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35
주어야 할 것과 받아야 할 것들 (1)
눈을 떠 보니 낯선 천장이었다.
“죽겠네······.”
사실 어제부터 보아 온 천장이었다.
그러나 천장에 박혀있는 화려한 무늬들은 아무리 보아도 낯설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뒷골목에서 온 소년에게 있어 귀족들의 미적 감각은 아직 따라가기 어려운 영역에 있었다.
“으아······.”
옆에 놓여있는 주전자를 향해 손을 들어 올리려 했던 블라드였지만 마치 심한 몸살이라도 걸린 듯 뼈마디가 쑤셔오기 시작했다.
이렇다 할 중요 외상은 없었지만, 온몸이 욱신거린다는 표현이 정확히 들어맞는 것이 지금 블라드의 몸 상태였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온 힘을 다해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껍질을 부숴냈으니.
“······고트.”
“왜 대장? 어디가 불편해? 누구 불러줄까?”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졸고 있던 고트가 블라드의 부름에 퍼뜩 깨서는 과도한 반응으로 물어보기 시작했다.
“······”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고트의 반응이 영 마뜩잖은 블라드였으나 이제는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그가 왜 자신의 옆에 있는지 잘 알고 있기도 했으니까.
“물 좀 줘라.”
“알았어! 응?”
블라드는 주전자에 물이 없다며 부리나케 방을 나서는 고트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도 저 정도면 데리고 있을 만하지.
의도가 투명하고 목적이 확실하니 믿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옆에 두고 미리 조심은 할 수 있는 녀석이었다.
살다 보면 앞에서는 웃으면서 다가와도 등 뒤에는 시퍼런 칼날을 감추고 있는 녀석들이 수두룩했다.
그런 녀석들에게 대비도 못 한 채 찔리느니 차라리 고트 같은 녀석을 옆에 두고 있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일을 잘하기도 하고.”
전직 용병 출신이면서도 바예지드 가문의 마구간지기로서의 할 일을 다 한다는 것은 적어도 고트라는 녀석이 어디 가서 굶어 죽을 정도로 무능한 녀석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이래저래 도움받은 것도 있으니 어느 정도는 자신에게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정도야 주워 먹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
자신에게 달라붙으려 하는 고트의 심정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찰칵-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문이 열리고 고트가 들어왔다.
“물 좀 따라봐.”
“······.”
멍한 눈빛으로 여전히 낯선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블라드는 자연스럽게 고트에게 물을 따르라고 지시했다.
자신을 대장이라 부르고 싶다면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것이었으니까.
또르르륵-
고트가 조용히 컵에 물을 따르는 소리를 들으며 블라드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바람 빠지는 소리로 비명을 대신했다.
“흐으으······”
“잘 쉬고 있었나?”
자신의 옆에서 아무 말 없이 물을 따르고 있던 사람.
“기력을 찾은 것 같아 보여 다행이로군.”
평소와는 다르게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물을 따르고 있는 남자는 자신이 신의를 다하기로 맹세한 대상인 요제프였다.
블라드는 자신이 큰 불경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급히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죄, 죄송······.”
“됐다. 편히 있어라.”
몸이 쑤시든 말든 서둘러 요제프가 건네준 물컵을 받은 블라드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물을 들이마셨다.
미처 넘기지 못한 물들이 이불 위로 떨어져 내렸다.
“어디 특별히 아픈 곳이 있나?”
“······없습니다.”
그래도 찬 기운이 들어와 정신을 차린 모양인지 블라드는 그동안 자야르에게 숱하게 얻어맞으며 배워왔던 예의 바른 자세로 대답했다.
“그래.”
요제프는 방금까지만 해도 고트가 앉아 있던 의자에 앉아 블라드를 바라보았다.
“고마웠다. 솔직히 말해 이 정도까지 해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거든.”
그 날 블라드가 보였던 선전을 생각하며 요제프는 진심을 담아 자신의 종자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요제프의 말에 진심이 담겨 있는 것을 알아챈 블라드는 괜스레 자신의 양 주먹을 움켜잡아보며 그날의 느낌을 되살려보았다.
희미하지만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었다.
향기가 다 빠져버린 말린 꽃과도 같은 기억이었으나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리게 만드는 그런 기억이었다.
“그런데 결투는······.”
평범한 귀족과 종자의 관계였다면 지금 같은 질문은 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블라드는 자신이 이 정도 선까지는 와도 되리라 판단했다.
자신은 요제프라는 큰 배에 탄 몇 안 되는 선원 중 하나였으며 그가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쇼아라의 블라드는 요제프에게 허락받은 사람이었다.
