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Embrac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40
휴가 같지 않은 휴가 (3)
“크으······쿨럭.”
힘없이 벽에 기대어 피를 토하고 있는 중년의 기사.
서서히 쓰러지는 그의 뒤로 검붉은 핏자국만이 애처롭게 남아있었다.
흘러내리는 식은땀이 그의 눈가를 무겁게 만들고 있었으나 기사는 정신을 차리려 노력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나고 말았지만, 자신은 마지막을 봐야 할 의무가 있는 자였으므로.
저벅-저벅-
남자의 귓가로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한 시야, 윙윙거리는 귓가,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누군가의 비명들.
그런 것들과 함께 섞여 들어오는 발걸음 소리는 조용하지만 섬뜩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여기 계셨습니까?”
“······결국, 여기까지 오고 말았군.”
지금, 새빨간 피로 물들어가는 저택.
이곳을 지켰어야만 하는 의무를 진 기사가 복도를 걸어온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볼 수 있는 것.
그것은 오직 죽음뿐이리라.
“주군의 명이 첫 번째요······. 쿨럭, 자신의 명예가 두 번째라는 말은 무조건 명령에만 따르라는 말이 아닐 텐데.”
“······.”
복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푸른 빛의 달빛.
그것과 함께 묵묵히 서 있던 남자는 서서히 쓰러져가는 기사의 마지막 넋두리를 들어줄 뿐이었다.
“전(前)대 가이다르 백작의 기사들은 이렇지 않았어.”
“······그래서 모두 죽었습니다.”
점점 감겨 들어가는 희미한 시야 속으로 달빛에 비쳐 반짝이는 검이 들어왔다.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빛이었다.
“그 빛도 언젠가는 스러질 테지.”
“······.”
그 말과 함께 푸른 달빛의 기사가 검을 높게 치켜들었다.
달빛이 만드는 역광으로 인해 그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고딘. 가이다르 백작에게 전해주게.”
승자는 위에 패자는 아래에.
“지옥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푸욱-
모든 것은 승자의 결정에 따라.
하얀색 복도를 따라 붉은 피들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전해드리지요.”
방금까지만 해도 비명이 가득했던 어딘가의 저택.
이제는 침묵만이 가득한 그곳에 푸른 달빛이 비치고 있었다.
달빛이 비치는 곳곳마다 붉은색의 비명들이 칠해져 있었다.
※※※※
마차 창턱에 얼굴을 기대고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밖을 내다보는 소년이 있었다.
“언제 도착하는데.”
“이제 거의 다 왔어.”
“아까도 거의 다 왔다며.”
“······.”
블라드는 낚였다.
자신의 집이 스투르마 안에 있다 하기에 아무리 오래 걸려도 반나절이면 도착할 줄 알았거늘.
그러나 블라드는 예상과는 다르게 반나절은커녕 아예 스투르마를 떠나 약 하루 정도의 거리를 더 움직여야만 했다.
이제 마차라면 지긋지긋한 블라드에게 있어서는 형벌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이맘때쯤이면 우리 가족 전부가 여름 별장으로 이동하거든. 초원의 풀들이 올라오는 시기라.”
“별장으로 가는 거면 처음부터 말을 해줬어야 할 거 아냐.”
“······미안.”
그러나 이미 일은 벌어졌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
포틀리의 가족들은 현재 스투르마 안이 아닌 도시 밖에 마련되어 있는 별장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즐거울 거라 포틀리가 입에 침을 튀기며 설명했지만 블라드는 그저 귀중한 일주일간의 휴가 중 이틀은 이동하는 데 쓰고 말았다는 사실에 짜증이 날 뿐이었다.
“오······.”
“풍경이 괜찮지? 이걸 보여주고 싶었거든.”
그러나 그 기분도 잠시.
과연 포틀리의 말대로 그저 언덕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 확 달라진 광경이 블라드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
시야마저 확 트이는 초원.
태어나 처음 보는 시원한 광경에 시큰둥하게 창턱에 얼굴을 걸치고 있던 블라드조차 입을 크게 벌리고 말았다.
“히야······.”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보며 블라드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참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
따뜻한 날씨에 맞춰 머리를 치켜든 풀들에 의해 사방이 온통 초록색뿐이었다.
