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32
명예로운 결투 (2)
귀족의 피는 창백한 푸른색이다.
따뜻한 붉은색으로는 짊어질 수 없는 책임과 의무 그리고 업보가 있으므로.
“······.”
그러나 알리시아는 아직 차갑게 식기에는 준비되지 않았다.
자신을 향한 수많은 사람의 시선.
그리고 저 앞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엔데르의 사나운 눈빛까지.
‘숨쉬기가 힘들어.’
아무리 단단히 각오했다 할지라도 아직 스무살도 안 된 처녀인 알리시아로서는 산전수전을 겪어 온 엔데르의 기세를 버텨내기가 힘들었다.
그렇기에 고개를 돌렸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의 눈빛을 피하기 위해서.
그리고 고개를 돌린 곳에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그날 보았던 푸른 눈동자였다.
“······?”
이게 무슨 일이냐는 듯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금발 소년.
그 소년이 시야에 들어오자 알리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멍했던 초점을 다잡을 수 있었다.
쿵쾅거렸던 심장이 가라앉고 어지러웠던 시야가 돌아오며 쉴새 없이 흐르던 식은땀이 멈추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셨던 언덕에서 느꼈던 편안함이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소년의 푸른 눈동자 안에 있었다.
그 안에서 드디어 숨을 내쉴 수 있었다.
※※※※
블라드는 자야르의 옆에 서 있는 기사를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우리 편이었네.’
그는 어제 자신과 같이 상대편의 기사들을 염탐했던 정체 모를 남자였다.
샤자드 가문에서 보내온 기사 주베르.
장난기 어린 눈으로 시선을 보내는 주베르를 보며 블라드는 자신도 모르게 삐딱한 자세가 되려 하고 있었다.
‘어쩐지 나를 알더라.’
자신을 제압했고 허락 없이 친한 척했으며 마지막에는 아무런 미련 없이 버리고 떠난 사람.
[알리시아라는 여자가 확실히 좋은 패들을 구해왔군. 이길 가능성이 클 것 같다.]‘그렇겠죠.’
많은 사람이 있는 앞이라 소리 내어 대답할 수는 없었지만 블라드도 이번 결투의 승자는 알리시아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비록 엔데르의 옆에 바짝 붙어 있던 기사까지는 살펴보지 못했지만, 콜린과 파블로라는 기사는 아무리 높게 쳐줘도 자야르와 주베르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샤자드 가문이 보낸 기사 주베르는 목소리도 쉽게 기운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경지에 올라 있는 자였으니까.
3판 2선승제로 치러지는 이번 결투의 규칙을 생각해본다면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만한 결과였다.
비록 한 명을 내준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
“그만! 그만 하세요! 항복하겠습니다!”
알리시아의 다급한 요청과 함께 사제의 개입이 들어왔다.
“멈추시오! 결투는 끝났소!”
“······아직!”
“던칸 경. 그대의 주군이 손수건을 흔들었소이다. 패배를 인정하시오.”
“······.”
치열했지만 또한 서글픈 결투이기도 했다.
노(老)기사 던칸.
오랫동안 하이날 가문을 지켜왔으며 비록 60이 넘는 나이임에도 아직 기량을 유지하고 있던 그였지만 결국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최선을 다해 분전했으나 세상은 결국 결과만을 받아들여 주는 법이었다.
“좋은 승부였습니다. 단장님.”
“······내가 아직도 자네의 단장인가?”
던칸을 자신을 향해 손을 내미는 젊은 기사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엔드레에게 검을 바친 하이날 가문의 기사 샤를드.
“······필요 없다.”
분명 하이날 가문의 미래가 되어주리라 생각하며 키워왔건만 지금 그의 모습은 주인을 베는 검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오판이었으며 그것이 알리시아에게 독으로 돌아오고 말았으니 던칸의 처참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비록 상처로 인해 비틀거렸으나 마지막 남은 자존심으로 그의 손을 후려친 던칸은 차마 감출 수 없는 죄책감을 안은 채 알리시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
비록 흔들리지 않는 표정이었으나 알리시아의 눈에는 깊은 파문이 일어나고 있었다.
엉망이 된 모습으로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늙은 기사.
그는 알리시아에게 있어 마지막 남은 기둥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던칸이 흘리는 피는 알리시아에게 눈물로 돌아왔다.