“그렇지. 결투. 그것을 말해줘야겠군.”
이곳에서 눈을 떴을 때부터 블라드는 결투에 관한 결과에 대해 궁금해했다.
처량하게 눈물짓던 물빛 머리의 여인은 어찌 되었을까.
십 분만 버텨달라 했던 요제프는 자신이 원하던 것을 이루었을까.
궁금한 것이 많았던 블라드였으나 옆에서 수발을 드는 고트는 고작 마구간지기였을 뿐이며 가끔씩 드나드는 사람이라고는 상처를 돌봐주러 오는 하녀들뿐이었기에 지금까지 마땅히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자네는 결투의 당사자니 당연히 결과에 대해 자세히 들을만한 자격이 있지.”
그리고 지금 블라드의 눈앞에는 결투에 대한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요제프는 블라드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결투는 유보(留保)가 되었어.”
“유보라면······.”
“결과를 내지 못한 채 미뤄졌다는 이야기지.”
요제프는 블라드에게 신성한 결투의 규칙과 소드마스터의 규율이 얽혀 꽤 복잡한 상황이 되었다 말해주었다.
블라드는 요제프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드마스터의 규율.
비록 결투의 제대로 된 결과를 말해주지는 못했으나 소드마스터의 규율이 무엇인지 확실히 설명해 준 목소리가 있었다.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소드마스터의 규율에 따라 맹세를 해야 하지. 블라드, 만약 너도 일이 잘 풀린다면 그 맹세를 할 날이 올 것이다.”
요제프의 입에서 기사가 되기 위한 기본적인 절차가 흘러나오자 블라드는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간지러운 것이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기사.
그저 입 밖으로 내뱉기만 해도 특별한 느낌을 주는 그 단어를 언제나 동경해왔었다.
그리고 소년은 이제 기사가 되기 위한 길에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꿈이 목표가 되는 순간이었다.
“몸조리 잘하고 있으면 좋겠군. 너무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면 곤란하거든.”
“지금 당장이라도······.”
“그럴 수는 없지.”
요제프는 자리에 일어서며 말했다.
“나는 아껴야 할 것은 아낄 줄 아는 사람이니까.”
요제프는 블라드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이 일에 대해서는 포상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편히 쉬도록 해라.”
결과에 대한 설명과 진심을 담은 한마디와 그리고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겠다는 약속까지.
이곳에 와 오직 해야 할 말만을 한 요제프가 조용히 문밖으로 나서고 있었다.
“······.”
블라드는 가만히 요제프가 했던 말들을 곱씹은 채로 고개를 돌려 침대 옆에 놓아두었던 검 한 자루를 바라보았다.
이제 막 지려 하는 태양의 붉은 빛이 창문을 타고 들어와 장식 없는 검에 매달리고 있었다.
“포상이라.”
해야 할 것을 했으니 마땅한 것을 주겠다는 요제프의 말은 사실 언제나 통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소년이 살아왔던 뒷골목에서는 말이다.
보상이라는 것은 노력한다고 해서 언제나 따라오는 것은 아니었으며 가끔은 결과가 있음에도 주어지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 운이 좋았다.
요제프라는 사람을 만난 것은.
블라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쇼아라를 빠져나왔을 때부터 자신과 함께한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실력 없는 늙은 대장장이가 온 힘을 다해 마지막으로 만들어 낸 검.
노력이나 결과가 어찌 되었건 언제나 기댈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
“저 그때 괜찮게 했죠?”
블라드의 질문에 검이 울고 있었다.
이번에는 장식 없는 검이 아닌 영혼 속 목소리가 내는 소리였다.
※※※※
황혼의 붉은 색으로 물들어가는 텅 빈 복도.
아무도 걷지 않을 것만 같은 복도를 따라 걷는 남자가 있었다.
명예를 모르는 기사.
샤자드 가문의 주베르는 하이날 가문에서의 모든 임무를 마친 채 떠나려 하고 있었다.
실패했다면 실패했다 할 수 있는 임무였으나 자신의 주군도 지금의 상황을 들으면 이해할 것이었다.
파도가 친다 해서 바다를 원망할 수 없으며 바람이 분다 해서 하늘을 원망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날의 일은 아무리 주베르라 할지라도 어찌 손 쓸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일이었다.
일종의 재해(災害)였다.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군.’
그 상황이 그렇게 맞아떨어지다니.
생각하면 할수록 어이가 없었던 결투장에서의 일을 기억하며 주베르는 혀로 마른 입술을 축였다.
그렇게 복도를 걸으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어허······인사가 과격하시네.”