나무조차 얼마 없어 지평선 저 너머까지 탁 트여있는 초원을 보며 블라드는 마치 초록빛 바다 한가운데 온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여기 있는 초원은 쭉 이어져서 바르나 앞까지 닿고 있거든. 원래는 가끔 몬스터들이 튀어나오기도 하는데 이번 겨울은 요제프님이 몬스터 토벌을 하신 직후라 그 걱정은 없어도 될 거야.”
“아, 그래?”
“그래. 네가 했다던 그 토벌 있잖아.”
“아. 그거.”
모든 행동에는 의도가 있는 법.
지난해 겨울날 요제프와 처음 만나게 되었던 그때의 토벌이 지금의 초원을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니.
“그러면 지금의 풍경에 나도 조금은 지분이 있겠네.”
블라드는 자신이 이 푸르른 초원을 만드는데 뭔가 한 손 거든 것만 같아 왠지 모르게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소리 지르고 싶다.”
“이해해. 나도 가끔 그러고 싶거든.”
지금이라도 마차 문을 박차고 뛰어나가 맘껏 달리고만 싶은 강렬한 초록빛의 세계.
저 멀리서 뛰어다니는 말들이 어떤 기분일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블라드는 마차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는 입을 크게 벌려 달려드는 공기를 집어삼켰다.
“이야야아아아아-!”
“······그래. 충분히 이해해.”
초원 한가운데로 소년이 내지르는 함성이 크게 울려 퍼졌다.
평생을 어둡고 좁은 곳에서 살아왔던 블라드로서는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신선한 감정들을 거침없이 내뱉고 싶을 뿐이었다.
※※※※
초록색 바다 위에 떠 있는 부표처럼 다른 색깔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별장.
그 앞에서 누군가가 마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우리 가문의 집사야.”
“오. 집사.”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길래 가족인 줄 알았더니 집사라니.
“집사가 필요할 만큼 집이 큰가 봐?”
“우리 가문에 집사는 총 두 명이 있어.”
“······그래?”
칸노르 가문은 비록 귀족은 아니었으나 스투르마에서 나름의 영향력을 지닌 가문이었다.
애초에 그것을 염두에 두고 포틀리와 친분을 맺은 것이긴 했지만 칸노르 가문의 부(富)는 뒷골목에서 자라왔던 소년의 상상력을 뛰어넘고 있었다.
“집사 오랜만이야!”
“저도 오랜만에 뵈어 반갑습니다. 도련님.”
강아지들은 자신의 덩치와는 상관없이 언제나 주인에게 안기려 드는 법이었다.
그리고 지금 포틀리의 모습이 딱 그 짝이었다.
어떻게든 통통한 포틀리를 안아 들려 하는 늙은 집사의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칸노르 가문의 막내이기도 한 포틀리는 집사에게 표현하는 행동으로 보아 집안에서 사랑받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정작 오기만을 학수고대했다던 블라드가 바로 앞에 당도했음에도 집사를 제외한 그 누구도 밖으로 나와 손님을 맞이하고 있지 않았다.
“그것이······.”
쓴웃음으로 곤란한 상황을 표현한 집사는 블라드에게 자그마한 양해를 부탁했다.
“가주님께서는 갑작스레 도착하신 손님들을 먼저 맞이하시느라······. 그러니 저희 가문이 자랑하는 목장을 먼저 구경하심이 어떠실지.”
갑작스러운 손님이 왔다라.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집사를 보며 블라드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렇게 하시죠.”
다른 손님이 왔으니 기다려 달라는 말은 실례에 가까운 말이기도 했으나 블라드는 크게 개의치 않아 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런 블라드를 보며 늙은 집사의 얼굴에 주름이 활짝 펴졌다.
[잘했다. 너그러운 마음은 언젠가 돌아오기 마련이니.]‘······뭐 그런 생각으로 말한 건 아니지만.’
블라드는 목소리의 말을 들으며 조용히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언제 한 번 제대로 대접받아 본 적이 있었는가.
비록 나중으로 밀리긴 했지만, 오히려 지금 같은 상황조차도 예전에 비하면 꿈만 같은 일일 것이다.
그리고 고작 데어마르에서의 일로 대접을 받으려 한다면 앞으로 무언가를 해 나갈 때마다 발은 둔해지고 고개는 빳빳해지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소년은 모든 일에 있어 가능한 한 대범해지기로 했다.
“대신 말들이 있는 곳부터 보고 싶습니다. 기대가 컸거든요.”
