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4
창녀들의 기사 (1)
사고는 경고 없이.
파멸은 예고 없이.
인생에 깃드는 어두운 것들은 언제나 그림자에 숨어 우리의 뒤로 소리 없이 다가오는 법이다.
마치 지금처럼.
“어이 애송이. 너희 보스는 어디 계시냐?”
초를 팔고 있던 블라드의 앞으로 기이한 형상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거대했으나 왼팔은 기괴하게 구부러진 모습.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할 것 대신 이질적인 갈고리가 달린 사람의 모습이었다.
말을 건 상대가 누군지 알아본 블라드는 침을 꿀꺽 삼키며 당황하고 말았으나.
“······나는 초 파는 사람이라 그것까지는 모르겠는데요.”
특유의 담대함으로 상황을 파악하고는 자신이 해야 할 대답을 내뱉었다.
쾅-!
그 말과 동시에 외팔이 잭의 옆에 있던 부하 중 하나가 블라드가 앉아있던 책상을 강하게 내려쳤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어디 보스가 말씀하시는데!”
“······.”
사내의 고함과 함께 흩날리는 색색의 장미초들.
갑작스럽게 펼쳐진 험악한 분위기에 장미의 미소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굳어지는 분위기.
찾아드는 적막감.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붉은 머리의 소녀가 그 모습을 보고는 4층으로 서둘러 내달렸다.
“아이고······.”
그러나 모두가 굳어 있는 이 상황에서도 천연덕스럽게 움직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큰 사내들의 위압감 속에서도 말이다.
“초가 다 떨어져 버렸네. 이거 비싼건데.”
“이 미친 새끼가······.”
자신의 경고는 귓등으로 들은 채 태연하게 바닥에 떨어진 초를 주워 담는 블라드를 보며 외팔이 잭의 부하가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러나 블라드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툭툭.
부들거리며 간신히 화를 참고 있는 남자의 발밑을 블라드가 툭툭 건들며 말했다.
“형 씨.발 좀 치워봐요.”
“······이 개새끼가!”
교묘하게 도발하는 블라드의 말에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듯 발밑의 소년을 걷어차려는 남자.
“······!”
싸움은 전쟁의 축소판이다.
의도한 전장, 계획한 상황. 그리고 과감한 결단만이 승리를 약속하게 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블라드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누가 봐도 위협적인 상황이었으나 블라드는 오히려 그 모습을 기다렸다는 듯 번개같이 몽둥이를 빼 들어 남자의 디딤발목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었다.
빠악-!
“컥!”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비명을 내지르는 사내.
예상치 못한 공격에 중심을 잃어 잠시 흔들린 순간.
“······!”
기회를 포착한 푸른 눈동자의 기세가 사나워졌다.
조금의 낭비도 없이 동물적인 움직임으로 일어선 블라드.
퍽-!
재빨리 상체를 핀 블라드가 들고 있던 몽둥이로 신속하게 그의 턱을 후려치자 새하얀 이빨들이 흐트러져 튀어나왔다.
머릿속으로 계획한 행동이었다.
“흡!”
그와 동시에 블라드는 날렵한 뒤돌려차기로 가슴팍을 후려치며 사내에게 타격을 줌과 동시에 안전하게 거리를 벌렸다.
한 번의 움직임으로 두 개의 이득을 가져간 일타이득의 몸놀림.
“여기가 니네 집 안방이야!”
확실히 우위를 점한 블라드는 가슴 속에서부터 시작된 말을 외치며 들고 있던 몽둥이를 집어 던져 정확히.
빠악-!
이미 허우적대며 뒤로 넘어져 가는 사내의 이마에 꽂아버렸다.
과감한 행동이었다.
“크악!”
쾅-!
눈 깜짝할 새 블라드가 내지른 연타에 썩은 나무처럼 힘없이 쓰러지는 덩치 큰 사내.
“······뭐야.”