“이번 결투는 엔데르 님의 기사 샤를드 경의 승리요!”
사제의 선언과 함께 엔데르와 함께 하는 자들이 큰 함성을 쏟아내었다.
엔데르가 하이날 가문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듯이 그들 또한 엔데르를 위해 많은 것을 걸었을 것이다.
승자는 모든 것을 갖고 패자는 모든 것을 잃는다.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세계의 법칙 아래서 승리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딘 그들은 분명 함성을 지를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다음 대리자들은 나오시오!”
블라드는 다음 결투자들을 부르는 나오라는 사제의 말을 듣고서는 침을 꿀꺽 삼켰다.
3판 2선승제의 결투.
그중 가장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은 아마 두 번째 자리에 임하는 자일 것이다.
첫 번째 사람이 이길 경우에는 승부를 결정 낼 수 있으며, 혹시나 질 경우에는 필승을 다짐하며 세 번째 사람에게 결투를 넘겨줘야 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알리시아 님 측의 두 번째 기사는 앞으로 나오시오!”
그리고 그 중요한 임무를 맡은 기사는 바로 바예지드 가문의 자야르였다.
애꾸눈의 자야르.
비록 화려한 호칭을 가진 기사는 아니었으나 던칸과 주베르는 만장일치로 자야르를 두 번째 자리에 놓기로 결정했다.
바예지드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감은 그 정도의 신뢰는 보증하는 것이었으니까.
“자야르요.”
“콜린.”
기사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주군의 명령이 첫 번째요, 자신의 명예가 두 번째니.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명예 결투라는 자리는 주군의 명령과 자신의 명예를 건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렇기에 처음 마주쳤으나 자연스레 날이 세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
붉은색 핏방울들이 흩뿌려진 바닥을 사이에 두고 두 명의 기사는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눈깔 하나는 어디다 팔아먹으셨소?”
“배고파서 먹었어.”
“크!”
머리 하나는 차이 날 정도로 커다란 콜린이었으나 자야르는 전혀 물러섬이 없었다.
물러서지 않았다기보다는 그냥 귀찮은 듯 무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럼 다 밑으로 나오셨겠구만. 다시는 못 찾으시겠네.”
“그러게.”
“둘은 지정된 자리로 움직이시오!”
나름 도발을 유도하려 했던 것 같았으나 자야르는 그 정도로는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자신을 개처럼 무시하는 자야르의 태도에 콜린의 이마에는 짙은 힘줄 하나가 깊게 새겨들어갔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리다. 승부는 대리인 혹은 본인이 항복 의사를 표현할 때, 그리고 결투를 속행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부상을 입으면 끝나오. 그리고 오러는 사용 금지요.”
“알겠소.”
“남은 눈깔 하나도 파내주마. 애꾸눈.”
“······부디 명예로운 결투라는 것을 잊지 마시오.”
으르렁거리는 콜린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지만, 사제는 결투의 시작을 위해 뒤로 물러섰다.
아무리 규칙이 있는 명예 결투라 할지라도 검을 들고 싸우는 것이었으니 가끔은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오기도 했으니까.
“오늘의 태양 아래 신께서 허락하셨소이다!”
“크아아아!”
사제의 신호가 떨어짐과 동시에 콜린은 괴성을 지르며 자야르를 향해 돌진했다.
거대한 덩치에서 나왔다기에는 믿을 수 없는 속도였으나 그 덩치에서 나올만한 강맹한 일격이었다.
과연 중부에서 흙멧돼지라 불릴 만큼의 실력을 단 한 번의 검 놀림으로 보여주고 있었으나.
정작 그 기세를 정면으로 받는 자야르는 그저 시큰둥한 표정으로 서 있었을 뿐이었다.
쾅!
거대한 폭음과 함께 홀의 바닥을 깨부수는 콜린의 검.
사방으로 바닥의 파편들이 튀어져 나갔다.
“오오!”
“듣던 대로 힘이 대단하군!”
홀을 크게 울리는 콜린의 일격에 알리시아는 가슴을 움켜쥐었고 블라드는 어제 주베르가 주었던 말린 과일을 꺼내물었다.
이제부터 시작이었으니까.
“······.”
한 발자국 차이로 일격을 피해낸 자야르를 보며 충분히 승산이 있다 파악한 콜린이었다.
좀 더 빠르면 되겠다.