“물론 그렇게 하셔야죠. 정말 비싼 녀석들은 가주님께서 직접 소개하실 테지만 나머지 녀석들은 미리 봐두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대신 나에게 허락된 것들은 찾아서 먹어놔야 하겠지.
양보할 수는 있으나 손해 보는 것까지는 용납하지 않는 것이 소년이 여태까지 살아왔던 삶이었으니까.
※※※※
히이이이이잉-
푸드드득-
컹컹 컹!
“······.”
“······.”
소, 말, 양. 그리고 양치기 개까지.
목장 안에 있던 동물들 모두가 블라드를 보고는 기겁하며 멀리 도망치고 있었다.
“······이건 좀 심각하군요.”
포틀리와 블라드는 이런 상황이 발생할 거라 예상 정도는 하고 있었지만 이런 광경을 처음 보는 늙은 집사는 얼굴이 새파랄 정도로 놀라고 있었다.
“혹시······교회는 가보셨는지?”
“저의 신분 보증인이 바로 안드레아 사제님이십니다.”
“아아······죄송합니다.”
너 혹시 저주라도 받은 것 아니냐 돌려 물어봤던 집사였으나 블라드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을 듣고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대를 이어 목축과 축산업을 하고 있는 칸노르 가문의 집사답게 그 또한 동물들을 다루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맹세코 지금 같이 말과 양들이 누군가를 피해 부리나케 달아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소 타는 것도 불가능해졌구만.’
옆에 있는 늙은 집사가 놀란 표정으로 보거나 말거나 블라드는 그저 착잡한 심정으로 텅 비어있는 울타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고트가 우스갯소리로 소라도 타야하는 것 아니냐 말했지만, 지금의 상황으로 봐서는 그것조차도 불가능할 것 같았다.
블라드는 우울해졌다.
“······.”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포틀리는 안쓰러운 마음에 블라드에게 약속했다.
“우리 목장에 있는 녀석들은 다 보고가. 너에게 한 마리쯤은 맞는 녀석이 있을 수도 있잖아.”
이곳에 있는 모든 녀석들을 다 보여주겠다고.
전투용, 승마용, 작업용, 도축용 할 거 없이 전부 꺼내 보여주겠다고 말이다.
“그래도 나를 따라줄 녀석 한 마리쯤은 있겠지?”
“당연하지!”
그러나 약속이라는 것은 장담한다고 해서 언제나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며 목장을 샅샅이 뒤지고 다닌 두 명이었으나 다들 블라드를 피하기 바쁜 녀석들일 뿐이었다.
그 와중에 애꿎은 집사만 혹사당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 각오하고 있던 블라드였으나 막상 상상했던 광경이 눈앞에서 여실히 펼쳐지고 있으니 그야말로 미칠 노릇이었다.
그나마 품고 있던 한 줌의 희망마저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오러를 쓰면 뭐하나.
말을 타지도 못하는데.
“남들이 멋지게 기마 돌격 같은 걸 할 때 나는 흙먼지나 먹으며 뒤꽁무니나 쫓아다니겠지······.”
“······아직 아버지가 데려온 혈통 좋은 녀석들이 있어.”
그러나 그 녀석들을 데려오려면 가주의 허락이 있어야 할 터.
잔뜩 부풀어 올랐던 기대감이 형편없이 꺼져버린 블라드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별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지평선 너머로 저물어가는 오늘의 태양이 소년의 축 처진 어깨를 붉게 물들여줄 뿐이었다.
※※※※
타닥-타닥-치익-
”······.“
식당에 들어온 블라드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하인들에 의해 화로 위에서 쉼 없이 구워지는 고기들.
그곳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침울해져 있던 블라드의 마음속을 다시금 훈훈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여기 잘 왔네.’
비록 마차에서는 멀다며 불평했지만, 지금의 광경을 보며 블라드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올 만한 가치가 있었다.
“어서 오게! 귀한 손님을 직접 맞이하지 못해 미안하군!”
빙글빙글 돌아가는 고기들 앞에서 망부석처럼 굳어 데굴데굴 눈알만 굴리고 있던 블라드.
칸노르 가문의 가주이자 포틀리의 아버지인 올슨 칸노르는 블라드의 꾸밈없는 반응에 기분이 좋아진 듯 두툼한 손으로 소년의 등을 두들겨주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바예지드 가문의 종자인 블라드입니다.”
