흐흐흐! 걔는 죽을 때까지 안 크긴 할 거야?”
한참을 제미나의 관한 이야기로 키득거리던 하벤은 웃으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방.
먼지와 종이 냄새를 걷어치우고 집중하고 있다 보면 느껴지는 냄새가 있었다.
그것은 강의 냄새였다.
밀수를 주로 하는 캡틴 후버의 근거지는 부둣가에 마련되어 있었고 하벤이 바라보는 벽 너머에는 도시 쇼아라를 먹여 살리는 강이 있었다.
넓고 푸르며 어디든지 나아갈 수 있는 강.
여기에 묶여버린 하벤과는 다르게 말이다.
“뭐. 제미나가 죽을 때까지 못 크는 것처럼 나도 죽을 때까지 여기서 못 나갈 것 같기는 한데.”
“······.”
블라드는 하벤의 읊조림에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는 자신이 서글퍼졌다.
“참 블라드,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응?”
명석한 하벤은 어깨너머로 글을 배우고 숫자를 깨우쳤다.
남들보다 많은 것을 들고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한 행동이었다.
그런 명석한 하벤이었기에 몸이 불편하다 할지라도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고.
그런 명석한 하벤이었기에 몸은 좁은 방 안에 있어도 서류에 쓰여진 글자들과 숫자들과 쇼아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조심해.”
“뭘?”
“이번에 장미의 미소에서 초 가지고 장난친 사람이 있다며?”
“······그게 벌써 여기까지 퍼졌나?”
블라드의 임기응변으로 어찌어찌 무마되기는 했지만, 아마 선수들은 다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초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마담 마르셀라밖에 없다는 사실을.
“마르셀라가 그럴 사람이 아니지.”
“그렇지.”
“그럴 사람이 아닌데 했다면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는 소리겠지.”
“이유?”
블라드는 흔들거리는 술병 너머로 하벤을 바라보았다.
“돈이 필요하다는 거겠지. 마르셀라가. 그것도 급하게.”
끈적한 갈색의 액체 너머로 보는 하벤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조직이 급하게 돈을 끌어모을 때는 단 한 가지 경우뿐이야. 블라드.”
하벤은 진지한 목소리로 블라드를 향해 말했다.
“타 조직과 전쟁을 할 때뿐이지.”
“······.”
블라드는 하벤의 말을 듣고는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저 애꿎은 술병만 흔들었을 뿐이었다.
※※※※
“조심하라고.”
술병을 챙기고 일어나는 블라드를 향해 하벤이 마지막으로 해 준 말이었다.
그러나 경고를 들었다 한들 블라드에게 조심할 방법 따위가 있을 리가 없었다.
“와······술맛 진짜 더럽네.”
살려면 누군가의 것을 뺏고 뺏으려면 누군가를 상처입혀야만 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 와중에 자신이 상처 입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진짜 둘이 먹다 셋이 죽을 맛이야.”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불나방 같은 존재들이 모인 곳이 바로 이곳 뒷골목이었다.
그리고 블라드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 또한 덧없는 불나방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빛나네······.”
독한 술로 인해 희미해져 가는 시야였지만 블라드의 눈으로 비치는 빛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소년은 그 앞에 서서 하염없이 빛나는 것을 바라보았다.
“······5골드도 아깝지 않을 빛이야.”
헤어나오기 힘든 어두운 뒷골목에서 싸구려 독주로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소년은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불을 쫒아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오래된 대장간 앞에서 오래도록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