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39
휴가 같지 않은 휴가 (2)
달 밝은 밤. 아무도 없는 공터.
그곳에서 홀로 구슬땀을 흘리는 소년이 있었다.
“흡!”
소년은 노력하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어떤 종자들보다도 더 지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이면서.
“허억, 허억.”
소년의 턱 끝에 맺힌 한 방울의 땀이 오늘의 달빛을 머금었다.
그러나 소년은 땀방울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서둘러 손으로 닦아낼 뿐이었다.
노력이란 단어는 멋지고 아름다우며 또한 빛나는 것이었지만 소년은 그것을 밖으로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형편없이 굴러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어쩌면 약해 보일지 모르는 그런 모습들을 말이다.
“흐읍!”
예전 뒷골목 작은 공터에서부터 지금 종자들에게 빼앗은 수련장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약한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했던 소년은 언제나 그래왔듯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허리가 좀 더 딱- 했으면 좋겠는데.]“······허리를 펴라? 곧추세워라?”
그래도 예전과는 다르게 조금이나마 해석할 수 있는 목소리의 조언을 들으며 블라드는 자세를 바르게 교정했다.
목소리와 자야르는 소년에게 빨리 돌아가는 길 따위는 없다고 말했었다.
오직 반복으로 얻어낸 숙달과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만이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
“후우······.”
온 힘을 다해 내일의 가능성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 같은 일인가.
소년에게 있어서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했던 뒷골목에서의 삶과 비교한다면 지금은 천국과도 같은 것이었다.
블라드는 지금이 자신의 황금기와도 같은 시기라는 것을 훌륭히 자각하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벌써요?”
[하루 할당량은 이미 채웠다.]목소리는 그런 소년의 심정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소년이 천천히 불탈 수 있도록 조절을 하는 데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너무 빨리 불타올라 스스로를 소진하지 않도록 말이다.
[마지막 몸풀기가 제일 중요한 거다.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지금까지 노력했던 것들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것이니까.]“알았다구요.”
블라드는 목소리의 조언에 따라 자야르가 알려준 마무리 자세를 취하며 근육을 이완시켰다.
어제 자신의 잘못으로 자야르와 수련하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는 노력만큼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언제나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법이었으니까.
[들어가자.]“흠.”
땀으로 온몸을 흠뻑 적신 소년은 점점 차가워지는 밤공기를 피해 저택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
그러나 오늘의 밤에는 오직 소년만이 깨어 있던 것은 아니었다.
비록 멀리서 바라보고 있어 소년의 말소리까지는 듣지 못했지만, 애꾸눈의 기사 또한 아무도 없는 공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을 키우는 것이 가장 어렵다.
어떤 것들은 그저 사랑만 주면 무럭무럭 자라고는 했지만, 사람에게는 따끔한 질책도 필요한 것이었기에.
그래야만 엇나가지 않았으니까.
소년이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나서야 애꾸눈의 기사는 자리를 떴다.
각자의 자리가 어색하기만 한 두 남자가 많은 고민을 품은 밤이었다.
※※※※
“좋다.”
빛이 환히 비치는 집무실 안에서 요제프는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조금은 불경한 생각이기는 했지만 블라드는 아무리 빛이 비쳐도 사라지지 않는 요제프의 눈그늘이 안쓰럽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데어마르에서 돌아온 직후 며칠 앓기도 했었으니까.
“안 그래도 휴가를 줄 생각이긴 했었다. 게다가 알아서 갈 곳까지 만들어왔으니 보내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
비록 요제프에게서 허락을 받아냈으나 블라드는 움츠러든 모습으로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계속 눈을 맞추려 노력하고 있음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애꾸눈의 기사가 있었기 때문에.
“······.”
요제프는 둘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분위기를 눈치채고 있었으나 딱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이 이곳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존중해줘야 하는 관계성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니까.
“······아무리 휴가라 할지라도 기사는 언제나 손에서 검을 놓으면 안 되는 법이다.”
미묘하게 이어진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애꾸눈의 기사였다.
비록 시선은 미묘하게 딴 곳으로 돌리고 있었지만 자야르는 분명 소년을 향해 말하고 있었다.
“돌아왔을 때 두고 보겠다.”
훈련이라는 것은 하루를 안 하면 본인이 알고 일주일을 하지 않으면 남들도 아는 법이었다.
자야르는 블라드가 굳이 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마땅히 떠오르는 말이 없기도 했다.
그는 종자를 포함해 사람 자체를 키워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알겠습니다.”
이제야 자신을 상대해주는 자야르를 향해 블라드는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도 말에 대해서는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다. 너의 문제는 칸노르 가문에서도 해결하기 힘든 문제일테니까.”
“······네.”
그러나 이어지는 요제프의 말에 블라드는 다시 기대감이 꺾일 수밖에 없었다.
“대충 말들이 어느 정도 선까지 너를 거부하는지 정도만 파악하고 와라. 그 정도가 덜한 녀석들이 있다면 어느 지역에서 온 말들인지 알아 오도록 하고.”
요제프는 블라드가 말을 타지 못하는 것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그것이 소년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매우 특수한 사례이기는 했지만, 간혹 블라드의 경우와 같이 말들이 사람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긴 했었다.
피 냄새가 너무 짙게 밴 사람이라거나 특수한 저주에 걸려 있는 경우.
또는 너무 강한 기세를 가진 기사의 경우가 그랬다.
‘······애초에 강한 기세를 가진 기사들은 본인들이 알아서 조절하고는 하지만 말이지.’
일단, 소년의 경우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알리시아의 일과 같이 어디로 튀어 나갈지 모르는 녀석이었으니까.
“가봐라. 일주일 후에 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올 때 선물은 필요 없다.”