복도 끝 그림자 속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검 하나가 있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될 텐데.”
“나는 굳이 이렇게까지 하고 싶어서 말이야.”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애꾸눈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바예지드의 기사 자야르.
그가 안대로 가려진 왼쪽 눈에 분노를 감춘 채 어둠 속에서 명예를 모르는 기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기다리고 계셨소? 할 일이 없으신가.”
“오늘 휴가야.”
“휴가를 이런 식으로 쓰기에는 아깝지 않소?”
목에 차가운 검날이 와닿아 있었음에도 주베르는 얼굴에 미소를 포기하지 않았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미소 지으며 죽어갈 남자 같았다.
“휴가 때는 언제나 밀린 일들을 해야 하는 법이지.”
그러나 성격이 꼬인 것으로 본다면 자야르 또한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거짓된 웃음과 냉막한 인상 속에서 두 명의 기사가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유감이 있으신 것은 알겠지만 나 또한 어쩔 수 없었소.”
“어쩔 수 없는 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주베르의 목을 억누르고 있는 자야르의 검 끝에서부터 새빨간 피 한 방울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흘러내리는 피 한 방울이 복도 바닥에 깔린 붉은 융단으로 스며들었다.
“나를 죽이시려고?”
“······.”
목에서 피가 흐르고 있음에도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은 주베르의 물음에 자야르는 그저 침묵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섭섭하구만. 서로가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이 정도는 이해해 주셔야지.”
입으로는 섭섭하다 말하고 있었지만, 주베르는 손가락 두 개를 모아 자야르의 검 끝을 살며시 밀어내고 있었다.
희미한 빛이 그의 손가락 끝에 어려 있었다.
“뭐 어쩌겠소. 주인이 짖으라면 짖어야지.”
기사에게 중요한 것은 주군의 명령이 첫 번째요 자신의 명예가 두 번째니.
그렇기에 명예를 모르는 기사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오직 단 하나. 주군의 명령뿐이었다.
“당신도 주군이 물라고 할 때만 무는 개 아니오. 남들은 우리를 검이라 표현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지.”
자야르는 자신의 앞에서 이죽거리는 남자에게 뭐라 대답하지 않았다.
퍼억-!
“크윽!”
대신 분노를 담은 주먹을 날렸을 뿐이었다.
주베르의 안면에서 선홍빛 피가 튀어 올랐다.
“우리 주군은 성격이 좋으셔서 살짝 무는 정도는 괜찮아.”
“크으······상팔자 시구만.”
엉망이 된 입안에서 비릿한 것을 뱉어내며 주베르가 웃음 지었다.
“이 정도면?”
“한 방 더.”
주베르의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날카롭게 세운 자야르의 무릎이 주베르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쿨럭- 쿨럭-.”
“동종업계니 이 정도는 이해해 주겠지?”
“쿨럭- 음. 실로······적당하오.”
얻어맞고 있음에도 여전히 여유로운 주베르의 모습을 보며 자야르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날 결투장에서 명예를 모르는 기사는 알리시아를 속였으며 요제프를 농락했다.
주군의 명예를 농락당한 자야르로서는 도저히 넘어갈 수만은 없는 문제였다.
그러나 눈앞의 기사를 죽이기에는 자신으로서는 아니, 요제프라도 쉽게 결정할 수는 없는 문제였다.
이미 관계라 할 것도 없이 틀어질 대로 틀어진 사이였으나 이곳에서 자신들은 그저 초청받아 온 손님들일 뿐이었으며.
게다가 어느 가문의 기사를 죽인다는 행위는 곧 선전포고와 다름없는 행동이었으니.
비록 샤자드와의 관계는 파탄이 났으나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지 결정하는 것은 요제프의 권한을 벗어나는 영역이었다.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단 한 사람. 바예지드 가문의 주인인 페테르 바예지드 뿐이었다.
“다음에 꼭 봤으면 좋겠군.”
“뭐, 조만간 보게 되지 않겠나 싶긴 한데.”
그런 사정들을 알고 있던 두 기사는 약소하게나마 내줘야 할 것과 받아야 할 것을 서로 주고받았다.
“제국이 헐거워지고 뜻에 따라 사람들이 뭉치는 시기 아닙니까.”
비록 얻어맞았음에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미소 짓는 주베르를 보며 자야르조차도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다음에 또 봅시다.”
머리 위로 손을 휘적거리며 걸어가는 주베르의 뒷모습을 보며 자야르는 조용히 검을 집어넣었다.
아마 주베르의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런 시기가 오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검이 필요한 시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