동료가 쓰러졌음에도 외팔이 잭의 부하들은 입을 크게 벌리고만 있을 뿐 아무도 쉬이 움직이지 못했다.
허를 찌른 일격.
그만큼 소년이 휘두른 폭력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후욱······후욱······.”
“끄으으으······.”
그리하여 둘 중 서 있는 자는 사나운 눈빛을 흘리며 호흡을 조절하는 금발의 소년뿐이었다.
승자는 위에 패자는 밑에.
뒷골목의 변하지 않는 법칙 중 하나를 재현하면서.
“······.”
“······.”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넋 놓고 있던 외팔이 잭의 부하들.
시간만으로 따진다면 과장을 보태 호흡 한 번 할 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새끼가!”
“누구 앞에서 감히!”
이제야 상황을 파악한 덩치들은 불같이 화를 내며 블라드에게 달려들려 하였으나.
“그만.”
중후한 목소리와 함께 말 잘 듣는 개처럼 멈춰서고 말았다.
“······이놈 진짜 맘에 드는데.”
자신의 부하가 주먹 한 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한 채 넘어졌으나 외팔이 잭은 오히려 즐겁다는 박수를 쳐댔다.
비록 손바닥과 차가운 갈고리가 만나는 작은 소리뿐이긴 했지만 말이다.
“팔이 한쪽밖에 없어서 소리가 나지 않는 건 이해해달라고.”
“······나는 장애인 차별 안 해요.”
“크하하하! 이 미친 새끼!”
감히 자신의 앞에서도 턱을 당당히 든 어린 조직원을 보며 외팔이 잭은 크게 웃음지었다.
“너는 나중에 따로 한번 보자.”
“······.”
블라드는 여기까지가 자신에게 허락된 마지막 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외팔이 잭이 너그러이 허용해준 이 선을 넘는 순간 그의 권위를 무시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될 경우 어찌 될 것인지까지도.
“돈벌레! 여기는 무슨 일인가!”
다행히 그 순간 계단에서 내려오는 덩치 큰 남자가 있었다.
뒤를 따르는 부하들과 함께 마치 기사처럼 번쩍이는 흉갑을 입은 채 걸어 내려오는 반백의 남자.
창녀들의 기사 호르헤.
호르헤의 발걸음에서 평소와는 다르게 누군가를 압도하는 존재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미리 기별했으면 자네 고기까지 구워놨을 텐데!”
보스와 보스.
조직과 조직이 맞닥뜨리는 일촉즉발의 상황.
장미의 미소를 지키는 기사가 갑작스러운 불청객을 맞이하며 사나운 웃음을 지었다.
“아니 뭐······우리가 그렇게 내밀하게 왕래하던 사이도 아니고 말이지.”
갈고리로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하는 외팔이 잭.
입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각자의 검을 붙잡고 대화를 나누는 두 명의 보스들.
장미의 미소에 방문한 손님들은 옆에 있는 헐벗은 여자들보다도 지금의 광경이 더 중요하다는 듯 숨을 죽이며 바라보고 있었다.
“손님들도 있으니 일단 올라오는 게 어떨지?”
“고기는 있소?”
“마르셀라는 손님 대접을 섭섭하게 하지 않는 여자지.”
“뭐 그렇다면.”
호르헤 조직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4층으로 향하면서도 외팔이 잭의 행동은 대담하기 그지없었다.
도시 쇼아라의 뒷골목을 지배하는 자의 배포란 그런 것이었다.
“저 꼬맹이 좀 맘에 드는데?”
외팔이 잭의 고갯짓에 호르헤는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블라드를 바라보았다.
소년의 발치에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잭의 부하가 널부러져 있었다.
“우리 조직 유망주니까.”
“내가 작년에 저놈 대신 누굴 데려갔었지? 기억도 안 나는 걸 보니 일찍 뒤져버린 모양인데.”
호르헤는 외팔이 잭을 데리고 올라가면서 블라드에게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초팔이이자 장미의 미소라는 성의 문지기였던 소년의 임무가 훌륭히 달성되었다는 표시였다.