좀 더 강하게 내려치면 되겠다.
그러면 저 아슬아슬한 한 발자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 테니까.
쾅-! 쾅-! 쾅-!
승리의 냄새를 맡은 콜린은 사기충천한 모습으로 자야르의 잔상을 쫓아 검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한 번의 내려침마다 홀이 들썩이고 사람들의 탄성과 함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런.”
그러나 엔데르 측에 서 있던 기사들은 싸움의 기세가 기묘하게 꼬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리고 당사자인 콜린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낄 때쯤.
“올레(¡Olé).”
“너 이 자식······.”
이제야 자야르의 얼굴을 마주한 콜린은 그동안 헛수고를 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자신과는 다르게 자야르는 말끔한 얼굴로 하나의 흐트러짐도 없는 모습이었으니까.
“······.”
결투를 보고 있던 블라드는 자야르가 자신을 향해 눈을 마주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안대를 쓰지 않은 오른쪽 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블라드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잘 봐둬라.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주제에 뛰려 하는 애송아.
“이 새끼가!”
약이 바짝 오른 콜린은 검을 다잡으며 자야르를 향해 휘둘렀으나 그의 검은 목표를 찾지 못한 채 허무한 공기만 가르고 있을 뿐이었다.
“······!”
콜린은 두 눈을 부릅뜨며 경악하고 있었다.
자야르의 신형이 기묘하게 갈라지고 있었기에.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발놀림이었으나 그 안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었다.
오른쪽인가 왼쪽인가.
뒤로 피하는 것인가 앞으로 나서는 것인가.
가늠할 수 없었다.
“이익!”
콜린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을 현혹하는 자야르의 움직임을 애써 무시하며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렀다.
뾰족한 수는 아니었으나 어찌 보면 최선의 선택이기도 했다.
확실한 대안을 세울 수 없을 때는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행해야 하는 법이었으니까.
그리고 두 눈을 부릅뜬 채 자야르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자는 콜린 하나뿐이 아니었다.
‘······.’
어젯밤, 자야르는 초조해하는 자신의 종자에게 날카로운 일침으로 경고했다.
뛸 생각을 하기 전에 제대로 걸을 생각부터 하라고.
그와 동시에 그는 자신의 기술 중 하나를 보여주며 칭얼대는 블라드에게 사탕 하나를 물려주었다.
‘제대로 된 기본기를 갖춰야 지금 같은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크아아압!”
콜린이 괴성을 지르며 쉴 새 없이 대검을 후려치고 있었다.
그의 어깨와 팔뚝에 새겨진 굵은 핏줄들이 검에 담겨 있는 힘이 얼마나 강맹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텅-!
맥없는 소리와 함께 가볍게 튕겨 나갈 뿐이었다.
텅! 텅! 터엉-!
콜린의 공격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으나 자야르는 그것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받아치고 있었다.
아니, 끊어내고 있었다.
[저거다. 틈이 생기지?]자야르가 검을 한 번 받아칠 때마다 콜린의 기세가 미묘하게 주춤거리고 있었다.
타점이 강제로 어긋남에 따라 생길 수밖에 없는 틈이었다.
[반격기다.]반격기.
선공을 막으면서 생기는 틈을 따라 후공을 날리는 기술.
상대방이 날리는 수를 읽고 거기에 맞춰 대응하는 고급 기술이며 후공으로 선공을 제압한다는 기묘한 방식의 접근법이 만든 기술이었다.
시도하기는 어렵지만, 성공만 한다면 필살을 약속하는 기술이기도 했다.
“······!”
블라드는 눈을 부릅뜬 채로 자야르가 보여주는 신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억지로 치켜뜬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올 정도였으나 모든 것에 목마른 소년은 지금의 광경을 눈으로 담아 허겁지겁 먹어 치우는 중이었다.
숨도 쉬지 않은 채로.
자야르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는 비록 거칠고 또한 꼬인 사람이었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확실히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오늘의 수업은 반격기.
교보재는 중부의 흙멧돼지였다.
※※※※
“끝났소.”
자야르는 안대를 매만지며 사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승, 승자는 알리시아 님의 대리자인 기사 자야르 경이오!”
분명 자야르의 승리가 선언되었지만 알리시아 측 사람들은 함성은커녕 쥐죽은 듯 있을 뿐이었다.
정적만이 가득한 결투장.