“알지알지! 자네에 대한 소문은 이미 스투르마 내에 쫙 퍼져 있으니!”
옥사나 백작 부인에게 배운 인사를 따라 자신에게 예를 취하는 블라드를 보며 올슨 칸노르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실로 오랜만에 소드마스터의 규율을 발동시켰다는 소년.
그 소년이 자신들의 도시에 있다는 것을 안 스투르마의 사람들은 나름의 자부심과 함께 블라드의 관한 이야기를 쉼 없이 나누고는 했다.
새로운 별의 탄생은 언제나 환영인 법이었으니까.
‘포틀리가 친구 하나는 잘 사귀어놨구나!’
올슨 칸노르는 자신의 앞에 있는 훤칠한 소년을 보며 아무것도 먹지 않았음에도 배가 불러오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동안 포틀리가 바예지드의 저택에서 적응에 어려워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여왔으나 지금 눈앞의 소년을 보니 그간의 걱정이 싹 사라지는 것만 같은 올슨이었다.
훤칠하고 믿음직해 보이며 무엇보다도 말라있는 것이 잔뜩 먹이고 싶은 인상의 소년이었다.
“여기 앉지! 실로 오랜만에 듣는 소드마스터의 규율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으니!”
블라드는 뒷골목에서의 습관에 따라 올슨의 태도를 보며 그의 성향을 유추해보려 했다.
시선과 품행에는 진심이 담겨있었으며 크게 웃는 그의 웃음에는 당당함이 담겨있었다.
흔히 말하는 호인의 느낌이었으며 손님 대접을 열심히 하는 것을 보아 상당히 외향적인 성격의 인물인 것 같았다.
다시 말해 사업을 하기에 알맞은 성격의 사람같아 보였다는 뜻이다.
“오늘 우리 집에 귀한 손님들이 오셨으니 이 집안의 주인으로서 너무나 기쁘군!”
블라드는 올슨의 말을 듣고는 오늘 자신 말고 이곳에 찾아온 또 다른 손님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다른 곳에서 온 손님들을 합석시키나?’
귀족 혹은 부유한 가문에서의 규칙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블라드였기에 그저 이곳의 주인이 알아서 했겠거니 생각할 뿐이었다.
“게다가 여기 있는 모두가 바예지드의 사람들이니 이 또한 기쁜 일이지!”
‘바예지드?’
이곳에 온 또 다른 손님들도 바예지드에서 왔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 블라드.
그렇게 손수 자신을 안내하는 올슨을 따라 자리에 앉은 블라드는 그때서야 또 다른 손님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
기사들.
그것도 정련된 기세를 지니고 있는 수준 있는 자들.
오히려 아무것도 몰랐을 때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을 수 있었겠지만 이제야 세계를 조금이나 엿볼 수 있게 된 블라드로서는 그들이 내뿜는 기세가 버거울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마치 이곳의 주인이라도 된 듯 한 가운데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
익숙한 검은 머리를 가진 남자가 블라드를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오랜만이지? 그동안 잘 지냈나.”
자신의 주군과 닮았으나 안쓰럽게 깔려 있는 짙은 눈그늘 대신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
“······이곳에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루트거 님.”
바예지드 가문의 장자인 루트거 바예지드.
그가 블라드를 보며 웃고 있었다.
“오늘은 나와 같이 무언가를 먹어도 되는지 모르겠군. 사양하기에는 너무 좋은 음식들 아닌가.”
루트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옆에 앉아 있던 기사들의 기세가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그럴만도 할 것이다.
모시는 주군의 호의를 거절한 애송이가 바로 앞에 앉아 있었으니.
“······.”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뒤에서 쉼 없이 돌아가고 있는 돼지 통구이를 가리키며 찡긋거리는 루트거.
그를 보며 블라드는 생각했다.
그때 왜 땅콩을 먹지 않겠다고 뻗대고 말았을까.
이렇게나 흉포한 기세를 지닌 남자에게 말이다.
“······오늘은 괜찮을 겁니다.”
그러나 블라드는 비록 위축되었다 할지라도 고개 숙이지는 않았다.
앞에 놓여 있는 포크를 결연히 잡은 채 똑바로 마주봐주었을 뿐이었다.
“저도 기대하고 있었거든요.”
“······그래?”
사나운 푸른 눈동자를 치켜뜬 채 자신을 바라보는 소년을 보며 루트거는 진한 웃음을 지었다.