“······뒤질 뻔했네.”
호르헤의 신호를 보고 그제야 긴장을 푼 블라드.
천천히 계단을 타고 오르는 두 조직의 수장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블라드는 쓰러져 있는 덩치를 툭툭 찼다.
“형씨. 2층 초는 20실버고 3층 초는 30실버야. 당신이 부러트린 값은 내고 가라고.”
“끄으으응······.”
“자는 척 하지 마. 한 번 더 몽둥이 집어 던지기 전에.”
쓰러져 있던 외팔이 잭의 수하는 그 소리를 듣고는 그저 가느다란 신음소리로 대답할 뿐이었다.
※※※※
“어머 블라드. 여기 상처 난 것 좀 봐.”
“이런 건 미리미리 치료해놔야 해.”
“맞아. 덧나면 큰일 난다고. 마침 나한테 상처에 좋은 약이 있는데······.”
짧은 전투였지만 혹시나 모를 부상을 점검하고 있던 블라드.
“······갑자기 왜들 이래.”
그런 블라드의 곁으로 여자들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어머. 얘 말하는 것 좀 봐. 우리가 얼마나 너를 걱정했는데.”
“그동안 먹여주고 챙겨준 게 얼마인데 그렇게 말하면 섭섭해 블라드.”
“······.”
되도 않는 연기를 하며 블라드의 곁으로 모여드는 창녀들.
몸을 팔아 먹고사는 그녀들로서는 힘 좀 쓰는 사내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장사가 훨씬 수월해지는 법이었다.
거기다 그 사내가 젊다 못해 어려 유망하고.
스윽-
“꺄아-! 얘 근육 좀 봐!”
“언제 이렇게 컸대? 사내가 다 됐네!”
“다들 꺼져 제발.”
누구나 선호하는 금발과 푸른 눈을 지닌 미남자라면 더욱더.
방금의 싸움으로 자신의 가치를 확실하게 증명해낸 블라드는 창녀들이 보기에 놓치기 힘든 먹잇감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녀들을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쫒아내는 블라드였으나 특유의 반항적인 모습까지도 창녀들에게는 매력적인 요소일 뿐이었다.
블라드가 말은 험하게 해도 여자에게 친절하다는 것은 이미 누구 때문에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으니까.
“비켜! 비키라니까!”
“이 년이! 선배들을 뭘로 알고.”
“선배는 무슨! 남의 거 뺏으려는 불여시들 주제에!”
그런 창녀들을 헤치며 다가오는 소녀가 있었다.
“미쳤어! 미쳤어!”
유혹의 눈길을 보내는 그녀들과는 다르게 제미나는 블라드를 보자마자 등짝을 찰싹찰싹 때리기 시작했다.
“너는 또 왜 지랄이야!”
“지랄은 네가 먼저 했지! 네가 뭔데 덩치한테 들이밀어!”
“할만하니까 했지!”
“할만하기는! 체급 차이가 얼만데! 너 병신이야? 눈깔 삐었어?”
자신을 때리고 윽박지르는 제미나였으나 블라드는 인상만 찌푸릴 뿐 딱히 위협적인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모든 행동이 자신을 걱정하기에 나오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설거지나 하지. 여긴 왜 왔어?”
“······병신 새끼.”
다만 험한 곳에서 자라 험한 말이 튀어나오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호르헤가 오래. 이 병신 새끼야.”
“욕하지 마라.”
“호르헤가 오래. 이 병신 새끼야.”
“······.”
자신의 잘못된 반응으로 인해 제미나가 단단히 꼬인 것을 알았지만 블라드는 일단 일어서기로 했다.
제미나의 토라짐보다는 호르헤의 부름이 더 중요했으니까.
장미의 미소를 관통하는 하나의 계단.
그곳을 통해 올라가려는 블라드의 눈으로 계단을 내려오는 외팔이 잭과 그의 부하들이 보였다.