자야르가 내뿜는 기묘한 분위기에 엔드레 측 사람들은 기가 죽어버렸고 알리시아 측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
그러나 그들보다 더한 침묵을 가진 자는 지금 무릎을 꿇은 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콜린이었다.
그는 오늘 벽을 만났다.
그리고 격을 느꼈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거대한 것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잘 봐뒀냐.”
자신을 위해 일부러 장면까지 연출한 자야르를 보며 블라드는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감사하오. 자야르 경.”
“요제프 님의 명을 따랐을 뿐입니다.”
승리를 취하고 온 자야르를 향해 던칸이 진심을 담아 감사를 표했다.
붉게 물든 붕대로 감싸인 그의 모습이 여간 처량한 것이 아니었으나 자야르는 최대한 예를 갖춰주었다.
“다음 결투자들은 앞으로 나오시오!”
던칸은 지고, 자야르는 이겼다.
선봉전과 중견전이 끝났으니 이제 남은 것은 대장전 뿐.
“내 차례인가.”
사제의 부름과 함께 잘 관리된 카이저 콧수염을 어루만지며 주베르가 결투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 결투면 된다.
이것만 이기면 알리시아는 신의 이름 아래 인정받은 정당한 하이날의 남작이 될 것이다.
알리시아와 던칸,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의 간절한 시선이 주베르의 등 뒤로 맺혀 들어갔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주베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알 수 없는 미소를 가득 머금을 뿐이었다.
자야르가 만들어낸 침묵을 걸으며 두 명의 기사가 결투장 안으로 들어섰다.
“아른슈타인의 파블로요.”
“새삼스레. 우리 본 사이잖소.”
“아른슈타인의 파블로.”
“······샤자드의 주베르.”
농담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보며 멋쩍은 미소를 지은 주베르.
그는 고개를 돌려 알리시아를 향해 인사를 했다.
제대로 배운 멋들어진 인사였다.
“응?”
그러나 귀빈석에 앉아 결투를 지켜보던 요제프는 방금 주베르가 보인 인사를 보며 무언가 잘못됐음을 눈치챘다.
지금 상황에서 쓰일만한 인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리다. 승부는 대리인이 항복 의사를 표현할 때, 그리고 결투를 속행할 수 없을 정도로······.”
사제가 열심히 결투 규칙을 일러주고 있었으나 주베르는 그저 시큰둥히 서 있었을 뿐이었다.
“기권하겠소.”
“······큰 부상이 생기면. 지금 뭐라 하셨소?”
사제는 주베르의 입에서 나온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귀로 듣기는 했지만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나올 리가 없는 말이었으며 나와서도 안 되는 말이었으니까.
“기권하겠소.”
마치 무대 위에 올라선 배우처럼 주베르는 과장된 몸짓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외쳤다.
“샤자드 가문이 보낸 대리자인 나 주베르는 이번 결투에서 기권하겠소이다.”
“······.”
“······.”
정작 말을 내뱉은 주베르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으나 그 말을 받아들여야 하는 당사자들에게는 천둥과도 같은 선언이었다.
홀 안에 끔찍한 침묵이 내려앉고 있었다.
“이, 이······이게.”
이제야 정신을 차린 던칸은 이럴 리가 없다는 듯 상처 입은 손을 허우적거렸고.
“······!”
결투의 당사자인 알리시아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그녀의 하얀 피부가 창백한 푸른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모두가 지금 일어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당황하고 있을 때.
짝- 짝- 짝-
침묵이 가득한 홀 안으로 누군가의 손뼉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기권이라!”
엔데르 하이날.
“그럼 결투는 끝이 났군!”
하이날 가문의 두 번째 계승자인 남자가 드디어 숨기고 있던 이빨을 드러내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모두의 침묵 속에서 홀로 당당히 외치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고발자이자 찬탈자였으며.
또한, 결투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4개의 패를 들고 있던 사람이기도 했다.
“······젠장.”
고약한 상황에 말려든 것을 눈치챈 요제프는 재빨리 손짓으로 보르단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제 신 앞에서 인정해주십시오. 사제님!”
주베르가 과장된 몸짓으로 알리시아에게 한 인사.
그것은 작별 인사였다.
“오직 저만이 유일하고도 정당한 하이날이라는 것을!”
이 결투는 처음부터 조작되었다.
명예를 모르는 자들에 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