“······네.”
선물을 가져오라는 것인지 아니란 것인지 모호한 요제프의 말을 들으며 블라드는 고민에 빠진 얼굴로 집무실을 나섰다.
“칸노르 가문이라······.”
블라드가 나간 문을 바라보며 요제프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잘하면 서로 만날 수도 있겠군요.”
“워낙 둘 다 눈에 띄는 인물들이니.”
블라드의 행선지를 안 요제프는 그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만약의 가능성을 생각하며 입술을 찌푸렸다.
“뭐 급하면 알아서 쓰겠지.”
“눈독 들이지 않을까요?”
자야르의 물음에 요제프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서류에 고개를 박을 뿐이었다.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와서 달라고 할 사람이다. 뒤에서 부리는 수작 같은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니.”
자야르는 요제프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마 요제프의 말이 맞을 것이다.
세상에서 서로를 가장 잘 아는 둘이었으니까.
※※※※
“내가 생각한 것이 시기가 아주 좋게 들어왔구나.”
햇살조차 오렌지빛 분위기가 감도는 옥사나의 응접실에서 블라드는 또다시 빳빳이 서 있었다.
주위를 이리저리 거니는 하녀들이 쉴새 없이 블라드에게 옷을 걸쳐보는 중이었다.
이곳에 올 때마다 겪는 광경을 보며 블라드는 지금은 그저 멀뚱히 서 있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요제프의 집무실을 나선 블라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곧장 하녀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옥사나 백작 부인의 하녀라 자신을 소개했기에 마땅한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꽉 잡힌 베개처럼 끌려왔을 뿐이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지금 이런 모습이었다.
“색깔이 아주 잘 맞네. 가죽 갑옷이랑 같이 입힐 생각으로 맞춘 건데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구나.”
“······감사합니다.”
옥사나는 소년의 어깨에 두른 검은색 망토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블라드는 옥사나의 미소를 보며 조심스레 망토를 만져보았다.
따뜻한 울 재질로 만든 망토는 야영할 때 침낭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충분한 보온성을 가지고 있었다.
보기에만 멋진 것이 아니라 충분한 실용성도 갖추도록 옥사나가 신경을 썼기 때문일것이다.
“확실히 골격이 건장하니 무엇을 둘러도 어울리는구나. 입히는 보람이 있어.”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잘 들어맞는 색깔의 배합을 보면서 옥사나는 가볍게 손뼉을 치고 있었다.
소년의 화려한 금발은 패션의 완성도를 높이는 훌륭한 방점이었다.
“칸노르 가문으로 휴가를 간다고?”
“그렇습니다.”
분명 방금 요제프에게 휴가를 허락받고 왔는데 어떻게 알아낸 것일까.
저택 안의 모든 일을 총괄하는 백작 부인의 권력을 아직 실감하지 못한 소년은 그저 앞으로 행동거지를 좀 더 똑바로 해야겠다고만 생각할 뿐이었다.
“남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갈 때는 훨씬 단정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법이란다. 그것이 예의이고 부모를 욕 먹이지 않는 행동이지.”
“······.”
소년은 욕 먹일 부모가 없었다.
“그러니 나를 욕 먹이면 안 된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옥사나는 비록 소년의 어머니는 아니었지만 그만한 책임을 져주겠노라 말하고 있었다.
그녀가 블라드에게 해주는 지원은 이미 후원의 영역을 넘어서고 있었다.
“데어마르에서의 일은 정말 고맙구나.”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니, 그것보다 더한 일이었지.”
옥사나는 단순히 블라드라는 소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눈앞의 소년이 자신의 아들에게 있어 큰 도움을 주기 때문에 그런 것이기도 할 것이다.
한낱 종자인 자신에게 이렇게 해줄 정도인데 피를 나눈 아들인 요제프는 얼마나 끔찍이 생각할까.
“그러면 이번 휴가가 끝난 다음에 가정교사를 붙여줘야 하겠구나. 그런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할 테니까. 그렇지?”
“······죄송합니다.”
옥사나가 비록 지금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하고 있었지만, 알리시아와의 일을 들은 후 충격에 잠시 비틀거렸다는 것을 알았다면 블라드는 아마 죄송스러움에 무릎을 꿇고 있었을 것이다.
“네가 목표하는 기사라는 작위는 준귀족에 해당하는 위치이기도 하니 그에 맞는 행동을 배울 필요가 있어.”
“알겠습니다.”
가능성이 있으나 아직 모자란 어린 것들을 본다면 누구나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옥사나의 마음은 다양한 형태를 통해 소년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좋다. 이제 가보거라.”
“감사합니다. 옥사나 님.”
응접실에 들어온지 한참 만에야 나가는 것을 허락받은 블라드가 딱딱한 걸음걸이로 그녀의 응접실을 벗어나려는 찰나.
“그리고 갈 때는 옆에 놓아둔 것들도 가져가도록 하렴.”
블라드는 옥사나의 말에 옆에 놓아둔 바구니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것은······.”
“레몬이란다. 이번에 요제프가 가져온 것들인데.”
옥사나는 레몬을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소년을 향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남의 집에 갈 때 빈손으로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란다.”
“······세심한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무언가를 뺏으려는 자들은 많이 보아왔지만 무언가를 안겨주려는 사람에게는 면역이 없던 블라드.
그렇기에 그저 감사하다 말하며 양손 가득 과일바구니를 들고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후······.”
언제나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아 가는 옥사나의 방을 나오며 블라드는 자그마한 한숨을 내쉬었다.
블라드는 천천히 복도를 걸어가며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에 멋들어진 망토. 그리고 양손에 가득 든 과일바구니까지.
어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