“이봐 유망주!”
“······네.”
비록 자신이 모시는 보스는 아니었지만 블라드는 그에게 예의를 갖췄다.
“너 마음에 들었어. 나중에 일자리 잃으면 내 밑으로 와라.”
외팔이 잭은 자신의 갈고리로 블라드의 머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여기도 복리후생은 좋은데요. 밥도 주고 돈도 주고. 잠도 재워주고.”
“흐흐흐! 그 정도는 우리도 해주지.”
웃으며 지나가는 외팔이 잭을 배웅하며 블라드는 고개를 숙였다.
“아 참!”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돌아선 외팔이 잭이 품 안에서 무언가를 튕겨 날려 보냈다.
팅-
반짝이는 것이었다.
“이건······.”
“내 부하가 초를 부쉈지? 그거 값이다.”
블라드는 멍하니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금화였다.
“······너무 많습니다.”
“나한테 오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주마. 나 돈벌레야.”
블라드와의 짧은 대화가 끝나자마자 외팔이 잭은 뒤도 보지 않은 채 손을 흔들며 외쳤다.
“잘 먹다 갑니다! 호르헤!”
그 말과 함께 낄낄거리며 장미의 미소를 나서는 잭의 부하들.
마치 폭풍과도 같이 들이닥쳐 썰물과도 같이 빠져나간 그들.
그들은 장미의 미소에 큰 흔적을 남기며 사라졌다.
“······.”
외팔이 잭이 가게를 나간 것을 확인한 블라드는 금화를 품 안에 고이 넣고는 서둘러 계단을 올라갔다.
호르헤가 자리 잡고 있는 4층.
올라간 그곳에는 호르헤 뿐만 아니라 버레이 그리고 다른 부하들까지 정렬해 있었다.
언제나 넉넉한 웃음과 기름진 음식 냄새가 나던 4층이었으나 지금만큼은 그저 숨 막히는 적막감만이 감돌고 있었다.
“호르헤. 저 왔어요.”
“어. 앉아라.”
외팔이 잭이 얼마 먹지 않아서인지 호르헤의 앞에는 마르셀라가 구운 고기들이 가득했다.
“잭이 뭐래요?”
“······.”
호르헤는 블라드의 말에 대답을 하는 대신 고기를 썰고 있던 칼을 내주었다.
“이건 뭐예요? 나 이제 칼 주는 거예요?”
“그래. 너 가져. 방금 썰어보니까 괜찮더라.”
블라드에게는 아직 칼이 없었다.
호르헤 패밀리의 막내인 블라드는 아직 칼을 쥘 자격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와······.”
비록 대장간에 걸려 있는 검만큼 멋진 것은 아니었지만 호르헤가 건네준 칼은 여태껏 블라드가 쥔 그 어떤 날붙이보다도 긴 것이었다.
“원래 주려고 했는데 상황상 좀 일찍 건네줬다.”
“고마워요!”
호르헤가 건네준 단검은 단순히 실용적인 용도로 쓰라고 준 것이 아니었다.
보스가 직접 건네준 칼.
그것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을 뿐만 아니라 보스의 신임까지도 얻었다는 증거였다.
“앞으로 계속 차고 다니도록 해. 단검집은 버레이한테 부탁하고.”
“알았어요.”
눈을 반짝거리며 즐거워하는 블라드를 보며 호르헤는 쓴웃음을 지었다.
“블라드.”
“네.”
“언제나 차고 다녀야 해.”
“······네.”
평소와는 다르게 무거워진 호르헤의 눈빛.
단검을 받아 즐거워하던 블라드는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알았어요.”
미묘하게 굳은 표정의 조직원들.
“꼭 차고 다닐게요.”
조직의 막내에게까지 칼을 건네준 보스.
흐르는 공기를 통해 블라드는 눈치챌 수 있었다.
호르헤와 외팔이 잭과의 대화는 파국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